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퀼리브리엄”, B급 영화는 비디오로 봐야 제 맛

내 돈으로 표를 사주면서까지 꼭 보고 오라고 적극 권하고 싶은 영화는 있지만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절대 보지 말라고 뜯어
말리고 싶은 영화란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오랫동안 상영관을 들낙날락 하다보니 나름대로 영화 고르는 안목이 생겨서 그런 정도의
심각한 재난은 미리 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아무리 형편 없는 영화라도 나름대로 한번쯤 봐줄만한 가치는
어디엔가 갖추고 있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무지 이쁜 구석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형편 없이 만들어진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에도, 그런 ‘한번쯤 봐줄만한 가치’는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 가치란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것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상대적 비교의 대상이 되어준다는 점에 있다. 극장이라고는 올해의 전국민 참여 영화 한 두 편에 한해서만 출입하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영화도 음식 처럼 맛 없는 요리를 먹어봐야 정말 잘 만든 일품 요리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 거다.

영화가 정말 실망스러운 경우의 진짜 원인은 실제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찾았다가 겪게 되는 낭패감에 있다. 같은 영화라 하더라도 보는 사람의 기대치나 다른 조건들에 의해 관람 중에 느끼는 바가 많이 틀려지게 되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식으로 실망감에 젖게 되면 그 영화의 장점이고 뭐고 다 싫어지게 되는게 인지상정이란 생각이다.

“이퀼리브리엄”에 대해서는 사실 반신반의했었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느꼈던 허전함을 부분적으로나마 충족시켜줄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었지만 그럴만한 수준이 못된다는 경계의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내 스스로 B급 영화는 B급 영화 나름대로 보는 방법이 있다며 일단 처음 가졌던 호감을 그대로 지켜나갔다.

전에 “이퀼리브리엄”을 B급 영화라고 했더니 누가 봵!하는 답글을 달았던데, “이퀼리브리엄”은 굉장히 B급 영화인 것이 맞다. 그럼 크리스챤 베일은 뭐냐고? 솔직히 난 크리스챤 베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당시 그가 B급 영화의 주연과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의 조연 자리를 오고가는 그런 수준의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퀼리브리엄”을 보고나서 영화를 아직 못본 다른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런 거다. ‘이 역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보지 말라고 뜯어 말리고 싶은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극장에서 꼭 볼 필요까지는 없던 영화다. B급 영화는 … 역시 비디오로 보아야 제 맛이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