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하트>, 저마다 다른 조직 내 생존 전략


예전에는 영화보고 딴소리 하는 거 참 좋아했는데, 애 엄마가 되고 나니 영화는 꿈도 못 꾸고 TV밖에 못 봅니다. (애 엄마라는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안 밝히고 글을 썼으면 좋겠는데, 안 밝히면 설명이 안 되더라구요)그나마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아니지만, TV는 영화처럼 집중해서 보아야 할 의무가 없으니 그나마 변명이 가능합니다. 몇 장면 못 봤다고, ‘그때 졸았냐?’소리를 듣지는 않겠죠?


요새 뉴하트 잘 보고 있습니다. 하얀거탑, 봉달희 등등과 함께 거론되며 비판도 많이 받지만, 전 좋습니다. 하얀거탑처럼 숨막히고 박진감 넘치는 권력투쟁의 호흡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서 저는 좋아요. 요새 보니 뉴하트에 연애라인 나온다고 싫어하시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좋습니다. 달달하니 젊은 애들 연애질 하는 것도 보기 좋구요. (뭐 생각해 보니 제가 지성보다 어린데 젊은 애들 어쩌고는 좀 그렇습니다만. 암튼 뭐 심신이 피곤하다보니 총각처녀들은 나이에 상관 없이 다 보송보송하고 예뻐보입니다.) 드라마는 그저 이 정도가 무난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오며 가며 봐도 되고, 신경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정도 말이지요. 역시 생활 패턴이 바뀌니 드라마 선호 취향도 바뀌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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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하트 인기도 많고 다들 재미있게 보시는 것 같은데, 지 버릇 개 못 준다고, 뭔가 조직생활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무조건 본인의 직장생활 경험이 투영됩니다. 그러면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떠오르지요. 드라마 구성이 웰메이드로 하얀거탑처럼 꽉 짜여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그리고 사실 꽉 짜여진거, 어린 애 있는 주부 입장에선 그닥 반갑지 않다는) 제가 병원생활의 디테일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지, 그냥 일반 직장생활로 치환시켜 본다면 뉴하트도 꽤 사실적입니다. 하얀거탑도 조직 내 생존의 필살기에 대한 것이었고, 뉴하트도 조직 내 생존의 필살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다만 하얀거탑은 정치9단들과 높으신 그분들의 안력이라면, 뉴하트는 잔챙이 중간 간부와 비정규직과 신입사원들의 필살기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 다를 뿐인 것 같습니다. 다시 일반 직장생활로 치환시켜 본다면 하얀거탑이 경영층 높이신 분들의 보이지 않는 ‘탑’속의 권력 투쟁이었다면, 뉴하트는 사무실에서 껄렁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칙주의자인 척 하지만 하는 짓은 영업 수주 스타일 독불장군 최강국(조재현), 냉혹한 CEO 스타일 박재현(정동환), 제꾀에 제가 넘어가는 김정길(이기영), 사람 좋은 트러블 봉합자 이승재(성동일), 정치 하면 안되고 실력으로 승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인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꼭 정치하려고 하는 신임 상무님 같은 민영규(정호근) 같은 분들도 공감이 가고, 그 밑에 펠로우 레지던트, 인턴 애들의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에도 다 정이 갑니다.

