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너무 어려워진 속편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 스트리트>가 1987년 영화였으니 그로부터 23년 만에야 다시 만들어진 속편입니다. 젊은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모니터만 비교해 보아도 세월의 흐름이 쉽게 느껴질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입니다 – 버드 폭스(찰리 쉰)의 증권 거래용 단말이 14인치 CRT 흑백 단말이었던 반면 제이크 무어(샤이아 라보프)는 자신의 아파트 책상 위에만 무려 6개의 컬러 LCD 모니터를 설치해놓고 다양한 금융 정보를 모니터링하면서 삽니다.

그렇게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금융 자본을 움직이는 인간의 탐욕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가 보여줍니다. 그 중심에는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는 꽤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투자 은행의 젊은 분석가 제이크 무어의 복수극과 전편에서 완전히 망했던 고든 게코의 화려한 복귀전이 고든 게코의 딸 위니 게코(캐리 멀리건)를 매개로 얽히게 되는 식입니다.

영화 중반까지 고든 게코와 제이크 무어의 관계는 마치 <양들의 침묵>에서 감옥 안에 갇힌 한니발 렉터 박사와 클라리스 스탈링 형사처럼 공동의 목표물을 향해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8년의 복역을 마친 후 다시 7년의 시간을 보낸 뒤에 금융 위기를 예견하는 책을 내놓으면서 돌아온 고든 게코의 진짜 노림수는 일종의 반전이 되면서 젊은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게 되지요.

그런 와중에도 망가질 대로 망가진 가족 관계를 어느 정도 수습하면서 대중 영화로서의 매듭짓기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입니다. 전편에 비해 속편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가 다소 흥미진진하지 못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선 왠만한 금융 지식이 없이는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든 대형 투자은행의 흥망을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8년의 금융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이지만 실제로 월 스트리트 내부에서 어떤 내막이 있었던 것인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봐야겠죠.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는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된 사건의 원인을 뉴욕 금융가의 내부에서 재조명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난해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영화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요점은 1만 5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던 명망있는 투자 은행이 다른 경쟁자 브레튼(조쉬 브롤린)의 음모로 인해 하루아침에 망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CEO 루이스(프랭크 란젤라)가 뉴욕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함으로써 주인공 제이크에게 복수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긴 한데 그 과정이 와닿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편 <월 스트리트> 역시 복잡한 금융가의 이야기이긴 했지만 건전한 기업가 정신을 상징하는 제조업체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악한 금융 자본의 대결 구도로 전개가 되면서 비교적 몰입하기가 좋았던 내러티브 구조였다고 생각됩니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했던 고든 게코는 그런 금융 자본의 탐욕스러움과 잔인함을 체화해서 보여준 인물이었던 것이고요.

반면에 속편인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는 전편에서와 같은 대결 구도나 선악의 구분이 생각 만큼 명확하게 드러나지가 않는 편입니다. 조쉬 브롤린이 연기한 브레큰 제임스가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사악한 짓을 한 것인지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통렬한 쾌감을 얻어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어쨌든 요점은 제이크가 사건의 전말을 폭로하는 기사를 써서 브레튼 제임스에 대한 복수를 해내고야 말았다는 것이고 마침내 브레튼이 심하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관객들도 아 저 사람 망했구나, 라고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전반적으로 대중적인 영화로서는 크게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보기가 어렵겠습니다만 전작인 <월 스트리트>의 후속편으로서는 손색이 없는 편이라 하겠습니다.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답시고 금융 전문가들끼리 서로 총질을 해대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는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격을 유지하는 데에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영국 배우인 캐리 멀리건의 미국식 영어 발음 연기도 이만하면 훌륭했던 것 같은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장면이 많았던 것이 캐스팅의 이유였던 것인가 생각하게 되더군요. 개인적으로 예상했던 대로 속편은 통쾌한 권선징악이기 보다는 대마불사에 가까운 결말을 택했는데 고든 게코가 친환경 사업에 익명으로 기부를 하는 것으로 탐욕의 화신도 옥살이를 경험하고 나이가 들면 조금은 철이 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 했습니다.

반면 전편의 젊은 주인공 찰리 쉰은 양쪽에 미녀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고든 게코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출연했는데 투자 전문가로서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모습이 제 2의 고든 게코처럼 보이기도 하더군요. 이래저래 밝고 건전하게 살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은 곳의 이야기다 보니 희망적인 모습만을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브로큰 임브레이스”, 비극적 멜로와 영화 만들기

<귀향>(2006) 이후 3년만에 찾아온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입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다시 한번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 역을 맡고 있는데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작품치고는(?) 매우 통속적인 줄거리의 영화이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있어서는 역시나 감독 특유의 색깔을 재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대기업 총수의 정부가 영화배우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감독과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질투심에 가득찬 총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의 도피를 합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15년 전의 과거사로 설정해놓고 현재 시점으로부터 조금씩 캐내어 관객들 앞에 펼쳐보이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를 통해 고전적이라 할 만큼 뻔한 내용의 치정극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과거 시점의 아픔으로서 전달되게끔 하는 것이지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레나(페넬로페 크루즈)와 마테오(루이스 호마르)가 만나고 사랑한 것은 다름아닌 영화를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그 사랑은 질투심에 눈이 먼 자본가 어네스토 마르텔(호세 루이스 고메즈)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지요.

레나와 함께 시력까지 잃어버린 마테오는 두 사람이 함께 묵었던 도피처에서의 이름, 해리 케인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세월을 살다가 마침내 마르텔의 죽음을 신문 기사로 접하고 과거의 사랑을 복원하기 시작합니다. 마르텔의 손에 의해 최악의 작품으로 편집되어 버린 영화 속 영화 “여인과 가방”이 마테오와 레나를 만나게 해준 작품이었던 동시에 두 사람의 사랑이 빚어낸 결실이었다고 본다면 이 영화를 복원하는 과정은 곧 마테오에게 있어 레나와의 사랑을 불멸의 것으로 남기기 위한 마지막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브로큰 임브레이스>의 플롯에서 흥미로운 부분들 가운데 하나는 메이킹 필름을 찍는다며 마테오와 레나의 뒤를 쫓아다니던 마르텔의 게이 아들이 결과적으로는 맹인 작가 해리 케인으로 살고 있던 마테오가 레나에 대한 사랑의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메이킹 필름의 카메라를 피해 사랑을 나누었던 두 사람은 그 카메라를 통해 레나가 마르텔에게 이별을 통보하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먼 훗날 마테오에게는 레나와의 마지막 순간을 추억하는 결정적인 매개체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조악한 디지털 화면 속에 담긴 마테오와 레나의 마지막 입맞춤 장면을 통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애절하게 표현되고, 그 뒤를 이어 레나가 연기했던 화려한 색감의 복원판 “여인과 가방”이 이어갑니다. 사랑의 기쁨도 슬픔도, 사랑에 대한 추억까지도 모두 영화와 함께 이루어지는 세계가 <브로큰 임브레이스>에 담겨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