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걸: 측전무후의 비밀”, 홍콩식 무협의 추억


서극 감독의 신작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은 미스테리 무협물을 표방한다.

중국 역사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여황제로 기록된 당나라 측천무후(유가령)의 즉위식을 위해 초대형 불상이 세워지던 중 그 공사 과정에서 책임자들이 자연발화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년 전 측천무후의 섭정에 반대하다가 반역죄로 몰려 복역 중이던 황실 직속의 수사관 적인걸(유덕화)이 소환된다.

7세기 중국을 배경으로 멋진 과학 수사의 진면복을 보여줄 것 같았던 적인걸은 그러나 과학 보다는 다양한 술법이 가미된 무협 수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자연발화 사건과 측천무후의 최측근 국사의 비밀을 풀고 여황제의 즉위식을 지켜낸다.

영화의 소제목으로 사용된 ‘측천무후의 비밀’이란 국사라는 비밀스러운 존재를 통해 반대 세력을 척결하면서도 그에 대한 비난을 피해왔던 섭정의 대가 측천무후의 통치술이다. 적인걸은 측천무후의 섭정을 반대했던 인물이지만 지난 8년 간 중국이 대평성대를 이룬 모습을 통해 측천무후의 편에 서게 되고 황제 즉위를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측천무후를 지켜내기까지 한다.

과정이야 어쨌거나 지금까지 나라 살림을 잘 해오셨으니 앞으로도 이처럼 잘 해주시기만 한다면야 더 바랄게 없겠다는 홍콩과 중국 대중들의 마음을 실어 적인걸로 하여금 측천무후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깥에서는 중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는 천안문 세대의 인권운동가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며 경계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중국 내부에서의 목소리는 이처럼 통일 중국과 그 성장세를 시종일관 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은 여러모로 80년대 홍콩 무협영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보는 광동어로 진행되는 영화라서 – 중국 본토 상영 때는 북경어로 더빙할 듯 – 그런 것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만듦새가 요즘 영화 같지가 않고 자꾸 옛날 영화를 보는 듯 해서 그렇다.

과장된 스케일과 과장된 캐릭터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하고 있는 무협 액션에서 옛날 영화 냄새가 많이 난다. 시대가 바뀌어 컴퓨터그래픽이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세트장 안에서의 와이어 액션과 편집 기술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액션 장면에서 그 때 그 시절의 느낌이 적잖이 묻어난다는 얘기다.

심지어 일부 장면에서는 디지털로 촬영해서 이어붙인 듯한 이질적인 화면이 발견되고 있어 이 영화는 앞으로 5년도 지나지 않아 금새 상당히 낡은 느낌을 전해주는 영화로 남게될 수 밖에 없으리란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나름 긍정적인 부분은 홍콩영화의 전성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스타들이 아직까지 건재한 모습으로 주요 배역을 차지하며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유가령과 유덕화, 두 주연배우 뿐만 아니라 양가휘와 심지어 오요한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는 건 – 비록 모든 관객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닐지라도 – 나름 기억해둘만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크리딧에서 발견한 ‘무술감독 홍금보’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인데 덕분에 이 영화의 액션이 그토록 옛스러워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진공 신어지

