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 피겨 스케이팅에 남+남 커플을 허하라, <블레이드 오브 글로리>

올림픽을 비롯하여 스포츠에 관련된 영화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승리에 이르는 과정을 오버스럽게 다루거나 무턱대고 감동의 휴먼드라마로 연결시키거나 한다. 그리고 스포츠 코미디물의 경우 2시간 안에 재미, 감동, 눈물을 우겨넣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짬뽕으로 그칠 때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에게 감동이나 인간승리 이런 거 말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보아라, 이 포스를 …

아쉽게도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고 DVD 판매로 직행한, 조쉬 고든, 윌 스펙 감독의 <블레이드 오브 글로리>가 바로 그 영화이다.

코미디물이 다 그렇듯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뻔하다.
개인 피겨 스케이팅 공동 1위를 했던 채즈(“윌 패럴”)과 지미(“존 헤더”)는 서로에 대한 미움이 지나쳐 주먹다짐을 벌이게 되고, 이 때문에 협회로부터 영구 제명당한다. 하지만 스케이트가 너무나 타고 싶었던 그 둘은 페어 피겨 스케이팅에 남+녀가 아닌 남자 + 남자가 나갈 수 있다는 규정상의 틈을 이용해 기어코 대회에 출전하게된다.

이 영화의 빅 웃음 포인트는 당연스럽게도 ‘남자 커플’의 페어 피겨 스케이팅 장면들이다. 남자 둘이 페어(pair) 피겨 스케이팅에 나간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은 게이포비아적 오해로 폭주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이런 게이 코드에 대해 항변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고 대충 시치미 뚝 떼고는 다소 민망한 스케이트 장면들을 연속해서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아! 이 퍼포먼스의 마지막 장면은 최고.
이 영화의 개그 코드의 수준은 하이레벨이다.
“Take my hand … We can do this!!!”

사실 이 영화의 개그 핵심은 게이 코드들에 대한 노골적인 희화화이다. 이런 코드는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같은 사회에선, 그것을 회화화하던 또는 설득을하던 간에 어쨌든 좋은 평가를 받기가 힘들다고 본다. 사실 조금만 자신이 가진 있는 장벽의 수준을 내린다면 좀 더 이런 영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게 현실이지 않은가.

비슷한 경우로 “페럴리 형제”(<덤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가 있는데, 그들은 장애인을 영화 내에서 회화화하는 요소로 사용한다. 보통 그럴 경우, 우리는 그들이 소수자를 격하한다고 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그런 회화화조차 장애인들에 대한 애정의 눈빛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뭐 이런 이유로 “페럴리 형제”의 영화가 저평가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뭐 암튼 진짜 페어 스케이팅에 남남커플이 나온다면, 웃음거리가 될까?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우리의 모든 촉각이 “김연아”선수에게로 올인하겠지만, 향후 우리도 페어 피켜 스케이팅에 적극적으로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이 영화와 같이 좀 별나게 남+남, 여+여 페어 피겨 스케이팅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

뭐 대충 이런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올해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페어 스케이팅은 4대강국(미국, 캐나다, 러시아, 중국)의 박빙이 예상된 가운데, 중국 쉔슈-자오홍보 페어의 승리로 돌아갔다. 중국은 물론 이들 피겨 스케이팅 강국들은 남자 피겨 스케이팅의 기본기들이 탄탄한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세계적으로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부족하단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페어 피겨 스케이팅을 세계 레벨로 속성으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을 대거 양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

아무튼 언제나 손에 땀 나게 승리의 순간만을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스포츠를 편하고 즐겁게 즐기시는 분들에게 당 영화를 권하는 바이다. 우리가 숨 쉬는 이 사회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길 바라며 … 최선을 다 해줄 대한민국 선수들 화이링!!!

