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웨이 위 고”, 삼십대 애어른 커플의 성장기

데뷔작이었던 <아메리칸 뷰티>(1999) 때문인지 샘 멘데스 감독은 막연히 미국인처럼 여겨지곤 하는데 실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연극 연출가로서 명성을 쌓았던 인물이더군요 –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케이트 윈슬렛과의 2003년에 결혼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하나 추가되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래서인지 샘 멘데스 감독의 작품들은 헐리웃의 메이저 스튜디오를 통해 만들어지면서도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대중적인 성향과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메리칸 뷰티>를 시작으로 <로드 투 퍼디션>(2002), <자헤드>(2005),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까지 정확히 3년에 한 편 꼴로 작품을 내놓던 샘 멘데스 감독은 왠일인지 1년 만에 <어웨이 위 고>를 완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선보였던 작품들과는 여러모로 달라보입니다. 샘 멘데스 감독의 2009년작 <어웨이 위 고>는 국제적인 스타 배우 한 명 없이, 영화 연출가로서의 야심을 훌훌 벗어던진 듯한 선댄스 풍의 소품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어웨이 위 고>는 30대 중반의 커플이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하게 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를 새 보금자리를 찾아 다닌다는 내용의 전형적인 로드 무비이자 성장 영화입니다.

손주를 떠맡으려 하지 않는 얄미운 시부모를 시작으로 주인공 커플은 형제, 자매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북미 전역을 차례로 방문해보지만 어느 한 곳도 마음에 드는 곳이 – 바꿔서 얘기하자면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 하나도 없습니다. 뻔한 결론이긴 하지만 마치 어린 왕자와 그의 ‘임신한’ 공주처럼 떠돌던 두 사람은 여자쪽의 버려진 생가를 찾게 되고, 아름다운 호수가의 그곳에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닥친 새로운 삶의 변화와 도전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을테고요.

국제적인 스타 배우가 한 명도 없다고는 했지만 사실 <어웨이 위 고>는 좋은 배우들이 참 많이 참여한 작품입니다. 베로나 역의 마야 루돌프는 SNL의 코미디언으로 낯이 익은데 그간 크고 작은 배역으로 꾸준히 노크를 해온 것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는지 당당히 주연 자리를 꿰어차고 안정된 정극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버트 역의 존 크래신스키는 <자헤드>를 통해 샘 멘데스 감독과 한번 인연이 있었던 배우더군요.

두 사람의 로드 무비에서 웃음을 담당하는 것은 이들이 만나게 되는 수많은 조연들입니다. 캐서린 오하라와 제프 다니엘스가 버트의 부모로 출연해 오랜만에 코믹 연기의 진수를 선보이고 그외 매기 길렌할, 앨리슨 제니, 크리스 메시나, 멜라니 린스키, 폴 슈나이더 등 낯익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어린 왕자가 방문하는 각 행성들의 주인들처럼 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눈에 띄는 극적인 갈등과 해소의 과정이 없이 에피소드들이 단순 나열식으로 배치되고 있긴 하지만 워낙 재미있는 진상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는 작품입니다. 억지스러운 소동극이 되기 보다 담담하게 매듭짓는 마무리 방식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오히려 이 영화를 ‘완소’의 단계로 이끌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지 않나 싶네요.

감독 샘 멘데스 (왼쪽 남자)

장소를 옮길 때마다 근사한 배경 음악이 나오는데 엔딩 크레딧을 확인해보니 알렉시 머독(Alexi Murdoch)라는 이름의 가수더군요. 최근에 좋은 음악을 사용한 영화들을 많이 봤지만 이 작품 만큼 확실하게 귀를 사로 잡는 영화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OST 앨범에는 알렉시 머독의 곡들과 함께 조지 해리슨, 밥 딜런, 스트랭글러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곡들도 수록되어 있네요.

영진공 신어지

“줄리 & 줄리아”,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

오랜만에 보는 노라 에프런 감독 작품이네요.


필모그래피를 보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의 각본을 썼었고 – 그 동안 로브 라이너 감독과 배우들만 기억해서 미안했습니다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과 <유브 갓 메일>(1998)은 직접 연출까지 했었군요.

이번 <줄리 & 줄리아>에서 줄리아 차일드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과 노라 에프런 감독의 인연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작품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실크우드>(1983)였는데 메릴 스트립이 주연으로 출연해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죠.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86년작 <제 2의 연인>(Heartburn)은 노라 에프런 본인의 소설을 직접 각색했던 작품으로 메릴 스트립이 다시 한번 주연으로 출연해 잭 니콜슨과 공연했던 작품입니다.

그렇게 일찌감치 시나리오 작가와 주연배우로서 만났었던 두 사람이지만 그때로부터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에 와서야 감독과 주연배우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 그간 노라 에프런 감독 작품에는 늘씬한 미녀 배우들만 주연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표적으로 멕 라이언이 있었고, 앤디 맥도웰, 리사 쿠드로, 그리고 니콜 키드먼까지 나름대로 당대에 가장 잘 나가던 여배우들이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줄리 & 줄리아>는 지금까지 노라 에프런 감독이 작업해왔던 작품들과 특히 상업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발자욱 물러나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니콜 키드먼과 윌 패럴을 캐스팅했던 코미디 <그녀는 요술쟁이>(2005)가 흥행에 참패했던 일이 노라 에프런에게 어떤 전환점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고요, 내용 면에서도 <줄리 & 줄리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들과 차별성을 갖습니다. 그와 동시에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처음 참여했던 작품 <실크우드>와 동질성을 갖게 되기도 하죠.

자막으로 밝히고 있듯이 <줄리 & 줄리아>는 두 실존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한 명은 40년대 후반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가서 살다가 요리를 배운 이후 귀국하여 프랑스 요리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이고, 다른 한 명은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입니다.

줄리아 차일드는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책 외에 <프랑스에서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을 썼고 – 2004년에 돌아가셨는데 책은 2년 후에 출간되었습니다 – 줄리 파웰은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법을 1년간 따라해보는 요리 블로그를 운영했고 – 이 블로그는 정확히 줄리아 차일드의 사망일에 올린 줄리 파웰의 마지막 포스팅 이후 업데이트가 중단된 상태로군요 – 이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묶은 책 <Julie &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을 냈는데 노라 에프런이 두 사람의 책을 각색하여 한 편의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죠.

줄리아 차일드와 줄리 파웰은 공통점이 많아 보입니다. 두 미국인 여성 모두 요리를 좋아했고 요리와 관련된 출판을 했으며 각자 관계가 좋은 남편이 있었으되 아이는 없었죠 –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모두 요리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줄리아 차일드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살았는데 마침내 출간된 자신의 책 <프랑스 요리 예술 정복하기>(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1961)을 받아들고 기뻐하던 마지막 컷은 그 책이 줄리아 차일드에게는 평생을 기다려온 아이와 다름없는 존재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줄리 & 줄리아>는 훌륭한 프랑스 요리법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고 출판이나 블로깅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결국 우리 모두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대상이나 통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안에서 새로운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인지상정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요.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