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더 스타 (To The Stars)”, 정신이 우주로 날아가버린 작가의 불온한 결말


 

지음: L.론 허버드
엮음: 최준영
펴냄: 소담출판사

당 작품은 지구와 계외행성 사이를 오가며 광물을 파는 우주선 하늘의 사냥개호에 강제로 탑승하게 된 기술 검사관 알랜 코다인의 노예생활기(?)를 그리고 있다. 앞서 소개했던 [영원한 전쟁]에서와 같이 ‘시간지연효과’를 비극의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원한 전쟁]에서 광속 이동 후 엄청나게 시간이 흘러버린 지구시간으로 인해 결국 전쟁터를 떠나지 못하는 군인들 처럼 우주선 하늘의 사냥개 호는 누구도 떠날 수 없는 저주받은 유령선과 같이 그려진다.

미스테리한 조슬린 선장, 승무원들과의 갈등 등 여러 인간군상의 이야기와 더불어 왜 이런 항해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독자를 끌어가고 있다. 1950년도에 발표한 작품으로 구닥다리 느낌도 없진 않고 그래서인지 작품도 평이하게 느껴지지만 무엇보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작품의 감상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책의 띠지에는 커다랗게 아인슈타인도 깜짝 놀란 작품이라는 왠지 오바스러운 문구가 떡하니 적혀있는데 머리글에는 한 술 더 떠서 작가 론 허버드가 1930년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제대로 알고 있는 나라에 몇 안되는 사람이며 당 작품이 시간지연이론을 도입한 선구적인 과학소설이라는 둥 그다지 믿기지 않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
 


L.론 허버드 1911~1986


시간지연효과를 설명하는 건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이론이니 이 작품이 발표된 1950년까지 45년간 어느 작가도 이 소재를 요 작품만큼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시간지연효과에 대해 하드SF에서와 같은 치밀한 과학적 고찰이 아닌 그저 시간이 느려진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적용하고 있는 이 작품을 보고 아인슈타인이 놀랐을 리는 만무했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당연히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란 주장도 당시의 이름난 물리학자들만 떠올리더라도 더더욱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자화자찬의 황당함을 넘어 작품의 결말에 다다르면 더욱 난감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드레그해서 보세요)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러 하늘의 사냥개호 선장 조슬린의 편지를 통해 진실이 드러난다. 하늘의 사냥개호가 사람들을 납치하여 강제로 승선시키고 시간지연효과에 따른 비극을 감수하면서 계외행성으로의 무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언젠가 닥쳐올 멸망으로부터 인류의 씨앗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 우주선은 시간지연효과를 이용한 일종의 노아의 방주였던 것이다. 선장 조슬린의 모든 처신과 그가 저지른 행위들은 결국 인류를 위한 자기희생이었으며 더 나아가 대의를 위해선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무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왜 이런 살떨리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는 이 책의 작가 론 허버드의 특이한 이력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는 소설가, 여행가, 사진작가, 시나리오 작가, 모험가등 다재다능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수의 SF소설도 발표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이력은 그가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시자란 점이다.


 





비록 영화는 희대의 쉣무비 반열에 올라섰지만 소설은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배틀필드 어스]의 작가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존 트라볼타 역시
사이언스톨로지의 신자이다.


1953년에 창시한 사이언톨로지교Scientology는 베스트셀러가 된 허버드의 자기계발서 [다이아네틱스: 정신 건강의 현대 과학](1950)에서 발전해 나왔다.




이 책은 사이언톨로지교의 성서와도 같다고 한다.
놀랍게도 국내에 한글판이 출간되어 있다.


사이언톨로지교는 그가 1950년대 미국에서 세운 운동으로 과학기술을 통한 정신치료, 영혼 윤회 등을 믿고 있다.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조 설화부터 안드로메다 은하의 취향이 물씬 풍기니 한번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자. 눈 앞에 한편의 스페이스오페라가 펼쳐질 것이다.

