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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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런 ‘추상적인’ 포스터가 붙었었다고?


여행지에서 낯선 여인에게 독이 섞인 음료수를 받아마셨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영걸(김정철)은 이후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그런 그에게 연달아 이상한 일이 생긴다. ‘삶의 의지’를 외치며 죽여도 죽지 않는 노인, 뼈에서 살아난 천 년 전 신라 때의 여인(이화시), 그리고 죽음에의 의지로 충만한 까칠한 미대생(김자옥)과 차례로 만나며 영걸은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영걸은 누군가 자신을 죽여준다 했을 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정작 남의 손에 (혹은 운명에) 수동적으로 죽음을 맞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욕망일 수도 있고, 죽음을 향한 탐닉으로 포장된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영걸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천 년 전 여인이 환생을 위한 마지막 단도리 절차로 그에게 생간을 요구할 때 상당히 망설인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재밌는 것은 이 에피소드의 주도권은 철저하게 신라 여인에게 있다는 것. 싫은 남자와 결혼하기 싫어 천 년 뒤 부활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이 여자는 삶, 그러니까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실제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미 한 번 죽음을 선택했고. 그러나 그녀는 다시 죽음을 선택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이다.


소극적인 것으로 치자면야 그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열심히 자살시도를 하긴 해도 번번이 노인에게 방해를 받고 결국 죽지를 못하는데, 따지고 보면 영걸은 이 영화 내내 에피소드 셋을 거치는 동안 계속 상황에 따른 소극적인 선택으로 일관한다. ‘선택’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일련의 언행들. 그건 아마도 그가 죽다 살아난 뒤 목에 나비 목걸이를 걸쳐서일 테다. 이 영화에서 나비는 죽음을 뜻하니까.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까칠한 공주 미대생의 버릇을 고쳐주네 마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이교수(남궁원)의 권력 하에 존재한다. 그가 이교수를 의심하며 대항하는 것 역시 다른 권위, 즉 형사를 찾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세번째 에피소드로 가면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주인공이 영걸이 아니라 한참 새파란 시절의 김자옥이 주연을 맡은 미대생 여인이 된다. 그녀는 삶에 대한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는, 죽음에 단단히 매혹된 여성이다. (그녀의 주된 작업 주제가 ‘나비’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런데 정작 암에 걸리고 삶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삶에 대한 강한 집착과 미련을 보인다. 이건 영걸이 계속해서 보여줬던 어떤 입장들, 그러니까 죽음을 동경하지만 정작 그 죽음이 찾아왔을 때 이를 거부하는 어떤 양태와 통한다. 쉽게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을 이런 점을 들며 죽음에 대한 매혹을 그저 ‘겉멋’이라며 싸잡기 쉽지만, 사실 죽음을 탐하면서도 정작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심리란 지금의 삶보단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 그럼에도 더 나은 삶이란 존재할 수 없거나 죽음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윤회든 사후의 삶이든)을 인식하며 절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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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에피소드, 왼쪽부터 영걸의 친구, 형사, 영걸, 전경엔 남궁원이 열연한 이박사.



혹자들은 이 영화를 ‘옴니버스영화’라고 표현하는데, 사실 그게 맞을 것이다. 첫 에피소드가 상당히 기괴한, 초현실주의적인 호러라 친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천녀유혼> 유의 전형적인 귀신과 사람 사이의 사랑을 다룬 환상 멜러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세번째 단편으로 가면 또 미스테리 스릴러가 되고 말이다. 세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게 당연히 주인공인 영걸과 그의 친구이다. 이 친구는 첫 에피소드에서 나비수집 여행을 같이 간 일행이고, 사람이 되는 유골을 같이 발굴하러 간 동지이자, 이박사의 조교 자리 아르바이트를 주선해 준 장본인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에피소드가 종합되는 게 바로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삶의 의지!”를 외치는 ‘머리통’ 장면일 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시, 술에 형편없이 취한 두 친구의 악몽에 가까운 꿈일지도 모른다는 장면이 삽입되는데 – 뭐 물론, 다시 살아나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일 수도 – 김기영 감독은 실은 “자꾸 자살타령하지 마라, 그래도 삶은 소중한 거니 한번 살아봐라” 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듯. 사실 그런 식의 ‘설득 포스’를 워낙 강하게 느꼈다. 근거가 박약하건 충만하건 말건… 근데 뭐, 자살에 대한 욕구라는 건, 물론 개개인마다 유전적인 부분부터 해서 가치관 같은 거에 크게 달려있긴 하지만, 지금 현대사회라는 건 사실 자살을 지나치게 터부시하면서도 자살을 권장하는 사회 아닌가 싶다. 솔직히 배고파서 죽으나 총맞아 죽으나 자살하나…


하여간, 김기영 복권 바람을 타면서 이 영화가 ‘컬트영화’로 상당히 명성을 누린 게 벌써 10년인데, 흥미로운 부분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여섯 편 가량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본 다음 내가 조심스럽게 내리는 ‘중간’ 판단은, 김기영 감독은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거. 물론 김기영 감독의 경우 그 자의식과 영화의 ‘형식미’가 충돌하는 지점이 상당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결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거… 네이버 어디에선가 내린 ‘아스트랄 괴작영화‘라는 평가가 딱 마음에 든다.




영진공 노바리


ps1.
이화시가 너무 조아효… 너무 섹시한 언니, 가장 매력적인 건 나탈리 우드 부럽지 않은 그 이글이글한 눈!


ps2. 어떤 소개에 의하면 김정철의 캐릭터 이름이 ‘용빈’이고 남궁원은 ‘장박사’이다. 대체 이 완전히 다른 이름체계, 이유와 곡절이 뭔지 아시는 분~~?

ps3. 에피소드 셋을 연결시켰다는 것뿐 아니라, 삶의 의지, 죄책감, 귀신과의 정사, 죽음과 삶이 뒤바뀐 미스테리 등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작년에 개봉한 정가형제의 <기담>이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와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번 전작전 때 감독 중 한 명이 GV 모더레이터로도 나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