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기억






1984년,
아버지가 이상한 놈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금성 칼라티브이에 이놈을 꼽더니 말씀하셨다.

“니가 말한 게 이거냐?”
“아니, 이게 아니라 MSX라니까 아빠.”

애플2와의 첫 만남이었다.

MSX는 카세트테이프로 게임을 로딩시킬 수 있었던 반면 애플은 팩이 있어야 했다.
기껏 국민소득 1000불(이건 명확치 않다.)을 갓넘긴 대한민국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게임팩 가격은 어린이가 지불할만한, 혹은 어린이를 위해 지불할만할 금액이 아니었다.

산 걸 무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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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래밍 책을 한권 더불어 사주셨다.

한달 가까이 실수와 실수의 반복을 계속하면서 만든건 무슨 양궁게임 같은 거였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그래밍이었다.
명절 때 모은 돈으로 한 두어개 팩을 산 뒤 그 놈이 어디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이사갔을 때 버리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MSX도 애플도 사라져갔다.

이들의 뒤를 이었던 건 IBM이었다.
XT에서 AT로 그리고 대망의 386 시대가 나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열렸다.

1992년 16mhz 클럭속도의 AT, 50메가 하드, 8비트 스테레오 애드립, 2400bps mnp모뎀, 메가VGA로 중무장한 컴퓨터를 80칼럼 삼성 도트프린터와 함께 구매했을 때 가격은 150만원이었다. 아래한글 1.2, 경북대에서 만든 이야기 4.0, 도스 5.0, 그리고 M이 나오기 전까지 활개를 쳤던 L과 함께 신세상이 열렸다.

케텔은 1200bps, 피씨서브는 2400bps속도로 통신서비스를 했다. 통신인구는 94년 군대 입대할 때까지 2만명이 되지 않았다. 피씨서브 유머동에서 나는 웹상 최초로 방망이 깍던 노인, 허생전을 패러디 해 꽤 유명해지기도 했다. 별사랑 동호회에서 로마 신화를 외웠다. 게오르규만큼의 신화에 대한 안목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여자를 꼬시기에 이만큼 좋은 스킬은 또 없었다.

케텔은 코텔에서 하이텔로, 피씨서브는 천리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천리안은 국내선 전화요금으로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모자이크. VGA급 사진 한 장을 받는 데 8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전화요금은 끊임없이 올라갔으며 전화요금 고지서 때문에 엄마에게 맞는 일이 잦아졌다.



군대를 가고 제대를 했다.
사람들은 GUI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니, 도스는?’


애플을 만들던 회사에서 제안한 GUI는 윈도우에서 꽃을 피웠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샀던 컴퓨터와는 이별을 하기로 했다.

펜티엄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133클럭의 씨피유와 16메가 부두 3D, 그리고 250메가에 이르는 하드디스크는 운동장이었다. 모터레이스2, 울프3D, 그리고 툼레이더는 과거 인디아나존스, 킹스퀘스트, 울티마에 받았던 충격 이상을 주었다.

56k  속도로 동작하는 모뎀은 과거 통신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유니텔, 천리안, 하이텔 그리고 엘지(이름이 기억 안남.)가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었다. 나우누리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수도 없는 벙개를 나가 끊임없는 내상을 입으며 내린 결론은 ‘이쁜 여자는 만날 놈도 많은데 왜 채팅을 하겠냐?”였다. 미련이란게 쉽게 떨어지면 미련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불쌍해서 천당에 보내줄만큼 폭탄들을 제거했다. 심지어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는 여인네를 부축하면서 누가 볼까봐 고개를 못든 적도 많았다.

1999년. 1년을 작정하고 모은 돈으로 산건 씽크패드 버터플
라이 키보드가 달린 70* 모델이었다. 350만원짜리 중고. 발표수업 때 빔프로젝트로 연결된 노트북을 본 순간 120명의 학우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봤던 건 잊지 못하겠다. 당연히 A+일줄 알았던 학점은 D였다. 출석미달. ㅅㅂ.

졸업을 하고 입사 첫해까지 썼던 그 노트북과의 인연으로 X30, X31, T40까지 아이비엠 빠돌이 역할에 충실 했던 삶이 바뀐건 2005년이었다.

SD에서 HD로 넘어가는 방송환경에서 과거의 편집장비는 방송사에서도 큰 부담이었다. 프리미어는 턱없이 부족했고 에딧박스는 기존 장비와 가격차가 없었고 아비드는 방송용 편집과 어울리지 못했다. 파이널컷프로는 이러한 방송환경의 요구를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페이드 아웃시 한 프레임이 빠지는 문제가 디졸브 시 한 프레임이 비는 몇몇의 문제가 있었지만 장비 가격은 0이 하나 두개 빠지면서도 동급의 효과를 낼 수 있게 구현되었다.

애플은 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범 빠돌이에서 최초로 조우했던 애플과 다시 만났다.

2006년,
20년이 넘게 지나서 나는 다시 애플과 만났다. 맥북.


6개월만에 키보드 하단이 뭉개지는 취약점이 있던 망할놈이었지만 키노트와 파이널컷프로의 매력을 버릴 수는 없는 놈이었다.