약 7,500만 년 전 은하연방을 다스렸던 제누(Xenu)라는 외계인이 수십 억에 달하는 국민들에게 공무원을 찾아가 세금 환금 심사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이들은 알코올 주사를 맞고 우주선에 실려 지구로 보내졌다. 외계인들은 그들은 화산 옆에 쌓아 올린 뒤 수소 폭탄으로 화산을 폭발시켜 테탄(thetan)이라는 영혼만 남게된다. 영혼은 진공지대로 빨려 들어가서는 극장으로 전송되었다. 영혼은 그곳에서 36일 동안 온갖 헛된 교리와 종교를 주입시키며 자신이 누군지 잊게 만드는 3D영화를 보아야 했다. 이 영혼이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이 영혼들이 과거에 당한 세뇌와 트라우마로 인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두려움, 폭력, 중독 등의 각종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사이언톨로지교는 신자들에게 E-미터(E-meter)라는 장치를 장착시킨 후 유도심문을 통해 그들을 심사하여 건강을 점차적으로 회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참고 및 발췌:
아서 골드워그 저, 이경아 역, [이즘과 올로지], 랜덤하우스, 2007.


신자들은 다단계 회사처럼 등급이 있으며 높은 등급에 오를수록 지식의 차원이 높아진다고 한다. 물론 높은 등급에 오르기 위해선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 특히 할리우드의 많은 스타들이 이 사이언톨로지교의 신도인 것으로 유명한데 존 트라볼타, 톰 크루즈, 진 헥크만, 래리 킹, 더스틴 호프만, 윌 스미스, 제니퍼 로페즈 등이 있다.

 



교인들을 모아서 사이언톨로지판 긴급조치 19호를 찍었어도 멋졌을 것 같다.


1953년에 사이언톨로지를 창시했으니 이 소설을 발표한 1950년 당시에는 그러한 망상들이 이미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론 허버드의 다른 작품들은 어떠한지, 그가 사이언톨로지교를 창시하는데 있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당 작품만 놓고 보아도 결론은 참으로 불온하기 짝이없다.

등장하는 조슬린 선장이 우주선에 탈 사람들을 납치하고 도망가는 이들은 가차없이 죽이며 약을 주입해 꼭두각시로 만들면서도 인류를 위한 일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정당화하는 결론은 현재 사이언톨로지교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자기들만의 교리와 그에 따른 정당성을 내세우며 신도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종교를 그만두려는 이들에게는 협박과 위협을 일삼는 모습말이다.

작품 속 조슬린 선장과 하늘의 사냥개호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사이언스톨로지교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이들은 가면을 쓴다.
교단 측에서 데모에 참여한 이들을 불법으로 사진채증을 한 뒤,
 협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진공 self_fish

[박범신- 은교] 소설판, 한국판, “데미지”


소설 ‘은교’에는 ‘심장’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등장한다. 표제만 등장할 뿐이지만 영화 ‘비터문’을 조금 변형하여 썼을 뿐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소설 속 소설의 직접 내용이야 언급되지 않지만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간다. 물론 장르가 옮겨가고, 배경이나 등장인물이 윤색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것들은 분명 창작이었을 것이다.

‘은교’를 읽으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루이 말 감독,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데미지’다. 스티븐 플레밍(제레미 아이언스)에 이적요 시인을, 안나(줄리엣 비노쉬)에 은교를, 마틴 플레밍(제레미 아이언스 아들 역)에 소설가 서지우를 끼워 넣으면 얼추 구도가 다 맞아 떨어진다.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는 생물학적 부자관계가 아닐 뿐 그 애증관계는 더 이상 끈끈할 수 없는 부자지간의 것이며, 극 속에서 스티븐 플레밍(제레미아이언스)이 사회적 저명인사였다는 것, 아들인 마틴 플레밍은 비교적 성공한 인생이기는 했지만 동일 분야에서의 아버지의 업적이나 명성과 비교할 수는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 안나에게 어필할 때 마틴 플레밍보다는 스티븐 플레밍이 훨씬 열정적이고, 더 맹목적이고 그러면서 더욱 노련했다는 점은 ‘은교’와 딱딱 맞아 떨어진다. ‘사회적 명성을 다 가진 노년의 신사가 열정의 무게 때문에 버거워하는 모습’이라는 소재 자체도 비슷하고 말이다.

