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난 김경재氏 第3話




3.
김경재씨는 뒷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어렵사리 눈을 떴다.


새로 왔다는 보건소장과 간호사가 만담 아닌 만담을 주고 받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그 순간 갑자기 뭔가 호되게 목 뒤를 내려치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경재씨는 손을 움직여 머리를 만져보려고 했지만, 움직여지질 않았다. 병실 침대 위에 손과 발이 묶여 눕혀져 있던 것이었다.


“젊은이, 병명이 나왔네.”
보건소장의 목소리였다.


보건소장은 누워있는 김경재씨를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좌측신체과다발달증이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 김경재씨는 대꾸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오, 정신이 드나 보군. 자네의 몸 왼쪽이 다른 쪽에 비해 지나치게 커있다는 말일세.”
“아니요, 저는 오히려 오른쪽 팔과 다리가 긴 편인데 …”
“역시 부정적이야. 왜 내 말을 안 믿는 건가? 나는 검증된 전문가란 말일세.”
“지난 번에 보건소 왔을 때도 그랬단 말입니다. 신체 균형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그래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구부정하게 다니지 말라고.”


그러자 보건소장은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더니 그의 뒤쪽에 도열해있는 간호사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여러분, 이 말이 다 거짓말이라는 거 아시죠!”
“예, 믿습니다.”


그리고 다시 김경재씨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증상을 말해주지. 일단 유독 자네의 왼쪽 다리에만 무좀이 만연해 있네. 그리고 타박상도 왼쪽 신체에 집중돼있어. 게다가 자네의 만성피로는 왼쪽 혈관에 있는 혈전들이 …”
“잠깐만요, 잠깐만요, 무좀이 심한 데는 오른쪽 다리고요, 타박상도 오른쪽에 많잖아요!”
“젊은이, 여기서 보면 거기가 왼쪽이야!”

어이가 없어서 대꾸하기도 싫어진 경재씨를 향해 보건소장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의 몸은 원래 오른쪽이 먼저 성장을 하게 돼있단 말이지.”
“그렇게 오른쪽으로 영양분이 계속 가게 되면 남거나 넘치는 게 생길 거고, 그러다 보면 왼쪽으로도 영양분이 흘러간단 말이지. 그게 순리야.”


그때 예의 그 간호사가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그게 질서고 숙명이죠.”

간호사가 추임새를 넣어주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보건소장의 말이 더 빨라졌다.
“예, 간호사님. 세상은 자기가 믿는 만큼 보인다고 했죠.”
“세상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신체는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한 쪽으로 영양분이 어차피 집중될 수 밖에 없는데 그걸 막고 규제해야 다른 쪽이 함께 성장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 물리적 조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른쪽이 왼쪽으로 영양분을 나눠주기를 거부하면 어떡할 건데. 그리고 어차피 괴사할 신체조직은 왼쪽에 몰려있는데 그런 조직에 영양분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혼자서 열 올리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가는 것이 겸연쩍었는지, 보건소장은 문득 말을 멈추더니 잠시 경재씨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나지막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자네, 번영된 신체. 평화통일된 몸을 이루는데 모든 것을 받치겠읍니까?”
“… …”
“왜 말이 없나. 암부랑 삽관 한 번 더 할까?”


은근한 협박 투의 말이 무척 살벌하여 경재씨는 내키진 않았지만 대꾸를 해주었다.
“아뇨 … 저는 지금 크게 아픈 데 가 없는데 뭘 바치라고요?”


순간, 보건소장이 작은 눈을 크게 치켜 떴다.
“이 사람, 정말 골수까지 왼쪽이 발달했구만.”
“아니, 제가 뭐가 어떻다고 골수까지 들먹이시는 겁니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좋아, 그럼 이 질문에 대답해 봐.”
“뭔데요?”


“자네 말이야, 밥 먹을 때 어느 쪽 손으로 먹나?”
“오른쪽이요.”
“그렇지, 그럼 글씨 쓸 때는 어느 쪽으로 쓰나?”
“오른쪽이요.”
“거 봐. 사람의 신체는 오른쪽이 대우 받는 게 정상인 게야.”
“예?”


“자, 이제 자네의 신체가 어느 쪽으로 과다 발달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일세.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하게나.”
“…”
“자네 차를 몰고 가다가 왼쪽으로 갈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야 깜박이 넣고 좌회전하죠.”
“그래서 자네가 좌측과다발달증이라는 거야.”
“예?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진단이 어디 있어요. 왼쪽으로 가려면 좌회전하지, 소장님도 그러잖아요.”
“아니, 난 P턴 해.”


.


.


