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세계문화유산, 알 파치노 vs 로버드 드 니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 두 사람 모두 뉴욕에서 태어난 명배우들입니다.
이탈리아계인 알 파치노가 40년생, 아일랜드계인 로버트 드 니로가 43년생이로군요.

영화 데뷔는 로버트 드 니로가 약간 빨랐습니다. <Trois Chambres à Manhattan>(1965)라는
프랑스 영화에서 엑스트라로 처음 출연한 이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X 등급 영화
<그리팅>(Greetings, 1968)에서 주역을 맡았습니다. 알 파치노는 68년 <N.Y.P.D>라는
TV 시리즈에 출연 후 <미, 나탈리>(Me, Natalie, 1969)에서의 조역으로 영화 데뷔를 합니다.

이후 몇 편의 출연작이 있고 70년대 초반에 이르러 드디어 출세작을 찍게 되는데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게 픽업된 알 파치노가 72년 <대부>로 선빵을 날립니다.
그리고 로버트 드 니로는 73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에 출연하죠.
알 파치노가 연극 무대를 경유한 신데렐라 같은 영화배우였다면 로버트 드 니로는 좀 더 많은
출연작을 통해 조금씩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넓혀나간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72년       1973년

<대부>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알 파치노는 이듬해 <허수아비>(Scarecrow)와
<형사 써피코>(Serpico)를 찍었고 그 사이 로버트 드 니로가 <비열한 거리>로
‘업계의 시선’을 끌게 된 거죠. 그리고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영화에 출연한 작품이
74년작 <대부 2>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점의 마이클 콜레오네인 알 파치노와
돈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는 극중에서 직접 만날 일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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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는 당대 최고의 배우로서 맹활약을 하게 됩니다.
<대부 2> 이후 80년대까지 두 배우의 출연작들을 연대 순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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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작들의 수에서나 작품의 질에서나, 로버트 드 니로가 훨씬 부지런한
활동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알 파치노는
83년 <스카페이스> 이후 89년 <사랑의 파도>로 재기하기까지
상당 기간을 말 그대로 ‘헤맸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오랜 기간의 공백 끝에 돌아온 알 파치노에겐 역시 <대부 3>가 기다리고 있었죠.
로버트 드 니로도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좋은 친구들>을 찍었습니다.


  1990년 

로버트 드 니로는 같은 해인 1990년 제인 폰다와 함께 <스탠리와 아이리스>라는
멜러 영화를 찍었는데요, 알 파치노 역시 이듬해 미셸 파이퍼와 <프랭키와 쟈니>
출연했습니다. 두 배우가 거의 같은 시기에 유사한 컨셉의 영화를 찍었다는 건
당시 이들의 존재감이 헐리웃 스튜디오의 기획 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1년       1990년



90년대 초반에 알 파치노는 <딕 트레이시>(1990), <여인의 향기>(1992),
<글렌게리 글렌로즈>(1992), <칼리토>(1993) 등에 출연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로버트 드 니로의 주요 출연작은 <사랑의 기적>(1990), <비공개>(1991),
<분노의 역류>(1991), <케이프 피어>(1991), <밤 그리고 도시>(1992),
<디스 보이스 라이프>(1993), <형사 매드독>(1993), <브롱스 대부>(1993),
<프랑켄슈타인>(1994), <카지노>(1995)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1995년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Heat)에서 21년만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알 파치노는 1999년 <인사이더>에서 마이클 만 감독과 한번 더 작업했습니다.
 두 배우의 세번째 만남은 현재 촬영 중인 존 애버넷 감독의 차기작
<의로운 살인>(Righteous Kill)을 통해 내년 중 다시 볼 수 있게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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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명배우 가운데 감독 데뷔작을 먼저 내놓은 것도 로버트 드 니로였습니다.
그의 첫번째 감독 데뷔작은 93년작 <브롱스 대부>(A Bronx Tale)이었구요
최근 두번째 연출작 <굿 셰퍼드>(The Good Shepherd, 2006)를 내놓았죠.

셰익스피어 연극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알 파치노의 감독 데뷔작은
<리차드 3세>를 원작으로 한 <뉴욕 광시곡>(Looking for Richard, 1996)입니다.
두번째 연출작 <차이니스 커피>(Chinese Coffee)도 아이라 루이스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2004년에는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을 연기하며 셰익스피어에 대한 오랜 애정을 과시한 바 있습니다.


1996년       1993년

2004년       2006년

배우로서, 그리고 영화인으로서의 경력은 객관적으로 로버트 드 니로가 좀 더
착실하게 잘 쌓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알 파치노에게는 로버트 드 니로에게도 없는
배우로서의 천부적인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저는 <시티 홀>(City Hall, 1996)에서
알 파치노가 혼자 긴 러닝타임을 채우는 장면을 보면서 ‘로버트 드 니로가 갖지 못한
알 파치노만의 그 무엇’을 발견했습니다. 연출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너무 버럭! 하는
연기를 선보이는 경우가 잦은 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알 파치노 필모그래피  vs  로버트 드 니로 필모그래피

이제는 두 사람 모두 환갑의 나이를 훌쩍 넘긴 말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엄청난 스타 파워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알 파치노는 2009년에 만들어질
살바도르 달리의 전기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고 로버트 드 니로 역시
많은 작품들이 후반 작업 중이거나 사전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인 동시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위대한 두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입니다.

영진공 신어지

“살아있는 세계문화유산, 알 파치노 vs 로버드 드 니로”의 6개의 생각

  1.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고 존경스런 두 배우. 대부분의 업자들이 7대3정도로 알에게 점수를 더 주지만, 전 아무래도 알의 폭발력보다 다양한 폭의 드니로가 더 배우답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두 괴물배우에게 점수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만요. 개인적으로 알의 최고작품은 대부와 도니 브래스코, 드니로는 대부2와 코미디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작은 단역으로 나와도 숨길수 없는 광채에 숨이 막힙니다.

    1. 저도 정리하다보니 배우로서의 이력은 로버트 드 니로 쪽이 훨씬 우세하더군요. 순간 송강호가 떠오르면서… 그럼 알 파치노는 최민식?

      로버트 드 니로의 작은 단역, 하니까 생각난 건데 < 여인의 음모>(여인의 털이 아니라 테리 길리엄의 Brazil이죠)에 그가 나온다고 해서 TV를 통해 봤었거든요. 신문 방송 순서에조차 ‘로버트 드 니로의 브라질’이라고 나왔더랬습니다. 그야말로 어릴 적에 그 이름 때문에 본 영화였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로버트 드 니로는 안나오는 거예요. 덕분에 엄청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얼굴을 다 가린채 기동타격대장으로 두 번인가 잠깐 나왔더군요.

      얼굴을 다 가리면 광채도 좀 가려지긴 합니다. ㅋㅋ

  2. 잘 읽었습니다. 두 배우 모두 그야말로 명불허전!이겠죠.
    이런 식의 ‘정리’를 언젠가는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깔끔/훌륭하게 해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여기에 댓글은 처음 남기는 듯 한데, 나름 영진공 팬이랍니다. ^-^; )

    1. 댓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영진공 팬이신 분들과 조우하게 되는 기회에 저에게는 영광입니다. 앞으로 자주 뵐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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