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 (2009)”, 악의 무리에 홀연히 맞서는 초췌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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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인터내셔널”은 몹시도 현실적이고자 노력하는 영화입니다.
당 영화의 정확한 내용은 본(Bourne) 시리즈틱하게도 거대한 지배세력에 홀로 맞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만, 주인공인 실린저(클라이브 오웬)는 혼자 모든 것을 해내는 능력자도 아니며, 특수요원들 너댓 명을 눈 깜짝할 사이에 코마상태로 직행시키는 살벌한 싸움꾼도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꼬질꼬질해진 머리에 너절한 옷, 면도도 하지 않은 행색으로 화면을 누빕니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대면하고 처음 건네는 말이 “You look awful.”(너 꼬라지가 엉망이다)라니 주인공 가오는 처음부터 포기하고 들어가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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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씻어라 이 화상아 …


다행히 남주인공이 ‘2,3일 면도 안한 수염에 최적화된 얼굴’을 가지고 있는 클라이브 오웬이기에, 당 영화는 구질구질한 비주얼로 빠지지는 않습니다. (사실 나오미 왓츠님의 화사한 금발머리 덕도… 크죠. 으흥)

하지만 잠도 못자고, 개인생활은 완전 포기.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개고생을 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처절함이 자연스레 묻어나오게 됩니다. 예, 주인공 정말 처절하게 싸웁니다.   주인공이 왜 이렇게, 우아하게 총 빵빵 쏴서 악당들을 쓸어버리지 않고 노숙자적 행태를 유지하며 힘겨운 진흙탕 개싸움을 하고 있느냐. 바로 당 영화의 악당은 흔한 히어로무비의 악당하고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등장합니다.  유의하세요 ^^ *

당 영화의 악당은 은행입니다. 거대자본이죠. 이들이 하는 일은 주로

– 무기나 전쟁자금이 필요한 곳에 공급하고 빚을 떠넘겨 준다
– 그 과정에서 발생한 채무를 물어서
– 남들이 피흘리며 싸우던 나라의 이권을 낼름 꼴깍 넙죽 먹는다

뭐 이런 과정입니다. 거대한 사채업이라고 할까요.

이들의 무기는 총칼이 아닌 자본인만큼, 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촘촘한 손길을 뻗치고 있으며 정말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총칼이 없는곳은 많지만 돈이 없는곳은 없는 까닭이지요.

뭣 보다 이들은 “합법적 기업”이라는 강력한 가면으로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지요. 이들과 싸우려면 스티븐 시갈 횽아처럼 손발을 꺾고 머리에 총알을 박는 식으로 싸울 수 없습니다. 넥타이를 맨 변호사 군단과 이빨싸움부터 해야 하죠. 잡아서 뒤지게 패 주면 참 좋겠는데 그러려면 먼저 증거를 잡아야 하고, 은행측에 매수당한 사람들의 갖은 태클로부터 호나우두스럽게 빠져 나와야 하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국제법 공부도 해야 하고, 당국의 협조도 구해야 하고 … 시갈 횽아였다면 “ㅆㅂ 나 안해!!”라면서 감독의 목을 꺾어 버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악당들과 싸우려니 우리의 주인공들, 몸뚱이가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인 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나오미 왓츠와 클라이브 오웬은 리용, 베를린, 뉴욕, 이스탄불 등등을 정신없이 쫒아다닙니다. 저 같은 사람은 평생 가도 못 모을 항공 마일리지를 일주일이면 족히 꽉 채워버릴 지경이더군요.

주인공의 상황이 이러하니 당연히 영화는 매우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며, 숨 돌릴 틈이 없고, 쓸데없이 잔가지를 치지도 않습니다. 미남 미녀 주인공간에 로맨스도 당근 없고, 필요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죠. 넣고 싶어도 못 넣었을 겁니다. 하나의 목표를 놓고 심플하게 달려가는 당 영화의 드라마가 흐트러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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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바 나 안해 …




자, 그렇다면 이렇게 복날에 뭐빠지게 뛰는 개 모냥으로 뛰댕기는 주인공들이 원하는 대로, 거대 자본에게 죄를 묻고 쇠고랑을 채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과연? 정말?

