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소년 가장 히어로 이야기




우연히 케이블을 뒤적거리다 『스파이더맨』을 해주기에 봤습니다. 그걸 보고나니 2편이 보고싶어져서, DVD를 빌려 보았습니다.

물론 “샘 레이미” 감독, 하면 무조건 『이블데드』를 외치실 영화광들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호러영화를 보는 자만이 진정한 영화광이란 식의 삘을 마구 드러내는 분도 있고 슬래셔만이 호러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제게 있어 진정한 호러는 『대부』 시리즈거든요.

하여간에, 그래서 저는 대다수의 『이블데드』 팬들이 매우 혐오(?)하시는 『퀵 앤 데드』를 너무 좋아하고, 각종 ~맨 시리즈를 좋아하는 미국 히어로물의 팬답게 『다크맨』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당연히 좋아하지요.

“토비 맥과이어”의 ‘너무너무 착하고 불쌍한’ 피터 파커가 참 좋아요. 아마 미국 수퍼 히어로들 중에서 가장 착하고 불쌍할걸요. 알바 하느라 뭐 하느라 스트레스 쌓여서 공중에서 추락하는 수퍼 히어로라니! 게다가 저는, 이 소심하고 착하고 약간 너드 과인 이 녀석이 너무나 순진하게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과정도 그저 헤벨레~ 해서 보게 됩니다.

게다가 감독은, 이 아이의 그 갈구를 너무나 충실히 들어주고 있어요. 2편 기차 안에서 기절해버린 피터 파커를 사람들이 잡을 때만 해도 저는 감독이 ‘피에타 장면'(죽은 예수를 땅으로 내리는)을 정말로 연출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답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해버리데요. 으허허 웃으면서 “샘 레이미” 이런 센스쟁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아이는 정말 너무 착하고 순진하면서도 한편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래서 거미인간 노릇을 계속하죠. 자기한테 힘이 생긴 이상 남을 돕지 않으면 죄책감에 괴로울 아이예요. 『배트맨』이야 원래 갑부집 자식이고, 『슈퍼맨』이야 일하는지 노는지 모르면서도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가는 직업인이고, 『크로우』와 『스폰』이야 이미 이승을 건너버린 자들이니 방세나 연료비나 식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지만 이 아이는 아직 ‘소년’입니다. 한국처럼 대학생 과외로 해외여행 다녀올 만큼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알바’ 수입으로 학비니 생활비니 충당을 해야 하죠.

거기에 뭐 ‘지구를 구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범죄많고 탈많은 뉴욕 시내를 노상 돌아다녀야 하니 바쁘기도 바쁘고 스트레스도 안 받는 게 이상하죠. 프롤레타리아 수퍼히어로라니, 이론상으로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실제 영화에서 구현된 적은 많지 않잖아요?

이 아이의 서툴고, 미숙하고, 어리숙하고, 순진한 그 성격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하긴, 수퍼히어로물이란 언제나 내적인 내러티브로 ‘성장’을 다루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외양까지 정말로 성장영화라고요. 똥폼만 잡으며 세상의 온갖 비극을 다 짊어진 척하는 ‘남자’ 영웅들은 멋있긴 하지만, ‘소년’ 영웅인 이 아이는 멋있는 대신 ‘사랑스럽’죠. 그리고, 그런 아이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당당히, 용기있게 고난의 길을 선택한 메리 제인도 참 멋진 아이구요.

끝없이 유사-아버지를 찾다가 죽여야만 하는, 그리고 그러한 살부 의식들을 거쳐 결국 자기 발로 성장하고야 마는 『스파이더맨』의 또다른 이면엔, 아버지의 그림자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자아가 흡수돼 버리고, 파괴되고 마는 해리 오스본이 있습니다. (사실 둘은 거울의 양면인 셈이죠.) 그래서 3편에선 해리 오스본이 본격적으로 악의 그늘을 선택하게 되지 말입니다.

