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특별한 “레인보우”




영화 ‘레인보우’, 임종진 작가님 직접 촬영해 준 귀한 포스터

11월 18일 개봉하는 신수원 감독의 데뷔작 ‘레인보우’ 의 본 포스터가 공개됐다. 인디스토리의 배급작 전부가 개인적인 감상 이상의 의미를 갖지만, 특히 ‘레인보우’는 유독 애착이 가는 영화다.

영화의 포스터가 포털 사이트들의 영화 정보란에 업데이트 된 걸 확인하자 뿌듯함이 고루 퍼진다. 부끄럽지만, 영화의 티저 포스터 촬영에는 어설프게나마 내가 임했고, 본 포스터는 나의 스승인 임종진 작가님이 참여해 주셨다. 워낙 빠듯한 일정인데도 선생님이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이룰 수 있던 귀한 성과다. 감독님과 마케팅팀장님, 그리고 디자이너와 사진작가의 중간에서 일을 처리하다 보니 그 과정에 놓친 점들이 발견돼 아쉽긴 하지만, 여러모로 유의미한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레인보우’ 는 개봉 자체에만도 의미를 두기 충분하다. 낯선 감독의 이 영화를 처음 본 날, 놀랐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라니, 감독님 누구신가요? 아니 뭐하다 이제야 나타나셨나요?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줄거리는 감독의 자기 고백 성격을 띤다. 고백이라 무겁다 여기면 오산. 주인공은 발랄하고 귀엽고 용감하고 씩씩한 고기주의자인 중년의 여성이다. 고등학교 선생 자리를 과감히 버리고, 영화에 올인하는 이 아줌마. 가족의 온갖 핀잔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고배를 마셔가면서도 시나리오 작업을 놓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내비친다.  주인공 지완(박현영)은 꿈을 품고 현실을 사는 수많은 여성을 따뜻하게 대변해 준다.

신인 감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저예산 장편영화가 치열한 배급망을 뚫고 극장에 걸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존재하는 11년차 중견의 배급사 인디스토리 가 역시 레인보우의 극장 개봉에 앞장섰다. 배급 상황이 그리 밝진 않지만, 영화의 힘 덕분인지 CGV 다양성 영화팀에서 진행하는 알찬 프로그램 ‘시네마톡‘에 세 차례의 상영 일정이 일찌감치 잡혀있다. 영화 평론가와 감독 그리고 관객들이 함께 대화하는 즐거운 자리가 최소 세 차례나 열린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홍보 예산이 적어 포스터 촬영에서부터 여러 마케팅적 요소를 축소, 생략해 진행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이지만 ‘좋은 영화더라’는 입소문이 퍼져 빛을 발하길 바라본다. 그저 바라고 응원하고 소문내는 것밖엔.
 


영진공 애플

 

가족영화열전, ‘킥오프’ ‘비랄의 멋진 세상’


 

‘비랄의 멋진 세상’ 의 비랄 

지난 주말부터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열리고 있는 ‘가족영화열전 – 수상한 패밀리가 떴다!’ 에 가족에 관한 좋은 장편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놓친 영화를 다시 볼, 곧 개봉할 영화를 미리 볼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전 세계 영화제를 순회하다시피 한 작년 최고의 화제작인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비롯, 봉준호 감독의 <마더> 그리고  <도쿄 소나타>와 <중력피에로>, 최근 작 <어웨이 위고>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등까지 상영 작품이 화려하다.

무엇보다 하반기 개봉을 앞둔 인디스토리 배급작 <킥 오프>와 <비랄의 멋진 세상> 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반갑다. 두 작품 모두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해,  <킥 오프>는 뉴커런츠 상을 수상했다.  

‘킥 오프’ 의 한 장면

<킥 오프>는 한국에서는 거의 드믄 이라크 배경의 영화로 빈민가로 변해버린 이라크의 한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소년들의 축구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월드컵 시즌에 맞춰 7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다. 

<비랄의 멋진 세상> 은 맹인 부모와 함께 사는 세살 비랄의 일상을 담은 인도의 다큐멘터리로 야마카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역시 인디스토리 배급망을 통해 10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놓치지 말기로 해, 먼저 본 우리끼리 입소문 웹소문 내어보자.

