전기충격기의 역습


막연히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하도 흉흉하길래 요즘은 나도 전기충격기를 들고 다니는데
이게 스위치가 좀 많이 부드럽다. 띡, 띡, 올려지는 게 아니라 스르륵, 하는 느낌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래서 어디 밀리거나 해서 저 혼자 켜지기라도 하면 난감하겠다, 생각했는데
어제 그랬던 거다.

까페에 앉은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어디선가 요란한 경보음이 막 울리길래,
난 어디서 화재경보음이 울리는 건가 하고 있었다.
근데 소리가 너무 가까운 거야……
그리고 어쩐지 익숙한 소리였던 거지……
그렇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면서 그랬는지, 가방을 옮기면서 그랬는지 그건 모르겠고
하여간 어쩌다가 전기충격기의 그 부드러운 스위치가 스르륵 올려진 거였다.

가방에선 경보음이 마구 울리고 있었고
나는 주위를 의식해 재빨리 충격기를 찾아 스위치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책과 수첩과 노트와 장갑과 필통과 지갑과 티슈와 파우치와 씨디피에 가려져 어디 있는지 통 안 보이는 충격기를 찾기 위해 가방 안을 더듬으며
이거 이러다 얼떨결에 덥썩 잡기라도 해서 감전, 여기서 꽥 쓰러지는 캐삽질을 하게 되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해서 마구 뒤지지도 못하고……
다행히 감전되기 전에 충격기를 찾아서 얼른 스위치를 내렸지만
아마 일분도 되지 않았을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정말 진땀이 났던 것이다.

오늘 외출하면서 충격기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어쩔까. 안경 케이스 같은 곳에 넣어 들고 다닐까. 하지만 그건 비상시에 잽싸게 쓴다는 충격기의 취지에 맞지 않는걸. (가방 안이 어수선해서 어차피 늦게 찾을 주제에) 고민하다가 일단 평소처럼 갖고 나갔다.

언젠가 지하철에서든 까페에서든 나 혼자 꽥 비명을 지르며 쓰러질지도 모른다.
내 가방에선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고 있겠지.
이 기이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러 나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부축하자마자 연달아 쓰러지는데…… 두둥.


영진공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