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닮은 컴퓨터


 

현재 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슬슬 한계에 봉착한 느낌이다. 물론 매번 업그레이드 된 하드웨어들이 발표되고는 있지만 단지 수치적인 향상일 뿐 우리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향상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의 데스크탑은 부팅시간을 활용해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으며 노트북을 구매할 때 마다 가볍지만 비싸고 성능이 떨어지는 모델과 무겁지만 성능이 좋은 모델 사이에서 괴로워해야 하고, 까페에 들어서자마자 사냥하는 늑대의 눈으로 전원코드를 찾아 두리번거려야 한다. 결국 지금과 같은 컴퓨터의 메커니즘이라면 속도와 무게, 발열, 전력 소모에 있어 획기적인 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우주 최고 스펙의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우리의 뇌다. 1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약 3천억 개의 교질세포로 이루어져있으며 이들은 100개조에 달하는 시냅스로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여러 대규모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복잡한 연결구조 임에도 또한 대단히 유동적이어서 마음대로 뉴런의 수를 늘이고 부피를 키우면서도 똑같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엄청난 처리속도와 용량에도 불구하고 중량은 맥북 에어와 비슷한 1.4kg정도에다가 샌드위치 하나의 열량이면 하루 종일 뺑뺑이 돌릴 수 있는 놀라운 연비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에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컴퓨터로서의 뇌의 기능에 주목하고 이를 접목시킨 차세대 컴퓨터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인간의 뇌는 정말 위대한 창조물이다

컴퓨터를 구성하는 요소를 간단히 나눠본다면 알고리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뇌를 닮은 컴퓨터를 만들려 한다면 이에 대응 하는 3가지 각기 다른 분야의 성과가 필요하다.

먼저 뇌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뇌에서의 신경전달 방식은 모두 밝혀졌지만 신경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즉 뇌신경 연결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2005년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자들은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Human connectome project)를 출범시키고 2009년 7월에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뇌신경이란 것이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전선으로 연결 되어 있어서 뇌를 반으로 쩍 잘라서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뇌신경 연결지도를 만들기 위해선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신경의 전체적인 연결망을 파악한 후 다시 현미경으로 세포 수준의 미시적인 연결망을 찾아내야 하는 노가다가 필수다. 그러다보니 뇌신경 한 개당 10명의 연구자가 1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이를 토대로 얼추 계산을 해보면 완벽한 뇌신경 연결지도를 그리기 위해선 1,00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래서는 차다리 외계생명체를 찾아서 그들에게 기술을 전수받는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 과학기술의 발전은 연구에서의 지루한 단순노동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줄 것이다. 이미 2010년 후반기에 기존의 MRI보다 7배나 빠르며 해상도가 높은 기술이 개발되어 커넥톰 프로젝트의 앞날에 장미꽃을 뿌려주었다. 이 새로운 MRI기술이란 뇌기능영상측정법(fMRI)의 가장 빠른 MRI기법인 에코 플라나 영상법(EPI)의 두 가지 기술을 결합한 것이다.

현재 프로젝트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연구팀이 연구하고 있다. 2014년까지 건강한 성인 1,200명의 뇌 연결 방식을 분석할 예정이며 10년 후 뇌 연구에서 큰 진척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많은 과학자분들의 고된 노가다를 통해 뇌 기능에 대한 정확한 해부학적 모델 구축이 완성된다면 건강한 사람과 정신질환자의 뇌지도를 비교 분석하여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두번째는 인간의 뇌를 모방한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다. 2005년 시작된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Blue brain project는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의 앙리 마르크람
Henry Markram
박사와 IBM이 손을 잡고 슈퍼 컴퓨터 ‘블루 진Blue gene’을 이용하여 신피질의 상호 소통방식을 3차원 시뮬레이션 모델링으로 완성하려는 프로젝트다.

