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펭귄”, 참신한 배급망을 타고 날아라!

임순례 감독의 신작 <날아라 펭귄>이 9월 24일 개봉하네요.
예전 임순례 감독 작품들보다
훨씬 다양한 루트로
<날아라 펭귄>소식이 들리는 것 같아요.

<워낭소리> 의 제작사 스튜디오 느림보가 배급을 맡았기 때문에 더욱 자주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도 있을테고,

또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정동진독립영화제, 제주영화제,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등을 통해
관객들의 입소문이 돈 탓도 있을 거에요. 


<날아라 펭귄>은 극장 개봉 한 달 전부터
지역 공동체 상영을 시작했어요.
지역 공동체 상영이라 함은 개봉관이 없는 지역의
학교, 회사, 동아리 등 공동체를 위해
강당이나 회관 등의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또 하나의 배급 시스템 입니다.

지역 공동체 상영은 <우리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걸로 알고 있는데요.
<워낭소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등
여러 독립장편영화들도
극장개봉과 공동체 상영을
함께 진행했었죠.  

 

공동체 상영은 상업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획기적인 시스템입니다.
무엇보다 찾아가는 서비스, 관객이 있는 곳에
영화가 직접 간다는 점이 그렇죠.




특히, <날아라 펭귄>처럼 극장 개봉 이전에
지역 관객을 먼저 찾아간다는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요,
개봉을 결정한 극장들과 배급사 제작사 모두가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전진해 있어 가능했을 거란
예상을 해봅니다.

우리가 극장에만 목 맬 필요는 없으니까
여러모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공동체 상영이
훨씬 바람직한 배급 수순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굳이 나누자면 준상업영화 영역에 속한 듯 보인 <우리 생의 최고의 순간> 이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보다
<날아라 펭귄>은 한결 독립영화로
가깝게 닿아 묶인 기분이 들어요.
어쩌면 그 반대로  그 사이 독립영화가 본연의 영역을 확장한 결과이기도 하겠죠.

아무튼 이러한 여러 시도들이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아
좋은 결과가 있었음 합니다.


현재 인디스토리 네이버 공식 카페 공지글에
달린 한 댓글이 눈길을 사로잡네요.

<날아라 펭귄> 임순례 감독님 영화는 꼭!
닥극사(닥치고 극장 사수) 해야 한다는!!

‘닥극사’ 들어보셨나요?
언젠가 ‘공상추’ (공동체 상영 추진!!)
이런 말도 듣게 될까요? ^^

영진공 애플

한국비하발언 연예인은 퇴출되어야하나???

유명인이든 그냥 무명인이든 구분없이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다.

“한국이 어때요?”


질문 받은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한국의 모습은 바로 그거였을거다.

“자기들이 어떠냐고 묻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도대체 왜 남에게 자신들에 대한 평가를 바라는 것일까?


왜냐하면, 스스로는 자기들이 어떤지 잘 모르겠으니까.


즉, 자신의 모습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거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그런데, 좋고 나쁨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내가 정하는 문제다.


나에게 좋으면 좋은 거고, 나에게 나쁘면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쁜 거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늘 남들에 의해서 내 좋고 나쁨을 평가받아왔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그리고 시험이 나를 평가해줬고

사회에서는 동료들이 나를 평가하고, 상사가, 배우자나 애인이 나를 평가한다.


그게 바로 나인 것이다.
그러니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남들 하는 것을 열심히 따라하고
남들하는 만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이런 집단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한국인 vs 외국인 구도가 되면

그들에게 다시 묻는 거다. 우리를 평가해달라고.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 한다.


하지만 자기 확신이 있으면 그냥 덤덤하다. 물론 참고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정도가 된다.


자신의 평가를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그럼 남들의 말을 열심히 들으려는 거냐면 그것도 아니다. 

부정적인 평가를 접하면 반성하고 바꾸기 보다는 화부터 낸다.