.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계속)


영진공 이규훈

<황금나침반>에서 배워야 하는 교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쎄요. 각계각층으로부터 워낙 다양한 악평이 쏟아져서 매우 기대를 접고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이 영화 꽤 괜찮았습니다.

뭐 생경한 설정에 낯선 용어 튀어나오는 거야 <반지의 제왕> 시절부터 익숙한거고
속편을 예고하는 결말도 <반지의 제왕> 시리즈부터 그랬고
거의 예정된 수순으로 술술 흘러가는 시계태엽같은 이야기 진행도 역시 <반지의 제왕> 때부터 그렇지 않았던가요.

반면에 이 영화에는 나름의 미덕도 있습니다.
일단 데몬이라는 설정 덕분에 동물의 왕국 뺨치게 다양한 동물들이 득시글거려주시고
게다가 CG로 참 귀엽고 생생하게 그 동물들을 살려놓아 동물 구경하는 재미가 꽤 큽니다.
뭐 코카콜라 못 먹어서 흉폭해진 아머베어도 저와 함께 본 누구는 귀엽다는 평을 내려주시기도…

게다가 나머지 시각효과도 꽤나 훌륭해서
스팀펑크물을 보는 것 같은 고풍스러우면서도 SF틱한 분위기의 도시와 건축물들
뭔지 모를 빛나는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마차(?), 비행유람선 등등은 그림처럼 멋있고
니콜 여사도 여전히 비현실적인 외모를 전시해주십니다.

그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제가 아는한,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주인공이 등장하시니
바야흐로 야바위에 능한 어린아이 캐릭터입니다.

얘는 어떻게 된게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입만 열면 거짓말…
뭐 가끔 진실도 있습니다만… 하도 거짓말이 많아서 나중엔 얘의 진심은 뭘까 의심이 되더군요.
더 놀라운 건 어른(동물이건 사람이건)들이 죄다 순진무구 머저리라서 얘 거짓말에 다 속아요.
뭐 어떤 어른의 데몬은 자그마치 ‘곤충’인걸 보면 애가 하는 거짓말에 속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만…

게다가 이 꼬마가 풍기는 분위기는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묘한 것이라
곰 소굴에서 펼치는 “폐하와 제가 하나가 된다” 어쩌고 하는 야바위(이건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야바위)에는 어딘지 모르게 에로틱한 분위기까지…-_-;;;

여튼 나름 개성있는 판타지입니다.

뭐 제가 워낙 웨이츠 형제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인 굿 컴퍼니도 그렇고, 어바웃 어 보이 도 그렇고…)
그걸 떠나서도 아주 나쁘지 않아요.
일단 그 평행우주 세계관이 상당히 정교합니다.

속편으로 가면 아마 현실 평행우주와도 충돌할 것 같던데
문제는 이 영화가 미국에서 죽을 쑤는 바람에 속편 제작이 불투명하다는 거죠.

우리나라 만큼만 흥행되어 주면 걱정 없겠더만요.
애들 데리고 온 부모들로 극장은 한가득이었습니다.
별로 교육적인 영화가 아닌데 말이죠.

뭐 거짓말을 잘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이라면
요즘 우리나라에선 꼭 배워야 하는 것일지도…


영진공 짱가

<대일본인> – 마츠모토의 안드로메다로 초대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스터의 자태부터 여러모로 심상찮다.


2007년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그해 부산 국제영화제에도 상영된 바 있는 ‘대일본인’은 마츠모토 히토시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미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마츠모토 히토시는 하마다 마사토시와 함께 ‘다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는 일본 코메디계의 상징적 존재이자 요시모토 군단의 대표스타다. 마츠모토는 프로그램의 구성과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DVD 꽁트를 제작하는 등 크리에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급기야 영화 ‘대일본인’이라는 괴작(?)을 만들어 감독과 주연을 모두 소화해내며 제 2의 기타노 다케시로 기대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네가 다운타운. 왼쪽이 마츠모토, 오른쪽이 하마다다. 하마다는 출연자의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걸로 유명한데 하마다에게 뒷통수를 맞으면 뜬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하마다가 때리면 암바로 반격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얌전히 맞자.


