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과 “군도”에 대한 단상

영화 <명량>은 역사 매니아도 아니고 밀덕후도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봐도 고증의 문제가 툭툭 걸립니다. 게다가 메이크업을 잔뜩 한 조총 스나이퍼 따위를 쓸 데 없이 만들어 넣는 등 영화의 매무새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충무공이 장계를 쓰는 장면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글을 쓰는 이순신의 상반신 샷으로 시작하면서 다음은 글을 쓰는 손을 클로즈업하고 그 다음은 손까지 포함한 전체 샷이 나옵니다.

하지만 전체샷으로 넘어올 때 꼿꼿했던 충무공의 허리가 숙여져 있습니다. 첫 샷에서는 손이 안 잡히니 글은 쓰는 척만 하면서 허리를 꼿꼿하게 폈을 테고 마지막 샷에서는 손까지 잡히니 신경써서 글을 써야 하는 터라 허리를 숙였겠지요. 허나 샷의 연결이 껄끄러울 정도로 튑니다.

그리고 적장의 목을 베는 장면에서 충무공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올려 베는 모습을 정면에서 잡고 다음 샷에서 카메라는 적장의 등 뒤에 가 있는데, 이순신의 칼이 왼쪽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오른쪽 아래에 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뭔가 깔끔하지 않다는 것을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다 느끼게 되고 이 정도면 NG컷이라 할 만 합니다. 문제는 이런 컷들이 꽤나 많아서 매무새가 조악합니다. 아무리 쌈마이 헐리웃 영화라고 하더라도 이런 컷들은 보기 힘듭니다.

정작 문제는 배우 최민식의 존재입니다. 자신없는 감독은 최민식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듯 보입니다. 최민식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최민식 연기가 정말 잘 나올 때는 극 안 캐릭터의 개성이 매우 강할 때입니다. <파이란>에서의 강재,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장경철처럼 말입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취화선 동행취재기를 씨네21에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최민식과의 인터뷰를 인용하겠습니다.

– 임권택 감독님과의 해석상의 차이가 있습니까.

=근본적인 차이는 없죠. 그러면 큰일나게요. (웃음) 다만 지금 초상화냐, 풍경화냐, 라는 점은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전 굵은 붓으로 죽죽 그리고 싶은데, 그럴 때 감독님이 아니다, 굵은 붓으로 그리다가 가는 붓으로 바꿔라, 하시면 내가 성이 안 차는 부분이 생깁니다. (웃음) 자꾸만 내것이 나오니까 괴롭죠. 내 것을 버리고 감독님 것을 취해야 하는데, 나를 죽여야 하는데, 자꾸만 내 분석대로, 내 방식대로 몸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목표를 가는 거니까요.

다음은 임권택 감독 인터뷰 중에서 발췌입니다.

=장승업이 김병문 집에 담 넘어가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최민식씨가 눈물을 흘려서 NG를 내셨다면서요.

– 그것도 기품과 관련될지도 몰라요. 물론 울 수도 있는 거요. 그러나 사소한 감정을 드러내는 쪽으로 장승업이를 찍어오지 않았다고. 거기서 느닷없이 그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안에는 깊은 사랑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살아내는 놈인데, 여기 와서 울고 있으면 그게 맞겠냐고. 삐끗삐끗 감정이 튀어나오면 수렁을 밟는 거죠.

최민식은 이런 배우입니다. 영화는 여러 파트가 한 데 어우러져야 하는 장르인데 그는 연기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캐릭터만 살아나고 나머지는 죽어버린다는 것이죠. 저는 이 절정이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최민식은 과거처럼 자신의 연기로만 영화를 다 뒤덮진 않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신세계>에서는 많이 절제하는 연기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최민식은 최민식이죠. <명량>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은 모든 대사, 모든 표정에 감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아들과 밥을 먹으면서 하는 간단한 대사 “같이 먹으니까 좋구나” 이 아홉 글자에도 목소리의 톤과 인토네이션을 써서 감정을 묻혀내죠. 그로써 최민식의 이순신은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나는 힘들어, 나는 괴로워, 나는 어려워 ……

그런데 과연 이순신이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마구 쏟아내는 인물이었을까요?
“난중일기”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병신년 이월 열 나흘 – 밤에 바다 위에 떠오른 달은 대낮처럼 밝고 물결 위에 비친 빛은 비단결 같은데, 혼자서 수루 위에 기대어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어수선하여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을미년 칠월 초 하루 – 혼자 수루에 기대어서 나라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았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이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기둥이 없으니 이 나라가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음이 어지러워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갑오년 이월 열 엿새 – 홍양 현감이 암행어사 밀계 초본을 가지고 왔다. 임실, 무장, 영암, 낙안의 수령을 파면하고 순천 부사는 탐관오리의 으뜸으로 거론하고 기타 담양, 진원, 나주목, 장성 창평 등의 수령은 나쁜 짓을 덮어두고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임금을 속이는 것이 이렇게 갈 데까지 갔다. 나랏일이 이 모양이나 나라가 평정될 리 없다.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다.