영진공 노바리

“127시간”, 예상된 결말이지만 지루함이 없는 연출





퀀틴 타란티노 감독이 영원한 <펄프 픽션>(1994)의 그 감독이듯이 – 누군가에게는 <저수지의 개들>(1992)일 수도 있겠지만 – 대니 보일 감독은 영원한 <트레인스포팅>(1996)의 – 물론 <쉘로우 그레이브>(1994)가 먼저이긴 합니다만 – 그 감독입니다.

개인적으로 <트레인스포팅>을 통해 대니 보일 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헐리웃에 진출해서 만든 <인질>(1997)과 <비치>(2000), 두 작품도 모두 좋아합니다. 두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고 이후 대니 보일 감독은 헐리웃을 떠나 조용히 영국으로 돌아왔죠.
당시 세간의 평가는 단순히 대니 보일 감독이 헐리웃 진출에 실패했다는 거였습니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좀 더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게 되었죠.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 대니 보일 감독은 본업인 TV용 영화 두 편을 연출한 뒤, 단돈 8백만불을 들여 만든 <28일 후…>(2002)를 통해 좀비 영화의 트렌드를 완전히 바꿔놓았고, <밀리언스>(2004)와 <선샤인>(2007)을 거쳐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노려볼 수 있는 모든 트로피와 찬사를 한꺼번에 거둬들이는 성과를 이뤄냈지요 – 덕분에 한 편의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감독 협회, BAFTA,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모두 상을 받은 7번째 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127시간>은 롤러코스터 같은 이력의 영화 감독 대니 보일의 9번째 장편입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후 여기저기에서 많은 연출 제안이 들어왔을텐데, 대니 보일 감독의 선택은 아직 다뤄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을 모색할 수 있는 훨씬 단촐한 규모의 프로젝트였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127시간>은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알려진 바와 같이 애론 랠스턴의 자서전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2004)에 기록된 실화를 각색한 작품으로, 그랜드 캐년에서 하이킹을 즐기던 중에 추락 사고를 당해 오른팔이 바위 틈에 끼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된 상태로 127시간 – 계산해보면 5.3일 정도 됩니다 – 을 버틴 끝에 마침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메인 이벤트라는 건 고작해야 좁은 협곡 사이에 갇혀서 괴로워하다가 죽기 직전에 이르러 마침내 빠져나왔다는 것이 전부이고, 이런 정도의 사전 정보에서 크게 벗어나는 완전한 예상 밖의 전개가 숨겨져있는 작품인 것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정중동(靜中動)의 영화라고 할까요.

한쪽 팔이 끼어 옴짝달싹할 수도 없고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상황에서 주인공 애런(제임스 프랭코)의 조용한 사투와 감정적인 변화의 향방를 면밀하게 따라나서는 작품이 <127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은 <127시간>에 대해 “삶의 소중함에 관한 영화이고, 그 삶이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소중함이 드러난다”고 했더군요. 그런 점에서 숀 펜 감독, 에밀 허쉬 주연의 2007년작 <인투 더 와일드>와 일면 상통하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애런이 조난을 당한 이후 구조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조난 당한 위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여행 계획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캠코더로 유언을 남기는 중에 어머니의 전화를 잘 받지 않았던 자신의 무심함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영화는 애런을 구원해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애런이 알고 지냈던 다른 사람들이었음을 증언합니다. 비록 연락을 닿을 수는 없지만 그들과 만들었던 추억과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의지가 애런으로 하여금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지요.






안경을 쓴 이가 애론 랠스턴

 

<127시간>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실화로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 때문에 작품 전체적인 긴장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너끈히 장편 영화로서의 본분을 다 해낼 수 있는 이유는 애런 랠스턴의 극적인 실화를 다큐멘터리를 보듯 재현해낸 대니 보일 감독의 연출과 제임스 프랭코의 헌신적인 연기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화장실과 같이 비좁은 장소에서 다채로운 아이디어로 스펙타클한 비주얼을 잘 만들어내곤 하는 대니 보일 감독의 재능이 이토록 작고 비좁은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