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와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처음부터 닮아있었다고 보는 건 아무래도 어렵다는 결론이다. 특히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들이 내용과 스타일 면에서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며 – 단순히 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 그런 와중에 이번 <환상의 그대>를 통해서 우연찮게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무척 닮아있는 모습들을 보여주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환상의 그대>는 전지적 나레이션을 활용해서 – 홍상수 감독 역시 종종 나레이션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던가 – 씨퀀스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설하고 있는 편인데, 그 중 영화의 시작과 함께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경구,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대주제가 되고 만다.
이토록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으면서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에서 그나마 답이 되어줄 수 있는 건 헬레나가 의존했던 바와 같은 맹목적인 믿음 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식의 결론은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다.
알피의 딸 샐리(나오미 왓츠)의 남편인 작가 로이는 건너편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 흠모하던 “환상의 그대” 디아(프리다 핀토)의 마음을 얻는 데에 성공은 하지만 작가로서 자신의 무덤을 파는 짓을 하게 되면서 그 역시 인생의 바닥으로 완전히 침몰을 하고 만다. 큐레이터인 샐리 역시 갤러리의 사장 그렉(안토리오 반데라스)과의 연애에 헛물을 켠 데다가 어머니 헬레나가 예언을 핑계로 창업 자금 제공을 거부하자 몹시 분노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세태 풍자까지는 아닐지라도 분명 우스꽝스러운 해학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혹시나 자신의 삶에도 그와 같이 허탈하고도 몹시 짜증스러운 일이 실제로 닥치지나 않을까 싶어 맘 놓고 웃지도 못하는 애매한 감정에 휩쌓이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거장의 행보는 이처럼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