왜 어떤 애가 그랬잖은가.


정말 듣도 보도 못했을 뿐이라 그런 애라고 했더니 명예훼손이라고 고소 …


자기가 정말 누구에게는 듣보잡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니까 그러는 거지.


어떤 어린 연예인이 연예인으로 데뷔하기도 전에 자기 개인 블로그에서 친구들이랑 나눈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서 결국 탈퇴에 퇴출이란다.


그 이야기도 별거 없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종종 친구들하고 떠드는 말들이다.


아마 우리나라 아이들도, 심지어는 어른들도 비슷한 말 종종 할껄? 한국놈들은 어쩌고 저쩌고…


청소년기에는 뭐든 다 한 번씩은 싫어 하는 것이 정상이다.


자기 자신도 싫어지고, 자기 부모도 싫어지고, 자기 친구들도 싫어지고, 자기 동네나 나라도 싫어진다.
좋아졌다가 싫어졌다가… 청소년기에는 다 그런다.


그게 반항이 되고 창의도 되고 소위 말하는 “성장의 과정” 이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 난리라니…-_-;;;


걔가 가수의 본분을 어겼다면, 예를 들어 표절을 했다면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한때 표현했던 자신의 감상을 욕하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연예인들이 이상하게 국회의원보다도 더 중요한 공인들 취급을 받거나 혹은 귀족 비슷한 대우를 받는 것 같은데, 사실 연예인들은 원래 광대다.


광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사람들 속 마음을 대신 들춰보이는 역할을 하는 존재다.


대부분의 경우 광대는 왕을 비아냥거려도 용서가 되었다. 그게 광대의 역할이니까.


물론 발끈하는 왕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사실을 지적했을 경우에 그랬다.


영화 <보랏>의 샤차 바론 코헨이 바로 그 광대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한 얼간이의 마스크를 쓰고 나와서 깔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깐다.


미국의 고상함과 광신과 엄숙함을,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


그게 광대이고 연예인이다.



아 … 보랏 … 님이 짱드셈 …


영화 <왕의 남자>에서 얼핏 비추었듯이.

우리나라의 탈춤도 바로 그런 역할을 했었다.


왜 양반 탈이 따로 있겠나.


그런데 과연 지금 이 나라 연예인들이 그럴 수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우리들은 모두 연예인들이 솔직하기를 요구한다는 거다.


그런데 솔직한 속얘기 잘못 털어놓으면 저꼴 난다.


그럼 도대체 원하는 게 뭘까? 솔직한거? 아니면 듣기 좋은 말만 하는거?


이건 마치, 어디서 “솔직하게 다 말해봐” 그래놓고 정작 솔직하게 말하면 조인트 까는 거랑 비슷하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중구속” (관련링크: http://0jin0.com/1673)
이다.


세상에 사람들이 늘 착하고 늘 올바르고 늘 성실하기만 할 수 있나?


그런게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지.


제발 우리 좀 솔직해지자.

우리도 못하는 거 연예인들에게 요구하지 좀 말자.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좋아해야 우리나라에서 연예인 할 수 있다고?


무슨 소리를 … 사랑이나 관심이 있어야 욕도 하고 비난도 하는 거다.


(사실 이번 연예인의 경우는 욕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건 일종의 자기비하에 불과했을 뿐이다. “아 씨바 내가 지금 뭐하는 거냐 …” 이런 류의 넋두리. )


나는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를 까는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 음반판매 1위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쯤 되어야 이 나라가 그 괴상한 질문 “우리나라 어때요?” 를 그칠 수 있을테니까.




어떤 그룹 애들은 지네 팬들에게 이러고도 잘 산다.



우리도 좀 이럴 수 없을까?

영진공 짱가

“왼편 마지막 집”, 굳이 리메이크를 한 이유가 뭔지???