신피질은 인간 뇌의 85%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언어, 기억, 분석, 판단 등을 담당하는 인간 뇌 중 가장 복잡한 부분으로 인간의 창조 활동의 원천이다. 마크람 교수는 2~3년 안에 신피질 모델을 완성하는 것을 1차 과제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구피질과 뇌간 등 뇌의 다른 부분으로 모델링 작업을 확대해 10년 안에 인간 두뇌 전체에 대한 컴퓨터 뇌 모델을 완성하려고 한다. 이것은 합성 신경전달물질이나 여러 기분제어 약품 제조기업들이 동물실험 없이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약효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2009년 7월 22일 영국 옥퍼드에서 열린 TED(기술,오락,디자인)글로벌컨퍼런스에서
 
스위스 로잔 연방공대 교수인 헨리 마크람이 “10년 안에는 인간의 뇌 구조를
컴퓨터로 
 설계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세 번째는 인간의 뇌처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하드웨어의 설계이다. 프로세서와 메모리 간의 정보전달은 컴퓨터의 효율적 설계를 위한 최대 난제 중 하나다.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칩이 있다면 연산능력과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어 우리가 더 이상 노트북을 구매할 때 무게와 성능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멤리스터(memristor)라는 기술이 등장했다.

멤리스터 심볼마크


1971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레온 추아Leon Chua교수는,
 멤리스터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였지만 구현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2008년 HP사에서 자외선
차단제나 흰색 페인트에 사용되는,
 이산화티타늄titanium dioxide을 나노 크기로
제어하다가 멤리스터를 만들게 되었다.

시냅스는 신경세포(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부위로서 정보는 이 시냅스를 통해 오고간다. 이때 시냅스는 마지막으로 경험한 전기 정보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세게 지나갔는지 기억한다. 멤리스터는 시냅스처럼 작동하는 전자소자로서 마지막에 경험한 전기자극을 기억한다. 그래서 전하의 흐름을 방해하는 저항처럼 작동하면서 동시에 메모리 기능도 갖고 있다. 멤리스터(memristor)란 이름은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메모리(memory)와 저항기(resistor)를 합친 말이다.

멤리스터는 플래시 메모리에 비해 이론적으로 값이 더 싸고 휠씬 더 빠르며, 보다 많은 메모리 밀도를 가능케 한다. 또한 램(RAM) 칩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를 켰을 때 예전에 작업하던 것을 정확하게 기억해 내어 즉시 하던 작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

HP사는 메모리 뿐만 아니라 연산 기능까지 갖춘 멤리스터를 개발하고 있어 CPU를 대체할 가능성 까지 제시되고 있다. 보다 저렴한 가격과 여러 부품들을 병합할 수 있는 멤리스터의 장점으로 주머니에 쏙 들어갈만한 사이즈에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미국 국방성 산하 국방차세대연구프로젝트원(DARPA)와 HP·IBM·HRL연구소 등이 함께 손을 잡고 메모리와 레지스터를 통합한 ‘멤리스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곰 존슨Gorm Johnsen 교수팀은 피부에 어떤 전기가
처음 걸리느냐에 따라 멤리스터처럼 저항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피부 속 땀구멍에 있는 땀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뇌를 연구하며 공학 기술로서 구현하기 위해 밤낮없이 매달리고 있다. 이렇게 진행되는 연구의 진척을 보면 생각보다 그리 멀지않은 시기에 뇌의 성능을 지닌 컴퓨터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 참고
   파퓰러 사이언스 2011. 2월호
   커넥톰 프로젝트에서 쓰이고 있는 발전된 MRI기술에 대한 자료
   http://humanconnectome.org/about/project/pulse-sequences.html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9744 

  

영진공 self_fish

“엑스맨: 최후의 전쟁”, 브렛 래트너의 엑스맨 망쳐버리기???




엑스맨 시리즈는 스탠 리의 원작만화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될 거라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 X-men: The Last Stand)에 대한 기대 역시, 저나 제 주변의 영화광들 말고도 데이트 코스로서 영화를 보고자하는 사람들에게도 보통이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뭐 결국 2011년에 프리퀄 형식으로 새로운 엑스맨 시리즈가 개봉되었습니다만.) 

단적으로 말하면, <엑스맨 3>가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였던 건 확실합니다. 전편에서 확립되어온 캐릭터들의 특징이 있기에 굳이 캐릭터들 설명하느라 시간을 분배할 필요도 없죠. 매그니토는 이미 2편에서 탈옥했기에 이제 그 양반이 본격적으로 미쳐돌아 날뛰는 것만 보여주면 됩니다. 3편에서 활약할 만한 뉴 페이스들은 이미 전편에서 조금씩 소개가 끝났습니다. 3편은 그러니까, 신나게 때려부수어주면 되는 겁니다.

