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힐> – 불친절한 영화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31일

<사일런트 힐>은 플레이스테이션 용 게임으로 발매되서(코나미 사)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되시겠다. 요 게임을 몹시 매우 좋아했던 친구 Y군의 말에 따르면 게임 [사일런트 힐] 그야말로 공포/호러 게임중 존나 걸작이며, 한번 잡았다 하면 게이머의 심장을 조물조물 떡주무르듯 주물러 놓는 넘이란다.
각종 게임에 나름 도가 텄다고 자부하는 Y군(요즘엔 리니지2에 미쳐 산다)도 게임에 빠져 지낸 며칠동안 악몽 속에서 헤메는 듯 하는 심정으로 조이스틱을 잡고 놓지 못했으며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가끔, 샤기컷으로 다듬은 머리카락 끝이 삐쭉삐쭉 서는 벌렁거림을 선사한다고 하는데..

Y군 이넘이 원체 구라를 허리에 감고 다니는 넘이라 전부 다는 믿지 못하겠지만서도, 주변에서도 [사일런트 힐]을 주저 없이 최고의 게임으로 꼽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주 쌩구라는 아닐 것이라고 사료된다.

축축 늘어지는 늦여름, 배꼽에 박혀있는 가녀린 한줄기 때가 벌떡 일어나 저녁바람 맞은 갈대마냥 부르르 떠는 쾌감을 맛보고 싶었던 없다가 Y군과 함께 <사일런트 힐>을 감상했더란다.


게임의 재미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종관만 잡으면 그 안에서 총쏘고 날아다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완벽한 몰입도를 선사하는 게임에 비해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영화는 아무래도 게임을 할때만큼의 재미와 박진감이 덜하기 마련이니까.
제 아무리 천하무적의 사이즈(..)를 자랑해 마지않는 안젤리나 졸리라고 해도 내가 직접 조종하는 라라 크로포트만큼 애지중지하기는 힘든 법.(안젤리나 졸리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오오 그건 정말 좋겠다… 꼴깍.)

<사일런트 힐>은 철저하게 원작의 후광을 선택했다. 원작의 느낌을 살리려는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라고 Y군이 말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얼개도 그렇거니와 고스란히 가져다 쓴 캐릭터들, 크리쳐, 지직거리며 불길함을 안겨주는 음향, 미장센, 카메라워크까지 철저하게 게임의 그것을 따라간다(…고 역시 Y군이 말했다.)
특히 주인공이 여자화장실에서 썩어들어가는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은 화면의 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 등등이 마치 게임 동영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며, 게임 매니아들을 향수의 도가니탕에 푹- 담궈주기에 모자람이 없다(…라고 Y군이 매우 만족해하며 말했다.)

그러나 게임 [사일런트 힐]을 물집 잡히도록 플레이한 Y군과 플레이 스테이션에 엄지손가락 한번 얹어본적이 없는 내가 같을수는 없지. 무릎을 치며 흡족해하던 Y군과는 달리 나에게 당 영화는

매우 불친절했다.

하나의 공간이 다른 차원으로 나누어지는 구성, 사일런트 힐이라는 마을에 얽힌 사연, 주인공 여자아이 샤론과 마을 전체를 덮고 있는 저주의 주체인 알레사와의 관계 등등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키워드들을 좀 지나치다 싶을만큼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개의 물음표가 머리 위에 묶여 잔뜩 꼬인 전화선마냥 풀어지질 않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옆에 있는 놈은 다 아는데 나만 몰르고 있는, 이유도 모르고 남들이 웃으니까 따라 웃는 듯한 이 찝찝한 기분 때문에 순조롭게 공포에 질려 주는데 상당히 많은 난점이 있음이다.
본인의 대가리가 특출나게 잘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딸리는 수준도 아닌 바, 원작 게임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볼때 채 이해하지 못하고 죄없는 뒤통수만 벅벅 긁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질 것이라 예상되니..
관람에 앞서 [사일런트 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조금 습득하는 것이 순조로운 관람을 위해 바람직하다 하겠다.
어디서 얻냐고…? 검색창에 “사일런트 힐”이라고 쳐봐라. 이런것까지 갈쳐 줘야 해?

좀 많이 불친절한 것만 빼고 본다면 당 영화는 지금까지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중 가장 낫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성들여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지금까지 게임원작 영화 중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 있기나 했었냐? 라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서도..

