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4부 완결]


 

 


 


 


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1부 보기


 


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2부 보기


 


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3부 보기


 


 


 



누구나 드넓게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덕지덕지 껴있는 고뇌와 번민의 찌꺼기들이 옥시크린으로 씻은 듯 말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빌딩 숲 속에서 딱딱한 아스팔트를 딛고 생활하고 있지만 태초에 우리는 자연에서 왔으며, 그래서 편한 도시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연을 동경하고 있다. 부자일 수록 보다 가까이 자연을 곁에 두려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연에 대한 로망은 안전이 보장되었을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인간이 자연에 던져졌을 때 어떤 고난과 역경이 펼쳐지는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 베어그릴스 형님


 


 


평온한 겉모습과 달리 자연은 먹으려는 놈과 먹히지 않으려는 놈들의 숨가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살벌한 전쟁터다. 이렇게 아주 작은 실수가 한 끼 식사로 연결될 수 있는 곳에서 오랜시간 끊임없이 개량된 생물들의 생존전략은 분명 인간들의 전쟁터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세이어는 방어피음과 분단무늬 원리가 전쟁에서도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1898년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쌈박질이 일어났을 때부터 자연 위장 전문가로서 미국 해군의 요청을 받아 함선의 위장도색법을 제시하였다. 비록 아무런 성과도 없었지만 세이어는 전쟁이 끝난 뒤 이에 관한 특허를 내었다.


 


 





US Patent No. 715,013


1092년 세이어와 제롬 브러시가 함께 특허를 낸,


 배를 비롯한 대상을 눈에 덜 띄게 처리하는 과정의 개선점”.


배에 방어피음 원리를 적용하여 자연적인 빛과 그늘을 상쇄시키기 위한 도색방법이다. 위를 향한 면은 검게, 수직면은 밝게, 아래를 향한 면은 아주 밝고 되도록 흰색으로


칠해야 하며, 곡선 표면 특히 포신과 같은 구조물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조금식 짙은 색에서 밝은 색으로 바림질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20세기의 문을 열어 제끼자마자 인류는 다시 커다란 두 번의 전쟁을 벌이게 된다. 세이어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나대고 싶은 마음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세이어는 오지랖 넓게도 바다건너 영국 전쟁부에 육지와 바다 양쪽에서 자신의 위장방법을 채택하라고 촉구하기 시작했다. 1915년 세이어는 처칠에게 잠수함을 방어피음 된 고등어처럼 칠하고 배는 하얗게 칠하라고 탄원했다. ..고등어는 그렇다치고 배는 어째서 흰 색으로 칠하라고 한 것일까?



밤 바다에서 물체를 무슨 색으로 칠해야 가장 안보일까? 아마도 언뜻 생각하기에는 검은색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세이어는 이런 범인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흰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12년 타이타닉 호의 침몰사건을 통해 빙하가 흰색이었기 때문에 밤에 더 잘 눈에 띄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흰색은 해상에서 위장의 핵심이라고 믿고 있었다. 세이어의 이 주장은 두 번의 세계대전 내내 열띤 논란거리가 되었다.



 


 





빙하와 부딪혀 침몰한 타이타닉호

 


 


영국 군부는 세이어의 제안들을 그럴듯한 이론이긴 하지만 그다지 쓸모는 없을 거라고 결론 내렸다. 뚜껑이 열린 세이어는 영국으로 날아가 전국을 돌며 자신의 이론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 전쟁부는 세이어의 계획을 논의할 준비가 되었다며 빨리 런던으로 오라는 연락을 보냈다. 그러나 이번엔 세이어가 영국 전쟁부의 연락을 쌩까 버렸다. 그때 그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행복한 날들을 보내느라 영국에 왔던 목적 따위는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세이어는 글래스고에서 자신의 이론을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존 그레이엄 커를 만났다. 세이어는 군바리들 사이에서 시달리느니 말이 통하는 이들 사이에서 영웅처럼 받들어지는 쪽이 훨씬 맘에 들었고 결국 스코틀랜드에서 놀다가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물론 미국으로 돌아간 세이어는 몇 달 뒤 제정신이 돌아오자 다시 영국 해군에게 자신의 위장이론을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독일 유보트에 빡친 미국이 뒤늦게 참전하자 이번엔 당시 미해군 차관보를 지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에게 들러붙어 괴롭히기 시작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세이어를 무시해버렸다.


