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2부]



 

 


 


 


* 1부에서 이어집니다. *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수컷 공작의 과시 쩌는 꼬리깃은 마치 3류 로맨스 영화 속 사나이의 순정과도 같다. 오로지 암컷을 꼬셔서 대업(?)을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화려해서 눈에도 잘 띄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운데다 ‘공기역학이란 먹는건가요 우걱우걱’한 듯한 꼬리깃은 천적을 피해서 날기는 고사하고 뛰어서 도망가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초창기 진화론자들에게 이런 수컷 공작의 미련 곰탱이 같은 모습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래서는 암컷을 꼬시기도 전에 천적의 한 끼 식사가 될 것은 뻔해 보이는데 대체 왜 수컷 공작은 이렇게 위험천만한 방식을 택한 것일까? 그리고 화려한 깃털을 택한 초창기의 수컷들은 대부분 쉽게 천적들에게 잡아 먹혔을텐데 어떻게 이런 비실용적인 부분들이 진화한 것일까?


 


현재의 진화론은 ‘생존’이란 것도 결국 번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따라 수컷 공작의 꼬리깃은 생존보다는 번식에 더 치중한 결과이다. 최근엔 꼬리깃의 화려하고 대칭적인 무늬는 암컷에게 보다 건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공작새 수컷의 진짜 속사정이야 어찌됐건 이러한 논의들의 당연한 전제는 수컷의 꼬리는 암컷을 꼬시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누구도 이 점에 관해서는 의심치 않았으며 관찰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세이어 형님에게 그건 개풀 뜯어 먹는 소리였다. 세이어의 눈에는 수컷 공작의 꼬리란 위장을 위한 것이었다! 열 번 떠드는 것 보다 한번 jpg파일을 보여주는 게 낫다고 했던가. 세이어는 자신의 주장을 알아먹지 못하는 우매한 이들에게 직접 그림을 그려 눈앞에 펼쳐 보였다.


 


 


 




Abbott Handerson Thayer, Peacock in the Woods, 1907


 


 


 


그런데 공작 수컷이 그토록 위장이 잘 되어 있다면, 칙칙한 암컷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이어를 영구히 조롱거리로 만든 작품은 공작이 아니라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위장한” 채 호수에서 먹이를 찾는 홍학들을 그린 것이었다.


 


 


 




Abbott Handerson Thayer,

White Flamingos, Red Flamingos: The Skies They Simulate, 1909


 


 


 


“전통적으로 ‘눈에 확 띄는’ 이 새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체색을 통해서 완벽하게 자신을 지운다. 그들은 사람이 으레 그들을 보는 위치인 위에서 보았을 때는 대부분 눈에 잘 띄지만, 그들의 체색은 이른 아침과 저녁의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소실되는’데에 경이로울 만큼 적합하다.” (Thayer)


 



 


 

도대체 홍학들은 왜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사라져야 하는걸까? 그저 머릿속이 아득해져 온다.



세이어는 독단이라는 우물에 빠져 그 안에서 보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인 냥 자기 이론만이 유일한 법칙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그는 동물들의 모든 무늬들이 위장과 은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이어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그린 또다른 작품들.

그림은 정말 잘그렸는데 …..



 


 


아마존에는 헬리코니드Heliconidae라는 화려한 나비 종이 있다. 이 나비들은 마치 포식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날개를 펄럭이며 유유자적 날아다닌다.

 

실제로 헤리코니드 종은 아주 강한 냄새를 풍기며, 몸이 잘리면 강한 냄새의 체액이 나온다. 이 체액은 피부에 닿으면 염증을 일으킨다. 헬리코니드는 시계꽃passiflora종의 꽃만을 먹는데 이 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안화물을 포함한 독소를 만들어낸다.

 


헬리코니드는 이 꽃을 먹음으로써 유독한 성질을 획득한 것이다. 이렇게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비들이 포식자들에게 잡혀 비명횡사하는 순간에도 헬리코니드 종 나비들은 자유롭게 꽃밭을 노닐 수 있었다.


