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전쟁”, 지금 필요한 건 한 권의 반전소설이다


영원한 전쟁 The Forever War

◎ 지음_조 홀드먼
◎ 옮김-김상훈
◎ 펴냄_행복한 책읽기

밀덕후가 밀덕질을 그만두는 계기는 군입대라는 말이 있듯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겪었던 작가 조 홀드먼이 쓸 수 있는 전쟁소설이란 결국 반전소설이었을 것이다. 직접 배트남에 참전하여 백여 발의 파편이 박히는 큰 부상을 입고 재대한 홀드먼은 전쟁을 통해 느꼈던 생각들을 하드SF소설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한다.

콜랩서라는 축퇴성(일종의 블랙홀)을 이용해 초고속 항법을 발견하며 인류는 우주시대를 맞이하지만 곧 토오란이라는 외계종족과 조우하게 된다. 인류와 토오란은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수백 세기에 걸친 전쟁을 만델라라는 사나이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전쟁의 비극을 더해주는 것은 수백 세기에 걸친 전쟁이라는 점이다. 흔히 이런 무지막지한 시간적 배경을 다룰 때는 평생을 사는 종족이라던가 생체공학이나 로봇이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홀드먼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인용한다.

초광속 이동으로 인한 시간팽창효과로 인해 몇 세기의 시간이 흘러도 우주선 내의 병사들은 몇 살 밖에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로 인해 제대 후 지구로 돌아가도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수십 세기가 지나버린 지구다.

나를 알던 이들은 모두 죽고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이 변해버린 곳에서 그들이 돌아갈 곳은 없었다. 결국 제대했던 병사들은 다시 전쟁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객관적인 시간으로 수백 세기에 걸쳐 전쟁을 하는 비극에 놓이게 된다.

비록 반전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다루지만 SF라는 장르적 재미를 놓치고 있지 않다. 흥미로운 토오란과 전투, 수십 세기가 지난 세대들 간의 컬쳐쇼크, 디스토피아적인 지구. 특히 책의 초반부에는 지구에서 병사들이 토오란과의 전투에 대비해 훈련하는 모습은 다른 의미에서 실소를 자아낸다. 본문글을 발췌해 보자면, 


‘내한 훈련 따위는 실제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전형적인 군대식의 엉터리 논리이다. 우리가 이제 가려는 곳이 춥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그 추위는 얼음이나 눈 따위에서 느끼는 추위가 아니었다. 발착 행성의 온도는 거의 예외없이 절대 영도의 1, 2도 안팎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콜랩서는 빛을 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추위를 느꼈다면 당신은 이미 죽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주리 중부의 눈과 진흙탕 속을 엘리트답게 철벅거리며 나아가는 우리들이. 액체라고는 이따금 나타나는 액체 헬륨 연못밖에는 없는 세계에서, 다리를 놓는 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아해 하면서.’

군생활을 해 본 이라면 이런 ‘군대식 엉터리 논리’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눈물이 흐른다. 지금도 신교대나 예비군 훈련에서 자행하고 있는 누워서 비행기를 향해 소총을 쏘는 훈련은 이런 대표적인 군대식  엉터리 논리 중 하나이다. 적 비행기가 떴을 때 하늘을 향해 총질을 하는 것은 자살의 또 다른 한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린 북한과의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있다. 지금 당장 미사일이 휴전선을 오고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현실이다.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자극적인 말들로 복수를 부추기고 있으며 많은 이들 또한 덩달아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전쟁은 답이 될 수 없다.

전쟁의 승리자는 우리가 아닌 결국 이런 상황을 이용해먹는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일 것이며 전쟁의 피해는 북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린이나 노약자, 여성, 가난한 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그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을 부르짖는 늙은 정치인들의 수보다 수백 배 많은 수의 아름다운 청춘들이 전쟁터에서 죽고 다치고 불구가 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반전소설들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려 보자.
전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