키노트는 PT계에서 절대강자였다. PT 승률의 50%는 키노트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이 나왔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데이터 요금이 거짓말처럼 무제한 요금제로 바뀌었다. 피쳐폰은 유물이 되었다. 불쌍한 내 전지현폰 미니스커트는 6개월만에 애물단지가 되었다. 미니스커트를 사면 전지현이 혹여나 한번 나타나 주지나 않을까 하는 속된 욕망이 부끄러워졌다.

어디서나 이메일을 요금걱정 안하고 보게 되었고 웹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리는 게 지루해지지 않았다. 한게임 고스톱을 치건, 헬키드를 하건 팔라독을 하건 엠파이어워를 하건 할 건 넘쳐났다.

사이즈의 차이가 효용의 차이를 만든다는 걸 아이패드를 통해 배웠다.

맥북프로로 업무를 보고 파이널컷프로로 편집을 하고 키노트로 PT를 진행하고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아이패드로 시간을 때우는 나는 완벽한 앱등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서른 아홉해 중에 20년을 컴퓨터와 함께 살았고 그중 7년을 애플과 함께 살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이룬 저변 위에서 애플이 바꾼 건 환경이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 덕분에 나는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영진공 그럴껄

애플과 MS, 지향점의 차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파인만이 쓴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라는 자서전이 있다. 거기서 파인만은 다른 동료 물리학자들과 함께 컴퓨터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의 일을 언급하며, 동료 중 한 사람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결과를 도출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 자체를 다루는 재미에 빠져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지금 곁에 책이 없어서 정확한 원문을 언급하긴 어렵지만, 대충 그런 뉘앙스의 말이었다)



그리고 매킨토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 래스킨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운영체계에 대한 나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어플리케이션으로 작업하기 위해 거쳐가야 할 것. 운영체계는 자동차 엔진의 피스톤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들여다 보거나 만질 이유가 거의 없는 것처럼요.”



또한, 예전에 내가 번역했던 Usable GUI Design : A Quick Guide(원문 링크는 소실, 번역문 링크로 대체)라는 글에선 첫머리부터 이런 주장을 펼친다.



“사용자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려 들지 않는다 … 사용자는 작업을 가능한 빠르고 쉽게 끝내고 싶어하며, 어플리케이션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도구다. 어플리케이션을 배우고 다루는데 들이는 시간만큼, 사용자는 자신의 할 일을 뒤로 미뤄야 할 것이다 …”




여태껏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구장창 늘어 놨는데, 이걸 간단히 요약하자면 “컴퓨터고, OS고, 어플리케이션이고, 도구일 뿐이다. 복잡하게 만들지 마!”로 정리되겠다.


물론 해커라던가, 너드라던가, 파워 유저라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주장에 찬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로 뭔가 결과를 얻기보다는 컴퓨터 자체를 가지고 노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이니까. 고백하건데, 한때 나도 그랬다.

MS는 해커 – 혹은 파워 유저의 논리에 충실하다. 어쨌든 이거저거 다 조작하고, 변경하고, 바꿀 수 있다. 하다못해 오피스 소프트웨어의 메뉴 위치까지도 옮겨놓을 수 있을 정도다. UI 최적화를 하기보다는 자유롭게 UI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잘못하면 시스템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까지도 설정할 수 있도록 해서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꾸밀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MS의 철학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써드파티 윈도우 어플리케이션 역시 이러한 철학에 충실하다.



하지만 애플은 이와는 다르다. 철저하게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작업 환경을 만들어 제공한다. 그걸로 끝. UI 변경? 글쎄, 창닫기 버튼 색깔 정도는 바꿀 수 있겠지만 …… 기능 설정? 멍청한 사용자 주제에 감히 어딜 건드리겠다고, 버럭!




MS의 방식은 개발자에게 적합하다.
골치 아픈 사용성은 나중에 생각하고, 뚝딱뚝딱 만들기 좋다. 같은 개발자라거나 해커, 너드, 파워 유저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그래, 모름지기 컴퓨터라면 이래야지! OS라면 이래야지! 어플리케이션이라면 이래야지! 내 맘대로 확장하고, 바꿀 수 있어야지!



반면, 애플의 방식은 대부분의 덤앤더머 …… 아니, 일반인들에게 적합하다.
OS나 어플리케이션에 익숙해지기까지의 학습 곡선이 상당히 짧다. 어라, 그냥 굴리니까 되네? 어라, 그냥 문지르니까 되네? 그래, 내가 원한 건 이렇게 간단한 거야! 복잡한 건 파워 유저니 뭐니 하면서 잘난 체 하는 피터 파커 같은 안경잽이들이나 쓰라고 해!



이 둘의 지향점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맥용 어플리케이션인 스크라이브너 scrivener(http://www.literatureandlatte.com/scrivener.html )와 윈도우용 어플리케이션인 드림노트( http://ukino.com/?mid=dreamnote)이다.