 


 


 




시계꽃 종인 Bluecrown Passionflower


 


 


 


그런데 아마존에는 헬리코니드와 비슷한 무늬를 가진 레프탈리스Leptalis 나비가 있다. 이 나비는 상대적으로 맛이 좋기 때문에 포식자들이 환영하는 나비였다. 본의 아니게 맛있게 태어난 이 나비들은 난처해졌다. 힘이 센 것도 아니요 독이나, 침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뭐든 하지 않으면 종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 판이었다.


 


그래서 이 나비들이 택한 것은 의태였다. 맛대가리 없는 헬리코니드의 무늬를 따라함으로서 포식자가 자신들을 맛대가리 없는 헬리코니드라고 착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오늘날 이 이론은 당시 연구했던 과학자인 베이츠의 이름을 따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라고 부른다.


 


즉, 맛이 없거나 독이나 침 등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거친 녀석들의 무늬와 색깔을 흉내내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의태의 예, 꿀벌과 꽃등에.

어린 시절 종종 꿀벌이 꽃등에 인 줄 알고 잡았다가 쏘였던 적이 있다.

 






 

당연히 세이어는 의태 개념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는 헬리코니우스 무늬도 경고색이 아니라 앉아 있을 때 잎으로 위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비 따위가 어디서 건방지게 경고색 따위를 가지고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게다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판단을 한단 말인가. 발끈한 세이어는 1903년, 베이츠의 의태 이론을 논박하겠다는 목적으로 가족을 데리고 헬리코니우스가 있는 섬으로 탐사를 갔다. 그의 딸 글래디스는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의 특수 임무는 나비를 맛보는 것이었다! …

(중략) … 아버지는 실제로 나비들을 맛보았는데, 맛에서 아무런 차이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행동거지가 얄미워도 분명한 점은 세이어는 입만 싼 멍청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건방을 떠는 와중에도 그는 위장의 또하나의 메커니즘인 분단색disruptive coloration 이론을 발견하였다.


 


 


 




 


 



 

사물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윤곽은 그 사물을 알아차리는데 쉽고 간단하면서도 매우 큰 정보를 준다. 만약 원시인이 길을 가다 사자를 마주쳤는데 이게 내가 기억하는 사자인가 싶어서 그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간 단숨에 뼈와 살이 분리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멀리서도 이놈이 사자인지 아님 내가 사냥해야 할 사슴인지 빠르게 알아채야만 했다.

 


이때  사물의 고유한 윤곽은 멀리서도 그 사물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많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사물의 윤곽을 기억하고, 자신이 아는 사물의 윤곽과 끊임없이 비교한다. 은폐색의 메커니즘은 바로 이 윤곽을 없애는 것이다. 배경과 비슷한 색깔과 무늬를 이용해 자신의 윤곽을 배경과 섞어 버림으로써 눈 앞에서 사라지는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큰 동물과 작은 동물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작은 동물일수록 윤곽을 없애는 것은 쉽다. 게다가 그들은 종종 오랜시간을 꼼짝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큰 동물은 다르다. 커다란 형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윤곽들은 왠만해선 은폐하기 힘들다. 그들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대부분은 바로 들키고 말 것이다. 그래서 큰 동물들은 작은 동물과는 다른 메커니즘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분단색이다. 분단색은 어떤 의미에서 방어피음이나 위장색과는 정반대이다. 분단색이란 커다란 윤곽을 없앨 수 없다면 상대가 인식하기 어렵게 윤곽을 임의적인 덩어리로 쪼개는 것이다.


 


 


  




가봉살무사Bitis gabonica를 보면,

납작한 머리가 들쑥날쑥한 두 덩어리로 쪼개지고


굵은 밧줄이 등을 따라서 뚜렷이 뻗어 있는 것 같다. 


낙엽이 깔린 땅에서는 이 뱀의 윤곽이 사라지기 쉽다.


 





세이어는 분단색을 “동물의 몸에 아무렇게나 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격한 변장 법칙에 따라서 배치된, 대비되는 그늘과 색깔 덩어리들이 이루는 뚜렷한 무늬”라고 정의했다.