물론 아들이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격정적으로 비통함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힘들고, 괴롭고, 어렵고, 외로울 때에도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고, 뒤척거리고, 천장만 올려다보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이런 이순신의 모습과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의 모습은 격차가 큽니다. 아마 연출자가 이를 알고 최민식의 연기를 더 죽이려 해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둘 사이의 “짬밥” 차이가 얼만데 ……

오히려 류승룡이 이순신을 맡고 최민식이 구르지마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외에도 소위 과도한 ‘국뽕’이나 텔레파시와 치마 시그널 등 무리한 설정이 있는데도 “명량”은 흥행가도를 힘차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리얼리즘을 정말 사랑하는 한국의 관객들, 그리고 문단 독자들의 성원 덕분에 말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는 게 리얼리즘이라 한다면 한국의 대부분 흥행 영화는 모두 리얼리즘이 베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설국열차>가 좀 예외랄까? 실은 <괴물>도 리얼리즘이지요.

우리 관객이나 독자들이 왜 리얼리즘을 좋아하는지는 다른 차원의 분석이 있어야겠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군도>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매무새, 그러니깐 만들어 놓은 모양은 <군도>가 <명량>보다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군도>는 현실의 이야기를 현실이 아닌 것처럼 묘사했고, 이는 관객에게 매우 불편한 접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현실의 이야기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면 모르겠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이며 그 과거의 현실은 지금의 현실과 별로 다를 게 없죠. 그런데 그 현실이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촬영하고 음악을 깔고 편집을 해 놓으니 관객은 혼란스럽지요.

김구 선생이 절정 무술을 사용하며 일본인을 때려 잡는데 거기다가 무협 스타일 자막으로 “흑심패룡장의 고수 백범 김구”라고 깔고, 고속 촬영에다 웨스턴 음악 넣고 영화 “300”처럼 편집하면서 재해석하면 관객들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김구 선생이 몸 담았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이기에 이처럼 재해석하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허나 <군도>가 보여주는  현실도 어쩌면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 백성은 현재와 흡사한 채권추심도 당합니다.

영화 속 현실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묘사는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누리끼리한 서부 영화 스타일 색보정, 음악과 무협 영화와 같은 캐릭터 구축과 샘 페킨파 같은 급격한 줌인 줌아웃 등을 써대니 당연히 언발란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군도>의 흥행이 주춤하는 것은 여타의 요인이 많겠지만 제 생각에는 <명량>과는 다르게 리얼리즘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베를린”, 순정 마초, 양아치 마초, 찌질이 마초 이야기

 

 


 


 



 


 


류승완 영화의 메인 키워드는 딱 두개다,


마초와 쌈마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래 그의 영화들은 대개 저 태그를 달고 움직인다.


그리고 그 특질은 최근 개봉작 “베를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독일의 베를린이라는 공간에서 남과 북이 벌이는 첩보활극 영화에,


역시 세 명의 마초가 등장하고 쌈마이 쌈박질이 가득하다.


 


순정 마초 하정우,


양아치 마초 류승범,


찌질이 마초 한석규,


 


 



 


 


사실 이 영화에서 플롯이나 스토리는 그닥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셋의 역할과 관계를 그대로 한국 어느 도시 골목 조직폭력배의 나와바리 싸움으로 옮겨놓아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형사와 범죄자는 같은 인물의 다른 면일 뿐이다”라는 법칙에 따르자면,


이런 현상에 그닥 거슬려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게다가 권력과 돈에 집착하는 건 오히려 권력자들이 더 악랄하니까, 조직폭력배든 첩보원이든 어차피 꼬붕으로 소모되는 건 어느 쪽이라고 해서 더 멋지거나 할게 있을까.


 


 



 


 


그리고 이 영화에는 다 그렇듯 마초와 대비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냉철하고 계산 철저한 이경영,


똑똑하지만 순종적인 전지현,


저런 사람이 있었나 싶은 김서형,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저들이 가장 크게 피해를 보거나,


그저 관심 밖에 놓여지게 된다.