될리가 없죠 … 처음부터 이 싸움은 승부가 정해진 셈입니다. 주인공들은 “합법”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사람들이죠. 인터폴 수사관과 지방검사보인 이들은 절대 법과 국경을 초월한 거대 기업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은행 관계자들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죠. 맘에 안 드는 놈이 정보를 빼돌리는 것 같으면 킬러를 고용해서 죽여 버리면 되고, 수사망이 좁혀오면 당국 관계자들을 매수해서 수사관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아 버리면 됩니다. 킬러가 잡힐 것 같다? 다른 킬러를 고용해서 또 죽여 버리면 됩니다. 이들의 무기는 다름 아닌 “돈”이기에, 그만큼 철저하고 비인간적이며 새어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따라서 빈틈도 없죠.

영화 또한 그러한 점을 지적합니다. 상대방은 똥창에서 노는데 시냇가에 앉아서 잡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주인공은 스스로 똥창으로 뛰어들어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기로 결정을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자신도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도대체 싸움이 되지 않는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당 영화의 후반은 복수를 위해 모든것을 버린 남자가, 거대조직과 맞서 피비린내나는 복수를 감행하는 액숑영화로 탄생할것만 같은 느낌이 마구마구 피어오르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당 영화의 가장 큰 액션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총격신이며, 이는 주인공이 총을 들게 하는 계기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당 영화는 어떤 이유에선지 화끈한 액션으로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극히 현실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던 영화가 액션 블록버스터로 끝맺음을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관객 입장에선 뭔가 섭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건 선악이 분명한 액션 영화인데, 권선징악의 흔해터진 결말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화끈한 끝맺음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당 영화는 매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가 마치 잔뜩 분위기를 달궈 놓고 몇 번의 펌프질로 장렬하게 뻗어 주시는 17세 남성의 첫경험처럼 끝나 버립니다. 물론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엔딩화면으로 어느 정도 메꾸어 집니다만, 관객들이 원하는 카타르시스를 전해줄 클라이맥스는 매우 부족한 느낌이죠.


그 전에 드라마가 매우 헐렁하여 긴박감과 스릴을 고조시키지 못했다면 당 결말 또한 그닥 허무하지 않겠으나 결말에 가기 전까지 매우 착실하게 드라마를 쌓아가며 달려왔기에 더욱 의자에서 일어나기가 힘들게 만듭니다.


클라이브 오웬이 핸드건을 연사하며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관람을 자제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당 영화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는 스릴넘치는 드라마에 가깝지 좋은 액션영화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에, 따라서, 기호에 따라서 선택을 하셔야 할 듯 합니다.  당 영화는 클라이브 오웬이 등장하는 007 시리즈도 아니고, 본 시리즈도 절대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예고편은 종종 영화의 장르를 모호하게 만들어 우리를 속이지요.






영진공 거의없다



덧글> 클라이브 오웬은 배가 좀 나왔습니다. 주름은 멋지지만 톡 튀어나온 배는 좀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 … 머리 긴 여성들, 나오미 왓츠가 목도리 감는 법을 잘 보세요. 밑줄 쫙쫙 치면서… 목도리도 섹시할 수 있군요.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거침없이 쏘면서 타란티노를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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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1992)과 <펄프 픽션>(1994)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루었고 이후의 전세계 액션/갱/SF 장르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화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이루었다’고 함은 이전의 영화들과는 다른 요소들과 스타일로써 관객들과 대화하는 새 문법을 확립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이후의 많은 영화들이 그 문법을 따랐다는 이야기입니다. 타란티노의 새 영화 문법에 가장 근접했던 작품은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1998)와 <스내치>(2000)를 꼽을 수 있을텐데요, 아쉽게도 쿠엔틴 타란티노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작품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자신조차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이 타란티노 스타일의 본질이란 한마디로 거침이 없다는 점입니다. 주인공들의 지루한 수다와 피칠갑의 총기 액션, 그리고 시간 흐름을 무시한 내러티브의 재조합 등의 개성적인 영화적 취향과 아이디어들이 관객들 앞에 ‘거침없이’ 전시되는 것이 타란티노 영화의 핵심이었습니다.1) 가이 리치의 영화들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타란티노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 아류작들로 분류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타란티노 영화의 요소들을 추종만했지 그 핵심은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기존 장르 문법을 해체하는 통렬함과 일탈의 쾌감을 담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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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은 쿠엔틴 타란티노 이후 타란티노 스타일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주류 상업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 만큼이나 말 그대로 거침없이 쏴대는 영화가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입니다. 이와 같이 거침이 없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쏴죽이고 싶은 상대라면 가리지 않고 총질을 해대면서 총기 규제의 이슈를 다루는 뻔뻔함과 남들이 하는 보기싫은 행동들에 대해 질색이라고 나불대지만 그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질색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모순들로 무장한 영화가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입니다.2)