“8인 : 최후의 결사단”, 중국 블럭버스터의 현주소

요즘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 영화들을 보면 – 좀 더 정확히는 중국 영화들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 감상의 요점이란 결국 중국 영화에 대한 우리나라 관객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는 건데요, 홍콩의 영화 제작 기술과 배우, 스텝들이 중국 본토의 막대한 영화 시장과 자본, 정부 지원 정책 등과 만나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는 좀처럼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홍콩의 재능과 중국의 막대한 물량이 만났음에도 기대되는 만큼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장예모
감독의 <영웅>(2002) 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컨텐츠의 천편일률성입니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 방향 때문인지 아니면 현시점에 중국 내수 영화 시장에서 요구하는 컨텐츠의 특성 때문인지는 좀 더 면밀한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 되겠습니다만 – 결국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제작되어 국내에 수입된 중국 블럭버스터들이 하나 같이 ‘전체/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스펙타클을 펼쳐 보인다 하더라도 매번 선보이는 작품들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엇비슷한 내용과 주제만을 강조하니 식상하다는 반응을 얻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한 가지는 영화의 문화 산업적인 특성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 80년대에 홍콩은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미국이나 유럽과 같이 선진화된 국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홍콩에서 물 건너 온 것은 어찌되었거나 좋은 것들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음악이, 그리고 영화에 있어서 국산품이 수입품을 누르고 내수 시장을 점령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홍콩은 중국에 반환이 되면서 영화 산업계의 지각 변동을 맞았지요. 이제 홍콩과 중국 영화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국내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더이상 선진 문물로서의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역으로 중국 영화들은 분명히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헐리웃 영화가 국내 시장에서 갖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해볼 수도 있게 됩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중국 본토의 관객들이 선호할 만한 소재를 찾아내고 그들의 대중적인 감성과 집단 의식을 자극하려는 전략은 <8인 : 최후의 결사단>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 청나라 말기, 영국령이 되어버린 홍콩을 배경으로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 훗날 신해혁명으로 불리게 된 1911년 손문의 홍콩 방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 몽고족에 의한 오랜 지배와 부패, 외세에 대한 무기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한족들의 ‘거룩한’ 희생을 다룬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한족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역사가 바로 칭기스칸에 의해 중국 대륙이 몽고족에게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인 관계로 칭기스칸과 청나라에 대한 해석이 미국과 중국에 의해 서로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시점을 다룬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청나라 황실은 혁명지도자인 손문을 암살하려고 하고 홍콩의 혁명가들은 손문을 지키려고 합니다. <8인 : 최후의 결사단>은 손문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무사히 홍콩을 다녀가기까지 암살자들의 위협을 죽음으로써 막아낸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이들 인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배치한 이후 후반부 기다리던 손문의 홍콩 도착과 함께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아날로그 액션을 전개하며 감정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8인 : 최후의 결사단>은 영화 만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한 마디로 더이상 손 댈 구석이 없을 만큼 세련되면서도 거의 완벽한 만듦새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년 전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배우들 – 장학우, 양가휘, 증지위, 임달화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의 여명, 견자단, 사정봉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튀는 이 없이 하나의 작품 안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액션이면 액션, 드라마면 드라마, 그외 미장셴과 배경음악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데가 없는 외양을 갖추었음에도 관객으로서 영화 속으로 흠뻑 빠져들지 못하고 마는 이유는 결국 그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전개 방식과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주제 의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블럭버스터 영화가 갖는 한계는 비단 중국 영화만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지금 중국의 블럭버스터들은 온통 자기 자신들에게만 신경을 집중시키느라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느낌을 주곤 합니다. 같은 중국계 영화라 하더라도 이안 감독의 작품들, <와호장룡>(2000)이나 <색, 계>(2007)가 중국인이 아닌 외국 관객들에게까지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들을 생각해보면 최근 몇 년과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되리라 예상되는 중국 영화들의 한계 –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도통 재미가 없는 – 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중국 영화가 과거 한국 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영광의 나날을 되찾을 수 있으려면 국내 관객들이 중화풍의 것들에 대한 선망의 시선을 갖게 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거나, 아니면 중국 영화가 지금보다 스타일이나 내용 면에서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 두 가지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논의는 중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한국영화의 해외 경쟁력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요. 제조에 강한 나라가 문화 컨텐츠의 강국으로 거듭나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은 본래 가진 것이 많은 문화적 거대 잠룡이라고 할 수 있어 단지 시간이 문제일 뿐이겠지만 우리나라는 과연 국내외 관객들에게 보여줄 어떤 것들을 갖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ps. 글 내용 중에 언급된 중국 역사와 관련해 지적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확인해본 결과, 원나라(칭기스칸/몽고족) -> 명나라(한족) -> 청나라(여진족/만주족)이 정확한 역사더군요. 위에 언급된 내용 가운데 칭기스칸/몽고족과 청나라를 연결해서 언급한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니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