 


 



 


 


이 영화,


각본 괜찮고 … 액숀 좋고 … 총격전 계산 잘돼있다.


 


그런데,


재미 좀 있어질라 치면 …… 지루해진다.



쌈박질이 쫄깃해질라 치면 …… 지루해진다.


내용에 몰입할라치면 …… 역시 지루해진다.


 



왜인고하니 각 Scene과 Take가 너무들 길게 늘어져서 집중력이 확 떨어진다.


그리고 사건의 배경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히 너무 자상해서 마치 DVD 부록에 있는 감독 해설판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본 시리즈가 가장 잘 한 게,


“어, 어” 하는 순간에 후딱 일 치르고,


상황에 대한 설명을 장면에 맞게 급박하게 툭 던져놓고,


다시 번쩍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는 거 였고,


 


이런 접근법이 요즘 첩보활극의 트렌드일텐데 … “베를린”에는 이런게 없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관객 각자의 느낌이겠지만.


 


 




 


 


그리고 배우들이 너무 유명한 분들인 것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하정우는 우리가 늘상 보아온 하정우인지라 그가 뭘 할지 다 알아채게 되고,


류승범도 우리가 늘상 보아온 그 캐릭터이고 … 한석규는 … 그냥 넘버 3다.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차라리 하정우랑 류승범이 역할을 바꾸어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똑똑하고 잘생기고 돈많은 훈남인데,


입고 다니는 명품 옷에는 온통 그 상표가 찍혀있고,


여친과 주변 사람에게는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는 그런 느낌,


한 줄로 요약하자면 ‘국제첩보활극 버전 짝패’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영진공 이규훈


 


 


 


 


 


 


 


 


 


 


 


 


 


 


 


 


 


 


 


 


 

이제는 홍상수스럽지 않은 영화를 보고싶다.

홍상수의 영화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난 주인공의 모습에서 저게 ‘인간 홍상수의 생(生)모습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안고 그의 영화에 푹 빠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항상 ‘홍상수’ 가 떠오른다.

다시 얘기하면 극의 주인공이 바로 홍상수의 실제 모습일 거라는 내 멋대로의 예감을 통해 영화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기억 하나.

올해 초 <밤과 낮>의 씨네토크 시간에 어느 관객이 과감히 질문했다.

이 모든 게 당신 이야기가 아닙니까?


홍상수는 ‘내 모습이 은연중에 표현될 순 있겠지만 주변 인물들을 관찰한 결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대답했고,

그 관객은 ‘그렇다’라는 대답을 기필코 듣고 말겠다는 태도로 재차 대답을 요구했다.


이 상황은 진행을 맡은 평론가가 홍감독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다음 질문을 받는 것으로 정리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런 관객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정면으로 응수한다. 그리고 마치 관객의 그렇고 그런 시선 따윈 조롱하듯 의미심장한 장면과 대사들을 풀어 넣었다.  


이를테면, 

제주도에서 그(구경남)의 강의를 들으러 온 한 학생이 이렇게 묻는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드세요? 왜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시는 거에요?


구경남을 집으로 불러들여 한낮의 정사로 외도를 범한 고순(고현정)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근데 왜 그렇게 자꾸 본인 얘기를 영화에 넣어요? 내 얘긴 하지 말아요. 아,, 난 싫어 진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강원도의 힘> <생활의 발견> 등 홍상수는 그의 필모가 추가될 때마다 지식인의 느글거리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수작이라는 호평과 여자와 모텔에 가기 위해 안달 난 구질남의 뻔한 이야기라는 혹평이 엇갈렸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혹시 네 얘기 아니냐’는 눈총들에게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던 홍상수는 이번 작품을 통해 비로소 ‘의심하라지 쳇’ 하며 태연한 듯 스무스한 태도로 회전했다.


[이미지 출처: 씨네21]


그는 조금 더 유머러스해졌고 조금 더 가뿐해진 채 ‘잰체하지 않는 구질남이 어쩌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관객들에게 장난 걸듯 ‘매번 발견하고 감상하는 것의 결과물’을 완성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음악이 멈춘 한참 후에야 흐르는 보너스 트랙처럼 비밀의 숨은 노래를 몰래 듣는 기분의 영화다. 그건 순전히 제천과 제주도를 오가는 영화감독 구경남 덕분이다. 그가 자리하는 숱한 술자리와 감독, 프로그래머, 배우들의 강약의 연결고리가 너무 진짜 같아서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더 이상 홍상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지 않는다.