저주로 마을 전체가 갇혀버린 사일런트 힐의 잿가루 날리는 음습한 분위기를 퍼팩트하게 살려낸 CG와 게임의 상상력을 그대로 살려 화면에 재현한 크리쳐들(하나하나가 다 사연이 있는 애들이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이 스믈스믈 기어다니는 모습, 서서히 몰아가다가 후반부에 한방 제대로 터트려주는 꽤 훌륭한 난이도의 고어씬 퍼레이드 등등 쏠쏠한 볼거리들이 꽤 많다. 그 중에서도 말년 병장이 깔깔이 벗듯 살가죽을 와락 한방에 벗겨버리는 장면은 근래에 경험했던 것중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그 충격이 뇌세포를 때려주는 장면이었다 하겠다.

가벼운 공포영화 한편 보면서 늦더위를 식히고 싶다면, 살벌한 동네 사일런트 힐에서 길잃고 미아 한번 돼 보자.
당신이 한때 이 게임에 열광하던 게이머였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강추다.

– 말했듯이 고어씬의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이니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기타 세상을 밝게만 보고싶은 분이나 영화로 본건 꼭 따라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은 좀 참자.

상벌위원회 정규직 간사
거의 없다(1000j100j@hanmail.net)

<마이애미 바이스>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22일


<마이애미 바이스> 봤습니다.

결론은 그저, “마이클 만”이 총격전 오타쿠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영화라고 밖에는…

본인이 생각하는 리얼리즘의 극단을 드러내더군요.
문제는 그 리얼리즘이란게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거죠.

예를 들어, 영화의 한 절반쯤은 녹음기사나 조명기사도 쓰지 않고
걍 HD 캠코더로 찍어버린 모양입니다.

흔들흔들거리는 앵글에, 감도 높이느라 노이즈 잔뜩 낀 화질에,
미국남부의 화사함 보다는 아시아의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창백한 색조에…

<CSI : Miami>에서 늘 보던 그 현란한 하늘과 황금색 풍경은 어디로 가고
이런 칙칙한 색깔만 있는 건지…
(아, 화사한 하늘은 잠깐 나옵니다. 그나마 좀 영화 같던 비행장면)

심지어 마지막 총격전 장면도 후시녹음으로 총성을 보정하지 않고
그냥 개활지에서 총 쏠때 나는 그런 콩볶는 듯 따닥따닥 하는 소리를 그대로 썼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는게 아니라 무슨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입니다.

등장인물의 내면도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사건이 벌어지고 대응하는 과정이 하나하나 나올 뿐이죠.

내면 묘사를 없애는 거야 연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다보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나온다는 거죠.
특히 “콜린패럴”과 “공리”의 관계는 뜬금없었습니다.
둘이 이팔청춘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아주 대단한 삶의 전환기에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그렇게 겁없이 덤벼들었는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여튼, 요즘 유행인 수사드라마들과는 극단에 선 영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CSI 는 아주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현실적인거 같지만 실제와는 상당히 다르겠죠.
일단 죄다 유리로 만들어진 연구실들 부터 뭔가 아니거든요.
흉기가 인체의 내부를 파괴하는 과정을 CG로 그려내는 살해장면 재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그럴듯하고 멋진 화면을 만들기 위한 연출이죠.

그래도 시청자들은 거기에 상당히 쉽게 몰입하고 실제처럼 받아들입니다.
관객들이 실제인듯 받아들이게 “연출”을 했거든요.

반면에 이 영화는 앞서 말했듯 정말 실제를 찍은 느낌을 줍니다.
근데 관객들은 뭔가 빠진 것 같고, 느슨한 것 같고, 실감도 잘 안나죠.
(예를 들어, 총성이 뭐 그래? …)

영화 <괴물>에서 마지막에 괴물이 불타는 CG 장면이 사실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진짜 물고기에 신나뿌려서 태워보면서 만들어낸, ‘사실’에 가까운 장면이지만
정작 관객들은 너무 구리다고 욕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사실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실제 사실은 거의 대부분 다른 법인데
“마이클 만”은 그냥 진짜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근데 따지고 보면, 이건 영화지 사실이 아니쟎아요.
실제 마이애미 경찰이 페라리 몰고 다닐 거 같지도 않고,

마지막으로, “제이미 폭스”가 자기 여친 수술하는 병원에서 이렇게 투덜거리죠.
“이렇게 엿같은 직업 때문에 죽을 지경까지 가야 하는거야?”