가장 안 쓰럽고, 보듬어 주고 싶은 캐릭터는 펠로우 닥터인 설래현(김준호)이에요. 비정규직 의사라고 할 수 있는 펠로우인 김준호는 비굴과 튀지 않기 납작 엎드리기가 몸에 밴 사람이지요. 하지만 절대 밉지 않아요. 마음 속에 정도 있는데 눈치 보고 살다보니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다. 엊그제 김준호가 손재주 좋아 인정 받는 이은성(지성)에게 “너 그래봐야 이 조직에서 성공못한다. 너 이 조직이 이방인(타대 출신)을 얼마나 싫어하는 지 알지?”라고 하는 걸 보고 “저 찌질한 자식…”하는 생각이 들기는 커녕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신입들 조차도 자기를 추월할까봐 마음도 냉정하지 못하면서 가끔씩 어설프게 군기잡던 안쓰러운 과장님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가장 멋있는 건 마취과 조민아(신동미) 선생이죠. 어디에 줄 서지 않고, 크게 튀는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조용한 실력과 스스로의 직업윤리에 따릅니다. 이 똑똑하고 멋진 여자가 어쩌다 바보같이 동료 의사 김태준(장현성)과 불륜관계에 빠져있는지는 모르지만, 흐름을 보니 오래 갈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지요. 여직원으로 회사 다니면서 윗 선배 중에 조민아 선생 같은 사람 있으면 회사 다닐 맛 나죠.

물론 조복길(정경순) 수간호사도 조민아처럼 멋진 캐릭터죠. 조민아 선생의 모든 장점에다가 남편과도 현명하게 잘 지내는 완벽한 여자랄까. 스스로는 약게 직장생활 못하는 스타일이죠. 약게 행동하는게 스스로 스타일에도 맞지 않구요.

배대로(박철민)도 좋은 캐릭터에요. 항상 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즐겁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팀에 이런 중간 관리자 있으면 좋죠. 눈치도 적당히 있고, 밑에 애들도 사실은 챙기고, 정도 있고, 실력도 없는 건 아니고, 정도 없는 것도 아니고. 딱 중간이고 적당하게 묻어가는 스타일. 이런 사람이 진짜 조직에서 제일 오래가는 사람입니다. 조직이라는 생리에 어울리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소심한 레지던트 우인태(강지후)도 이해가 갑니다. 격무에 시달려서 지쳐 버린 거죠. 게다가 광희대학 출신에 특별한 단점도 없는 지라, 면피인생을 살아가는게 제일 좋을 거란 걸 압니다. 정말이지 나쁜 거 없는 생존전략이지요.

김미미(신다은)캐릭터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제가 직장 3-4년차 때만 같아도 아마 김미미 같은 신입사원 보면 길길이 날 뛰었을 겁니다. 조복길이나 조민아 선생같은 선배들에게 ‘쟤 좀 가르쳐야 하지 않겠냐’하면서 말이지요. 근데 이젠 그저 귀엽습니다. 김미미는 남자들만 득시글 대는 조직에서 어떻게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해야 좀 더 편하게 직장생활할 수 있는지를 아는 아이에요. 의외로 많은 여자들이 이런 본능을 잘 구사하지요. 극중 전개를 보니 이은성(지성)한테 꽂힌 모양이던데. 여성이란 걸 이용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라는 구덩이에 빠져 버릴 캐릭터입니다. 코도 깨지고, 머리도 깨져보면 절로 깨달을 겁니다. 실력이 아예 없는 애는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살펴 볼 사람들은 똑같은 레지던트 1년차면서 서로 완전히 다른 조직내 생존 방식을 보여줍니다. 뭐 남녀를 가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좀 거칠게 말하면 남혜석과 이은성 캐릭터는 조직에서 생존방식에 있어 남녀 차이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요새 수능이든, 고등고시든 수석은 다 여자가 한다는게 대세가 된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여기 남혜석도 그러하지요. 수능만점에 의대수석졸업, 인턴성적 수석이랍니다. 사실상 그런 타이틀이 아니었다면 남혜석의 조직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했을 거에요. 그런 타이틀이 있었기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또 조직내 몇몇 세력으로 부터 좋은 제안도 받은 것일 거구요. 그런데, 결국 그것이 한계일 것입니다. ‘탁월’이란 물론 어떤 다른 조건들도 뛰어넘는 것이지만, 조직이란 결국 ‘조직’이니까요.


