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미스 다이어리, <상벌위원회>, <영진공 67호>

상벌위원회
2007년 1월 18일

애마부인 3편인 스페인애마-이화란이 주연을 했었죠-을 보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 남자가 이럽디다.

“역시 한국영화는 안돼!”

만족스럽게 극장을 나오던 저는 놀라서 그 남자를 쳐다봤습니다. 그는 도대체 애마부인 시리즈에 뭘 기대한 걸까요? 육체파
여배우가 하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고, 말도 나오고, 제목에서 예고한대로 투우를 비롯한 스페인의 거리도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애마부인 시리즈가 한국의 대표영화인가요? 니네 나라에서 딱 한편을 출품하라면 애마부인을 내놓을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스페인
애마를 보고 한국영화를 판단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올드미스 다이어리-극장판>을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수없이 웃는 가운데 가슴이 찡하기도 했답니다. 예지원이
아니면 그 역을 누가 하겠는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연기파로 정평이 난 조연들의 연기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드라마를 보고 안보고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 정도면 전 정말 만족합니다. 근데 “기대치보다 실망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며 낮은 별점을 준 분들이 여럿 있더군요. 사람마다 영화에 대한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전 그런 분들이 재미있게 볼 영화가 과연 있을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를 영화화한 것이니 내용은 뻔한
그 영화에 뭘 그리 큰 기대를 하셨을까 싶어서였죠. 그러고보면 저란 놈은 참 세상을 살아가기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네요.
전 말이죠, 세상일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뭐든지 안될 거라고 생각을 하니 정말 안돼도 실망하지 않고, 운좋게 되면 뛸
듯이 기뻐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더라도 그녀에게서 반응이 있을 거란 생각을 안하니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법도
없고요. 너무 염세적인가요, 제가? 하지만 제가 지금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어쩌면 염세주의에 물든 제 가치관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대를 안 하고 사는 제게도 재미가 없는 영화는 도대체 어떡해야 하나요? 영화를 보는 동안 두사부일체의
속편인 <투사부일체> 생각이 이따금씩 났어요. 제 영화인생 중 괜히 봤다고 후회한 베스트 5에 들 정도의 졸작인 그
영화를 제가 본 이유가, 저희 집 근처 극장에서, 그것도 2개 관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어땠던가요. 개봉한지 겨우 3주밖에 안되었는데 상영하는 곳은 달랑 두 군데밖에 없고, 관객이 드는 꼬라지를
보고 상영 여부를 결정하려는 듯 다음주 목요일 이후의 스케쥴은 나와 있지도 않답니다. 혹시 <투사부일체>가
610만인가를 동원해서 한국영화 사상 관객동원에서 10위 안에 드는 거 아세요? 허접하기로 따지면 위 영화와 쌍벽을 이룰만한
<가문의 부활>이 400만을 넘긴 것도 아시나요? 그게 다 스크린 수가 워낙 많아서, 저처럼 아무 영화나 보자고 생각
없이 표를 산 사람들 때문이라니까요.

예지원 씨가 제작자와 함께 직접 무대인사를 온 오늘밤, 삼성동 메가박스 10관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추위도 무릅쓰고
멀리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정의가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이
맞다면, 재미있는 영화가 스크린수도 많고 관객들도 많이 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난 영화는 직접 극장에 가서 관람을 해주는 게 아닐까요. 다른 영화는 모르겠지만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불법 DVD나 다운로드 대신 극장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최소한 한달 이상은
극장에 걸려 있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

“올드 미스 다이어리, <상벌위원회>, <영진공 67호>”의 한가지 생각

  1. 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아쉽게도 지방이라 빨리 내렸더군요. 좀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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