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과 뻘짓 사이: MS는 뭘 하고 있는가???




 


 


 


 


최근에 MS 서피스 발표회와 윈도우폰 8 발표회를 연달아 가졌다. 여기서 보여준 MS의 모습은 업계 관계자들이 평소에 두려워하던 끝판왕이 아니라, 빨간 바가지가 잘 팔릴까 노란 바가지가 잘 팔릴까 고민하며 갈팡질팡하는 노점상 아저씨에 가까웠다.













 


서피스가 서로 호환이 안 되는 ARM과 인텔 플랫폼으로 나왔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키보드 달린 마그네슘 커버를 씌우는 순간 울트라북과 별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은 물론, 가격과 발매일조차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서피스 발표회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치명적인 사실은 MS가 감히 OEM 하드웨어 벤더들의 나와바리를 찝적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에이서나 아수스 같은 파트너들조차 사전에 전혀 통보받은 바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을 정도다(http://techit.co.kr/5583 ).


 


하지만 이것조차도 윈도우폰 발표회에서 보여준 난감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MS는 새로 나올 윈도우폰 8 OS의 장점을 한껏 설명한 다음, 마지막으로 윈도우폰 7 하드웨어는 윈도우폰 8으로 업그레이드가 안 될 거라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러면서 기존 윈도우폰 7 사용자들을 위해 7.8 업그레이드를 내놓을 거라며 생색을 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얘기를 듣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윈도우폰 7을 샀던 사람들은 다들 얼굴빛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아우성을 쳐댔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해상도 지원 확대니, 멀티 코어 지원이니, 윈도 8과 같은 커널을 쓰고 개발 환경이 호환된다는 점이니, 졸라 빠른 IE 10 모바일이 탑재되었다느니 하는 장점들은 순식간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진짜 대박은 윈도우폰 8이 가을에나 나올 거란 대목이었다. 다시 말해 불쌍한 노키아는 가을이 올 때까지 윈도우폰 8으로 업그레이드도 안 되는 찐따 윈도우폰 7 스마트폰 재고를 잔뜩 떠안은 채 빌빌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MS는 과연 이 사실을 노키아에게 미리 귀띔이라도 해 줬을까? 글쎄, 서피스 발표회의 전례를 보면 절대 그랬을 거 같지 않은데.


 


이 와중에 에이서 창업자 스탠 시는 서피스는 MS가 파트너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라며, 다른 제조사들의 윈도우 8 타블렛이 늘어나면 MS가 발을 뺄 거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관련기사 http://www.digitimes.com/news/a20120619PD224.html ). 순진한 노친네 같으니라고.


 


만일 서피스가 대박이 터진다면 MS는 후속 기종을 내놓을 것이다. 잘 팔리는 걸 왜 안 만든단 말인가? 반대로 서피스가 쪽박을 찬다면 그 어떤 제조사도 윈도우 8 타블렛을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MS는 혼자서라도 후속기종을 계속 내놔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윈도우폰 7 스마트폰을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는 사실상 노키아밖에 없는 상황에서, 윈도우폰 7 8 업그레이드 불가 정책을 발표한다는 것은 노키아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짓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MS는 그 짓을 해치웠다. 아주 태연하게.


 


이걸 두고 이미 여러가지 추측과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MS가 본격적으로 하드웨어 사업에 뛰어들 거라는 둥, 결국엔 스마트폰도 직접 만들 거라는 둥, 노키아를 인수할 거라는 둥, 하여간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막상 MS의 입장은 굉장히 어정쩡하다. 서피스를 발표하면서 가격과 발매일은 언급하지 않은 걸 보면, 실제로 제품을 판매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가장 충실했던 파트너인 노키아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면서도 노키아를 포함한 윈도폰 파트너들을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걸 보면, 뻔뻔하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미쳤다고 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이해는 된다. 애플이나 구글이 엄청 잘나가는 꼴을 보면서 가만 있을 수는 없겠고, 자기들도 하드웨어 사업에 뛰어들어야겠다 생각해 일을 저질렀지만, 아직까지도 회사의 가장 큰 수익원이 윈도 OS와 오피스란 점에선 기존 파트너들 눈치를 아예 안 볼 수 없겠고,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리며 윈도폰 OS을 업그레이드하다 보니 기존 제품 지원은 물건너 가버렸고,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발표를 미뤘다간 구글하고 애플 뉴스에 파묻힐 거라고 마케팅 부서가 항의를 하고 ……















그런 식으로 꼬이고 꼬인 끝에 작금의 상황에 도달했으리라는 건 대강 짐작이 간다. 하지만 소비자나 파트너는 물론 투자자 중에서 이런 상황을 반길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삽질은 혼자서만 피곤한 거다.