 


 


 






존 그레이엄 커John Graham Kerr(1869~1957)



 


 



한편 세이어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만났던 존 그레이엄 커는 스코틀랜드 동물학자로 1902년부터 1935년까지 글래스고 대학교의 동물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사직한 뒤에 스코틀랜드 대학교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배를 무척 좋아했는데 칙칙한 회색으로 칠한 전함을 보고서 동물 위장술에는 발톱의 때 만큼도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허접한 위장술에 개탄을 하며 새로운 임무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전쟁이 터지자 커는 당시의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을 시작으로 당국자들에게 위장에 관한 조언을 쏟아내기 시작하며 위장 전도사의 길을 걷게 된다.


 


커는 방어피음과 분단무늬라는 세이어의 두 원리를 강하게 옹호했다. 커는 세이어와 마찬가지로 배를 상부는 어둡게, 그늘지는 곳은 밝게 칠하기를 주장했다. 그리고 분단무늬 원리를 적용해 얼룩말처럼 윤곽을 흰색 덩어리로 나누라고 권했다.


 


해군부는 커의 권고안 역시 효용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배를 다시 칙칙한 회색으로 칠해버렸다. 그러나 커는 단념하지 않았다. 끼리끼리 논다고 커는 세이어 못지 않은 독단쟁이에 떼쟁이 였다. 그는 처칠에게 자기 말이 진리인냥 적은 편지를 계속해서 보내 귀찮게 만들었고 결국엔 아무도 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개무시를 당하며 굴욕의 시간을 보내던 커는 1917년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것을 들고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화가를 목격하게 된다. 그는 커와 세이어가 개무시당했던 것과 달리 모든 것을 아주 손쉽게 이뤄내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


 


 


 





노먼 윌킨슨Norman Wilkinson (1878 – 1971)



 


 



노먼 윌킨슨은 배를 사랑한 전통 화풍의 해양 화가이자 삽화가다. 1차 대전이 터지자 그는 해군에 입대해 여러 임무를 수행한 바다의 사나이였다. 비록 생물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이어나 커의 이론을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해상에 관한 많은 경험들이 그를 통찰로 이끈 듯하다.


 


1917년 낚시를 하던 윌킨슨의 뇌 안에서는 불현듯 경험과 생각들이 서로 강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위장도색에 관한 영감을 얻게 된다.


 


윌킨슨은 주먹구구식으로 땡깡이나 부리는 커나 세이어 와는 달리 요령있게 일을 처리하는 센스가 있었으며 많은 연줄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발빠르게 자신의 계획을 전쟁부에 제출했으며 해군과 예술계 모두 접촉하여 일을 추진하였다.


 


윌킨슨은 전쟁부에서 위장 부대를 설치할 권한을 따내자 런던에 사무소를 차리고 동료화가를 모았으며 왕립 아카데미는 그의 일손을 도울 여학생을 지원해주었다그렇다고 일이 일사천리로 술술 풀린 것은 아니었다. 전쟁부는 커와 세이어에게 했던 것처럼 윌킨스에게도 그 괴상한 도색이 실용성이 있는지 보고서를 내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윌킨슨은 달랐다. 그는 한마디로 사회생활을 할 줄 알았다. 게다가 해군에서 복무했었기 때문에 일이 돌아가는 상황도 잘 알고 있었다. 커와 세이어의 제안들이 서류철 안에서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동안 윌킨슨은 막후교섭을 통해 결국 위장 도색과라는 공식부서를 설립할 수 있었다.



 


 


 







윌킨슨의 위장도색 디자인들


 


 


 


이렇게 세이어가 영국으로 출정시위를 벌이고 커가 안그래도 바뻤을 처칠을 괴롭히며, 윌킨슨이 왕립 아카데미까지 움직일 정도로 노력을 하였던 위장 도색은 실전에서 얼마만큼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영국에서는 1918년 상선의 위장 도색에 관한 공식 보고서가 나왔는데 여기에는 19186월 말 기준으로 2,367척이 위장 도색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고서의 통계는 위장 도색의 효용을 보여주기에는 자료로서 결정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생포된 유보트 승무원들은 위장 도색 선박을 조준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까지 증언했다.


 


반면 미국의 선박 위장 결과는 더 결정적인 듯했다. 상선과 전함 총 1,256척이 191831일에서 1111일 사이에 위장 도색을 했다. 2,500톤이 넘는 배 중에 96척이 침몰했는데, 그중 위장 도색된 배는 18척에 불과했고 모두 상선이었다. 위장된 전함은 한 척도 침몰하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나는 듯한 당시의 위장도색 전함들

 


 


19191차대전은 막을 내리지만 커에게는 위장 도색의 발명에 관한 우선권 문제라는 또다른 전쟁이 남아 있었다. 커는 1917년에 채택된 체계를 자신이 1914년 해군부에 제시했다는 영예를 마땅히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해군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윌킨슨은 발명의 대가로 2,000파운드를 손에 쥐었다.


