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몸 속에 자철광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4부, 완결]


 

 


 


 


* 3부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주자성 박테리아는 나침반으로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노크기의 자석 조각들을 진주 목걸이 마냥 길게 이어붙여 활용했다. 그런데 과학자 형님들이 보기에 몸 속에 이런 자석 체인을 가지고 있다면 세포 분열을 할 때 아무래도 자력이 방해가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일반적으로 박테리아가 세포 분열할 때 가운데 세포벽이 수축하며 두 개로 댕강하며 나뉘는데 이 때 발생하는 수축력으로는 자석 체인을 떼어 놓기에는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과학자 형님은 마그네토스피릴룸 그리피스월던스Magnetospirillum gryphiswal


dense 라는 이름도 젠장맞을 박테리아를 붙잡고 대체 어떻게 세포 분열을 하는지 스토킹 짓을 하였다.


 


그 녀석은 처음에는 여느 박테리아 처럼 길게 늘어난 후 중심부가 잘록하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 주자성 박테리아는 두 개의 딸세포가 약 50도 정도의 각도로 구부러지며, 빠르게 두 개의 세포로 분열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마그네토솜 체인을 분리하는데 있어 평행한 상태에서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것 보다는 체인을 구부리며 잡아당기는 것이 자기력을 약하게 만들어 보다 적은 힘으로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마치 철사를 끊을 때 빠르게 아래 위로 구부리면 보다 잘 끊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M.그리피스월던스 박테리아는 분열할 때 정확히 같은 양의 마그네솜을 나누어 가졌다.


 


 


 





[그림 1]


Z-링은 단백질이 실처럼 이어져 있는 것으로,


세포 분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일반 박테리아에선 Z-링이 동그랗게 형성되는데 반해,


주자성 박테리아에게선 아치 형태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주자성 박테리아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분열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면 주자성 박테리아들은 워낙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마그네토솜 체인 역시 모두 같은 형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자성 박테리아들은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뒤얽힌 마그네솜 체인을 만들며, 이러한 체인이 세포의 한쪽 구석에 몰려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과학자 형님들은 주자성 박테리아들마다 각기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분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과학자 형님들이 주자성 박테리아들을 조사하면 할 수록 심각한 의문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즉 요놈들이 정말 마그네토솜을 나침반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진화시킨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했듯 모든 주자성 박테리아가 마그네토솜을 체인처럼 일렬로 이어붙여서 사용하지도 않았고 몸 가운데 위치하지도 않았다. 몇몇 종의 경우 마그네토솜 조각이 흩어져 있으며 박테리아의 한쪽 면만을 따라 늘어서 있기도 하였다.


 


이처럼 마그네토솜이 일렬로 정렬되어있지 않다면 나침반으로 활용하기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단자구를 형성할 수 있는 크기 범위를 넘어선 200나노미터나 되는 커다란 자석 결정을 만드는 놈도 등장하였다.


 


이런 녀석들은 지금껏 우리가 입아프게 떠들었던 이론에는 맞지 않으며 그렇다면 당연히 도태되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잘먹고 잘살고 있으니 이녀석들은 우리가 아직 마그네토솜의 모든 기능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자. 얘네들은 정말 마그네토솜이 필요한 것인가?


 


 




근데 마그네토솜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분명 주자성 박테리아들이 몸 속에 있는 마그네토솜을 나침반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는 북반구에 있는 박테리아는 자북극으로(자북극형, NS형), 남반구에 있는 박테리아는 자남극으로 이동(자남극형, SS형)하는 것을 관찰한 결과이다.


 


이러한 행동은 주자성 박테리아들이 보통 저산소지역에 살며, 이런 지역은 침전물이 쌓이는 곳이기 때문에 확실히 지구자기장을 이용한 움직임이 아래쪽으로 이동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화학물질의 층상구조지역이나(농도가 단계적으로 바뀌는 구역) 산소의 층상구조지역에서도 주자성 박테리아들이 다량으로 발견되면서 이러한 초기 관점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주자성이 이러한 층상지역에서 어떤 이익을 주는지 명확한 설명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림 2]


층상구역에서 최적의 농도로 이동하기 위한 움직임.