하지만 뻘짓은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지금 MS가 하는 짓거리는 의심의 여지 없는 뻘짓이다.


과연 MS는 이런 뻘짓을 벌이고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뻘 속에 가라앉을까?







영진공 DJ Han



































































스마트 TV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CES 2012에서는 다양한 신제품이 발표되었다. TV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OLED TV 였고 그 다음은 스마트 TV였다. 특히 전세계 TV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TV 플랫폼은 관심의 촛점이었다.


당장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국내외 평가를 종합해 보면 호의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예상과는 달리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반응속도나 사용자 UI는 썩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siri 만큼 똑똑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음성인식 기능에 동작인식까지 덤으로 갖췄고, 스마트폰과의 콘텐츠 공유 기능인 Allshare는 애플의 airplay보다 훨씬 더 쓸만해 보였다. 그리고 앵그리버드가 아무 문제 없이 휭휭 돌아가는 모습을 선보이는 장면에선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WoW!

하지만 궁금한 건 이거다. 내가 이걸 왜 사야 하는 거지? 50인치 대화면 TV에서 앵그리버드를 하려고?

아무래도 대부분의 스마트TV 기획자나 개발자들은 스마트폰(이라기보다는 아이폰)의 성공 공식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즉,

1) 뛰어난 사용자 UX,
2) 오만가지 앱이 득시글거리는 앱스토어,
3) 인터넷과의 연동

이 스마트 TV를 성공시킬 열쇠라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스마트”란 단어를 공유한다 할지라도 폰은 폰, TV는 TV다. 둘의 성공 공식이 동일할 리 없다.

핸드폰은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주목적으로 하는, 그 태생부터 굉장히 능동적인 기기다. 데이터 통신망을 이용해 웹브라우징을 하고, 짧은 문자 메시지를 긴 이메일로 확장시킨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게임은 이미 피쳐폰 시대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런 기능을 제대로 쓰려면 편리한 UI를 갖춰야 하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거실 TV는 굉장히 수동적인 기기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무식한 게으름뱅이를 위한 바보상자이다. 쇼파에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귤을 까먹으며 아무 생각없이 드라마를 보다 말고 갑자기 TV 화면에 이메일을 띄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거라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편이 훨씬 빠를 텐데.

하지만 TV에서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기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VOD(Video on Demand)다.

여기서 잠시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도록 하자. 미국은 TV소유 세대수의 약 8할이 케이블TV나 위성방송, IPTV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부터 이들 대형 케이블 TV업체들은 iPAD를 비롯한 타블렛 대상의 방송 서비스에 일제히 힘을 쏟기 시작했다.

타임워너 사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 당시 정시방송의 주당 시청 시간은 31.7시간이었지만 VOD(video on demand) 시청 시간은 주당 0.4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에는 VOD의 시청 시간이 주당 2.5시간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2.5시간이라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건 고연령층까지 포함한 평균치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세대만을 계산에 넣는다면 이 수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요즘은 내 주변에서도 셋탑 박스나 IPTV에서 필요할 때마다 영화를 사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꿋꿋하게 토렌트나 웹하드를 뒤지는 인간들의 숫자가 훨씬 많긴 하지만.

MP3 플레이어의 킬러 콘텐츠가 음악이고, 스마트폰의 킬러 콘텐츠가 앱이라면, 거실 TV의 킬러 콘텐츠는 영상일 수밖에 없다. 아이팟은 음악을 유통하는 뮤직 스토어를 통해 MP3 플레이어 시장을 평정하고, 아이폰은 앱을 유통하는 앱스토어를 선보이며 핸드폰 시장을 뒤흔들었다.

그렇다면 거실 TV가 스마트 TV로 진화하기 위한 열쇠는 자명하다. 그것은 영상물 유통의 혁신에 있다.

어느 나라든  TV 콘텐츠 시장에서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주파수를 독점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국이다. 그 다음은 지역별로 난립한 케이블 TV 회사들이다. 이들 방송에 비하면 DVD, 블루레이, VOD 등 홈비디오 시장의 비중은 굉장히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방송 시장의 총 매출 규모는 10조를 넘어가는 반면, 홈비디오 시장 규모는 기껏해야 3, 4백억 정도에 그칠 뿐이다.