세이어는 이처럼 동물들의 무늬를 위장과 은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이어의 법칙은 자연의 위장 중 한 측면만을 가리킬 뿐이다. 세이어의 문제점은 자연의 어떤 타당하고 진정한 원리가 반드시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가정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꼭 그렇지는 않은데, 생물학은 예외의 사례로 가득한 과학이다. 생물들의 무늬 역시 위장의 기능 뿐만 아니라 경고색이나 의태(다른 동물의 무늬를 모방하는 것) 기능을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세이어는 위장을 제외한 다른 주장들을 돌파리 의사의 처방전으로 보았다. 스컹크나 말벌과 같은 동물들의 무늬들도 경고색이 아닌 위장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벌은 햇빛과 그늘에 잠긴 녹색 식생과 노란 꽃이라는 평균 배경에 놓일 때 근원적으로 그리고 아주 철저히 지워진다.
” (Thayer, 1909)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세이어는 숙이기는 커녕 고개를 바싹들고 끊임없이 떠들며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과시를 하는 밥맛 중에도 ‘상밥맛’이었다.


 


당연히 이런 행동거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법이다. 세이어는 세계적으로 자신의 적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기어코 그는 미국 전직 대통령의 혐오 대상이 되고야 말았다.   



 


발췌 및 편집:

    피터 포브스 저, 이한음 역, [현혹과 기만], 까치, 2012


 


영진공 self_fish


 


 


 


 


 


 


 


 


 


 


 


 


 


 


 


 


 


 


 


 


 


 


 


 



 

투구게 님의 살신성인 (2/2)



* 1부에 이어서 계속 *

인류는 모처럼 세균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지 못했던 내독소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세균에 대항할 무기인 의료용품의 내독소 오염은 중요한 문제였다. 적과 싸울 총, 칼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는 형국과 다름없다. 내독소를 완벽히 제거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내독소의 오염유무라도 알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눈 질끈 감고 귀엽디 귀여운 토끼를 이용해 보기도 했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나갔고 검사 시간도 오래 걸렸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투구게님이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투구게의 출생의, 아니 혈액의 비밀을 밝혀 이후 그들을 예수님과 같은 고난과 희생의 삶으로 내던진 이는 프레드 뱅Fred Bang이라는 과학자다. 그는 투구게의 혈액 순환을 연구하던 중 세균 감염으로 죽은 투구게의 피가 반고체 덩어리로 응고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뭔가 이상야릇함을 느끼고 더욱 연구에 박차를 가해 투구게의 혈액 응고 현상이 포유동물의 내독소 반응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즉 우리는 열이 나는 반면 투구게는 대인배스럽게도 세균과 접촉한 부분의 혈액을 응고시켜버리는 것이다. 과연 자연계의 왕고참다운 면모라 아니할 수 없다. 투구게님이 이처럼 과감한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생체적 특징 때문이다.


포유류는 모세혈관이 몸 전체에 뻗어있으며 이를 이용해 혈액과 산소를 운반한다. 즉 혈액이 혈관 내에서만 순환하는데 이를 폐쇄 순환계close ciculatory system라고 한다. 그럼 당연히 이와 반대되는 순환계도 있을 터 혈액과 세포액간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것을 개방 순환계open ciculatory system라 하며 절지 동물과 연체 동물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폐쇄 순환계는 당연히 관으로만 혈액과 산소를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혈액의 흐름이 빠르다. 따라서 빠른 속도로 산소와 혈액을 공급해야 하는 부산스런 종들이 이런 폐쇄 순환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순환계는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에 따라서 다양한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투구게는 일부에서 혈액과 조직액이 섞이는 반폐쇄 순환계semi-closed ciculatory system를 가지고 있다. 투구게의 혈관은 동맥과 정맥이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동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은 온몸을 돌아 아가미로 온다. 여기서 조직액과 섞이며 산소를 공급받아 심장으로 들어가는 순환구조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조직액이 바닷물과 맞닿고 있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생물들의 사체와 똥과 각질과 오줌 등등이 섞여있는 바다 속은 그람음성 균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이렇게 개방되어 있는 곳은 슬럼가를 향해 활짝 열려져 있는 현관문과도 같다. 어서 몸 안으로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 놓았는데 그람음성 균이 정중히 거절할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투구게는 요넘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무기와 녀석들의 LPS(내독소)를 보다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해야만 했다.