박테리아는 애써 머리를 돌릴 필요없이,


편모의 회전 만으로 앞뒤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림 3]


지역에 따른 주자성 박테리아의 행동 양식.


북반구에는 자북극형과 자남극형이 7:3비율로 살고 있으며,


남반구는 반대로 자남극형이 7:3 비율로 많다.


적도에는 5:5 비율로 분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요 재기발랄한 주자성 박테리아들은 ‘주자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기성(aerotaxis , 走氣性)’, 즉 산소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층상구역에서 최적의 지점으로 이동할 때는 주자성 뿐만 아니라 주기성도 발휘하였다.


 


주자성 박테리아의 행동 양식은 자북극형(NS형), 자남극형(SS형) 이외에도 수직형(polar) 주자성-주기성과 수평형(axial) 주자성-주기성으로도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직형은 자기장을 따라 한쪽 방향으로 고집스레 이동하며, 수평형은 자기장을 따라 움직이되 복잡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림 4]

박테리아의 행동 양식에 관해 실험을 할 때,

과학자 형님들은 아주 얇은 튜브관이나 물방울을 이용한다.



수직형과 수평형 주자성 박테리아의 행동 양식의 차이는,


이러한 실험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자기장에 평행하게 튜브관을 놓고 관의 양쪽에서 산소를 확산시켜 튜브관의 중심에서부터 양쪽 끝으로 갈 수록 산소 농도가 증가하도록 만들었다. 이 때 수평형 주자성 박테리아는 튜브관의 양쪽 끝에 집단을 형성하는 반면 수직형 주자성 박테리아는 자기장의 반대 방향 쪽으로만 집단을 형성했다.


 


따라서 자기장은 수평형 주자성-주기성 박테리아에게는 수평형 운동성 만을 제공하는 반면 수직형 주자성-주기성 박테리아에게는 수직축과 방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경우 모두, 주자성은 층상구역에서 농도변화에 따른 이동에 있어 2차원(위, 아래)으로 단순화시켜 줌으로서 주기성의 효율을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이렇게 잘난 주자성 박테리아들이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여 진화의 왕관을 거머쥐고 나머지 패배자들은 도퇴되어야 할 터인데 층상구역에는 주기성만을 가지고도 잘먹고 잘살고 있는 박테리아도 많이 살고있다게 문제였다.


 


분명 주자성은 주기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효과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지구 자기장의 경사도가 높을 때, 즉 고위도 지방에서나 해당된다. 그리고 수직형 주자성 박테리아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주자성이 크게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었다.


 


결국 주기성만 가지고 있는 박테리아가 효율적인지, 수천만년에 걸쳐 마그네토솜 체인을 고집한 박테리아가 효율적인지에 대한 답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렇다면 마그네토솜을 방향이나 이동의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까?


 


비록 개미 코딱지만하지만 박테리아도 분명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래서 살아가기 위해선 당연히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질대사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과 함께 몇 가지 무기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극소량만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흔치 않기 때문에 이를 구하기가 위해선 열라 뭐빠지게 노력해야 한다. 철(Fe)은 이러한 필수 무기물 중 하나이다. 그래서 박테리아들은 길을 가다 철 원자를 보면 낼롬 주워서 몸 속에 철을 꼭꼭 숨겨놓고 필요할 때마나 꺼내어쓴다.


 


하지만 철은 필수 원소이자 독이기도 하다. 몸 속에 들어온 철 원자는 물 분자에게서 원자를 빼앗아 과산화수소를 만들 수 있고 이것은 박테리아의 DNA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로 말미암아 얘네들은 보통 철 원자들을 단백질로 둘러싸인 주머니에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주자성 박테리아가 가지고 있는 자철광이 대사에 필요한 철을 저장하는 수단이며 과산화수소를 분해하거나 다른 촉매 기능의 역할도 제공하는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다.


 


한편 일부 주자성 박테리아의 경우 철이 부족한 상태에서 철이 풍부한 환경에 노출시키면 약 10분만에 마그네토솜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렇게 형성된 철은 박테리아의 건조무게의 약 2~3%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는 매우 효율적인 흡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자철광 합성 시스템의 자세한 과정은 알지 못한다.