이 영화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배우가 있다. 2004년작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를 필두로 코미디배우로서의 자질을 번득이는 “존 헤더”다. 2007년 작품 이후로 활동이 뜸한데 요즘 뭐 하는 지 궁금하다

이 소박한(?) 춤 사위에 친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영진공 엽기민원

<스트레인저 댄 픽션>,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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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DVD로 감상한지가 벌써 2주 전인데 개봉작 쫓아다니고 다른 일에 치여서 많이 늦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봤던 영화들 가운데 하나가 ‘넘지 말았으면 하는 선을 넘어가버린’ <추격자>였었고 그랬던 덕에 이 영화의 내용에 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은 일종의 메타-픽션 드라마입니다. 국세청 직원인 주인공 해롤드(윌 패럴)와 그의 일상과 운명을 결정하는 소설가 카렌(엠마 톰슨)이 등장하고 마침내 두 인물이 직접 만나기까지 하죠. 카렌은 원래 자기 작품 속 주인공을 매번 죽는 것으로 처리하는 ‘비극’ 전문 작가인데 10년 만에 탈고하게 된 새 작품의 주인공 해롤드와의 만남을 통해 결국 소설의 결말을 바꾸게 됩니다. 자기가 창조해낸 허구 속 인물이 만약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작가로서의 성취를 위해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죽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그냥 넘기지 못했던 것이죠. 그리하여 예술 작품이 추구하는 목표가 독자나 관객이 되는 사람이 아닌 작품 자체가 되어버림으로서 예술의 참된 가치를 잊어버리게 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품이 <스트레인저 댄 픽션>입니다. 해롤드의 상황을 도와주기 위해 개입했던 영문학 교수 쥴스(더스틴 호프먼)가 카렌의 초고를 읽고 난 후, 이 위대한 작품의 완성을 위해 해롤드가 죽어야만 한다고 냉정하게 선언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추격자>의 미진(서영희)도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고 눈을 부라렸을 것만 같습니다. 작품 속의 인물이 허구가 아닌 실제 살아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목적성을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 좀 무섭기까지 합니다. 다행히 작가인 카렌은 평소의 괴팍한 성격과 달리 그렇게까지 잔인한 인물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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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저 댄 픽션>의 중심 메시지는 사실 평범합니다. 내 인생의 전지적 작가는 곧 나 자신이니 내 인생의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며 잘 살아보자는 얘기죠. 이 한 편의 시나리오로 헐리웃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로 떠오른 이는 최근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2007)으로 감독 데뷔한 자크 헬름입니다. 첫 장편 시나리오로 <존 말코비치 되기>(1999)를 썼던 찰리 카우프먼의 독창성과 식견에 버금간다는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하지만 너무 일찍 감독 겸업을 선언한 것은 아니었는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1) 좋은 시나리오도 결국 좋은 연출자를 만나야 멋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은 마크 포스터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꽤 재미있고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2) 아주 기발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지만 어쩌면 상당히 까다로울 수 있는 복잡한 내러티브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건 통제력 있는 연출의 힘입니다. 윌 패럴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코미디언이고 주인공 해롤드를 연기하기에 부족함이 없긴 했지만 다른 배우들이 같은 연기를 했더라도 별 무리가 없었으리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3) 더스틴 호프먼, 매기 길렌할, 퀸 라피타 등이 출연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소설가 카렌 아이펠 역을 맡은 엠마 톰슨입니다. 엠마 톰슨이라고 하면 아직도 케네스 브래너와의 90년대 영화들이 주로 생각나는 편인데, 검은 옷을 즐겨입는 꼴초 여류소설가의 괴팍하고도 엉뚱한 성격을 상당히 잘 드러냈다고 생각됩니다. 원래 코미디언인 윌 패럴이 정극 연기에 도전하는 영화에서 발견한 엠마 톰슨의 코믹한 연기는 그야말로 각별한 즐거움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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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1) 전업 시나리오 작가로서 일반 관객들까지 그 이름을 기억할 정도였던 찰리 카우프먼도 드디어 첫 감독 작품을 내놓기 위해 현재 후반 작업 중이시로군요. 필립 시모어 호프먼 주연의 <Synecdoche, New York>가 금년 내로 개봉될 예정입니다.

2) 마크 포스터의 최근작은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연을 쫓는 아이>(2007)인데 3월 13일로 국내 개봉일이 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는 2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Quantum of Solace>의 메가폰을 잡고 한창 촬영 중이시로군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에 마크 포스터의 연출이라고 하니 정말 기대해볼만 한 작품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3) 이렇게 얘기하면 영화의 흥행 실패는 윌 패럴의 미스 캐스팅 때문이란 소리가 되는 건가요? 짐 캐리의 정극 연기가 돋보였던 <이터널 선샤인>(2004)의 성공 덕분에 가능했던 캐스팅이 아니었냐는 생각도 듭니다. 노교수로 출연하고 있는 더스틴 호프먼이 몇 년만 젊었어도 해롤드 역에 상당히 잘 맞았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