아니, 맨날 페라리이거나 그에 준하는 머슬카 몰고 다니고,
맘만 내키면 고속보트 타고 쿠바 가서 술마시고 오고
신나게 비행기도 조종하는데다 장비는 최고급
(소총은 SIG 552에 권총은 SV제 커스텀 죄다 수천불짜리…
아 시계는 IWC 인데 그것도 아마 몇천불은 하지?)

이 정도면 수사관 생활 중에서는 아마 최고 럭셔리일텐데 그게 엿같다니
무슨 그런 천벌 받을 소리를… -_-;;;

* 짤방사진은 “콜린 패럴”이 SIG552 소총을 신나게 쏴대는 장면.
“마이클 만”은 총에 부가장비 붙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역시 그의 사실주의에 맞지 않는 모양.

하지만 요즘에는 다들 최소한 도트사이트나 라이트 정도는 붙이는 분위기인데…

상벌위원회 상임 간사
짱가(jjanga@yonsei.ac.kr)

<크립>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22일


<크립>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 정말 대단한 영화다. ‘지하철 역에서 벌어지는 공포’ 어쩌고 하는 설명에 혹해서 빌려 봤는데,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훨씬 더 공포스럽다. 지하철 역 아래에서 한 미치광이가 사람을 마구 죽인다. 주인공 여자가 어찌어찌 거기 연루되었다가 혼자만 겨우 목숨을 건지는 상투적인 내용인데, 여자의 외모가 영 아니라는 것도 흥미를 떨어뜨리는 이유였다. 부잣집 딸을 지키느라 자기가 여장을 하고 딸로 위장한 영화-제목이 생각 안남-가 생각난 것은 주인공이 여장 남자의 얼굴과 꽤 비슷했기 때문. 그러니 그녀에게 감정이입이 전혀 안되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용이라도 재미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미치광이가 왜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데, 그게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저 어서 끝나기만 해라, 이런 심정으로 영화를 봤는데,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헛구역질이 나서다.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은 러닝타임이 한시간 20분이 안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너무 재미가 없다보니 그게 세 시간으로 느껴진다는 거~~

건질 게 없고 비판할 것투성이인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건 개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였다. 미치광이에게 쫓기던 주인공은 지하철역에서 숙식을 하는 노숙자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노숙자의 아내가 미치광이에게 살해당하자 열이 받은 노숙자는 기르던 개를 여자에게 맡기고 이렇게 말한다.
“이 개 데리고 어서 도망가요. 난 그놈을 만나야 해!”
근데 그 여자는 도망가다 말고 다시 남자에게 오는데, 이미 개를 팽개친 후다. 그녀가 오는 바람에 남자는 여자에게 뭐라고 하다가, 괴물의 기습을 받고 죽고 만다.

나중에 여자는 다시 그 개를 만나고, 반가운 척 껴안는다. 하지만 미치광이와 맞닥뜨렸을 때 개를 가장 먼저 버렸고, 혼자만 살 궁리를 한다. 여자는 결국 미치광이를 죽이는데, 그러고 나서 지하철역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때는 이미 아침, 그녀를 노숙자로 착각한 남자 하나가 그녀에게 동전을 건네준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나는 개, 개는 여인을 보자마자 품에 안긴다. 여인은 반가운 듯 개를 다시 껴안지만, 그간 저질러왔던 행적으로 보아 귀찮아지면 그 개를 버릴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데 개까지 돌보는 건 무리한 주문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 자주 벌어진다. 우리 할머니는 6.25 때 피난을 가면서 항구까지 쫓아나온 개를 외면했다. 십년쯤 전, 목에 감긴 밧줄을 풀고 집에 불이 난 걸 알려준 명견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세진 컴퓨터의 모델이 된 진돗개는 주인을 찾기 위해 수백킬로를 헤매야 했으며, 고생을 너무 한 나머지 주인을 찾고 얼마 안있어 죽어 버렸단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길거리에 나가 보면 버려진 채 쓰레기통을 헤매는 개들이 숱하게 눈에 띈다(복날이 지날 때마다 그 숫자가 격감하긴 한다). 다들 사정이야 있을테고, 버리는 사람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는, 그리고 영화를 이끌어갈 주인공이라면 생명 하나하나에 대해 존엄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개를 내팽개치기를 밥먹듯이 한 주인공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위험이 사라진 마지막 순간 여인은 개를 껴안지만, 진정 개를 사랑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사정이 어려울 때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를 거둔 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개를 존중하지 않는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

<각설탕>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22일


나는 말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란 동물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특히나 속눈썹이 길어 매력적인 말의 눈은 예쁨 그 자체다. <각설탕>을 보고 싶었던 건 거기에 말이 나오기 때문이었다(그런 내가 “다코타 페닝”이 나온, 비슷한 스토리의 <드리머>를 안본 이유가 무엇일까? DVD로 구해서라도 꼭 볼 생각이다).