부제대로 “최후의 전쟁”을 벌여주는 거죠. “브렛 래트너”는 그래도 상업영화에서 기본은 해주는 사람이고, 이 영화에서도 ‘액션’으로서의 몫은 해냅니다. 전편에서 짭짤하게 돈을 번 폭스가 제작비도 블럭버스터 완결편에 합당한 수준으로 때려넣어준 거 같고요. (감독들은 언제나 부족한 예산이라고 말하겠지만.) 즉, 규모도 꽤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의 전편들이 블럭버스터치고 지나치게 훌륭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확실히 “브렛 래트너”는 “브라이언 싱어”에 비해 뒤져도 한참 뒤집니다. 캐릭터를 발전시키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솜씨도 그렇지만, 화면을 만들고 액션씬을 조합해내는 솜씨 그러합니다.

3편을 보고 집에 와서 1, 2편을 다시 봤었는데, “브라이언 싱어”의 솜씨는 정말 대단하더군요. 2편 도입부에서 쿠르트 가드너의 백악관 습격씬은 블럭버스터가 CG를 쳐바르지 않아도, 굳이 동양무술로 안무하지 않아도 얼마나 우아한 액션을 보여줄 수 있는지 한눈에 보여줍니다. 이 우아한 액션은 편집 리듬과 사운드의 탁월한 사용에서 기인합니다. 움직임은 충분히 빠르면서도 절제되어 있고, 화면은 낭비컷 하나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며, 사운드의 리듬만으로 박진감을 증폭시킵니다.
 
게다가 전편들에서 “브라이언 싱어”가 구축해놓은 엑스맨 세계는, 3편에서 “브렛 래트너”가 시도한 ‘무조건 대규모로 때려부수기’ 액션이 포인트가 아닙니다. 아무리 대규모 액션과 CG가 나온다 해도, 1편은 로그와 울버린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였으며 2편은 한편으로는 울버린의 정체성 찾기이자 또 한편으론 진의 고결한 희생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 전체를 떠받치는 전제에는, 재비어와 매그니토의 애증, 서로 적이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할 수밖에 없는 신뢰가 존재합니다.




재비어(원래 발음은 이그재비어, 더군요.) 교수네 엑스맨 팀과 매그니토의 팀은 돌연변이로서의 생존에 대해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때론 맞서 싸우고 때론 연합전선을 펴면서 각자의 특징을 드러냅니다. 울버린은 진을 사랑하지만, 1편에서 드러난 울버린과 로그 사이의 교감, 이를 표현해낸 화면은 가슴을 찡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심지어 마지막에 울버린이 로그를 구출해내는 장면, 악몽에 시달리던 울버린이 로그를 찌르고 로그가 자가치유를 하는 장면은 에로틱하기까지 해요.

2편에서 진의 장면은 어떻습니까. 일단 화면은 거대한 스펙터클을 이루는 장면입니다만, 그 거대한 물살 앞에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간 진이 블랙버드기와 쏟아지는 물살 사이에 서서 물을 막는 장면은, 거대한 운명의 힘 앞에 홀로 맞서는 ‘완성된 인간’, 혹은 ‘초인’의 존재를 보여주며 눈시울을 적십니다. 매그니토의 그 위엄과 우아함은 어떻고요? 누구보다도 파워풀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소심하고 다정한 성격 때문에 다른 동료들에게 가려지는 스톰은 또 어떻습니까? 게다가 “브라이언 싱어”의 유머감각은 꽤나 건조하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재치있죠. 대놓고 들이대는 코미디가 아니라 재치있는 하이코미디의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이 3편에 오면 무너집니다. “우린 엑스맨이야!”를 외치는 울버린의 모습이란 어이없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실 3편에서도 극적인 캐릭터성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 각본에서만.

2편에서 그렇게 희생하고 스러져간 진이, 사실은 재비어의 정신적 억압 때문에 이중인격이 되었고 그 결과 선하고 착하며 자신감없고 희생적인 이면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드적 자아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설정, 그리고 ‘피닉스’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부활한 진이 심지어 매그니토마저 두렵게 만드는 초강대한 존재로 부상한다는 설정, 그리고 돌연변이를 이제 ‘질병’ 취급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소위 ‘치료약’과, 이 약의 원천이 되는 돌연변이 아이의 존재, 바비와 로그와 키티 사이를 흐르는 사랑의 갈등, 등은 이전 시리즈가 지향하는 ‘캐릭터의 이야기’라는 측면에 상당히 부합합니다.

