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해서 문제라고?

몇년 전에 우리나라에 온 하버드대 교육학과 교수인가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의 영어 열풍은 미국의 다이어트 열풍이랑 비슷하다.
미국에서 다이어트 산업은 갈수록 커지고 다이어트에 쏟아붓는 비용도 갈수록 늘어남에도
오히려 비만인구 숫자는 더 늘어나는 것 처럼, 한국에서 영어교육에 열광하는데도 정작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간단히 말해서 영어를 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제 주변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몇년 지내면 서서히 영어 듣기 말하기가 약해진다고 말하더군요.
왜? 이유는 뻔하죠. 평소에 영어를 쓸 일이 없으니까요.

영어를 쓸 일이 생기려면 자꾸 외국인들을 만나야 하고 같이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원치 않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외국 사람들과 같이 일하려면 지금 우리가 익숙한 시스템을 버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우리가 익숙한 시스템은 폐쇄적인 학연 시스템입니다.
서울대학교의 세계 랭킹은 좋게 봐줘서 1백위 내외지만,
외국에서 훨씬 랭킹이 높은 대학에서 그만큼 더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국내에서는 서울대 출신에게 밀릴 수 있습니다. 실력만 있고 학연이 없다면 말입니다.

서울대의 저력은 대학 자체의 우수함이 아니라 서울대 졸업생들이 만들어놓은 네트워크의 힘에서 나옵니다.
이런 네트워크는 원래 폐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들끼리의 기준을 사용하기에 기본적으로 외부와의 교류를 하면 그 내부기준들이 흔들립니다. 혼란이 생길 뿐이죠.

외국엔 이런 네트워크가 없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심하진 않습니다.
일단 외국의 학계는 단 하나의 우수한 대학과 그 이하 대학으로 줄세우기가 쉽지 않죠.
그러니까 네트워크가 있어도 그 네트워크 자체가 다원적이라 폐쇄성이 어느 정도 상쇄됩니다.
물론 미국도 유럽도 어디쯤 부터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지만, 우리나라는 그 리그가 거의 대부분을 점유한다는게 문제죠.
이런 시스템에서는 네트워크에 편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편입한 이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합니다.
서울대 망국론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겁니다.
네트워크에 의존하다보면 결국 우물안 개구리 그 자체가 되거든요.
여기서는 “폐쇄 네트워크 안에서만 최고인 인간들” 이 바로 그 우물 안 개구리죠.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 영어에 목을 맬까요?
어차피 그 영어 잘하는 직원들 뽑아놓고 1년에 한 두번 외국과 전화통화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

지금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국제화 시대에 외국과 교류하기 위한 언어로서의 가치 보다는 일종의 거름망으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토플이나 토익은 21세기의 과거시험이 아닙니까.  그걸 가지고 사람들을 줄세우는 거죠.

그러니 지금 우리나라의 영어교육 열풍, 조기유학 열풍은
국내 학교에서 영어를 잘 가르치면(물론 잘 가르친다는 보장도 없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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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무슨 용가리 통뼈가 있어서 국내 공립학교에서 영어교육을 100% 확실하게 실시했다고 치죠.
그러면 정말 큰일나버립니다. 모두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하고 비슷비슷한 수준의 토익 토플 점수를 받으면
차별성 지표로서 영어의 가치가 사라지거든요.
그럼 사교육과 학부모는 합심해서 다른 차별성 지표를 찾아나서야 됩니다.

수능을 갈수록 쉽게 내서 수능 상위권 점수자들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질수록 과외 열풍이 부는 이유랑 똑같습니다.  수능으로 차별을 못하니까 다른 차별 지표를 억지로 찾아내려다 보니 사교육이 커진거죠.

그럼 왜 차별을 해야 하나고요?
왜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너무 비슷비슷한데, 그 원하는 것은 얼마 없거든요.
그것은 바로 괜찮은 직업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괜찮은 직업을 놓고 벌이는 제로섬 게임장입니다.

백명의 사람이 열개의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경쟁을 하면 결국 그 백명중 열명을 골라낼 방법이 필요해집니다.
지금 영어가 바로 그 기능을 하고 있죠. 영어가 아니라면 뭐든 상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괜찮은 직업이 열개로 고정되어 있는 한 계속 될 겁니다.

결국 미친 조기교육, 비대해진 사교육, 무너져내리는 공교육, 영어 열풍의 원인은
모두가 원하는 괜찮은 직업이 너무 적다는 절대적인 상황 때문입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기업이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하청에 재하청에 재재하청을 줘가면서
정작 일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 보다는 중간에서 떼어먹는 몫이 더 큰 상황을 개선하고
대학이나 영어로 취득할 수 있는 괜찮은 직업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괜찮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길들이 열리면
미쳤다고 누가 영어 열풍에 동참하겠습니까.

근데, 새 정부는 이 문제를 아주 순진하고 아마추어 스럽게 접근하는군요.
(물론 사실은 사교육업체와의 결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악의적 해석은 한동안 참겠습니다.
아무나 지들 맘에 안들면 빨갱이라 주절대며 온갖 곡해를 일삼던 인간들과는 달라지고 싶거든요)

지금 인수위가 내놓은 아이디어의 골자는 우리나라 공교육 환경을 미국 학교처럼 바꾸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유학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거죠.

일단 우리나라 교사들이 영어 수업을 제대로 한다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앞서 말했듯 혹시 만에 하나 성공한다고 해도 그게 문제 해결은 아닙니다.
다른 사교육의 탄생을 가져올 뿐이겠죠.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