홍상수의 영화에 출연한 김태우, 정유미, 공형진, 고현정, 하정우 같은 최고의 배우들이 주어진 역할에 충분히 젖지 않은 탓도 있다.


대 배우들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캐릭터는 살아있지만 배우들의 아우라를 덮진 못했다는 느낌에 목이 마르다. 다른 누가 했더라도지금 이 배우들만큼은 해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진짜 홍상수라고 한들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영화감독 구경남이 너무 많은 걸 보여줬기 때문이고 지나치게 솔직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여지없이 쏜살같은 걸음으로 극장을 찾을테지만,

나는 홍상수의 홍상수스럽지 않은 영화를 보고싶다.


이제는 좀 ‘가짜’같은 영화말이다 …

영진공 애플


“멋진 하루”, 진정 사랑하니까 우린 헤어집니다.

사랑이 어려워 우울합니다

이별이 힘들어 우울합니다


생활이 답답해 우울합니다


후회와 회한도 우울합니다


그래도


그대의 추억은 행복입니다


10대와 20대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숨막히고 행복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사랑은 두근 두근 행복입니다.
하지만 현실에 생활에 사랑은 늘 공격받고 약해져 가는가 봅니다.
아님 사랑이 약해지는게 아니라 인간이 이기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대개 10대와 20대의 영화가 대부분입니다
30대와 40대의 사랑을 그리는 영화는 그 해피엔딩의 공식에 철저히 따르는 미국 영화 조차도
별로 없거나 아님 씁씁하거나 아님 그깟 사랑보다 자아를 찾자라는 교훈성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나이든 사랑은 우울합니다.

“멋진 하루”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반성 또는 추억입니다.
생활에 여유가 없어 사랑따위는 잠시 접고 살아야 하는 우리 대다수의 이야기 입니다.

희수(전도연)는 현실주의자이고 병운(하정우)은 로맨티스트로 보입니다만,
오히려 희수는 현실에 지친 패배자로 보이고 병운은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힘차게 살아가는 인간으로 아이러니가 벌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겉으로 보이는 에피소들들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게는 영화 내내 흐르는 분위기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과 그 추억에 대한 자신의 회한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 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랑은 그져 묻혀 지나가거나 흘러지나갈 수도 있는 하나의 조건에 불과해 보여집니다.  인생 한 때의 절대적인 가치에서 내려와 평범한 추억으로 남는 그런 사소한 일상이 되어 버리는가 봅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일상 때문에 늘 가슴 한구석에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 있는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영진공 클린트

“멋진 하루”, 인생의 두가지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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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스위스의 아마추어 심리학자 모녀 마이어스Meyers와 브릭스Briggs가 칼 구스타프 융의 성격이론을 기초로 개발한 성격검사도구인 MBTI는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심리검사 중의 하나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에도 이 MBTI를 해보신 분이 꽤나 많을 겁니다. 이 검사에서는 인간의 성격을 내향성(I)과 외향성(E), 감각형(S)과 직관형(N), 사고형(T)과 감정형(F), 그리고 판단형(J)과 인식형(P)으로 나눕니다. 이 검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kr.blog.yahoo.com/id_solution2006/2.html?p=1&pm=l&tc=4&tt=1222787717
http://www.mbti.co.kr/


마이어스와 브릭스여사, 그리고 융

그런데 제가 이 검사 도구에 대해서 배울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의 3가지 축의 검사결과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마지막 축인 판단형과 인식형의 점수는 꽤나 쉽게 바뀐다는 겁니다. 똑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아 여가시간이 많거나 여러 가지로 삶에 여유가 있을 때는 인식형인 P점수가 높아지는 반면에, 바쁘게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빠듯하게 시간과 돈을 쪼개어가며 살 때는 판단형인 J점수가 높아진다는 거죠.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이 점수는 일종의 스트레스 지수라고 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J점수가 높을수록 스트레스에 몰려있다는 뜻이란 거죠.

왜 그럴까요? 이 검사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대충 답이 나옵니다.
인식형P과 판단형J 검사축은 그 자체가 생활방식 혹은 실천하는 방식을 의미하거든요.
그 중에서도 ‘인식형’의 모토는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해보자”입니다. 즉, 유연하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모든 가능성을 다 찔러보고 그 결과를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태도죠. 인식형은 꼭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습니다. 처음에 목표가 있을지는 몰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내 경험입니다. 그러다 보니 늘 유유자적 느릿느릿 제멋대로입니다. 일을 미적미적 미루다가 마감일 직전에야 불이 붙어서 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이 유형에 속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계획대로 해야 하는 일은 답답해하고 오히려 아무 계획 없이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더 실력발휘를 하는 경향이 있죠.

