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드라마, 오히려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도 …


임성한 드라마. <아현동 마님>을 본의 아니게 챙겨보게 되었다.  저녁먹는 시간하고 겹쳐서, 밥 먹을 동안 만이라도 좀 편하자고 TV를 틀어놓으면 감사하게도 밥 먹을 동안 애기가 TV를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임성한 드라마가 욕먹는 이유, 임성한 드라마가 이상한 이유를 다른 방향에서 정의해 보면 ‘비모성, 비자매애’인 것 같다. 비상식적인 설정, 파격적 설정을 얘기하는데 그 속을 파헤쳐 보면 거기엔 비모성과 비자매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저럴 수가…’하면서 혀를 차며 보는 것 같다.



‘겹사돈’이 주요 설정이었던 <보고 또 보고>의 금주, 은주는 친자매간이다. 결혼 전부터 동생인 은주가 희생하는 타입이었고, 언니 금주가 제멋대로인 스타일이었는데, 동생 은주가 맏동서가 되고, 금주가 아랫동서가 되어 버리면서 둘 사이는 친자매사이가 아닌 완전 사이 열라 안 좋은 동서지간이 되어버린다. 거 참. 어이없지 않은가? 물론 겹사돈이란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친언니랑 나랑 둘이 한 집안의 며느리라면 그 둘은 힘을 합쳐 시댁을 말아먹을지도 -_-;;) 아무튼 친언니랑 둘이 일하는 명절은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동생이 좀 꾀를 피거나 언니가 좀 게으르더라도 ‘요년이’하면서 봐주지 아니하겠는가. 어찌 다른 드라마에는 일반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자매애가 이 드라마엔 있지 않은 건지.


<인어 아가씨>는 ‘모성의 부재’가 핵심이다. 은아리영의 복수심은 ‘부성의 부재’에서 야기된 것 같지만, 그녀의 행각이 엄마를 버리고 재혼한 친부에게 향하기 보다는 새엄마와 이복여동생을 향하는 것을 보면 어째 이상하다. 나에게 헌신적이고 좋은 엄마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맹인이라 나를 돌봐준다기 보다는 내가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다. 친부가 아닌 새엄마와 이복여동생에 대한 미움이 먼저인 그녀의 복수심은, 자신의 ‘모성 부재 상태’에 대한 분노에 다름 아니다.


<왕꽃 선녀님>에 와 보면 다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친엄마는 있지만, 좀 사회적으로 이상한 지위에 있는 여자다. 무당이고, 무당끼를 물려준 엄마다. 하늘이시어에 오면 남편죽자 첫사랑과의 결혼을 삐까번쩍하게 치르고, 그 첫사랑과 낳은 딸을 며느리나 삼으려고 하는 이상하게 뒤틀린 모정뿐이다. 친모의 모정은 있어도 뒤틀렸고, 새엄마는 가혹하게 주인공의 삶을 비튼다.


욕 안먹는 <아현동 마님>에서도 강도는 엷어졌으되, 여전히 모성과 자매애는 부재하다. 백시향 검사의 엄마는 친엄마이되 계모같았으며, 친자매지만 외모가 전혀 다른 그녀의 동생들도 이복동생들 같다. 예쁘고, 착하고, 일하는 백검사와 못생기고, 게으르고, 욕심 많은 그녀의 동생들은 딱 신데렐라와 이복동생들이다. 아버지인 백제라의 뇌졸중 이후 어머니와 동생들이 모두 개과천선해서 천사가 되었는데 솔직히 그게 어색하기 짝이 없어서 웃긴다. 그러고 보니 유일하게 아현동마님에서만 엄마다운 엄마가 나오긴 한다. 요샌 광주에 내려가신 것으로 되어 있어서 안 나오는데, 왕년의 은실네 박혜숙 여사님은 좀 엄마 같은 엄마였다. 부길라의 엄마인 사비나도 약간은 비틀린 친모임에 틀림없다. 공주대접 받으며 낳은 아들도 시어머니가 다 길렀다는 부러운 팔자 사비나 여사. 새엄마가 안나와서 덜 뒤틀려보여도 <아현동 마님>도 그 연장선 상이다.

그래도 내가 역설적으로 임성한 드라마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녀의 드라마에는 남자 캐릭터들이 거의 없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등의 옛날 이야기와 달리 그 모성의 대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뭐 물론 ‘불쌍했던 은아리영이 주왕오빠, 백시향여사가 부길라 검사라는 백마탄 왕자를 만나서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라는 스토리로 본다면 똑같은 패턴으로 볼 수 있겠지만. 모성만큼이나 비현실 적인 캐릭터인 임성한 드라마의 남성들이 바로 이 모성의 대역들이라고 본다면 양자에는 약간의 차이가 생긴다. 아현동 마님만 한번 살펴 보다. 부길라에게 받은 모성이 있다면 그건 뭐 할머니한테도 있겠지만, 아버지인 부영상으로 부터 받은 사랑이 부성보다는 모성에 가깝다. 사비나가 받은 모성도 남편 부영상의 것이다. 백시향도 엄마같은 사랑을 주는 아빠를 떠나는게 가슴이 아팠지만, 어쨌든 새엄마같은 엄마를 벗어나 부길라라는 ‘친 엄마같은 남편’에게 안겼다. 전작들을 생각해 봐도 거의 마찬가지다. 아리영은 주왕오빠, 윤초원인 김무빈, 자경이는 왕모라는 ‘친 엄마 같은 남편’들을 얻은 것이다. 백시향의 남편은 12살이나 어린 띠 동갑이지만 그래도 백시향의 엄마 노릇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엄마노릇은 속옷 손빨래하기, 아내 손 녹여주기, 깜짝쇼 하기, 아프다면 옆에서 밤 새기, 아프다면 제 정신 돌리려고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생쇼하기로 구체화 되어 보여진다.


나는 노희경드라마를 참 좋아한다. 임성한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한다면, 노희경 드라마는 갑갑해하면서도 보는 드라마이다. 노희경 드라마가 제일 갑갑한 이유는 그 지긋지긋한 여자들의 삶과 지긋지긋한 자매애와 지긋지긋한 모성이 너무나 리얼하기 때문이다. <꽃보다 아름다워>의 한고은 캐릭터와 <아현동 마님>의 백시향 검사를 비교해 보라. 둘다 서민가정에서 유난히 공부잘했고 잘난 딸들인데, 그들과 엄마, 자매들의 관계는 얼마나 다른가. 한고은은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이면서도 자신의 상처에 가슴을 쥐어 뜯었지만, 이혼녀인 언니와 아직 덜 자란 남동생을 지독하게 걱정했고, 백시향은 입으로는 자기는 엄마와 동생들을 사랑하는데 엄마와 동생들이 자기를 미워한다면서 자기 예쁘게 꾸미고 돌아다니고 아버지 백제라의 모성같은 부성을 만끽하기에 바빴다.


우리 엄마와 딸들은, 우리의 자매들은 그저 세상으로 부터 받은 상처를 저들끼리 보듬어 안고 비벼 견디지 않았는가. 비록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가 환타지일지라도, 그리고 남녀의 고정된 역할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작가의 의식이 간간히 드러날지라도, 황당한 편견이 여과 없이 드러날 지라도. 그래도 권위세우는 부정이 아닌, 보듬고 아끼는 모성같은 부정을 자신 아버지들이 등장하고, ‘아빠 같은’도 아니고 ‘엄마 같은’ 남편들이 등장하는 임성한 드라마는. 어쩌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주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만이 모성을 강요당하지 않는, 남성도 모성을 나눠 베푸는 그런 세상 말이다.


헤헤. 그런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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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