폐쇄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포유류는 세균이 침입하여 몸을 접수하려면 반드시 좁디 좁고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모세혈관을 거쳐야 한다. 동시에 면역 시스템이 발동하여 백혈구들이 몰려가 일선에서 린치를 가하는 시스템이며 이런 과정과 함께 체온을 올려서 세균에게 불지옥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투구게는 포유류 만큼의 촘촘한 모세혈관도 없고 변온동물이라 체온으로 세균들을 태워죽일 수도 없다. 그런데 하필 일부의 세포액은 외부로 열려있고 설상가상 심장과 가깝기도 하다. 그래서 투구게는 세균과 한 게임 뛰는데 시간을 질질 끌었다가 골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좀더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책이 필요했다.


투구게의 혈액에는 우리의 백혈구와 같은 항균 세포로 아메바 같이 생긴 유주세포amoebocyte가 있다. 이 세포들은 만능 일꾼들인데 상처 난 곳도 치료하고 소화 물질들을 옮기거나 저장하기도 한다. 이 세포 안에는 두 종류의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있는데 이 알갱이들은 응고인자coagulogen를 가지고 있다. 투구게의 면역체계는 LPS에 아주 민감한 유주세포를 이용해 세균의 그림자라도 보일라치면 재빨리 출동하여 세포내 알갱이들을 방출하여 세균을 둘러싸고 응고시켜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투구게의 면역 시스템

프레드 뱅 연구팀은 바로 투구게의 이 민감한 항균 시스템인 유주세포의 활용방안을 발견한 것이다. 투구게의 피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LAL(Limulus Amebocyte Lysate)는 현재 각종 의약품의 오염여부를 검사하는데 쓰이고 있다. 이게 얼마나 정밀한지 미국의 모 제약회사 직원의 말에 다르면 올림픽 경기용 수영장에 떨어진 설탕 알갱이 하나를 감지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실험결과도 4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앞서 토끼를 사용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마차에서 바로 KTX로의 진보인 것이다.




강제 헌혈 당하는 투구게들


하지만 누군가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라고 했던가
. 인류는 투구게의 혈액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지만 투구게와 투구게를 먹고 사는 생물들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었다. 그 결과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생물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동해안에서는 의료용으로 투구게를 포획하고 있다. 다행히 마구잡이로 포획하지는 않고 그 주의 규정에 따라 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해마다 50만 마리의 투구게가 포획되고 있다. 이렇게 잡힌 투구게는 30% 정도를 헌혈당하고 다시 방생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15~30%의 투구게가 죽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투구게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투구게의 알을 계절음식으로 애용하고 있었던 붉은가슴도요red knot의 수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학자들은 투구게 수의 감소로 이로 인해 투구게의 알을 먹는 붉은가슴도요의 수도 감소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델라웨어, 메릴랜드, 뉴욕주는 포획할 수 있는 투구게의 수를 제한하였고 뉴저지 주는 투구게님에게 손대지 말라며 남획을 중단시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붉은가슴도요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20년 전의 개체수에는 훨씬 못미치는 실정이다.





이렇듯 투구게의 피는 인류 복지 증진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로인해 투구게의 요절과 붉은가슴도요의 기아로 이어지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이와같은 형국을 타파할 새로운 물질이 등장하였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연구팀이 아프리카에 사는 발톱개구리의 피부에서 투구게의 피에 버금가는 물질을 발견한 것이다. 이 물질을 전자칩에 코팅함으로써 세균에 접촉할 경우 전기신호를 발생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만약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투구게님의 어깨를 한층 가볍게 만들 수 있을뿐더러 붉은가슴도요의 식탁도 다시 풍요로워 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물론 발톱 개구리는 …… …… 눈물 좀 닦고 ……



나 지금 떨고있니?

