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 2004), “알 파치노의 광기 어린 샤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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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원작의 “베니스의 상인”이라고 하면 샤일록이라는 잔인한 고리대금업자와 그에게 내려진 ‘살 덩어리는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는 유명한 판결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하여 착한 주인공들이 사악한 악당의 손아귀로부터 구원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베니스의 상인” 본래의 결말이다. 그러나 알 파치노가 연기하는 샤일록은 더 이상 일방적인 금권의 화신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마이클 래드포드의 시나리오는 당시 베니스의 유대인들이 왜 고리대금업을 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간의 종교적, 인종적인 갈등과는 어떤 식으로 관련을 맺고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기독교인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아야 했던 샤일록에게 외동딸의 가출 사건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살의를 품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득의만만한 샤일록과 그 앞에 독 안의 쥐 같았던 안토니오의 뒷 자리에 각기 일군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대치하고 있던 상황 역시 샤일록 개인의 잔혹함만으로 설명하던 기존의 텍스트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상황을 인식하게 해준다. 원한을 풀기는 커녕 오히려 가진 재산을 몰수당하고 심지어 기독교로 개종까지 하게 된 샤일록의 오열하는 모습은 극적인 반전을 통한 권선징악의 통쾌함 보다는 한 인간의 몰락을 바라보는 지극히 인간적인 연민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마이클 래드포드의 재해석은 농익은 배우들의 연기 만큼이나 세련되고 풍성한 편이지만 샤일록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게 되면서 원작이 지향했던 극전 반전의 묘미는 아무래도 희석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알 파치노의 광기 어린 샤일록과 보다 원시적인 시대 분위기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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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