 


과연 주자성 박테리아의 마그네토솜은 어디다 쓰는 물건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나침반의 용도라기 보다 먹고사는데 없어선 안될 철의 저장고로서 먼저 진화하고 그 후 나침반으로도 얼추 쓸 수 있게 된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섣불리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지구 자기장을 활용하는 많은 동물들의 몸 속에도 자철광 조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철 원자를 덩어리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분명 나침반의 용도로 가지고 있는게 분명해 보인다.


 


 


 





[그림 5]


지구 자기장을 이용하여 대표적인 동물인 비둘기.


부리 안에는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는 자철광 조각이 들어있다.


 


 




이렇게 눈에 뵈지도 않는 박테리아의 멱살을 붙잡고 자철광 조각의 쓰임새를 추궁하고 있는 동안 우주 너머로부터 또하나의 심각한 질문이 지구의 생물학자들의 책상 위로 던져졌다.


 


1984년 남극에서 ALH84001라 이름 붙여진 화성 운석이 발견되었다. 이 화성 돌맹이는 태양계가 형성되었던 때인 약 45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좀 연식이 된 돌맹이었다.


 


그런데 이 화성 돌맹이에서 나노 크기의 자철광 결정이 발견되면서 얘기가 미묘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왜냐면 화성 돌맹이 속 자철광 결정이 지구 주민인 주자성 박테리아의 마그네토솜에서 만들어지는 결정과 비슷했는데 이러한 결정 모양은 당시 인공적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림 5]


주자성 박테리아가 가지고 있는 자철광은,


종에 따라 몇 가지 독특한 결정 모양을 띄고있다.


이러한 길죽한 철 결정 모양은,


2004년에 이르러 일부 인공 합성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주자성 박테리아의 자철광 조각은 박테리아가 죽은 후에도 남아서 자기력을 띤다. 그래서 많은 퇴적암에서 발견되는 자기력은 정렬하여 죽은 주자성 박테리아의 시체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들을 놓고 일부 과학자 형님들은 화성 운석에서 발견된 자철광 조각은 화성 생명의 흔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자성 박테리아들은 바닷 속 퇴적물에서부터 저 멀리 화성에 이르기까지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타클하게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지적인 차원을 넘어 기술의 차원에서 접근되고 있다.


 


현재 주자성 박테리아의 능력을 과학기술에 접목시키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주자성 박테리아는 자철광의 모양을 일정하게 만들 수 있고, 자성을 따라 아주 얇게 줄지어 세울 수 있으며, 지질과 단백질로 이루어진 마그네토솜이라는 막으로 싸여있다. 이러한 특징을 연구한다면 자석을 생체에 부착하는데 이용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효소를 고정하거나 자성을 가진 항체를 만드는 등 현재 뜨거운 감자인 나노 기술에 진일보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길을 잃어도 결코 길을 묻지 않으려는 똥꼬집 남성들의 이마에 자철광을 박아 넣어줄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한 고등학생은 주자성 박테리아를 회전시켜 전력을 얻는, 일명 주자성 박테리아 전지를 2006년 인텔-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Intel International Science and Engineering Fair(이하, ISEF)에 출품하여 큰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자기 박테리아 5.6그램을 작은 플라스틱 상자에 넣고 회전시켜서 48시간 동안 일반적인 AA 배터리의 절반에 해당하는 전압을 발생시켰는데 새로운 에너지원에 관한 우리의 생각의 폭을 넓혀준 계기가 되었다.


 


과학자 형님들은 이렇게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사골 국물 같은 주자성 박테리아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유전자공법과 배양법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바야흐로 주자성 박테리아는 본격적인 미생물학, 물리학, 지구 물리학 및 고지질학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요한 새로운 분야를 활짝 열어 제꼈다.