둘 다 소설가 또는 시나리오 작가가 글을 쓰는 데 최적화된 작가(Writer)용 툴로써, 어느 쪽이건 개발자는 한 명뿐이다. 실질적인 개발 능력에선 별 차이가 없으니만큼 공평한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참고샷 : 스크라이브너 화면



참고샷 : 드림노트 화면




기능을 보면 당연히 드림노트 쪽이 훨씬 많아 보인다. 캐릭터도 따로 관리할 수 있고, 지도도 만들 수 있고, 하여간 이거저거 다 된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직접 써 보면 “도대체 이걸 뭐 어쩌라는 거지?”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개발자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능을 분주히 집어넣는 데 몰두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인종일 거라고 착각해버린 것이다(주 1). 하지만 작가는 개발자보다는 덤앤더머에 가까운 인종이다(나도 요즘 그렇게 퇴화되어 가고 있다!)



스크라이브너는 이와는 정반대다. 기능은 부족할진 몰라도 우아하고 편안하다. 스크린샷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필요한 기능을 덤앤더머 …… 아니, 작가들이 쓰기 편하게 배치시켜 놨다.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겠는데”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저 아쉬움일 뿐이다. 용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여태까지는 MS의 방향이 옳다고 믿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점차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접하게 되고, 컴퓨팅 환경이 휴대용 기기로 확산되면서부터는 서서히 애플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고 있다. 어찌 됐건 이 세상엔 개발자나 해커, 파워 유저보다는 일반유저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그나저나 스크라이브너 2.0은 대체 언제나 나오려나? 이번엔 제발 타임라인 기능이 추가되어 주기를, 제발!




(주1: 드림노트 개발자의 명예를 위해 미리 밝혀두지만, 혼자서 이만한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만일 제대로 된 기획자가 UI를 정비한다면 드림노트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영진공 DJ Han

애플이 사파리4로 노리는 것은?





최근, 애플이 웹브라우저 사파리 4 베타 버전을 발표했다. CSS3를 완벽하게 지원한다는둥, 새로운 자바스크립트 엔진 [니트로]의 탑재로 성능이 대폭 향상됐다는둥, 화려한 선전문구를 곁들이면서, 맥용과 윈도우용을 동시에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써 보면 빠르다. 윈도우 버전의 사파리 4와 크롬의 속도를 벤치마킹해 봤는데 구글 V8 벤치마크 슈트를 제외한 다른 모든 테스트 – 선스파이더 테스트 등 – 에서 사파리가 크롬보다 조금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줬다. 게다가 텍스트 렌더링 엔진도 윈도우 기본 엔진을 이용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이 때문일까, 벌써부터 “애플이 본격적으로 브라우저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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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플은 데스크탑 시장에서 브라우저 전쟁을 벌일 여력도, 이유도 없다.


뭐시라? 똑 같은 웹킷 엔진을 이용해서 더 빠르고 멋지고 쌈빡한 브라우저를 만든 구글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급히 사파리 4를 만든 거라고? 만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너무 순진한 것임에 틀림없다.


일전에 나는 애플이 윈도우용 사파리 3를 개발한 이유는 아이폰/아이팟 터치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아이폰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으면 웹어플리케이션으로 만들라던 애플의 권고는 사람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수작에 불과했다. 얼마 가지 않아 애플은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긴 척 하면서 아이폰용 공식 SDK와 함께 애플 앱스토어의 오픈을 선언했고,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 그리고 벌어지고 있는지 – 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뭐지? 애플에서 사파리 윈도우 버전을 계속해서 개발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순전히 홍보를 위해서다. 사파리의 핵심, 애플 비장의 무기, 웹킷을 홍보하기 위해서.


현재, 임비디드 OS를 사용하는 모바일 시장에서 웹킷에 대한 관심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1) 공짜고,


2) 맥, 윈도우는 물론 리눅스용 소스코드까지 공개되었고,


3) 같은 오픈소스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에 비해 소스코드 크기가 압도적으로 작은 데다가,


4) 저사양 cpu에서도 비교적 빠른 속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구글 안드로이드에는 웹킷 엔진을 사용한 크롬 웹브라우저가 들어갔고, 노키아도 일부 휴대폰에 웹킷 브라우저를 얹었다. Adobe AIR 런타임 엔진에도 웹킷이 내장되었고, AIR 어플리케이션은 웹킷을 기반으로 해서 실행된다.


즉, 일반 데스크탑 사용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웹킷은 야금야금 시장을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특히 모바일 시장을 중심으로.


이제, HTML 5에 CSS 3에 몇 배나 더 빠른 자바 스크립트 엔진을 탑재한 사파리 4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많은 제품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웹킷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제품에 웹킷을 기본 브라우저로 탑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강구할 것이다.


앞으로도 데스크탑 PC 시장에선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그리고 모질라의 파이어폭스가 계속해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사파리나 크롬 등을 비롯한 웹킷 기반 웹브라우저는 데스크탑 시장에선 어쩔 수 없는 3인자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데스크탑을 벗어난 다른 시장에서 웹킷은 서서히 시장을 잠식할 것이 분명하다. 좋건, 싫건, 확실하게. 그리고 윈도우용 사파리 4는 그러기 위한 초석일 따름이다.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