지난 수십년간 TV는 브라운관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고, HD 해상도로 바뀌고, 아예 브라운관이 사라지고 PDP와 LCD로 바뀌는 등, 재탄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바뀐 건 물리적인 부분일 따름이었다. 실질적으로 콘텐츠를 틀어쥔 게 방송국이란 사실엔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가전회사는 주연이 아닌 조연에 불과했고, TV는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드라마나 뉴스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위한 깡통에 불과했다!




그런데 … 지금 가전회사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것이다. 방송국 눈치를 보지 않고, 직접 방송국에 맞먹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말이다. 그것도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전세계 TV 시장에서 탑을 달리는 삼성전자의 작년 한 해 평판 TV 판매량은 대략 4300만대, 올해 목표는 5천만대라고 한다. 만일 삼성이 자사 TV 물량을 고스란히 스마트 TV로 전환한다면, 그리고 공중파 방송국에 준하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개발해 탑재시킨다면, 매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에 필적하는 5천만명의 시청자를 기본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만한 숫자라면 VOD는 뒤로 미뤄놓고 광고만 팔아도 돈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가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저작권자들과 지리한 협상을 통해 컨텐츠를 확보하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국가에선 어떤 식으로 컨텐츠를 공급할지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숙제는, 공중파나 케이블보다 더 쉽고 간단하고 편리하게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중파 방송은 안테나만 세우면 볼 수 있다. 케이블 TV에 전화 한 통만 넣으면 채널이 순식간에 백여 개로 늘어난다. 그렇다면 스마트 TV는 전원선만 꽂으면 즉각 수백 개의 채널을 저렴하게(또는 공짜로), 그리고 손쉽게 볼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워야 한다. 대체 어떤 식으로?

글쎄, 그걸 잘 모르겠다.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궁리해야 하는 건 삼성이나 LG같은 제조사들의 몫이다. 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스마트 TV에 스마트폰의 기능을 우겨넣는데 급급한 것 같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TV를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국가의 방송국을 능가할 수도 있는 절대적인 방송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기껏 내놓은 스마트 TV라는 건 스마트폰의 화면을 가로세로로 뻥튀기한 물건에 불과하다.

하긴 뭐, 아이패드도 처음엔 아이폰의 뻥튀기판에 불과하단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패드는 들고 다닐 수도 있고, 침대에 누워서 만지작거릴 수도 있고, 후장을 자극하는 치질의 고통과 맞서 싸우기 위해 화장실에 가져갈 수도 있다.
 

반면에 거실 TV는 …… 흠, 더 이상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당신은 그 리모컨조차도 맘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건 당신 게 아니라 사모님 거니까!


영진공 DJ Han



 

애플 TV의 현재, 스마트 TV의 미래


지금, 스마트폰의 뒤를 이은 화두는 스마트 TV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건 구글이다. 크롬 OS를 기반으로 한 구글 TV 플랫폼을 앞세워 많은 제조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특히 소니는 필사적이다. 삼성이나 LG에게 두들겨맞아서 만신창이가 된 TV 사업의 부활을 구글 스마트 TV에 걸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은 자사의 바다 OS를 내세워 스마트 TV 플랫폼을 구축하겠노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때 노키아의 심비안이 그랬듯이,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다른 데서 당해낼 도리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 애플의 행보는 어떠한가.
애플은 이미 3년 전에 애플 TV라는 제품을 발표해 스마트 TV 사업에서도 앞서나갈 거란 관측이 유력했다. 더군다나 올해 초부터 신형 애플 TV가 나올 거란 소문이 떠도는 바람에 많은 TV 제조사들이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에 발표된 신형 애플 TV는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제품이었다.

기존 제품은 인텔 CPU에 MacOS 플랫폼이었지만, 신형은 ARM CPU에 iOS 플랫폼으로 바뀌었다. 가격은99달러로 떨어지고, 동영상을 구매하는 대신 99센트에 빌려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도입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딜 어떻게 뜯어봐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케이블 TV 셋톱박스보다 나은 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건 애플이 아니라 하이얼도 만들 수 있겠네!

하다못해 자사 제품이라면 당장 혀로 쪽쪽 핥아먹을 것처럼 칭찬 일색으로 도배하는 잡스조차도 신형 애플 TV는 “취미(Hobby)”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는 듯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뭐야, 이거?