 


그렇다면 윌킨슨과 커의 위장 도색은 어느 부분에서 2,000파운드의 차이점이 발생한 것일까? 커의 위장 도색 디자인은 얼룩말의 곡선 무늬였던 반면 윌킨슨의 위장 도색 디자인은 흑백에 때로는 파란색과 녹색을 섞은 띠무늬를 엄격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배열한 거의 모든 변이 형태를 포함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부분은 시각적인 것에서가 아닌 단어의 함의 차이,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말장난에서 판가름이 났다.


 


먼저 커의 위장 도색은 윤곽을 쪼개어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한 “비가시성(invisibility)” 이 목적으로, 함선의 장거리 포 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윌킨슨은 잠수함에서 잠망경으로 배를 겨냥해 어뢰를 쏠 때 배의 거리와 이동방향에 혼란을 주기위한 “인식불능성(unrecognizability)”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비가시성과 인식불능성은 결국 같은 말이다윤곽을 쪼개면 당연히 거리와 이동방향에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그러나 영국 해군부는 위장 도색의 주된 목적이 유보트의 위협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윌킨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는 윌킨슨의 인맥이 작용한 결과일 거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흑백 무늬가 눈을 혼란시키는 힘은 1960년대 옵 아트Op art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커는 이 문제를 왕립 위원회로도 들고 갔지만 거기서도 인정 받지 못했다. 커는 동물학 연구를 계속하며 윌킨슨과 위장 도색의 우선권에 관해 수차례 공방을 벌였으며 왕립 위원회의 평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변호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세이어는 군 당국과 실랑이질을 하면서 더욱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말년에 그는 자신이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애벗 세이어는 19215월에 사망하였다.


 


 


[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4부작 끝]


 


 


 



Abbott Handerson Thayer ‘Monadnock Angel’ 


 


 


 


 



▒ 발췌 및 편집: 피터 포브스 저, 이한음 역, [현혹과 기만], 까치, 2012



 





영진공 self_fish


 


 


 


 


 


 


 


 


 


 


 


 


 


 


 


 


 


 


 


 


 


 


 


 


 


 


 


 


 

영화 속의 멘토와 멘티들

1.
멘토: 인생의 등대

멘토(Mentor)는 원래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커스의 교육을 맡긴 친구의 이름이다. 오디세우스가 20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장성한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자, 오디세우스의 수호신 아데나(그리스 신화에서는 미네르바)가 이 멘토의 모습을 하고 텔레마코스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 앞에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Mentor라는 이름을 친구, 선생, 상담자, 조언자, (진짜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에 맞춰 멘토의 지도를 받는 사람을 멘티(Mentee)라고도 한다.

멘토와 멘티 관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당신에게도 아마 멘토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당신을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지가 당신에게 매우 중요하다면 그는 당신의 멘토이다. 당신의 멘토가 잘 되면 당신이 행복하고 그가 실망하면 당신도 우울해진다. 당신과 당신의 멘토는 심리적으로 거의 동일체이기 때문이다. 멘토는 꿈이기도 하다. 어떤 멘토를 가진다는 것은 그 멘토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는 거다. 꿈 정도는 아무런 경험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가질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꾸는 꿈은 애매모호하고 피상적인 모습일 뿐이다. 멘토가 없으면 구체적인 꿈도 갖기 힘들다. 당신의 꿈을 대표하는 당신의 멘토를 통해서 당신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슨 노력이 필요한지, 그 꿈을 실현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등을 알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멘토는 한번에 보통 하나씩만 갖는다. 멘토가 여럿이라고 해도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멘토는 결국 하나다. 그 이유는 추구하는 꿈이 두 개일 수는 없는 이유와도 같다.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로 갖는 멘토는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다. 그 이후에 손윗 형제나 자매가 멘토가 되기도 하고, 유명한 연예인이 멘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선생님이나 선배, 혹은 성공한 사람들이 멘토가 된다. 인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부모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꿈을 찾고 자기만의 삶의 목표와 방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결국 부모라는 멘토를 벗어나 새로운 멘토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발달사는 멘토와의 만남과 결별인 셈이다.