거기서 살짝 -실제로 살짝이 아니지만, ‘은교’에서 ‘심장’이라는 소설이 ‘비터문’을 “살짝”비틀었다고 하니까 쓰는 말이다 – 비튼 것이 안나와 달리 은교는 약혼녀가 아닌 17세 소녀고, 은교와 서지우의 관계가 실제 연인이라기 보다는 원조교제 사이라는 것, 이적요 시인이 정치인이 아닌 시인이라는 점, 한국의 북한산 언저리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

이 외에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가림 글 설정 합니다)


more..



영화는 카메라의 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소설은 ‘화자’의 입을 빌어 서술된다는 차이점으로 인한 장르적 특성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은교에서의 이적요 시인이나, 서지우 소설가의 심리묘사는 지나친 감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는 것, 조용히 살아왔다는 것, 10년간의 수감생활 이후 시를 쓰며 마치 수도승 처럼 살아왔다는 것,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 등 ‘노인네가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정당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67~69세 정도의 노인(사실 노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나이다)이 감당할 수 없는 열정을 가지게 되는 일은 구구절절한 정당화가 없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스티븐 플레밍(제레미 아이언스)의 열정과 욕망에는 별 다른 이유가 붙지 않는다. ‘은교’초입에 나오는 문장처럼 ‘사람이란 본디 미친 감정’이 아니겠는가. 뭐 문단 서두에 써 두긴 했지만 그 구구절절한 묘사가 이 작품의 미덕이고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서지우의 은교에 대한 사랑역시 구구절절한 핑계를 동반한다. 서지우의 ‘은교’에 대한 사랑은 마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인 듯 하다. 서지우가 본디 은교를 사랑하였는가. ‘은교’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서지우는 이적요가 은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점부터 맹렬하게 변화한다. 아버지의 여자인 엄마를 사랑하는 오이디푸스와 같이.

그 심리가 붕 뜨는 것은 역시 ‘은교’다. 소설의 표제는 ‘은교’지만 사실 주체로써의 ‘은교’의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은교는 생각없고 철없는 요즘 고등학생이건, 혹은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의 이음동의어로써의 여신이건 객체에 머물러있다. 몇 마디 스스로 입을 열어 말을 하긴 하고, 일정 부분 수긍도 되지만 그 말은 서지우나 이적요의 자기 고백처럼 완성성을 지니지 않는다.

데미지에서의 ‘안나’는 ‘사회적 명성을 다 가진 노년의 신사가 열정의 무게 때문에 버거워하는 모습’을 그리기에 지나치게 설명되는 감이 없지 않다. 내가 볼 때 ‘데미지’의 안나는 그저 자신이 가진 욕망에 충실하고 그것을 잘 조정하고 저글링하는 영악한 여자일 뿐, 어릴 때 아버지 직업 때문에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느니 친오빠가 방문 앞에서 자살했느니 하는 트라우마는 그저 구절구절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스티븐 플레밍의 자기 파괴적 열정과, 아들인 마틴 플레밍의 절망감에 대한 묘사는 그렇게 간단히 잘라버리면서,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안나’의 행동에 핑계를 대주는 데 그렇게 골몰했던 게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다. 그 점이 바로 ‘은교’와 ‘데미지’가 확연히 다른 지점이기도 할테다.

삶을 뒤흔드는 열정의 존재가 뭐가 그리 새삼스럽겠는가. 어떤 시점의, 어떤 상황 속의 열정은 사람의 삶을 사회적 성공과 표준적 행복의 길로 인도해 주지만, 어떤 시점, 어떤 상황 속의 열정은 삶을 파괴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나이와 무슨 상관이겠으며, 개인이 놓인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영진공 라이


 

정동영 혹시 트라우마?