꼴극우의 노스텔지아를 노래하는 듯한 영화 제목과는 달리 ‘대일본인’으로 불리는 거대 슈퍼 히어로로 활약하는 다이사토라는 인물을 밀착취재하는 다큐멘터리 형식과 특촬물, 전대물이라는 일본의 문화코드를 접목시킨 기발한 상상력이 한껏 발휘된 코메디물이다. 전기 충격을 받으면 ‘대일본인’으로 변신하는 다이사토와 웃음을 자아내는 독특한 괴수들과의 대결이라던지, 마츠모토 감독 자신의 본업을 100%살린 위트있는 대사와 상황묘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게 만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깜찍하고 앙증맞은 괴수의 자태를 보라~


게다가 마츠모토는 단지 코메디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일본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니컬한 관점을 담아 놓았다. 인터뷰에서 엔터테이닝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심각한 정치적 의중을 담으려고 한건 아니라고 하였지만 영화에서 느껴지는 냉소와 풍자는 뼈있게 다가온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모습이다. 괴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대일본인’이지만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아니 오히려 비난과 비웃음꺼리로 취급당한다. ‘대일본인’ 다이사토는 늘 자신없고 소심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중년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일본의 젊은 세대들과 사회 전반적인 무기력함, 미국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미국의 들러리로 전락한 일본의 모습을 영화는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라는 정치적, 역사적 관계로 인해 우리가 보기에는 좀 껄끄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일본인이요? 완전 쉣이예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당연히 이따위로 생긴 거대 생물체가 빤쮸만 입고 뛰어다니니
은하계를 지켜준다 한들 어느 누가 좋아할쏘냐..


당 영화는 마츠모토 히토시의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멋진 작품이다. 그의 등장은 2007년 일본 영화계의 경사이자 일본 특유의 상상력 넘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나와 같은 취향의 팬들에게는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진공 self_fish

Joyeux Noel, 메리 크리스마스

식스센스류의 반전이 아닌, 전쟁을 반대한다는 의미의 반전영화라면 으레 잔인한 장면이 나와야 하는 줄 알았다. 피가 튀고, 믿었던 전우가 전사하고, 아들의 시체를 안고 어머니가 울고, 뭐 대충 이런 장면들 말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평화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메리 크리스마스>는 반전영화 중 최고의 반열에 오를만하다.

때는 1914년, 1차세계대전이 열리던 중 전선에서 조우한 스코틀랜드, 프랑스, 독일 병사들은 잠시 휴전을 한 채 꿈결과도 같은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낸다. 막상 그런 일이 있고나자 “파티는 끝났다. 다시 총을 들어라”는 사령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가 없다. 사실을 알고 달려온 고위층에게 프랑스 중위는 항변한다.
“당신들은 우리와 같은 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슨 말일까? 중위의 다음 말에 답이 나온다.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후방에서 칠면조나 뜯으면서 명령만 내리는 당신들보다는 저기 있는 독일인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그 병사들은 평화로울 때 만났다면 즐겁게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되었을 사람들, 그네들로서는 도대체 왜 자기네들이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 제일의 미녀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여인이 바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헬렌이다. <트로이>에서 헬렌 역을 맡았던 독일의 미녀 다이앤 크루거가 클래식 가수로 나오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결코 그녀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각자의 참호에서 나와 먹을 것과 이야기를 교환하는 병사들의 얼굴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저그런 로맨틱 코메디만 개봉하는 연말에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건 더 큰 행운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진공 서민

죽다 살아난 김경재氏 1, 2 話

1.
삼 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쌀쌀하기만 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김경재씨는 출근길에 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상 속으로 들어온 지 10년.  세상 물정을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는 경재씨에게 10년 전의 기억은 이제 가물가물하다.


그때 경재씨네 집은 잘 나가는 편이었다. 마당 넓은 집에 자가용도 있었고 사업하는 아버지는 매일 저녁 룸살롱에 살다시피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외환위기라는 것이 터지자 집안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란 것이 실속보다는 빚 얻어다 메우던 식인데다가 여기저기서 벌려대는 손에 몰래 돈푼 쥐어주기 바빴으니, 오히려 빚쟁이들이 그때까지 사업을 해 온 게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였었다.


이후 아버지는 집 안에 틀어박혀 세상한탄만 늘어놓았고, 보다 못한 어머니가 돈을 벌러 나섰지만 밥벌이도 빠듯할 지경이어서 김경재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김경재씨는 요즘 세상살이가 참 재미없다.


10년간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보았고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기껏 통장의 잔고라는 게 집 한 채는 언감생심이고 중형차 하나 사기에도 빠듯하다.
대학 안 나온 게 뭔 잘못이라고 번듯한 직장에는 원서도 못 넣는다.
결혼할 여자를 사귀어보려고 해도, 선을 보러 나가도 번번이 퇴짜이다.
옆 집 누구는 일도 안 하고 딴 짓만 실컷 하더니 어느 날엔가는 대박 맞았다며 이사를 가고 건너 집 누구는 좋은 동네 사는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자랑이 입에 달려있다.
어딘가는 집 값이 얼마고 친구네 친척 형은 주식이 얼마란다.


fk55.bmp
“에고, 죽겠다.”
그 날 출근길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또 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렇게 마을 버스 정류장을 향해 빠르게 발을 놀리던 경재씨는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기만 하던 집 앞 시장통의 풍경에 그날따라 왠지 눈이 끌리고 있었다.