 


<끝>


 


 


 



* 이 글은 미국미생물학회(ASM) 2004년 4월에 실린 저널 ‘Magnetosome Myster


ies’을 대다수 참조한 것으로 저의 허접한 영어 실력으로 인한 잘못된 번역으로 틀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며 거의 8년전 저널을 참조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주자성 박테리아에 관해 보다 많은 연구가 진척되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속, 정확한 오류 지적은 …… 대환영입니다. ^^;


 


 


 



* 참고문헌 *


미국미생물학회(ASM) 2004년 4월에 실린 저널 ‘Magnetosome Mysteries’


(http://forms.asm.org/microbe/index.asp?bid=26445)


KISTI 미리안 2011년 12월에 실린 기사 [자성 박테리아의 분열원리]


(http://mirian.kisti.re.kr/gtb_trend/pop_gtb_v.jsp?record_no=226987&site_code=SS1020)


동아 사이언스 기사 2000년 12월 17일 기사 “화성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증거 발견”


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001217200000000002&classcode=0106


스티븐 제이 굴드 저, 김동광 역, [판다의 엄지], 세종서적, 1998


존 포스트게이트 저, 박형욱 역, [극단의 생명], 코기토, 2003.


칼 짐머 저, 전광수 역, [마이크로코즘], 21세기북스, 2010.


* 그림자료 출처 *


(그림 1) http://biogeomagnetism.biomnsl.com/info_56_118.html


(그림 2) http://www.nature.com/scitable/knowledge/library/bacteria-that-synthesize-nano-sized-compasses-to-15669190


(그림 4) http://www.nature.com/nrmicro/journal/v2/n3/fig_tab/nrmicro842_F4.html#figure-title


(그림 5) http://people.eku.edu/ritchisong/birdbrain2.html


(그림 6) http://www.nature.com/nrmicro/journal/v2/n3/box/nrmicro842_BX1.html


*그림자료 참고 *


(그림 3) http://www.energy.soton.ac.uk/pollution/bacteria.html


 




영진공 self_fish


 


 


 


 


 


 


 


 


 


 


 


 


 


 


 


 


 


 


 


 


 


 


 


 


 


 


 


 


 


 


 


 


 


 


 


 


 


 


 


 


 


 

투구게 님의 살신성인 (1/2)


인류는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지만 사실 수많은 생물들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생존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자 민폐 종결자라 할 수 있다. 생태계를 무상지원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약, 화장품, 신기술 개발 등을 위해 토끼, , 원숭이 등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아무런 친분도 없는 인류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살생부에는 비록 우리 동네에 거주하지 않아서 대면한 적은 없지만 익히 살아있는 화석으로서 현 지구상의 최대 짬밥을 자랑하는 투구게
horseshoe crab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해,
 진화론을 공격하는 창조론자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고 있는 투구게

공룡보다도 더 오래된 연식으로 현존하는 생물들이 알아서 기어도 시원찮을 판에 투구게는 어쩌다가 새까만 후배인 인류의 손에 놀아나게 되었을까. 그건 아이러니 하게도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게 해준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투구게의 면역체계 때문이다.

생긴 건 게처럼 생겼지만 오히려 거미나 전갈 같은 애들과 머나먼 친척관계인, 절지동물에 속하는 투구게는 피가 섹시하게도 파란색이다. 이것은 투구게의 고향이 안드로메다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투구게의 혈액 내에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헤모시아닌)에 구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
(헤모글로빈)에 철을 포함하고 있어서 붉은 색이다. 춥고 산소가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에게는 헤모글로빈hemoglobin의 산소 수송보다는 헤모시아닌hemocyanin의 산소 수송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투구게는 파란 피를 택한 것이다.

투구게의 섹시한 파란 피는 그 영롱한 색 말고도 또 하나 매력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세균과 접촉하면 바로 굳어버리는 원시적인 면역체계이다
. 그리고 이런 훌륭한 면역체계로 인해 투구게님은 팔자에도 없는 인간과 세균(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일선에 나서는 처지가 되었다.


폐렴으로 죽은 환자의 폐조직을 검사하다가 그람 염색을 개발하게 된,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


인류는 백신을 개발하여 수 천 년 동안 세균에게 넋 놓고 린치 당하던 상황을 역전시키고 세균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백신의 원리는 간단하다
. 우리의 면역체계를 미리 해당 세균에 노출시켜 기억시킨 후 다음에 같은 놈이 찾아오면 신속하게 걷어 차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쌩쌩한 세균을 몸에 직접 주입 했다가는 스파링 뛰려고 했다가 재기불능으로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백신은 독성을 낮추거나 제거한 세균(생백신)이나 아니면 아예 죽인 세균(사백신)을 이용한다.