이은성은 정반대 점에 있습니다. 흉부외과가 미달이라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런데 어찌보면 이것 부터가 전략적입니다. 어디를 가야, 어느 조직을 가야 자신이 더 클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과 내에서, 병원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그가 ‘문제아’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문제의 ‘핵’에 있다는 것이지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그저 남혜석처럼 성실하고 원칙적으로 일했다면 그는 그의 별명대로 영원히 ‘꼴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타고난 오지라퍼인 그는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면서 본인의 얼굴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일개 레지던트 일년차가 과 내에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찌보면 그가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어요. 과장인 최강국 교수의 약점을 알고 있으면서, 또한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엄청난 신뢰를 얻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계산적인 방식으로든, 본능적인 방식으로든 말이에요.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환자를 향한 끊임없는 사랑을 드러내는 것은 종국에는 ‘별 볼일 없는 지방의대/비본교 출신’인 그를 ‘행동하는 건 조직에서 고문관이지만 실력은 끝내주는’ 최강국과 동일시키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은성의 일련의 행동들을 살펴보면 공장용어로 엄청 “쇼잉(showing)”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환자애 대한 애환심(?)을 수많은 사람에게 과시하며, 정의의 사도인 듯 행동하지요. 그 때문에 다른 과 교수들도 다 이은성을 알게 되고 일부는 호감도 갖게 되지요.
또 이런 이은성의 행보들은 사실상 공부는 성실히 하는 것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이은성의 실력을 향상시키게도 할 것입니다. 어려운 수술, 남이 안하는 수술에 문제를 일으켜가면서 까지 오지랍 넓게 참여함으로써 (남혜석이 문제 안 일으키고 시험에 나올 문제들을 소상하게 암기할 동안) 필드 경험이 쌓일 것이고, 타과 교수인 박광정한테 잘 보여서 사진 판독술의 실재와 핵심을 쌓고 있는 중이거든요. 인맥도 넓히고, 경험도 쌓고, 얼굴 도장도 찍고… 아. 정말 최고입니다. 배웠어야 해요. 직장생활은 저렇게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도 남혜석 같이만 직장생활을 해온 인생입니다. (물론 남혜석 처럼 늘 수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등바등 해봐야 B+ 인생이면서 말이지요) 얼굴 도장을 찍기를 하나, 결정적일 때 자기 자신을 내 세울 줄을 아나, 조직에 존재감 심을 줄을 아나, 그저 마음 속으로 ‘내가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알아주겠지’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었지요. 모르긴 몰라도, 차트 정리하고, 꼼꼼히 데이터 분석하고 하는 등의 누군가는 해야하지만, 해도 티는 안나는 그 성실한 작업들을 남혜석은 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글쎄요. 조직 내 자신의 position을 다지는데 대한 효과는 회의 적이에요. 남혜석이 이후로도 수석+최초 등의 행진을 계속 해 나간다면 다를 수도 있지만, 남혜석이 그런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 모두가 수석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남혜석은 잘 되어야 하얀거탑의 ‘최도영’같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조직의 생리’를 모르는 여성 직장인들 대부분이 남혜석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갑갑해요. (제가 대표적인 인물이었구요) 남자들은 아무리 눈치가 없어보여도 조직 내 ‘생존’에 본능도 발달해 있고, 필살기도 있는 편입니다. 남자들이 대한민국 조직의 축소+엑기스판인 군대에 다녀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여자들이 ‘공부 열심히 하면 인정 받는다’는 신화에 매몰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요. 암튼 저는 뉴하트 보면서 그럽니다. ‘이은성 보고 배우자!’

이은성이 그냥 순수한 열정이라구요?
에이, 너무 순진하세요.


TV보는 아줌마
영진공   라이

<파프리카>, 현실 세계로 밀려들어온 인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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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세계는 무한하다고 말들 하지만 프로젝트 기획서를 내밀면 늘 ‘왜 애니메이션이지?’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곤 사토시(今敏) 감독이 말했더군요.1) 저 역시 새로운 애니메이션 작품을 접할 때 마다 ‘이 작품은 왜 애니메이션이어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을 꺼내들곤 합니다. CG가 아무리 발달했어도 여전히 실사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영역이 분명히 있고, 그런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그 버릇을 여태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곤 사토시 감독의 작품을 보면 ‘이 정도라면 실사로 했어도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2) 실사로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실사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아무래도 실사 영화에 비해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를 한 수 낮게 취급하는 고약한 선입견이 있는 듯 합니다.