“왼편 마지막 집”은 동명의1972년작을 리메이크한 영화 되겠습니다. 원작은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이자, 엄청난 충격을 전해주는
영상과 “분노의 13일”이라는 극촌빨 번역 제목으로 기억되고 있지요. 어려서부터 찢고 썰어대는 영화 잘 보던 저는 원작을 중학생
때 접했습니다 … 만 아쉽게도 ‘조낸 잔인하다’라는 기억 외에는 별로 떠올릴만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원작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닥 들지 않는게, 보도자료에는 시놉시스 상의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고 하고, 딱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70~80년대 유행했던 호러 영화들의 이야기를 거의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고 그 공식들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으니까요.

1. 나쁜 약먹고 헤롱대고, 밝히고 그러면 못써. 그러다가 잔인하게 죽는 수가 있다.

2. 엄마 아빠 말 안듣고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리면 크-은일 나. 알겠어? 그나마 순결해서 살아 남은 거야.


3. 아무한테나 친절 베풀다가 조뙈는 수가 있어.


4. 나쁜 짓 하고 다니는 놈들은 결국 다 자업자득. 조낸 아프게 죽어요.

수꾸임!!!

뭐 이런, 고리타분한 교훈들 말이지요.
이렇게 거의 무수정판 리메이크가 나온 까닭은, 아마도 만드는 쪽에서 이 영화를 “스크림”처럼 기존의 호러 무비들의 법칙을 멋대로
비틀고 전복시키며 낄낄댈 의사가 전혀 없다는 뜻이겠지요.

아마 감독이나 제작자 모두 장르의 틀을 벗어나는 일 따윈 없이 날씬하게
잘 빠진 상업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나 봅니다.(원작의 감독인 워스 크레이븐이 제작자로 참여했으니, 그 아자씨의 입김이
작용했을지도 …)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언제나 무난하게 먹히는 편이고, 원작이 나올 당시에 태어난 사람들이 이제는 30대 중후반이 되었으니 리메이크 시기도 적절하구요. 오히려 좀 늦은감이 있습니다.

만든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보자면 당 영화는 주인공인 사라 팩스톤의 스키니한 몸매만큼이나 미끈하게 잘 빠졌습니다. 이야기는
논리적 허점과 무리없이 평탄하고 세련되게 진행되어 ‘시발 경찰을 부르란 말이야!!!’식의 절규를 할 일도 없고, 요즘 대부분의
호러 영화들처럼 피로 떡칠을 하지도, 인간의 육체를 순대 썰어내듯 말도 안되게 썰어버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벗뜨.. 기본적으로 당 영화는 흉악무도한 범죄자들에게 무고한 젊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 부모들이 악당들에게 잔혹한 복수를 퍼붓는다는 내용입니다. 무난하고 보기 편한 영화는 절대로 아니지요.
특히나 미모의 젊은 여성 두명이, 마약 좀 하고 낯선 남자를 따라나설 정도로 철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이들 중 한 명은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고, 한 명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

별다른 여과 없이 성폭행  장면을 차분하게 잡아내는 카메라 덕분에(?) 보는 쪽에선 당장에 달려가서 저
놈들을 쳐 죽이고 미녀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나지만 스크린을 뚫고 들어갈 재주가 없어 안절부절 못하는 식의 분노를
경험하게 되고, 그 분노는 고스란히 당 영화에서 정의의 주인공 역을 맡고 있는 그녀의 부모들에게의 감정이입으로 치환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다 썰어버리겠어.

….저 답지 않게 어려운 말 쓰는군요. 그냥 조낸 나쁜놈들이니, 별 죄책감없이 그 넘들의 머리에 구멍이 나고, 팔이 분쇄기에 갈리고, 눈에 총알이 박히고, 머리가 터져나가는 등의 장면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그것으로써 당 영화는 할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겠죠. 런닝타임을 꽉 채워서 두근두근 오밀조밀 쫄깃쫄깃하게 만들어 주고, 막판엔
그 불편한 감정들을 깔끔( … 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하게 정리할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니 말입니다.