멘토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이 놀랍고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는 당신이 꿈꾸어 왔던 삶을 살고 있고 그와 함께라면 당신도 그 꿈을 실현할 것처럼 보인다. 당신에게 멘토가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당신과 당신 멘토와의 간격이 너무 멀고 당신이 멘토의 세계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멘토로부터 감화를 많이 받고 많은 것을 배워서 점점 성장해갈수록, 당신 멘토와의 간격은 줄어든다. 그리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혹은 봤지만 그냥 넘어갔던 멘토의 어두운 부분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게 된다. 그리?어느 시점이 지나면, 당신은 더 이상 그 멘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에까지 도달한다. 즉, 당신이 성장할수록 당신의 멘토는 당신에게 덜 중요해진다. 삶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리고 언젠가 결별이 일어난다.

물론 모든 멘토와 멘티(Mentee: 멘토의 지도를 받는 사람)간의 관계가 이렇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떤 멘토는 알면 알수록 더더욱 대단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어떤 멘토는 처음부터 불완전함을 보이지만 그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힘이 그의 매력이기 때문에 계속 그 가치가 유지된다. 하지만, 멘토와 멘티간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는 그 멘토가 얼마냐 훌륭하냐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멘티가 어디까지 성장할 것이냐에 달려있다. 멘티가 추구하는 삶이 바로 멘토의 삶 그 자체라면 그는 그 멘토와 결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상이 눈에 보일 때 그는 결국 어떻게든 멘토를 떠나서 새로운 멘토를 찾게 된다.

2.
영화 속의 멘토와 멘티들

멘토와 멘티 관계가 워낙 보편적이기 때문에, 이 멘토 결별과 만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도 종종 나온다.

우선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 대부분은 멘토와 멘티 관계를 이야기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멘토가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존재일 때도 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필립 느와레”)는 어린 소년 토토에게 영화의 세계를 알려주는 멘토의 역할을 한다. 토토가 영화에 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알프레도 덕분이었다.

친구가 멘토인 경우도 있다. 영화 『친구』에서 동수(장동건)와 준석(유오성)이의 관계가 그렇다.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받는 장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에게서는 도저히 꿈을 발견할 수 없었던 동수는 자기를 위해서 싸워준 준석이를 멘토로 삼았다. 그래서 준석이가 가는 곳에 같이 가고 준석이가 하는 일을 언제나 같이 한다.

멘토는 연인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더티댄싱』에서 주어진 규칙을 따르는 법 밖에 모르던, 하지만 그 규칙 속에서는 삶의 재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상태에 있던 소녀 베이비(“제니퍼 그레이”)에게 댄서 조니 캐슬(“패트릭 스웨이지”)은 멘토가 된다. 조니를 통해서 베이비는 자기에게 주어진 틀을 깰 용기와 기회를 얻는다.

『타이타닉』의 주인공 로즈(“케이트 윈슬렛”)에게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멘토다. 단 며칠 간의 만남뿐이었지만 그녀의 향후 인생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무덤덤했던 나도 할머니가 된 로즈가 잠을 자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사진들(말도 타고, 여자 비행사도 되고, 결혼도 하고…)을 천천히 보여주던 마지막 장면에서만은 좀 찡 했다. 그 사진들은 도슨이 죽어가며 당부한 당신은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다 해야 한다던 유언을 그녀가 실행했음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변화가 비록 아주 얄팍한 연출이었다고 해도,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삶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하던 소녀가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자체가 그냥 감동스러웠던 거다.

멘토는 그냥 좋은 사람만은 아니다. 영화 『플래툰』에서 주인공 크리스(“챨리 쉰”)에게는 두 멘토가 있다. 하나는 선을 상징하는 엘리아스(“윌리엄 데포”), 다른 하나는 악을 상징하는 반즈(“톰 베린져”)다. 둘다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둘은 모두 죽는다. 반즈의 꼼수로 엘리아스가 죽어가는 장면은 베트남 전쟁에서 선의가 죽어버리고 악의만 남았다는 감독의 시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멘토와의 결별 방법중 하나를 보여주기도 한다. 멘토와의 결별을 가장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바로 죽음이니까.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버드 콕스라는 배역으로 또 등장한 “찰리 쉰”은 아버지라는 멘토를 버리고 증권가의 거물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를 멘토로 삼는다. 하지만 결국 이 새 멘토에게서 자기 꿈의 어두운 면을 깨달은 버드는 게코를 버리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가 반복된다. 자신만만한 변호사 케빈(“키애누 리브스”)는 자기의 꿈을 이루어줄 것 같던 거물변호사 존 밀튼(“알 파치노”)를 찾지만, 결국 그가 악마라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어쩌랴 그 악마를 선택한 것은 자기 내면의 욕망이었던 것을… 이렇게 멘토와의 만남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다른 모습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 자체가 선과 악을 모두 가진 경우도 있다. 영화 『대부』에서 마피아의 대부 돈 비토 꼴레오네(“말론 브랜도”)를 아버지로 둔 아들 마이클(“알 파치노”)는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동시에 범죄조직 두목인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그가 택한 건 아버지의 어두운 면이었다.