그러나 “브렛 래트너”는 이러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화면에 구현하는 데 실패합니다. 남는 건 돈을 쏟아부은 대규모의 액션인데, 사실 이것도, 돈이 많이 들어갔다는 건 알겠는데 그만큼 효율적으로 규모감을 느끼기가 힘듭니다. 1, 2편을 다시 보면, 오히려 이 3편보다 돈을 적게 들이고도 순전히 아이디어와 비주얼의 감각, 그리고 훌륭한 편집의 리듬으로 얼마나 스펙터클하게 화면을 구축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3편의 규모가 1, 2편에 비하면 대단히 초라하게 보이니, 효율성 면에서 완전히 망한 거고, 이것의 원인은 미장센 구축 능력, 즉 화면을 만드는 솜씨에서 기인하는 것이죠.

첫 출발은 상당히 “브라이언 싱어”스러웠습니다. 진을 발탁하던 당시를 보여주고, 진의 불안정한 내면과 무의식의 상태를 암시해주죠. 또한 자막에서 이름 한번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앤젤(거대한 새의 날개를 단, ‘큐어’ 제약회사 사장의 돌연변이 아들 말입니다.)의 어린시절 에피소드를 인상깊게 보여주죠. 그러나 이후 진행은… 이야기의 핵심이 되면서도 겉돌기만 하는 큐어의 근원인 아이는 어떡할 거며, 이 앤젤은 이후 고작 큐어 주사 거부 장면, 재비어 학교가 문을 닫느냐 마느냐 기로에서 학교를 찾아오는 장면,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는 장면에서나 나올 뿐입니다.

상당히 뜬금없이 파편화돼 있고 전체 이야기 속에 융화되질 못하고 있죠. 그럴 거면 도대체 왜 오프닝에서 그 아이의 그 처절한 날개자르기 씬을 보여주는 건지? 뭐, 저거니토 같은 캐릭터도 그렇고, 매그니토 팀에 새로 들어오는 캐릭터들(주로 동양계 배우들이 연기한)도 그저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며 낭비되고 있습니다. 파이로는 매그니토 편으로 가더니 바보가 됐더군요.



역시나 “브렛 래트너”가 “브라이언 싱어”의 빈 자리를 메꾸기에는 상당히 딸렸습니다. 사실 영화사 입장에서는, 그토록 성공을 거두었으니 거기에 ‘화끈한 액션을 때려부으면 더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릅니다. 사실 엑스맨 시리즈가 성공한 건 그런 무조건적 액션을 절제하고 오히려 캐릭터 강화로 액션의 정당성을 확보해준 것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가정을 하고 나면, “브라이언 싱어”가 결국 엑스맨 시리즈를 떠난 이유도 추측이 돼요. 그 자리를 “브렛 래트너”가 메꾸게 된 것도요. (물론 공식적인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지만.) 하지만 “브렛 래트너”의 장기는 이런 대규모 액션이 아니라 오밀조밀하게 짜인 귀여운 액션이고, 다소 전형적인 인물들이 품어내는 서민적이고 작은 갈등의 드라마입니다. (『러쉬 아워』 시리즈나 『패밀리 맨』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영화를 아트냐 상업영화냐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걸 무척 싫어하지만 편의를 위해 잠깐 그 틀을 빌리자면, 영화사는 어쩌면 “브라이언 싱어”가 블럭버스터에 안 어울리게 너무 아트지향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가 했던 것은, 그간 블럭버스터의 제작자와 감독들이 무시해온, 대규모의 화끈한 액션이 절절하게 필요한 이유를 섬세하게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라이언 싱어”는 아주 좋은 상업영화 감독인거죠. 암튼 3편을 보고 나서 새삼, “브라이언 싱어”가 얼마나, 그리고 왜 훌륭한 감독인지 절절히 알게되었습니다.


영진공 노바리

“Two Sides of If”, 비비안 캠벨의 처음이자 유일한 솔로 앨범


[2005, 영국, Sanctuary]

“Def Leppard” 활동과 동시에 너무 밋밋해졌다고 욕(?)을 먹는,
30년 전 과거사인 “Dio”의 기타리스트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기타쟁이,
 “비비안 캠벨(Vivian Patrick Campbell)”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솔로 음반.

