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야 미안해> – “혜리씨, 고마워”

소위 ‘디 워 사태’가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영화 평론가의 존재 이유가 뭐가 있냐고 성토를 했었다. 니들이 뭔데 우리가 재밌다는 영화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거였다.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져 그네들이 쓰는 영화평이 전문가 뺨치는 시대가 된 건 분명하지만, 여전히 난 영화 평론가들이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보지 못했을 영화를 보면서 “건졌다”고 즐거워한 게 여러번이며, 내가 본 영화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준 적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그 고마운 평론가 중 하나가 바로 김혜리다. “스물 무렵, 영화보다 영화에 관한 글에 먼저 이끌렸습니다”라고 말하는 김혜리를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평론가로 꼽는 이유는 시네21에 연재되는 메신저 토크를 감탄하며 읽어서이기도 하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외국 감독과 인터뷰를 할 때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들에 혀를 내두른 기억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부수적인 이유로 김혜리는 여자다! 그리고 왠지 미녀일 것 같다!). 그가 <영화야 미안해>라는 책을 냈다. 그래도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에서 소개된 영화 중 내가 본 것은 30%에 불과하다. 책과 달리 영화라는 건 한번 지나가면 다시 보기 힘든 장르인지라 내가 나머지 영화들을 볼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꼭 그 영화를 찾아보지 않는다 해도 김혜리의 글은 그 영화들의 엑기스와 더불어 풍부한 상식을 내게 전달해 줘,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예컨대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연기에 대한 영국배우와 할리우드 배우의 차이점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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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표현할 줄 아는 단어가 ‘너무’ 뿐이어서 ‘너무 맛있어’나 ‘너무너무 맛있어’란 말밖에 못하는 사람들만 질리게 봐온 터라 김혜리의 책에 나온 표현들에 가슴이 시려오기 때문이다. 그가 다코타 패닝에 대해 “이 아이는 눈물 한 방울로 세상에서 제일 큰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때 난 영화에서 본 패닝을 떠올리며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고 그가 “알츠하이머병의 가장 깊은 슬픔은 오랫동안 알고 사랑해온 사람이 곁에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간다는 사실에 있다. 그 슬픔은 망각의 강을 건너는 자가 아니라 이 편 기슭에 남는 사람의 몫이다”라고 말할 때 난 집에 계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한다.
 
김혜리는 “영화의 밀도와 미덕에 합당한 대접을 하지 못하는 비례를 범하기도 했”다면서 그 영화들에 사과의 마음을 담아서 <영화야 미안해>를 부친다고 했다. 평소 영화를 좋아했다면, 그리고 영화에 빠져서 열시간 정도를 허우적대고픈 마음이 든다면 <영화야 미안해>를 골라보길 권한다. 김혜리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다 읽고 나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혜리씨, 고마워.


영진공 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