거기서 끝입니다. 뭐 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습니다.
잔인함, 불편함의 강도야 오히려 원작이 더 쇼킹할 정도로 셌고, 사소한 몇몇 설정과 배우들만 바뀔 거면 … 도대체 리메이크를 왜 했냐능? … 뭐 딱히 대답해 줄 만한 사람도 없겠습니다만 …

그냥 헐리웃 영화공장의 기계는 계속 돌아가야 하고, 뭔가는 찍어내야 하니까. 뭐 이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영진공 거의없다

중년이 기대되는 여배우, 남상미

“불신지옥”은 오랫만에 등장한 잘 만들어진 한국 공포영화다. 2007년 ‘기담’ 이후로 제대로 만든 공포영화인 듯 싶다.
(정가형제 감독들은 뭐하나?) 상영 전부터 인터넷과 여러 매체들을 통해 칭찬이 자자했지만 상영관도 부족했고 어렵게 상영관을
잡았어도 징검다리 식의 상영시간으로 인해 흥행은 물 건너갔고 본전이나 뽑았는지 모르겠다.

 


영화에는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남상미가 나온다. 이번 영화에 보인 그녀의 연기에서 한층 깊이가 더해졌음을 느꼈다. 점점 진짜 배우가 되어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남상미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묘한 신뢰감이 느껴진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한 느낌이랄까. 20대의
가벼움이 아닌 그녀의 나잇대에서 볼 수 없는 깊은 느낌이 묻어나온다. 그래서 난 그녀가 20대 후반일거라 생각했는데 프로필을
보고 깜짝 놀랐다. 25살이라니.



  

젊음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젊음이라는 껍데기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기도 한다. 젊었을 때 멋지고 이쁜 사람은 많아도 나이 들고서도 멋진 사람은 드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그래서, 젊은 여배우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남상미는 참으로 중년이 기대되는 여배우다.



영진공 self_fish





















    

“업(Up)”, 미결과제와 인생의 무게


예전에 <밀양>에 대해서 쓰면서 미결감(unfinishedness)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http://kr.blog.yahoo.com/psy_jjanga/1460495)
픽사에서 만든 새 애니매이션 <업>의 주제도 바로 그 미결감 혹은 미결된 과제다.

-= IMAGE 1 =-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주인공인 칼은 남미에 있는 파라다이스 폭포와 그곳에서 펼치는 모험담을 동경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꿈을 공유하는 여자친구인 엘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물론 그들에게 행복만 온 것은 아니었다. 엘리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에 그 둘에게 남은 꿈은 함께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 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빠듯하게 살아가는 그 둘에게 먼 여행에 필요한 시간과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엘리가 먼저 세상을 뜨고, 말 그대로 덩그러니 혼자 남은 칼은 늙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미결과제인 파라다이스 폭포 여행을 달성하기 위해서(그리고 깨끗이 이 세상과 작별하기 위해서) 엘리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그 둘이 살던 집에 풍선을 매달아 기상천외한 여행을 떠난다.

칼이 풍선에 매달린 집을 이끌고 파라다이스 폭포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미결과제에 묶여버린 인생의 상징이다. 자신의 과거가 담긴 집을 놓칠 수 없어서 현재의 친구 러셀을 돕지 못하는 그를 보자면 그가 집을 끌고 가는 건지, 아니면 집에 끌려 다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이미지는



이 이미지의 풍선버젼이다.


그러던 칼은 어떤 작은 사건을 계기로 그 미결감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집을 버릴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그는 과거에 얽매여 죽음만 기다리던 삶에서 벗어나 지금 현재의 소소한 모험을 즐기는 건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영화는 그래서 인생의 미결과제가 주는 무거움과 노곤함을 겪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보편적인 설득력도 거기서 온다. 여기에 미결과제들을 매달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내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건만,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풍선을 타고 날아가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