반면에 ‘판단형’의 모토는 “계획대로 하자” 입니다. 판단형은 모든 것을 단계별로, 계획에 맞춰서 해나가기를 원합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일을 하기 전에 우선 상황을 정리하고 계획부터 세워야 합니다. 물론 맹목적으로 한가지 계획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1차 계획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나 차차선책까지 치밀하게 세우니까요. 일단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모든 것이 그 계획대로 돌아가야 마음이 놓이죠. 정해진 계획이라는 뚜렷한 기준이 있으니 되는 일과 안되는 일이 분명히 나뉩니다. 이 유형에게 이것저것 찔러보는 일 따위는 낭비죠. 인식형이 막판에 몰려서 갑자기 일을 끝내는 반면에 판단형은 시간에 맞춰서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일을 해결해나갑니다.
어떤 성격심리학자는 이 둘의 차이가 불안감에 대한 내성의 차이라고도 합니다. 판단형인 사람들은 목표만 있고 달성이 안 된 상태가 주는 불안감에 매우 약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감으로써 불안감을 줄여나간다는 거죠. 하지만 인식형인 사람들은 불안감에 대한 내성이 매우 강합니다. 그들은 단지 내성이 강한 정도가 아니라 불안감이 어느 게이지 이상 높아지지 않으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불안감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기 보다는 그냥 영화 <멋진하루>를 보시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병운(하정우)과 희수(전도연)이 인식형과 판단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이 화상…

병운이는 인식형의 화신입니다. 뼈 속까지 지독한 인식형이죠. 이 인간은 사업하다가 부모재산 날려먹고 집도 날리고 마누라도 떠나보낸 와중에도 여유롭게 경마장에서 남의 훈수를 두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희수의 빌려간 돈 내놓으라는 독촉에도 느릿느릿 여유를 잃지 않네요. 영화는 병운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 대충 설명을 해줍니다만, 아마 병운이는 원래부터 인식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돈을 받자!!

반면에 희수는 판단형의 화신이죠. 영화에서는 비록 희수가 갑자기 나타나 빌려간 돈을 찾아야겠다고 우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희수의 주장은 바로 그날 정해진 것이 아닐 겁니다. 희수 입장에서는 벌써 며칠 혹은 몇주전부터 결정된 일이겠죠. 그 동안 희수는 단계별로 차근차근 병운이의 거처를 수소문해서 최종 위치를 확인해 D-day를 정했을 것이고, 그 날이 바로 D-day였던 것이죠. 희수는 불안합니다. 주차할 때마다 네비게이션을 글로브박스에 집어넣는 희수의 행동도 바로 그 불안감의 결과죠. 희수가 병운이를 찾아온 것도 사실 지금 당장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받아낼 돈을 받아놓자는 불안감의 결과물일 겁니다. 희수의 입장에서 이 세상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곳이거든요. 희수가 결혼을 하지 못한 것도 결국은 그 불안감 때문이었죠.

처음에 희수의 눈에 보이는 병운이는 한심무인지경의 인간입니다.(아, 대부분의 관객들이 보기에도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서서히 의외의 모습들이 나타나며 영화는 흥미로워집니다. 어쨌든 이 영화 <멋진하루>는 인식형과 판단형의 화신이 만나 한쪽은 으르렁대고 한쪽은 능청맞게 얼러대며 벌이는 화학작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러던 희수가


이러더니…


이렇게 변해가는…

왜 이 둘의 만남이 ‘끔찍한 하루’가 아니라 ‘멋진 하루’일 수 있냐면, 우리는 인식형의 태도로만 세상을 살 수도 없고(만약 그렇다면 병운이처럼 빵꾸 인생이 되겠죠), 그렇다고 판단형의 태도로만 세상을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식형은 판단형을, 판단형은 인식형을 필요로 하지요. 그래서 인생이 오묘하고 멋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스포일러..(읽고 싶으시면 긁어내리삼)

결론을 살짝 말씀드리자면, 시간이 흐르면서 희수는 병운이의 여유를 조금 얻습니다.
아마 희수가 마지막에 남긴 돈 20만원은 그 여유의 댓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여, 혹시 이 영화에 관해서 Film2.0에 쓴 글과 전혀 분위기가 다르지 않느냐고 질책하신다면,
이번에는 병운이 입장으로 모드를 바꿔서 써봤다고 변명을 해보렵니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