그런데 초창기 백신을 연구하던 중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 죽은 세균으로 만든 백신을 맞은 환자 중 일부에게서 열이 나거나 심지어 쇼크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죽은 세균이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는지 의사들은 난감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풀기위해 머리를 싸맨 끝에 결국 그 원인을 밝혀내었는데, 그건 바로 일부 세균들의 세포벽 때문이었다.



이쁘게 그람 염색을 한 세균들
왼쪽이 그람양성 세균, 오른쪽이 그람음성 세균이다.

세균을 분류하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로 염색에 의한 방법이 있다. 이것을 그람 염색 Gram stein이라고 하는데 덴마크 출신의 의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 Hans Christian Gram이 개발한 염색법이다. 이 염색법을 이용하면 세균의 특성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그람 염색을 하면 자주색을 띄는 그람 양성 세균
(G+)들로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폐렴균, 나병균, 파상풍균 등과 같은 놈들이 여기에 속한다. 요녀석들은 두꺼운 세포벽이 특징인데 왜냐하면 이들의 나와바리가 육지이기 때문이다. 거친 육지생활을 위해선 아무래도 단단한 세포벽이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 붉게 염색되는 세균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람 음성 세균
(G-)이라고 한다. 살모네라균, 이질균, 티푸스균, 대장균, 콜레라균, 페스트균 등이 여기에 속하며 요녀석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의 나와바리는 물이다. 그래서 보다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얇은 세포벽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그람음성 세균들의 세포벽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그람음성 세균의 세포벽은
LPS(lipopolysaccharide)라는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의 면역체계는 세균의 LPS를 감지하여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죽은 세균으로 만든 백신이었지만 인체는 죽은 세균의 LPS를 감지하고 면역반응을 일으켜 몸에 열이 나는 것이다. 이처럼 그람음성 균의 LPS를 내독소 endotoxin라고 한다.

그람음성균들은 자라면서 세포벽에서 지속적으로 내독소를 방출한다
. 또한 그람음성 균은 세포벽이 얇아서 물에서 꺼내면 쉽게 죽거나 뭉개지며 이 과정에서도 내독소를 방출한다. 즉 우리는 언제나 내독소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살벌하게 생긴 세균의 자태

그래서 우리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독소에 반응하는 면역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며, 몸에 열이 나는 것은 체온을 올려 세균을 태워 죽이려는 포유류들의 자연스러운 면역반응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인체의 면역 시스템은 점점 강해지는 것이며 대부분 내독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양의 내독소가 인체로 쳐들어와서 너무 많은 열을 발생시키면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 특히 백신이나 정맥주사액 같은 생의학 제품과 의료장비의 경우 그 대상이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독소의 제거는 중요하다. 내독소를 효율적으로 파괴하기 위해서는 200도 이상의 고온이나 강산, 강염기에 장시간을 노출시켜야 한다.

그래도 장담할 수 없다
. 주위에는 내독소가 널려 있어서 다른 과정에서 묻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내독소에 민감한 토끼를 주로 애용하였다. 오염이 의심되는 샘플을 토끼에게 주사하고 토끼가 열이 나는지를 통해 오염유무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런 시험을 위해선 많은 토끼를 길러야 했기 때문에 넓은 공간과 많은 유지비가 들었으며 윤리적인 문제도 대두되었다. 게다가 실험 결과를 얻기까지 무려 48시간이나 걸렸다.

이렇게 인류가 예상치 못한 세균의 내독소에 전전긍긍하던 중 투구게의 영롱한 푸른 피가 한줄기 빛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물론 투구게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백신에서 내독소를 제거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단백질의 변성으로 인해 고온을 이용해서,
내독소를 제거하는 방법은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여러 정제과정을 통해 내독소의 대부분이 제거되지만,
기준치 이하로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다
.
그래서 보다 경제적으로 내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