츠츠이 야스타카 원작의 <파프리카>는 ‘곤 사토시의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법한 작품들 뿐’이라는 편견에 대응하는 역작이라 할만 합니다. 어쩌면 기획자들로부터 ‘왜 애니메이션이어야 하지?’라는 질문 받는 일이 지긋지긋했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프리카>는 실사 영화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SF 판타지의 본때를 보여줍니다. 이 정도라면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1988)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와 <이노센스>(2004)에도 필적할 수 있는 기록적인 성취라 하겠습니다. 특수 장치를 이용해 타인의 꿈 또는 무의식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타셈 싱 감독의 실사 영화 <더 셀>(2000)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더 셀>이 <양들의 침묵>(1991)과 같은 범죄 수사극으로서의 장르적 한계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파프리카>는 SF 범죄 스릴러로 출발하여 인간의 꿈, 그리고 꿈과 등가 관계에 있는 과대망상이나 신화, 그리고 영화와 인터넷 세상과 같은 매체들이 현실 세계와 맞물리고 있는 형이상학적 경계선을 적극적으로 탐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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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을 통해 ‘애니메이션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자의식은 <파프리카>의 도입부를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토나카와 형사의 꿈 장면으로 시작하게 했습니다.3) 이어서 화려한 주제 음악이 함께 하는 타이틀롤을 연결시키니 여느 액션 블럭버스터의 도입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확실히 <파프리카>의 외형은 국제적인 흥행을 고려한 장르의 양식을 잘 따라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도난 당한 DC-미니의 행방을 추적하며 범인을 밝혀내는 범죄 스릴러로서의 내러티브를 기본으로 기존의 유명 애니메이션들에서 본 듯한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미리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특히 영화 팬들과 인터넷 사용자들을 위한 주제의 확장과 현대적 재해석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기에 관객의 뒷통수를 어루만져주는 뜻밖의 멜러 요소까지 가미되니 한 편의 성인용 애니메이션으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하겠습니다.

<파프리카>라는 제목은 작품 속 중심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피망과 비슷한 고추 품종의 향신료이기도 하죠. 인간 욕망과 좌절의 발현이기도 한 꿈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가장 인간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파프리카는 아츠코가 만들어낸 꿈 속의 자아이기도 하지만 파프리카가 없는 아츠코란 역시 “뭔가 부족한”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대로 나쁘지는 않지만 양념 한 가지가 빠진 심심한 요리 한 접시와 같다고나 할까요. 꿈과 현실의 경계를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허물어뜨리면서도 양 측면을 모두 끌어안고자 하는 <파프리카>의 결말은 가장 영화적인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삶의 길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서브 스토리를 위한 조연이면서도 중심 내러티브와 맞물려 중요한 역할을 해준 토나카와 형사가 극장 매표구에서 “어른 한 장”이라며 수미쌍관을 이루는 마지막 장면까지, <파프리카>는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 완전 영화의 경지에 도달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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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름2.0 365호 p.73 “애니메이션이 다루지 않은 것을 하고 싶다”

2) 2001년작 <천년여우>(千年女優)가 특히 그랬습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실제 배우들이 연기를 했더라도 별다른 무리 없이 만들 수 있었을 법한 작품이었습니다.

3)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며 맞물리는 꿈 속 세계야말로 애니메이션의 효율성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 아니겠습니까. 토나카와 형사의 꿈 속에 등장해 신경증 치료를 돕는 10대 소녀 파프리카가 사실은 DC-미니를 통해 창조된 정신과 박사 아츠코의 또 다른 자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까지가 <파프리카>의 인트로입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