요컨대, 현재 애플 TV는 대단히 비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쓴 맛을 본 제조사들이 또다시 애플에게 당하지 않을 거란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예약 판매 실적도 별 기대가 안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툭 까놓고 말해 “넌 이미 망해있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스마트 TV의 정의는 비교적 간결하다. 스마트폰처럼 똑똑한 TV, 그게 스마트 TV다. OS는 iOS가 될 수도 있고 바다 OS가 될 수도 있고 크롬 OS가 될 수도 있다. 핵심 부분만 따로 셋톱 박스로 팔 수도 있고, TV에 내장시킬 수도 있다. 웹브라우징도 할 수 있고 날씨도 확인할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거저거 다 되는 꿈의 TV다.

하지만 내가 문제시삼고 싶은 건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물리적인 형태다.

스마트 TV에 관한 대부분의 예상과 전망은, 그 모양새나 생김새가 기존 TV와 대동소이할 거란 전제 하에 이뤄지고 있다. 화면? 크면 클수록 좋겠지. 그래야 거실에 갖다놨을 때 뽀대나니까. 두께? 당연히 얇으면 얇을수록 아름답겠지. 리모콘? 멀리 떨어져서 조작해야 하니까 혁신적이면서 편리한 UI를 탑재한 리모콘은 필수겠지!

실제로 LG나 소니를 비롯한 제조사들이 각종 전시회에서 내놓은 스마트 TV의 프로토타입은 대화면 TV와 셋톱 박스, 무지막지한 키보드가 달린 리모콘이 결합된 형태로 이뤄져 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러나 조금 삐딱하게,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실에 모셔놓는 대화면의 스마트 TV는 얼핏 생각하기엔 이상적인 아이디어처럼 보인다. TV를 보다가 지루해지면 웹브라우징을 할 수도 있고, VOD를 받아볼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서 TV를 볼 때나 가능하다. ‘온가족’이 봐야 하는 거실 TV에서 느긋하게 웹브라우징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막장 드라마 방영 시간이 다가오면 마누라가 당장 리모콘을 뺏아들고 채널을 돌릴 테니까.

그렇다면 방마다 스마트 TV를 놔 두면 어떨까? 아니 …… 요즘은 방마다 컴퓨터가 있는데 그게 무슨 필요야? 차라리 컴퓨터에서 웹브라우징하면서 실시간 TV를 보는 게 낫지. 아예 이번 기회에 노트북으로 바꿀까? 침대에 누워서 갖고 놀게.

여기서 스마트 TV의 물리적인 진화 형태가 쉽게 떠오를 것이다. 그건 바로 타블렛이다.
온가족이 집적대는 40인치대 거실 TV는 아무리 스마트해진들 개인화될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보다는 7인치나 9인치의 화면에서 언제 어디서든 TV를 비롯한 각종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다른 사람에게 시청권을 빼앗기지 않고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강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역으로 혼자만 즐길 수 있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TV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웃고 떠들며 보는 게 중요하잖아? 안 그래?

그래서 애플에서 airplay 를 만든 거 아니겠냐. 필요할 땐 타블렛의 콘텐츠를 거실 TV에서도 볼 수 있도록.

아마 애플 TV 하드웨어 자체는 잡스의 말마따나 ‘취미’일 것이다. 진짜배기는 거기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서비스다. 만일 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아이패드와 결합하게 된다면, 그 순간 아이패드는 휴대성과 앱, 콘텐츠를 두루 갖춘 스마트 TV 플랫폼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또는 지하철에서, 또는 버스 안에서 맹렬하게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리라.

스마트 TV 플랫폼의 개념을 흡수한 타블렛,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스마트 TV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애플TV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패드와 사실상 동일한 하드웨어와 OS를 갖췄다는 것은, 애플 TV용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언제든지 아이패드용으로 옮길 수 있다는 뜻이다. 마음만 먹으면 몇 달은커녕 몇 주 걸리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지금 당장 형편없다고 애플 TV를 비웃고만 있을 게 아니다. 철저하게 고민하고, 분석하고, 대비해야 할 때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크게 한 방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아이폰으로 당한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허나 어쩌랴, 우리나라 제조업체는 비웃느라 바쁜 것을. 천하에 둘도 없는 멍텅구리들 같으니라고, 된장!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