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영화열전, ‘킥오프’ ‘비랄의 멋진 세상’


 

‘비랄의 멋진 세상’ 의 비랄 

지난 주말부터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열리고 있는 ‘가족영화열전 – 수상한 패밀리가 떴다!’ 에 가족에 관한 좋은 장편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놓친 영화를 다시 볼, 곧 개봉할 영화를 미리 볼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전 세계 영화제를 순회하다시피 한 작년 최고의 화제작인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비롯, 봉준호 감독의 <마더> 그리고  <도쿄 소나타>와 <중력피에로>, 최근 작 <어웨이 위고>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등까지 상영 작품이 화려하다.

무엇보다 하반기 개봉을 앞둔 인디스토리 배급작 <킥 오프>와 <비랄의 멋진 세상> 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반갑다. 두 작품 모두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해,  <킥 오프>는 뉴커런츠 상을 수상했다.  

‘킥 오프’ 의 한 장면

<킥 오프>는 한국에서는 거의 드믄 이라크 배경의 영화로 빈민가로 변해버린 이라크의 한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소년들의 축구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월드컵 시즌에 맞춰 7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다. 

<비랄의 멋진 세상> 은 맹인 부모와 함께 사는 세살 비랄의 일상을 담은 인도의 다큐멘터리로 야마카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역시 인디스토리 배급망을 통해 10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놓치지 말기로 해, 먼저 본 우리끼리 입소문 웹소문 내어보자.

PS. 이번 주 목요일(27일) 인디포럼 2010이 개막한다. 지난 수요일 (26일)까지 명동 롯데시네마 에비뉴엘관에서는 환경영화제가 열렸고,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영화제는 화요일(25일)에 막을 내렸다. 좋은 영화제, 상영회가 속속 열리고 내린다. 찾아다니다 보면 알찬 일 년이 이뤄질 것이다.

영진공 애플

소통부재의 폐해와 공포, <도쿄 소나타>(トウキョウソナタ)

구로자와 기요시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일본 기성세대엔 희망이 없다. 그들은 도무지 소통하려 들지 않는다. 사소한 분쟁이 생겨도 변호사에게 일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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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소나타>(2008)는 기요시 감독이 그동안 느꼈던 일본 사회의 소통 부재가 낳은 비극의 전초를 ‘구체적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일본의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까닭에 가족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도쿄 소나타>는 기본적으로 공포영화다. 값싼 중국인 노동자의 유입으로 실직한 아버지, 미국을 세계 경찰의 선으로 알고 미군에 입대하는 첫째 아들,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집밖으로 나도는 둘째 아들, 이를 알고도 내색하지 못한 채 속병 앓는 어머니, 이렇게 몰락해가는 가족의 이면에는 소통부재가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에 대한 기요시의 감정은 공포 그 자체다.

이미 전작 <큐어>(1997) <회로>(2001) <절규>(2006) 등을 통해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그이지만 <도쿄 소나타>에서 그가 보여주는 공포는 색다른 면모가 있다. 기요시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작품 활동의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그런 의지는 <도쿄 소나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늘 소통 부재에 따른 일본인의 무의식에 입각한 공포에 다름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큐어>는 최면에 걸린 채 이유 없이 살인을 일삼는 이들의 행각을 통해 기요시의 테마가 뚜렷하게 수면 위에 떠오른 작품이었다. 다만 이들 영화에서 보이는 공포의 실체가 일본사회의 불안정한 시대의 징후처럼 묘사된 까닭에 개인적으로는 소통 부재의 구체적인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더랬다.

<큐어(Cure)>의 DVD 표지

<도쿄 소나타>는 그에 대한 해답이 되어줄만한 작품이다. <큐어>를 비롯한 전작들이 기요시가 바라보는 일본 사회에 대한 풀숏의 공포를 보여줬다면 <도쿄 소나타>는 클로즈업의 공포를 보여준다. 바로 이점이야 말로 기요시가 새로운 영화경력을 마련하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까닭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다시 말해, 기요시는 소통 부재의 출발점을 가족에서 찾는다. 그중에서도 가부장의 위기야 말로 그런 결과를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듯하다. 신자유주의의 대두에 따른 가부장의 몰락은 전통적인 개념의 권위를 지키려는 가장의 일방적인 소통을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기요시의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도쿄 소나타>에 등장하는 여러 번의 식사 장면은 가족의 갈등과 비극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영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 가족이 모인 식탁에서 (이들은 대부분 혼자 밥을 먹거나 아니면 어머니와 단 둘이 자리를 함께 할 뿐이다!)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까지 아무도 식사를 하지 못한 채 뻘쭘하니 있는 저녁 풍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방향적 소통의 폐해, 즉 기성세대에게 목격되는 소통부재의 에피소드는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아들의 의견을 ‘안 돼!’ 한마디로 일축하는 아버지, 버릇없는 행동을 사과하러온 학생에게 서로 참견하지 말자며 소통을 회피하는 선생님, 이혼 문제에 얽히고 싶지 않다며 변호사에게 모든 걸 일임하는 이혼 당사자 등등. ‘모든 인간은 섬이다.’는 누군가의 말이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선을 그어 놓고 대화를 허하지 않는 이들의 침묵 속에는 바람 소리가 전하는 비극의 전조만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도쿄 소나타>라는 음악적인 작명이 품고 있는 역설적인 뉘앙스는 그래서 더욱 스산하다.

