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드”, 지옥에 떨어져서도 삶을 선택한 사람들

원작을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꽤 오래 전에 ‘마침내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주연은 비고 모텐슨’이라는 소식을 누군가의 흥분된 글을 통해 접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 영화가 마침내 국내 상영관에 걸렸고 저는 여전히 원작에 대해서는 그저 ‘성서에 비견될 작품’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홍보 문구 정도로만 접한 채 작품을 관람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내용이 인류의 멸망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 아이를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사투라는 사전 정보도 접했습니다 – 관객에 따라서는 이런 정도의 사전 정보는 미리 접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되었거나 영화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거나 눈 뜨고 보기 괴롭다 하더라도 중간에 나가버리시면 마지막 엔딩에서 비춰지는 작지만 강렬한 희망의 빛을 보실 수가 없으니 부디 끝까지 인내하시길.

대재난의 원인과 사건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극중 대화와 플래쉬백을 통해 대략의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핵전쟁이나 대자연의 역습이 있었던 것 같더군요. 사실 <더 로드>는 대재난이 일어나게 된 원인 보다는 그 이후의 삶에 집중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위를 통해 세상이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다룰 필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경고가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생지옥이 되어버려 오직 고통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할까요. 그런 지옥에서의 삶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대다수 사람들의 심정과 선택이 납득이 갈 만큼 영화는 대재난 이후의 세상을 충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재난의 광경을 스펙타클하게 전시하는 영화들은 많았지만 그 이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거의 없었죠. <더 로드> 속의 광경은 마치 <매트릭스>(1999) 이전 기계들에 의해 인류 문명이 초토화된 직후의 모습, 시온에 모여 다시 반란과 재건을 꿈꿀 수 있게 되기 이전 인류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동식물이 거의 멸종해버린 상황이니 쓰레기를 줍고 벌레를 잡아먹거나 아니면 로또라도 맞은 것처럼 운 좋게 숨겨진 식량 창고를 발견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어리고 병약한 사람을 잡아먹어야만 생존을 할 수 있는 극악의 상황입니다.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은 배가 고파서 사람을 잡아먹느냐 먹지 않느냐로 간단히 구분될 따름이고, 그런 딜레마가 고통스럽다면 미리 죽는 것으로 이른 안식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모피어스나 네오와 같은 영웅들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 오늘 하루 발버둥쳐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처럼 매우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란 그와 같은 상황이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객들의 잠재적인 낙관 의식 때문에 대체로 상징적인 이야기로 보여지게 되고, 좀 더 근원적인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설정으로 이해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더 로드>는 생지옥이나 다름 없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아닌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삶을 선택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결국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최후의 순간까지 지켜나가야 할 이유에 대해 묻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인간의 운명을 신에게 맡기라 하지 않고 오히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인류 문명의 재건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일어서라고 힘주어 역설하는 작품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서에 비견된다는 코맥 맥카시 원작의 <더 로드>는 사실은 성서 보다는 인본주의 정신의 강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성서에 비교하자면 구약 보다는 신약이겠지요.

그러나 영화 <더 로드>의 관람 자체가 성서를 읽는 것 만큼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한 편의 영화로서 <더 로드>는 메시지의 전달에 집착하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훌륭한 이야기를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내지는 노파심이 든다고 할까요. 사실은 영화가 다소 밋밋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뭐라 탓하기가 어려운 것이 <더 로드>의 화법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이야기는 차라리 영화 보다는 원작의 풀 텍스트를 직접 접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원작을 읽은 것은 아닙니다만 영화는 아무래도 원작의 줄거리만을 시청각적으로 묘사했을 따름인 것 같거든요. 그 장면들 사이사이의 행간을 영화가 재미 없다는 사람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 소설의 영화화로서 <더 로드>는 나무랄 데가 없는 훌륭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만드는 비고 모텐슨의 헌신적인 연기에 기립 박수를 보냅니다.

좀 흉칙한 분장이긴 했습니다만 오랜만에 보는 가이 피어스, 너무 반가웠습니다.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는데 그러나 마지막에 만난 이 베테랑 아저씨는 “어서 길을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원작에선 이에 관한 뭔가 충분한 설명이 있을 것 같은데, 영화만으로 접하고 나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인류 문명의 멸망 이후에 생존과 재건을 위해서는 과거 문명의 잔재를 벗어나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 정도입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던 놀라운 아버지였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수퍼 히어로는 될 수가 없었던 거죠. 리어커를 훔쳐가던 흑인을 길 위에서 붙잡아 홀딱 벗겨버린 사건도 사실상 살인이나 다름 없었던 일이었기에 이래저래 마음에 남습니다.

어쨌든 <더 로드>를 보며 인류 문명의 역사란 내일 당장 죽더라도 지금 이 순간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몇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 왔으며 또한 재건의 희망 역시 그 안에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이란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끼린 이러지 맙시다’라고 하는 아주 기초적인 룰을 끝내 지키려는 자와 그런 것 쯤이야 진작에 개무시하며 사는 자, 그리고 그와 같은 딜레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자들로 이뤄진 곳이 아닐까요.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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