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홍상수스럽지 않은 영화를 보고싶다.

홍상수의 영화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난 주인공의 모습에서 저게 ‘인간 홍상수의 생(生)모습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안고 그의 영화에 푹 빠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항상 ‘홍상수’ 가 떠오른다.

다시 얘기하면 극의 주인공이 바로 홍상수의 실제 모습일 거라는 내 멋대로의 예감을 통해 영화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기억 하나.

올해 초 <밤과 낮>의 씨네토크 시간에 어느 관객이 과감히 질문했다.

이 모든 게 당신 이야기가 아닙니까?


홍상수는 ‘내 모습이 은연중에 표현될 순 있겠지만 주변 인물들을 관찰한 결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대답했고,

그 관객은 ‘그렇다’라는 대답을 기필코 듣고 말겠다는 태도로 재차 대답을 요구했다.


이 상황은 진행을 맡은 평론가가 홍감독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다음 질문을 받는 것으로 정리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런 관객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정면으로 응수한다. 그리고 마치 관객의 그렇고 그런 시선 따윈 조롱하듯 의미심장한 장면과 대사들을 풀어 넣었다.  


이를테면, 

제주도에서 그(구경남)의 강의를 들으러 온 한 학생이 이렇게 묻는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드세요? 왜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시는 거에요?


구경남을 집으로 불러들여 한낮의 정사로 외도를 범한 고순(고현정)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근데 왜 그렇게 자꾸 본인 얘기를 영화에 넣어요? 내 얘긴 하지 말아요. 아,, 난 싫어 진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강원도의 힘> <생활의 발견> 등 홍상수는 그의 필모가 추가될 때마다 지식인의 느글거리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수작이라는 호평과 여자와 모텔에 가기 위해 안달 난 구질남의 뻔한 이야기라는 혹평이 엇갈렸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혹시 네 얘기 아니냐’는 눈총들에게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던 홍상수는 이번 작품을 통해 비로소 ‘의심하라지 쳇’ 하며 태연한 듯 스무스한 태도로 회전했다.


[이미지 출처: 씨네21]


그는 조금 더 유머러스해졌고 조금 더 가뿐해진 채 ‘잰체하지 않는 구질남이 어쩌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관객들에게 장난 걸듯 ‘매번 발견하고 감상하는 것의 결과물’을 완성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음악이 멈춘 한참 후에야 흐르는 보너스 트랙처럼 비밀의 숨은 노래를 몰래 듣는 기분의 영화다. 그건 순전히 제천과 제주도를 오가는 영화감독 구경남 덕분이다. 그가 자리하는 숱한 술자리와 감독, 프로그래머, 배우들의 강약의 연결고리가 너무 진짜 같아서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더 이상 홍상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지 않는다.

홍상수의 영화에 출연한 김태우, 정유미, 공형진, 고현정, 하정우 같은 최고의 배우들이 주어진 역할에 충분히 젖지 않은 탓도 있다.


대 배우들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캐릭터는 살아있지만 배우들의 아우라를 덮진 못했다는 느낌에 목이 마르다. 다른 누가 했더라도지금 이 배우들만큼은 해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진짜 홍상수라고 한들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영화감독 구경남이 너무 많은 걸 보여줬기 때문이고 지나치게 솔직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여지없이 쏜살같은 걸음으로 극장을 찾을테지만,

나는 홍상수의 홍상수스럽지 않은 영화를 보고싶다.


이제는 좀 ‘가짜’같은 영화말이다 …

영진공 애플


[영진공 65호]<해변의 여인> – 즐거운 지옥과 심심한 천국

상벌위원회
2006년 12월 19일

섹스없는 사랑은 지겹고 사랑없는 섹스는 역겹다고 합니다
사랑과 섹스가 일치되지 못하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즐거운 지옥과 심심한 천국이라면
당신은 어느곳으로 가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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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여인>은 두 가지로 주목 받은 영화이다. 고현정의 연기 생활 재개작이고 홍상수 감독 생활속의 지겨운 사랑이야기 연작편이란 점에서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모두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쭉 보면 볼수록 거의 모든 영화에 관통하는 점이 생활속의 사랑이라는 일관된 주제의 연작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돼지부터 시작하여 강원도의 힘 수정 극장전등 그의 영화에서 나오는 사랑의 이야기는 다른 사랑영화와는 달리 환상과 감동과 순수등의
사랑의 화려한 면 보다는 일상에서 부딧히는 사랑의 아픔,연민,때로는 비굴함과 주접과 민망등등 우리가 감추고 싶은 속살들을 너무나
현실적인 대사들로 버무려 온다. 그럼으로 그의 영화에서는 영원한 사랑, 아름다운 추억 등등 우리가 술좌석에서 이야기 하는 대부분
사기이기 마련인 눈물과 감동의 그런 사랑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고 연인과 같이 보기는 별로인 그런 사랑영화가
되어버린다.

10대의 사랑은 일종의 흥분과 조급증이고, 20대의 사랑은 활짝 핀 꽃이거나 아드레날린이 충만한 화사한 봄날이라면 30대의
사랑은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거나 많은 이별끝의 무덤덤일지도 모른다. 꺼져가는 모닥불에서 불씨를 발견하고 이것을 살려야되나
말아야하나 하는 고민이기도 하고 대부분이 결혼 하였기에 불륜이 되기도 하고, 아님 때론 상처입은 돌총과 돌처의 굳건한 성벽을
부수어야 하지만 그런 기백과 기세를 가진 사랑을 피워 올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실망을 하였거나 세파에 지쳐 열정과 정열의 불꽃이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기가 태반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이나 하늘의 별을 따다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랑들에게는 추잡하거나 속보이는 섹스 게임으로 보이기도 한다. 홍상수의 사랑은 늘 이런 지겹고 피하고 싶은 우리의 가슴속
한 구석에 밀어 버리고 싶은 명제로 시작된다.

해변의 여인도 마찮가지이다. 30대의 남녀들이 해변에서 며칠간 벌어지는 그저 그런 섹스게임을 사랑으로 포장하고 그 포장을
잔인하게 벗겨버리면서 미련과 후회와 구차함을 만든다. 정말 불편하기도한 그런 장면들이다. 그런 모든 장면들은 극중 한마디의
대사로 축약되어지고 상징되어진다. 송선미의 술마시면서 하는 대사 전 “제가 편안한 만큼 솔직한 사람이예요”. 굳이 사랑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및 20대 초반엔 별 부끄러움도 없고 부모들의 우산 속에서 생존의 걱정이 실제 상황으로 다가오지 않을
경우가 많기에 솔직함과 정직함이 강력한 자신감이 되기도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세파에 시달리면서 마음의 문은 조금씩 닫혀지고
우리는 그 뒤에서 적당히 편안한 만큼만 자신을 보여주며 배려하고 살아간다. 별로 재미없는 인생이 슬슬 시작되는 것이 30대의
고민이다.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느날 기회가 되어 소주잔을 기울일 날이 오면 물어보고 싶다. 형님 그럼 40대의
사랑은 어떤거지요라고. 아님 형님도 사랑이 작년에 몰매를 맞으셨던 어떤님처럼 헛되고 헛되다고 생각하시냐고.

사족: 고현정은 역시 돌처임에도 불구하고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혹자는 몸매 이야기도 하지만 30대에 있어서 몸매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분위기 이니까.

시와 함께 느껴보는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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