트라우마라고 하지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러니까 큰 사고를 당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라는데 정동영이 아마도 이 병을 앓고 있는 것 같네요. 사고를 당했지요, 정동영도. 지난 대선후보 경선 때 선거인단 박스떼기라는 창의력을 발휘했으나 이명박 가카께 500만표로 지고 말았지요. 충격 좀 받았겠죠. 몇 개월 후 총선 때는 정몽준한테도 발리고 말았지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국회의원도 못 된 겁니다. 그러니 선거만 생각하면 얼마나 손발이 오그라들겠어요.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죠. 무섭고 두렵겠죠. 이번에 또 떨어지면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나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넘어가겠죠. 하지만 해결책을 마련한 것 같네요. 이번엔 최대한 안전빵으로 자기 집 안마당에서 출마한답니다. 전주 덕진을.



모양새도 재밌습니다. 지난 대선, 총선 끝나고 정동영, 창피해서인지 아니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심해서인지 그냥 해외로 나갔습니다. 나가서 민주당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찾아볼 수 없네요. 비슷하게 물 먹었던 김근태는 작년 촛불 정국 때 길바닥에서 초라도 들었지요. 대체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르게 지내더니 보궐선거 기간에 딱 나타나서 한 마디 합니다. “나 전주 덕진을에 나갈래.” 정당이라면 선거구에 후보를 내놓을 때 누구를 내놓을지 논의를 하기 마련인데 그런 논의과정도 없이 다짜고짜 “나 국회의원 배지 줘”라고 한 거죠.  


듣자하니 민주당이 공천을 안 주려고 했던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대신 땅 짚고 헤엄치며 텔미 출 수 있는 전주 말고 부평 같은 데 나가라는 것이죠. 당대표를 두 번이나 했고, 당의 대선후보였던 사람입니다. 체급에 맞게 노는 게 맞지요. 게다가 지금 한나라당이 아무리 삽질한다고 해도 민주당 지지율 오르지 않고 있거든요. 당대표를 두 번이나 했고, 대선후보였던 정동영에게 그 책임이 없을까요? 그리고 그 책임이 1 년 해외에 나가 있으면 사라지나요? 희생이나 양보하는 모습도 보여줘야죠. 그리고 그것이 자기 정치경력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정동영은 사실 컨텐츠가 없어 보입니다. 지난 대선 때도 실용이니 거시기니 한참 떠들었죠. 이명박이 선점한 단어였던 ‘실용’. 이명박 당선되고 그 맛을 보니 알맹이가 있던가요? 알맹이도 없는 실용을 정동영도 떠들었던 이유는 그렇습니다.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다 나한테 표 주세요. 우걱우걱’이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죠. 그러니 알맹이가 있을 리 있나. 대신 대통령 혹은 금배지와 같이 ‘권력자’가 되는 데에는 집중력을 발휘하네요.
 


예측컨대 앞으로 정동영이 컨텐츠를 채우지 않는 이상 정동영의 봄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컨텐츠 없는 이명박도 가카가 됐는데 나라고 못 될쏘냐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다르거든요. 한나라당이야 공허한 컨텐츠를 포장할 포장지와 데코레이션이 여기저기 널려있지만 민주당은 있는 컨텐츠도 빨간 칠 당하잖아요. 그러니 민주당에서 정치 계속하려면 권력을 놓고 이전투구하기보다는 컨텐츠 개발해야 해요.

또 하나. 한국 정치, 엄청나게 드라마틱합니다. 유시민 보세요. 지금 드라마 제작하고 있잖아요. 시나리오도 괜찮고 연기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정동영은 드라마가 없어요. 양지만 좇았으니 드라마가 있을 리 없죠. 어쩌면 지금이 부족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너무 커다란 요구같지만 말이죠.

”]

민주당은 그래서 전주 덕진을에 전략공천 방침을 정했습니다. 정동영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인데 상향식 공천을 포기하고 전략공천을 하는 것은 당원과 지지자를 배반하는 일이라는 비판이 있네요. 옳은 말씀입니다. 그동안 민주당이 얼마나 철저히 상향식 공천을 지켜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