개인적으로 <도쿄 소나타>를 보면서 그동안 기요시 영화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일본영화에서 자주 목격했던 침묵의 실체 또한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이를 ‘침묵의 반응숏’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목격한 극중 인물들이 얼마간 침묵으로 반응하는 장면을 일본의 적지 않은 수의 감독들이 즐겨 사용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부조리를, 사부(<포스트맨 블루스> <먼데이>)는 코믹함을, 기요시는 공포를 강조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연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를 일본영화 특유의 스타일이라기보다 일본인의 소통부재에 대한 무의식이 영화적으로 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쪽이다.

<도쿄 소나타>의 마지막 장면이 여러 면에서 중의적으로 다가온 것은 이 때문이었다. 천재적인 음악성을 인정받은 둘째 아들 켄지(이노와키 가이)는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한다. 다만 켄지의 피아노 소리를 빼면 주변은 여전히 침묵이다. 그의 연주에 감화 받은 인상은 역력한데 누구하나 박수를 치거나 반응하는 이가 없다. 다만 완벽한 연주와 철저한 침묵 사이에는 불협화음이 빚은 균열이 느껴진다. 물론 그 균열은 기요시가 품고 있는 한줄기 빛과 같은 최소한의 희망일 터. 그 하나가 켄지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에 대한 기요시의 기대감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침묵의 시퀀스로 상징되는 영화적 소통부재의 무의식에 파열을 가하려는 기요시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특기할만한 사실은 <도쿄 소나타>의 결말부가 누군가의 꿈이거나 희망사항처럼 애매모호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해서라도 일본사회에 희망을 품어보려는 기요시의 시선? 아니면 꿈이나 환상을 빌리지 않고서는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일본사회의 비극? 무엇이 되었든 간에 구로자와 기요시가 <도쿄 소나타>를 통해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영진공 나뭉

[영진공 추천] 가정의 달 5월, 온가족이 함께 볼만한 영화들 (1)

 

작년 12월 “크리스마스에 다시 보고싶은 영화 10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며 엄선했던 영화 10편을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온가족이 함께 볼만한 영화들로 우려먹는 글입니다. 그것도 2부로 나누어 우려먹습니다. 대부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들이고 연소자관람가 1편과 12세 이상 관람가가 1편 있습니다. 연령대에 상관없이 온가족이 함께 보아도 남사스러울 일이 없고 오직 감동과 훈훈함만 안겨주는 영화들을 5편씩 소개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때마침 월요일 휴일을 낀 연휴가 2주 연속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적어두셨다가 잘 한번 써먹어 보세요. 단, 비디오/DVD 가게에서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작품들도 있으니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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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팀 버튼 감독의 1990년작 <가위손>입니다. 온가족이 함께 볼만한 영화로도 전혀 손색이 없죠. 포스터가 다소 썰렁합니다만 저 못생긴 총각이 바로 젊은 시절의 조니 뎁입니다. 지금도 엄청나게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지만 저는 지금도 조니 뎁 하면 <가위손>의 에드워드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겨울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애틋한 사연을 알 수 있게 되죠. 눈만 내리면 <가위손>이 생각난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겨울 영화 No. 1, 저에게는 크리스마스 영화로도 No. 1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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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편의 조니 뎁 주연작이네요. 보신 분들은 다들 최고의 완소 영화로 꼽아주시는 <베니와 준>(1993)입니다. 가족애만 강조하는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조니 뎁의 귀여운 괴짜 연기는 거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구요 여주인공 매리 스튜어트 매스터슨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그녀의 오빠로 출연한 에이단 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가 스스로를 먼저 자유롭게 하는 법을 배우는 순간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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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비장의 무기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크리스챤 슬레이터와 마리사 토메이가 주연한 <언테임드>(1993)라는 영화입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심장, 가슴, 마음… 원 제목부터 참 근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절대 액션 영화는 아니구요, 아주 자그마한 멜러물입니다. 작은 식당에서 같이 일하게된 두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결말이 조금 슬프긴 합니다. 크리스챤 슬레이터 주연의 멜러 영화로 <미스터 플라워>(1996)가 좀 더 알려지지 않았나 싶은데요 여러모로 이 영화가 더 낫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멜러로까지 꼽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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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비교적 최근 영화이기 때문에 구해보시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이 영화도 안갖다 놓은 비디오/DVD 가게라면 당장 거래를 끊으시고요. 작년 이맘때 국내 개봉했던 <미스 리틀 선샤인>(2006)입니다. 어느 콩가루 집안이 어린 막내 딸의 미녀 선발대회 출전을 돕기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그렉 키니어, 토니 콜레트, 스티브 카렐 정도가 알려진 배우들이고 나머지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습니다만 금방 친숙해지더군요. 아들로 출연했던 폴 다노가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연기 대결을 펼쳤죠. 작품 자체가 베스트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족 영화로는 딱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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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드라마의 거의 끝장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애들이 이 영화의 깊은 뜻을 알려나 모르겠습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2) 입니다. 개인적으로 제 인생의 영화 세번째 작품이기도 하고요. 80년대 대처 시대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과 그의 가족들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장면의 감동은 10만 볼트 감전이고 그 앞에 펼쳐지는 가족애는 정말 오래토록 기억에 남습니다. 가족이 세상에서 젤 중요하다고 해서가 아니라 기왕 가족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이 영화에 그 답이 있습니다.

이상 5편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럼 “온가족이 함께 볼만한 영화들 (2)”에서 나머지 5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