<각설탕>에는 각설탕을 좋아하는 말이 나온다. 말은 생각보다 연기를 꽤 잘했고, 동물 영화라면 대충 다 감동하는 내 가슴을 여러 차례 아프게 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 다른 곳에 팔려간 주인공 말이 오래 전에 헤어진 임수정을 알아보고 그녀가 탄 택시를 쫓아간다. 그때 난 그 말이 되어 멀어져가는 택시를 안타깝게 바라보았고, 다시 임수정과 만났을 때는 꼭 그 말만큼 기뻐했다.

맥스무비 사이트의 <각설탕> 별점은 8.68,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별점은 믿으면 안된다. 나처럼 말만 나오면 내용에 무관하게 무조건 별 다섯을 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말이 아픈 걸 무릅쓰고 경주를 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무척이나 상투적이었고, 그 결말 또한 익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건만, 유치하게시리 내 눈에선 눈물이 마구 났다. 이런 게 동물 애호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드리머>의 별점이 8.77인 것, <북극의 여름 이야기>가 8.78, <우리개 이야기>가 9.26의 별점을 받은 걸 보시라. 그러니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별점이나 그들이 쓴 영화평에 현혹되어 이 영화를 봐선 안된다. 나야 재미있게 봤지만, 다른 분들이 보고 재미가 없다 해도 책임을 못 진다는 얘기다.^^

어릴 적에는 말을 타보고 싶어 몸살을 앓았다. 나이가 들면서 마차를 끄는 말이 불쌍해졌고, 돈만 있다면 그 줄을 끊고 자유를 주고 싶었다. 과천 경마장에 가본 적은 딱 한번 있다. 원 없이 말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채찍으로 맞아가며 무의미한 질주를 해야 하는 그들이 안되어 보였다. 그날 집에 가면서 경마장의 우리를 열어 모든 말을 도망가게 해주는 꿈을 꾸어봤다. 역시 난, 동물 파시스트다.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

[바람의 나라] 시놉시스는 표절을 따질 수 없다고?

공연윤리위원회
2006년 7월 11일

난 『태왕사신기』가 절대적으로 바람의 나라를 표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에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절차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드디어 『태왕사신기』의 그 뻔뻔하고 더러운 기사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구나.” 가 아니였다.
불안감.
『두근두근 체인지』. 그 허무한 결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만화와 드라마가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안된다던, 드라마가 끝나버렸기때문에 안된다던 그 판결을 알고 있었으니까.
제길. 그래. 결국 판결은 원고패소, 『태왕사신기』의 눈부신 승리였다.

판결문은 일부 유사점은 인정 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표절여부를 따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놉시스만으로는 표절여부를 따질 수 없지만 완성된 드라마는 또 다르다고 교묘히 우릴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미 선례인 『두근두근 체인지』에서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만화를 이용하여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판결문에서 조차 당당히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결국 표절에 대해서는 만화와 드라마는 다른 별개의 작품이기때문에 원고의 주장을 기각해버렸다.
과거에 그러했는데 과연 바람의 나라에 대해서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내가 알기로 이전에 나왔던 판례들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며 왠만해서는 잘 뒤집어지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판례가 중요한 것이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때 유사한 사건의 판례가 어떠했는지부터 알아보는 거라고 알고 있다.
거기다 상대는 대형프로덕션, 대형방송사임에야 무슨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거기다 더 찝찝한건 두근두근 체인지의 방송사가 똑같은 MBC였다.)
과연 드라마만 제작 되면! 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걸까?

기사에 인용되었던
“설령 피고의 시놉시스가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은 어느 한 작가의 저작권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동일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사용했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부분은 앞뒤를 좀 더 따져보아야 한다.
저번 포스팅에서는 국사도 안배운 새끼들(..) 이라고 흥분해서 말해버렸지만
판결문에서의 그부분은 사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이 부분은 뒤에 판타지적 요소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따로 나온다.)