가장 최선의 방안은 내독소를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론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지 물질이 단순한 화학물질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 나사나 망치 따위가 아니라 컴퓨터 같은 복잡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내제하고 있어야 한다. 과연 이것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회의적이긴 하지만 인류가 최근 100년간 이뤄낸 것을 보면 언젠가는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소망은 인류 만큼이나 투구게 역시 절실히 원할 것이다.





영진공 self_fish

니콜라우스 스테노는 어디서 튀어나온 듣보잡일까? (2/2)





17
세기 과학혁명의 물결은 지구과학으로도 흘러들었다. 그리하여 이제 지구 자체도 연구 대상이 되었고 지구의 기원은 풀어야할 스도쿠 문제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셜록 홈즈라도 사건을 조사하려면 단서가 있어야 하듯이 지구의 기원을 연구하려면 바탕이 되는 어떤 단서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자료라고 해봐야 성경의 창세기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당연히 초창기 지구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가설은 창세기라는 앞마당 안에서만 뛰어놀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구를 시작한 자연학자들의 눈에 점차 곤혹스러운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조개나 고대 생물처럼 생긴 돌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현재에는 볼 수 없는 생물이었고 바다생물처럼 생긴 돌들이 쌩뚱맞게도 산꼭대기나 내륙 깊은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는게 아닌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창세기가 말하고 있는 노아의 홍수 밖에는 없었다
. 옳거니!

그러나 대홍수는 어떻게 조개나 생물의 뼈 들을 돌처럼 만들며
, 또 이것들이 어떻게 깊은 땅속에 묻히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더구나 일부지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조가비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한차례의 노아의 홍수로는 이런 결과는 만들어 낼 수 없어보였다.

당시엔 지구의 창조는 당연히
6,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산이 불쑥 생기고 바닷물이 바짝 말랐다는 이야기는 SF소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화석에 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은 바다 생물과 비슷하게는 생겼지만 그건 그냥 땅속에서 자란 특별한 돌이라고 했던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던 스테노 형님은 피렌체 메디치가의 페르디난도
2세가 해안에서 잡은 상어를 해부하게 되었다. 스테노는 해부를 통해 상어의 이빨이 당시 약물로 쓰이던 혀돌(tongue stone)이라는 돌과 너무도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연히 그 혀돌은 땅속에서 자라거나 폭풍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혀돌

그러나 스테노 형님은 이런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해부학자로서 사람과 동물의 몸을 통해 몸 속에 있는 기관이나 조직은 제각기 맡은 기능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연하게 완전히 똑같은 이빨이나 조가비가 만들어질 순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들이 단단한 암석 속에 묻히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 결국 스테노는 쿨하게 해부학 연구를 접고 화석을 연구하는데 온 시간을 바친다. 흥미를 느낀 갑부 페르디난도 2세 역시 스테노의 연구 비용 전액을 지원해 주었다. 그리하여 노력 끝에 상어 이빨과 내륙 깊숙한 암석층에서 발견된 화석 잔해물에서 드러난 특징들을 비교해 그 잔해물이 상어의 이빨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1667년 출판한 [해부한 상어의 머리]에 실린 삽화…

스테노 형님이 해부한 것이 정말 상어였을까?! -_-


이후 스테노는 지질학의 기초가 담겨있는 그의 걸작 [자연적으로 고체에 파묻힌 고체에 관한 논문의 서문]을 발표하였다. 이 책에서 스테노는 수정과 같은 무기물 고체와 조개나 뼈와 같은 유기물 고체의 생성이 다르다는 데 주목했다.

그래서 화석이 묻혀 있는 암석이 본래 연한 퇴적물이었으나 조개나 뼈가 묻힌 뒤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지면서 단단한 암석이 되었음을 알아냈다
.