사실 나는 이 음반을 처음 접했을 때, 막연히 연주 음반일 것이라 생각했다. 은근히 과거의 활화산 같던 연주를 기대하면서 ……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본작, 『Two Sides Of If』는 블루스-록 음반이었다. 사실 비비언의 블루지한 연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Jeff Beck”의 연주곡(「Led Boots」)도 꽤 담담하게 커버한 적이 있었던 비비언이고 보면, 블루스 외도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엔 왠지 섭했다. 나 역시도 여전히 청자들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만들던 Dio시절의 비비언에 대한 기억이 커다란 위치를 가지고 있었나보다. 블루스-록이라고 하지만 내용물은 어쿠스틱과 세미 솔리드 바디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울림으로 상징되는 고색창연한 블루스에 가까운 연주가 중심이고, 가끔 곁들이로 매끄러운 솔로가 살짝 얹혀진 모습이다. 맨 처음 이 음반을 듣고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봐, 비비언 왜 그러는거야?”

그런데, 밤샘 작업과 과도한 알콜, 컴까지 고장나서 혼이 쏙 빠진듯했던 한 주를 보내고 무거운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려는 시간에 우연히 집어든 이 음반은 좀 다르게 들린다. 클래식 록 좀 들었다 싶은 양반들도 다 아실 블루스의 명곡들로 그득한 본작에서 갑자기 추억과 평화로움이 느껴진 것이다. 아마 비슷한 시도(헤비메탈 기타리스트의 블루스 원정기)를 했던 “Gary Moore”에게 이 곡들을 연주하라고 한다면 훨씬 헤비하고, 강렬하지만 과도한 감정 이입이 부담스런 연주로 채워버렸을 듯 싶다.

그러나 비비언은 이 음반에서 좀체로 흥분하지 않는다. 짜릿한 맛이 생명인 「The Hunter」조차도 기타 솔로와 블루스 하프(하모니카)를 함께 내세우는 양보의 미덕을 보인다. 전혀 날카로운 솔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들어보니 편안하게 어린 시절 자신의 우상들 – “Eric Clapton”, “Paul Kossoff”, “Peter Green”, “Jeff Beck”, “Keith Richard”, “Rory Gallagher”, 등 – 을 추억하며 연주한 듯한 인상이다.

즉, 수록곡 대부분이 미국 흑인들의 (소위 ‘원단’) 블루스들이긴 하지만, 비비언은 미국 블루스가 아니라 영국 블루스-록 1세대가 그 곡들을 카피하던 1960년대 중, 후반을 떠올리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연주와 잘 맞지 않음에도 흑인 명인들을 게스트로 모셔왔던 게리 무어보다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을 까발리고 허심탄회하게 풀어낸 듯한 느낌이다.
 
뭐 이 앨범에도 “Z.Z.Top”의 “Billy Gibbons”를 모셔다가 구색맞추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기븐스는 정통파 블루스라기 보다 아메리칸 록커에 가깝기 때문에 연주의 분위기도 서로 아주 잘 맞는 듯 들린다. “Terri Bozzio”의 드럼도 매우 심플하고 따사롭다. 카멜레온 같은 그의 드러밍이야 워낙에 유명하지만, 이번엔 정말 힘을 빼고 함께 즐기는 느낌이 강하다. 다른 연주자들 역시 그렇고. 단 3일 만에 녹음을 해치운 것이 아주 당연하게 들리는 음악이다. 

굳이 토를 단다면, 음반 후반부로 갈수록 데프 레파드 기타리스트 비비언이 자꾸 보인다는 것인데, 녹음 순서를 알 수 없으니 맘대로 상상해 볼 뿐이다. 아마도 데프의 멜로딕 정교 기타 기운이 녹음 처음엔 자기도 모르게 나오다가 둘 째, 셋 째날에는 옛 기억이 더 새록새록 나서 편하게 쳤을 것이라고 ……

ps. 1
외국 평론가들의 평가나 나의 느낌도 명반 반열에 오를 정도의 음반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비언 캠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손 가는대로, 맘 가는대로 한 번 따라가며 찬찬히 편하게 감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특히 아직도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넘버 원으로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

ps. 2
생각보다 비비언 캠벨의 목소리가 텁텁하면서 매력있다. 록 보컬과 달리 블루스 보컬은 좀 더 감정을 잘 살리는 거친 맛이 필요하니까. 그러고 보면 슈퍼 밴드의 기타리스트들은 노래도 다들 기본적으로 받쳐주는 거 같다. 워낙 노래 잘하는 보컬과 오랫동안 함께해서 그런가???

영진공 헤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