“원고의 저작물은 고구려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일부 실존했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등장인물을 만들어 내고 그에 원가가 창의적으로 개발한 환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서 이는 기본적으로 역사 저작물로서의 성격과, 환타지 저작물로서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은 어느 한 작가의 저작권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피고가 원고와 동일한 역사적 배경 및 사실을 자신의 저작물에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저작권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원고 저작물 중 환타지적 요소 중에서도 그것이 원가가 새롭게 독창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신화나 설화를 통해 일반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라면 그에 대해서도 원고의 저작권을 일정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과 환타지적 요소인 사신의 의미를 따로 생각한 거다. 판결문에서는.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것은 따로 생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하고 많은 나라중에 하필이면 왜 고구려 일까?
환수라 불리는 해태나 기린, 봉황 이러한 것이 아니라 하필 사방신이 주인공을 돕는 걸까?
그들은 또 왜 그토록 성격적 유사점이 있으며 동일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것을 복합적으로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따로따로 놓고 이야기를 해버리니
고구려라는 배경은 어차피 공공영역이니까 이건 저작권으로 못 밀어부쳐.
사신? 그거써서 만화그린게 한두개야? 이렇게 되어버린 거다.

또한 판결문을 읽으며 가장 답답했던 것은
과연 판사는 시놉시스를 무어라고 생각하느냐 였다.
“이 사건 시놉시스는 앞으로 제작될 ‘태왕사신기’ 드라마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만이 서술되어 있을 뿐이어서 그것 자체만으로는 원고가 주장하는 창작적 내용을 침해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시놉시스란 시나리오의 대략적 줄거리다.
시놉시스는 글을 대표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의 내용이 다 들어가있는 중요한 글!! 인 거다.
그만큼 중요하고 글의 주제와 내용을 포괄적으로 잘 드러내야 하는 글이며,
시놉시스 자체가 변경된다는 것은 전체 내용이 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팔아먹으려 했던 『태왕사신기』가 아닌게 되는거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러이러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을 내세워 이러이러한 내용의 드라마를 만들어 당신들한테 팔겠습니다. 라는 기자회견까지 한 상태. 그 시점에서 이미 『태왕사신기』는 바람의 나라를 표절한거다.
또 과연 그 내용이 바람의 나라와 완전히 틀려질 정도로 바뀔 수 있을까?
내 대답은 no.
인물설정이야 어찌어찌 바꾼다 쳐도 바람의 나라의 주제와 가장 큰 이야기라인을 통체로 들어다 썼는데
과연 그걸 어떻게 바꾸겠나?

시놉시스의 저작권은 인정해 주면서 어째서 표절은 인정되지 않는가?
단순히 시놉시스의 내용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로서 창작이 된다면 바꿀 수 있어서 라는 이유를 댄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저작권도 사실 인정 될 수 없는거 아닌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이야기를 거기다 그렇게 써놓았다 치더라도 니가 그걸 바꿀지 어떻게 알아?
너 사실대로 말해봐. 그거 바꿀거지? 이렇게 우기는거랑 뭐가 다르다는 거냐.

어째서 만화와 시놉시스가 다른 종류의 창작물이라는 이유로 표절이 될 수 없는 걸까?
라는 의문은 끝끝내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 노래 가사들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소설한편 완성해도 그건 다른 종류니까 괜찮지 않나?
이런 생각하게 되도 어쩔 수 없다.

만화는 결국 그것밖에 가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거다.
만화라는게 결국 그렇게 우습게 생각되어지고 있는거다.

이렇게 판결이 났으니 표절건으로 돈한푼 안들이고 매스컴 오르락 내리락하며 유명세를 탄
『태왕사신기』는 결국 제작될 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걸 재미있게 보겠지.(어떻게 연출이 될지 모르겠지만.. 설마 그 좋은 내용을 들어다 썼는데 완전 즐인 드라마가 될리가 있나.)

내꺼라고.
내 상상력이라고 내가 만든 나라라고.
그렇게 소리치는 만화가의 외침은 가려지겠지.
만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게 미치고 팔짝 뛸정도로 싫어서
이렇게 아무도 찾지 않을지도 모르는 얼음집 한구석에서 키보드들 두드리고 있는 거다.

자신의 나라를 빼앗겨버린 만화가 김진님, 그리고 바람의 나라안에서 살아가던 주인공들을 잊지 않으려고.

바람의 나라 패소 특별대책위
라곰(http://chunglu.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