3.
근데 스타워즈, 너 너무 심하지 않니?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영화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워낙에 그런 영화가 많기 때문에 이 주제를 다루려면 최소한 멘토-멘티 관계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해보고 남들이 하지 못했던 변주를 만들어야 이게 제대로 먹인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스타워즈』시리즈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다.

스타워즈의 멘토계보를 함 보자.

1977년작 『스타워즈 ep4 : 새로운 희망』에서 멘토는 오비완 케노비 이고 멘티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인데 이때만 해도 스페이스 판타지라는 장르에 어울리는 이 관계는 참신하기까지 했다. “포스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라는 오비완의 가르침은 꽤나 그럴듯한 메시지였다.

1980년작 『스타워즈 ep5 : 제국의 역습』에서 멘토는 요다 선생이고 멘티는 루크 스카이워커.  뭐니뭐니해도 “내가 니 애비다” 라는 다쓰베이더의 커밍아웃이 화제였다, 여기서부터 조짐이 불길해진다. 아버지는 최초의 멘토여야 하고 그 멘토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원수가 되기도 한다. 생애 최대의 원수가 자기 아버지라는 건 그 이후 『데블스 애드버킷』에서도 등장하는 구조지만, 여기선 정말 대단한 스캔들이었다.

1983년작 『스타워즈 ep6 : 제다이의 귀환』은 뭐 이전까지 나온 멘토 전부 등장, 아버지와의 화해. 좋다. 마지막 편이니 다 정리해야 한다고 쳐주자.


그리고 나서 한참 뒤인 1999년에 등장한 『스타워즈 ep1 : 보이지 않는 위협』은 완전히 멘토와 멘티 판이다.

여기서는 이전에 나왔던 멘토들의 멘토까지 등장하는데, 콰이곤 진은 오비완 케노비의 멘토, 요다는 콰이곤 진의 멘토고, 오비완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멘토다. 근데 아나킨은 다쓰베이더가 되어 오비완을 죽이게 되고, 같은 오비완의 제자인 루크는 다시 아버지와 대결 한다. 요다는 이후 아나킨의 사형 뻘 되는 카운트 두쿠(“크리스토퍼 리”)와 대결하고… 여기쯤 되면서 영화는 얽히고 설킨 멘토와 멘티 관계와 그 와중에 서로 원수가 된 멘토와 멘티간 싸움들로 점철된 영화로 변신한다. 한 두개의 관계 정도면 뭐 이해도 되고 그런 운명의 장난이!!! 라는 감흥이라도 주겠지만. 이렇게 떼거지로 나오면 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여기쯤에서 이 전체 시리즈는 별들의 전쟁인 『스타워즈』(Star Wars)가 아니라 멘토끼리의 전쟁, “멘토워즈”(Mentor Wars)로 변신한다.

4.
멘토와 진짜 결별한다는 것은?

다 좋다. 멘토와 멘티는 언젠간 결별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모두 멘토를 가지고 있고 그 멘토와 멘티 관계가 얽히고 설키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다. 내가 생활하던 동네에서도 그렇게 얽힌 관계들, 사형과 사제 관계들을 어디가나 마주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계의 형성과 결별은 그 하나 하나가 드라마다. 멘토관계의 형성은 사람이 꿈을 찾고 그 꿈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그걸 뚫고 나갈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에 첫 발을 내딛는 짜릿함과 설레임의 드라마다. 결별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도 맘먹고 자기 멘토와 결별하지 못한다.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커지는 틈새와 메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임계치에 이르면 당사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장면에서 서로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결별이 일어난다. 이건 한번에 하나씩만 얘기해도 충분할만큼 큰 드라마란 말이다.

근데 그걸 이렇게 한 판에 다 벌려놓아 버리면, 각각의 드라마는 의미를 잃고 그냥 돌고도는 세상 이야기 쯤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 멘토 이야기에 기초해 세워졌던 캐릭터의 무게도 사라지고 말이다.

과유불급. 이 멘토워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