PS. 이번 주 목요일(27일) 인디포럼 2010이 개막한다. 지난 수요일 (26일)까지 명동 롯데시네마 에비뉴엘관에서는 환경영화제가 열렸고,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영화제는 화요일(25일)에 막을 내렸다. 좋은 영화제, 상영회가 속속 열리고 내린다. 찾아다니다 보면 알찬 일 년이 이뤄질 것이다.

영진공 애플

<백년해로외전>, 죽음을 변주한 러브스토리

짧은 영화로 긴 여운을 주려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참신함이다.(라고 생각한다.)
짧게는 3분에서 20분 내외의 단편영화가 장르든 이야기의 구성이든 코미디적 요소든
장편(상업) 영화의 고집(스타일)을 따르다 보면 쉽사리 식상한 분위기에 젖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본 단편영화(라고 하기엔 조금 길지만), <백년해로외전>은 무엇보다 감독의 연출력과 영리한 배우들이 빛을 낸 참신하고 재치 넘치는 
품이었다.

영화는 여자친구를 사고로 잃은 한 남자의 그리움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변해 가는지를 천천히 따라간다.
반면 여자친구는 죽은 사람이라 하기엔 너무 밝고 명쾌한 어조로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을 마치 인터뷰에 응하듯 대답한다.

남은 자는 질질 짜지만 떠난 자는 쿨하다. 둘의 자세가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에서 가슴 깊이 저릿한 슬픔이 전해진다. 사고가 일어났던 바로 그 시멘트 바닥 위에 몸이 구겨진 채로
누워있는 여자친구의 환영과 나란히 누워 “뭐 해줄까 응? 뭐 해줄까?” 떼를 쓰는 남자는 베개
대신 등에 멘 가방을 그녀의 머리 아래 놓아준다.

죽음이 곧 완전한 이별을 의미하는 건 아닐 거라던 감독의 심정은 영화 속 두 연인이 생사를 오가며 마주치고 또 대화하는 장면들에 고스란히 담겼다. <백년해로외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죽음’을 다루지만 분명한건 슬프고도 유쾌한 러브스토리이면서 청춘담인 동시에 잘 만들어진 감동의 단편 영화라는 거다. 

감독이 희망하듯 이 영화가 장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면, 제 1의 서포터가 되고 싶을만큼 반하기에 충분했다. 


강진아 감독의 <백년해로외전>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됐다. 바로 지난 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단편영화 상영회 ‘금요단편극장’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작품 정보는 인디스토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www.indiestory.com


영진공 애플

“독 (the spot, 2008)”, 욕망의 독 안에 갇힌 사람들

‘불신지옥’이 적은 관객들에게나마 박수를 받는 동안 슬그머니 영화관에 걸렸다가 역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는 또 하나의 잘 만든
공포영화가 있다. 명동 중앙시네마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된 독립영화 ‘독’은 ‘불신지옥’이 보여주지 못한 또다른 맛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처음에 포스터만 보고선 일본 공포영환인줄 알았다.


부모의 유산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 서울의 한 아파트에 자리잡은 형국의 가족. 형국은 공장도 인수하며 나름 성공한 삶이라 여겨질
만도 하지만 이사 첫날부터 그들 가족 사이에서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베어나온다. 어둡고 허름한 아파트,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는
딸, 종교에 심취해있는 윗층 사장 부부등 형국의 가족 주위로 하나 둘 불길함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들 가족의 숨겨진 진실에 촛점을 맞춘다.


귀신보다 무서웠던 딸내미



어둡고 암울한 욕망으로 묘사된 오래된 아파트, 개인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도구로 전락한 종교 등 ‘독’과 ‘불신지옥’은 서로 여러 부분에서 닿아있다. 하지만 ‘불신지옥’이 현실에 기댄 초현실적인 사건을 이야기한다면 ‘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영화 속 그들처럼 현실의 우리 역시 욕망이라는 독 안에 갇혀있는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었고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 이 대한민국은 영화와 다름없다. 우린 매일매일 미디어를 통해 욕망의 독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태연히 저지를 수 있는지를 보고 있다.


게다가 우리를 독 밖으로 꺼내줘야 할 종교는 오히려 욕망을 먹고사는 거머리가 되어 독을 더 깊고 넓게 만들고 있다.


영화가 아닌 엄마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주위의 누군가가 겪었을법한 영화 ‘독’의 이야기는 그래서 끝나는 순간까지 무섭고 불쾌하고 소름끼친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