‘에휴, 시장이 살아야 하는데 … 김씨 아줌마, 박씨 아저씨도 집 안에 돈이 말랐다고 걱정이 태산이던데 … IMF보다 더해, 진짜 … … 참, 집에 쌀 떨어졌는데, 퇴근길에 2마트에 들러야겠다.”
“그리고 컴퓨터 메모리도 업그레이드 해야지 … 기억용량이 너무 떨어져 … 남들은 기가쓰는데 내건 용량이 그게 뭐야 … 51              2MB …”


그런 생각을 하며 경재씨가 정류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경재씨의 앞에 하얀색 봉고차가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다.


“뭐야 … 이런 씨X … 운전 똑바로 안 해!” 놀란 경재씨가 소리를 지르며 운전석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사이, 웬 사내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경재씨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새 보건소장입니다.”

2.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멀쩡한 사람보고 죽었다니.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멀쩡히 출근을 해요?”
“이것 보세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뭔가 잘못 아신 거예요. 난 지금 입원이 아니라 출근을 해야 한다고요.”



새 보건소장은 거칠게 항변하는 경재씨를 물끄러미 쳐다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보는 사람을 몹시 불안하게 만드는 눈빛을 날리며 서있던 새 보건소장이 갑자기 소리를 냅다 질렀다.


“젊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쓰나. 우리집 가훈이 ‘정직하게 살자’란 말일세!”
“… 예? …”


문제는 경재씨의 말버릇이었다. ‘아프다’ ‘힘들다’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던 경재씨의 눈치를 줄곧 살피던 아버지가 몇 달 전 쉬는 날에 경재씨를 억지로 동네 보건소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 애가 다 죽어가는데 보건소는 뭐하는 집단이냐’며 워낙 요란하게 떠들어서 보건소장이 직접 경재씨를 보았는데, 결과는 만성피로와 몇 군데의 타박상 그리고 무좀 등의 진단이었다.


그러면서 보건소장이 했던 말이, ‘이 정도면 투약이 필요치 않고 자꾸 약을 먹어 버릇하면 내성만 생기고 자생력을 해칠 뿐이다.’라는 투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애가 죽을 지경인데 약도 안 주는 무책임한 보건소’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건소를 나왔고, 이후 ‘애가 이 꼴이 된 건 다 보건소장 책임’이라며 온 동네에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다니곤 하였는데,



얼마 전 새 보건소장이 부임하자마자 아버지는 얼른 전화를 걸어 우리 아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나선 거야.  너에게 맞춤진료를 해 주려고.  한 마디로 너를 살려주겠다는 거지.”
“당신이 저를 … 살린다고요?”
“나는 내가라고 하진 않았네 …”
” … “

.
.
.
.
.

“흠, 역시 상태가 심각하군 … 간호사 님, 여기 암부하고 삽관하세요 …”
경재씨가 뭐라 대꾸해야할지 몰라 얼마간을 가만히 서있자, 새 보건소장이 차에서 내리는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 잠깐만요 … 무슨 상태가, 뭐가 심각해요 …”
“방금 전 자네는 실신상태이지 않았나.”
“예? 아뇨!”
“예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이것 봐, 정신 없잖아 … 간호사, 빨리 기도 확보 해!”


새 보건소장의 지시를 재차 받은 간호사는 얼른 무릎을 끓고 앉으며 나지막이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 …”
“이것 봐, 이것 봐, 간호사. 뭐하는 거야?”
“선생님이 기도 한 번 하라고 하셨잖아요.”
“… …”
“… …”

“내가 그랬나?”
“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경재씨는 더욱 어이가 없어져서 고함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이건 …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


그러자 새 보건소장과 간호사는 동시에 경재씨를 향해 눈을 흘겼고, 보건소장이 쏘아붙였다. “이것 봐, 자네. 자네 지금 나의 전문지식을 의심하는 건가?”
“이래 보여도 난 길게 늙고 싶은 소망이 있는 사람이야!”
“… …”

.
.
.

“또 실신했군. 암부하고 삽관하세요.”
“예, 소장님 … 그런데요, 소장님 저도 환자들에게 봉사하며 권면하고 싶은 소망이 있답니다.”
“아, 그렇군요 … 암부는?”
“갑자기 안부는 왜?”
“… …”
 
.
.
.
.
.

(계속)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