이와 같은 영화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네 재개봉관에 다리 뻗고 앉아 팝콘을 스크린을 향해 던지며 보는 B급 영화들과 그 수요 계층의 정서를 가감없이 반영하고 있는 서브컬쳐 영화입니다.3)  또한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은 영화 팬들을 위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우삼 영화에서 즐겨 사용되었던 슬로우 모션 총격 액션의 사용은 물론이고 액션 영화들에 대한 등장 인물들의 잦은 언급이나 심지어 여주인공 도나(모니카 벨루치)의 성을 퀸타노(Quintano = Quentin + Tarantino)라고 붙여놓고 영화 속에서는 한번도 언급을 안하다가 엔딩 크리딧에 띄워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영화 팬들을 위한 남다른 서비스 정신을 시종일관 과시합니다.

주연급 배우들의 캐스팅에서도 거침없는 이미지 차용이 돋보입니다. 클라이브 오웬은 <씬 시티>에서의 과묵한 터프가이 이미지와 <칠드런 오브 맨>에서의 생명의 수호자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4) BMW 홍보용 단편영화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았던 인연 탓인지 줄기차게 BMW만 훔쳐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여기에 모니카 벨루치는 <말레나>, <매트릭스 2, 3>,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등에서의 창녀와 모성애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구요.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사이드웨이>나 <아메리칸 스플렌더> 등에서 낙오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폴 지아매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악하고 과격한 악당 캐릭터를 선보이는데, 이 역시 “찌질이가 총 들고 설쳐대는 꼴은 질색이야”라는 대사를 던지기 위한 최선책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액션 씨퀀스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최근 어떤 영화들보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 흐릅니다. 각 씨퀀스를 가능케 하는 논리적인 개연성을 면밀히 구축하기 보다는 반짝반짝 하는 아이디어들을 거침없이 살려내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는 영화입니다. 손가락이 다 부러진 상태에서 식당에 쳐들어온 3인조 총기 강도들을 무찌는 방법이 궁금하십니까? 이 영화를 보시면 됩니다. 이런 영화 싫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 대신 좋다는 사람들에게는 보고 또 봐도 끊임없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작품으로 남게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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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잡담들>

1) 그런 점에서 타란티노 영화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작품은 <저수지의 개들>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데쓰 프루프>는 타란티노가 자기 영화의 본류를 향해 다시 찾아들어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록 총기 액션이나 시간 순서를 뒤바꾼 에피소드의 배열 등 타란티노 영화의 인장과도 같은 요소들은 없었지만 이들은 영화의 구성 요소들일 뿐 그 핵심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2) 콜롬바인 고교 사건과 9.11 테러 이후 한동안 자제되어왔던 과도한 폭력과 인명 살상(?) 영화가 드디어 다시 등장했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최근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율이 땅바닥을 닥닥 긁어대면서 그 동안 미국 시민사회를 사로잡아왔던 지나친 엄숙주의의 망령이 드디어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로 해석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3) 그렇기 때문에 장르 문법과 플롯 구성의 개연성을 시종일관 무시하며 기존 유사 장르의 영화들을 마음껏 오마쥬하는 자유분방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표현 방식이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업 영화들은 흥행에 대한 부담 때문에 기득권층이나 다수 대중들의 취향과 통념을 의식하게 되고 그 결과로 스스로의 표현 방식에 제약을 가하게 됩니다.

4) 당근을 먹다가 그것을 무기로도 사용하는 주인공 스미스(클라이브 오웬)의 캐릭터는 일견 <에이스 벤츄라>(1994)에서 짐 캐리가 보여준 황당하고 거침없는 캐릭터를 연상케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저 역할을 짐 캐리가 했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