스테노가 제기한 퇴적암 개념은 지질학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699년 출판된 [자연적으로 고체에 파묻힌 고체에 관한 논문의 서문],

연구비를 대준 페르디난도 2세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박혀있다.

스테노는 이러한 퇴적암 개념을 훨씬 규모가 큰 지층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그리하여 지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층층이 연속적으로 퇴적된 것임을 알아냈다. 맨 아래 있는 지층이 가장 오래된 지층이며, 퇴적물은 평평하게 쌓여 수평층을 이루고, 퇴적물은 옆으로 넓게 퍼져 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기울거나 절단되고 겹친 암석층은 지각이 움직였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자연적으로 파묻힌….]에 실려있는,
토스카나 지역의 지층이 쌓이고 지형이 

형성된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 다이어그램


그러나 스테노 형님 역시도 한낱 인간이었다
. 시대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성경의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토스카나의 지층을 관찰해 육지가 바닷물로 뒤덮인 적이 최소 두 번이고, 그 중 적어도 한번은 지층이 기울면서 바뀌었으리라는 결론에서 그의 연구는 끝을 맺는다.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스테노는 자신이 연구한 과학은 창세기의 부족한 기록을 메우는 길이라 여겼다
. 스테노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는 모두 그랬다. 우리가 현재 본좌라 일컫는 대부분의 자연과학자들은 종교인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발표한 자연과학서는 성경의 내용을 보완하고 있었다. 둘 다 신학자들이 쓴 저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 창세기를 보완하는데 쓰였다고 해서 창조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한마디로 가당찮은 이야기다
. 그렇게 치면 19세기 전까지 대부분의 생물학자, 지질학자들은 창조학자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이후 린네니 뷔퐁이니 퀴비에 등과 같은 생물학자와 지질학의 본좌들이 서로의 머리채를 붙잡고 지구의 나이와 기원에 대해
, 자연사에 대해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스테노의 이러한 업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18세기에 들어서며 현존하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에도 화석이 있다는 것과, 이것이 한 때 살아 있었던 생물체의 잔해라는 것은 폭넓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형님은 학자로서 한창 이름을 떨치던 때에 일부 동료 과학자들에게 크게 낙담을 하고
, 1667년 과학자의 길을 스스로 그만두고 성직자가 되었다. 그리곤 사제로서 독일 북부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다 1686년에 48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해부학자로서 해부학 연구를 통해 근육
, 심장, 뇌에 관한 통설을 뒤엎었으며, 지질학의 창시자로서 암석층을 살펴서 지구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과학적 원리들을 처음으로 주장한 니콜라우스 스테노 형님은,

결코 듣보잡이 아니다
.




* 참고 및 발췌 *

로버트 헉슬리 저
곽명단 역, [위대한 박물학자], 21세기 북스, 2009.
졸 쉐켈포드 저강윤재 역, [현대 의학의 선구자 하비], 바다출판사, 2006.
[현대 과학의 풍경], 궁리, 2008.
존 그리빈 저강윤재김옥빈 역, [과학], 들녘, 2004.
 http://www.ucmp.berkeley.edu/history/steno.html


 



영진공 self_fish


 

다윈, 진화론이라는 세기의 떡밥을 던지다 – 3부



 

* 다윈, 진화론이라는 세기의 떡밥을 던지다- 1부


* 다윈, 진화론이라는 세기의 떡밥을 던지다- 2부

2. 생물의 진화를 생각하다



 



뷔퐁 Count de Buffon(1707~1788)



