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라이징>, “이유야 어찌되었든 우리는 매력과 공포로 점철된 캐릭터 하나를 잃어버린 듯하다.” <영진공 71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2007년 3월 29일

토마스 해리스는 많은 책을 내는 작가는 아니다. 존 그리샴이 거의 매년 새 책을
들고 독자를 만나는 데 반해 해리스는 몇 년에 한번씩 책을 낸다. 근 20년간 낸 책이 다섯권이 전부. 하지만 내는 책마다
판매량이 엄청나고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하니, 자기만의 섬을 소유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 그가 갑자기 <한니발 라이징>이라는, 한니발 렉터가 왜 살인마가 되었는지를 밝히는 소설을 들고 나왔다.
영화로 보기 전에 소설로 먼저 읽자는 생각에 샀는데, 읽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다. 워낙 스릴러를 잘 쓰는 작가인지라 재미는
있었지만, 한니발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 같아서였다. 한니발이 무서운 건 그가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는 엽기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가 그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예측이 불가능할 때 공포감은 배가된다.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언제 화를 낼지 모르니 늘 조심해야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에는 한니발이 아주 어려운 일을 겪었기 때문에 저런
살인마가 되었다,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어린 시절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고, 그토록 사랑하는 여동생이 잡아먹히는 걸 목격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이거다. 그의 처지에 동정이 가는 동시에, 한니발은 내게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가 특별해서 그리 된 게 아니라 저런 일을 겪으면 누구든 저렇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책장을 덮고 나서 토마스 해리스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생각해 봤다. 돈이 떨어져서,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는 <양들의 침묵>은 나온 지 벌써 15년이 지났고, 그 후에 나온 <한니발>은 그만큼
팔리지 않았으니까. 두 번째, 필경 그는 <배트맨 비긴스>를 보고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걸 보고 “한니발의 기원도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음직하다. 세 번째 이유. 전작 <한니발>에서 스탈링은 렉터와 더불어 사람의
뇌를 먹고, 한니발의 실질적 부인이 된다 (영화는 이 결말을 바꿨다). 말 그래도 해피엔딩. 뒤에 더 할 얘기가 없으니 앞으로
돌아가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우리는 매력과 공포로 점철된 캐릭터 하나를 잃어버린 듯하다.

국립과학연구부소장
서민(bbbenji@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