프랑스의 자연학자이며 파리 왕립 식물원의 총책임자였던 뷔퐁백작은 귀티가 좔좔흐르는 사진에서 느껴지듯 벼락부자 아버지를 두었던 재벌 2세 출신이었다. 부잣집 가정사가 늘 그렇듯 이 집안도 재산문제로 시끄러웠다. 재혼하려는 아버지와 뷔퐁과의 재산싸움이 있었고 이 싸움에서 뷔퐁이 승리하며 많은 재산을 차지한다. 게다가 뷔퐁은 헐랭이 재벌 2세가 아니었다. 사업수완을 발휘하며 여러 사업에 투자를 하여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돈이 차고 넘치는 뷔퐁형님이었지만 유별나게도 자연사 공부에 열중 했다. 뭐 느긋하게 자연사 책이나 뒤적이며 지적인 모양새나 풍길 요량인가 싶었지만 그는 정말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자연사를 파고들었다. 형님은 1749년부터 1804년에 걸쳐 무려 44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하며 다산(?)의 제왕스런 면모를 보여준다. 이 중 [자연사 Historire Naturelle]는 그의 가장 기념비적 작품이자 과학사에 있어서도 의미있는 작품이다. 이해하기 쉽게 쓰인 덕분에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된다.



[자연사 Historire Naturelle]


독창적인 이론은 없지만 풍부한 자료들을 끌어모아 체계적인 형태로 정리함으로써 


여러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연구의 시발점을 제공했고, 사람들에게 박물학자 붐을 


일으키는 자극제가 되었다.



뷔퐁형님은 과학 행정가이자 대중적인 활동가로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아쉽게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형님은 종들은 진화한다고 주장했던 초기 진화론자 중 한 분이었다. 형님은 진화를 과거의 튼튼한 조상으로부터 점점 퇴화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명의 창조에 개입하는 것은 오로지 열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의 지구는 온도가 높았기 때문에 생물의 창조가 더 쉬웠고, 고대의 뼈에서 보듯 당시의 생물 역시 그렇게 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사] 4권에서 당나귀는 말이라는 종에서 진화한(그러니까 퇴보한) 후손이며 


원숭이도 인간의 종에서 진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뷔퐁형님은 돼지의 발가락뼈나 꼬리처럼 쓸모없는 부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연은 창조할 때 
궁극적인 목적 따위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지적 설계론에 맞불을 놓는다.



방향이 잘못되긴 했지만 뷔퐁형님은 생물의 진화를 인정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진화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진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윈이 진화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듯 진화의 개념은 휠씬 전에 등장했다. 다윈이 본좌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진화의 매커니즘을 훌륭하게 설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다윈보다 앞서 진화의 매커니즘을 설명하였던 분이 계셨다. 바로 비극의 주인공 라마르크 형님이시다! 두둥~


장 밥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

드디어 생물학계 최고의 비극의 주인공인 라마르크 형님이 등장하셨다. 다윈보다 먼저 진화의 메커니즘에 눈을 뜬 훌륭한 형님이지만 ‘기린’이라는 포유동물 하나로 인해 그의 업적과 이론들은 모두 버로우 되고 말았다. 그러나 형님은 결코 기린이란 단어 하나로 평가되어서는 안될 인물이다. 라마르크 형님의 진화이론은 비록 틀리긴 했지만 후배 진화론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다윈 역시 라마르크 형님의 이론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님의 이론을 받아들여 자신의 진화이론을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학계는 진화 메커니즘을 둘러싸고 다윈주의와 라마르크주의로 나뉘어 박터지게 싸우게 된다. 이 싸움에서 다윈주의가 승리하면서 라마르트 형님의 이론은 찬밥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아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라마르크 형님은 ‘장-밥티스트 피에르 앙투안 드 모네 드 라마르크’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진 프랑스의 별 볼일 없는 군소귀족 출신이었다. 군인, 은행원 등 초반 직업은 과학과는 멀어 보였지만 마음속엔 과학을 향한 알콜 램프를 태우고 있던 분이었다. 은행 일을 하는 틈틈이 의학, 생물학, 기상학을 공부했고 결국 책까지 집필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1776년에는 [대기의 주요 현상에 대하여]를,
1778년에는 [프랑스의 식물 flore-francaise]을 출판한다.
이 중 [프랑스의 식물]은 프랑스 식물의 분류에 관한 표준 교재가 되면서
식물학자로서 명성을 날리며 학술회 회원으로 선출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프랑스의 식물]의 대박이후 은행일에서 손을 떼고 본격적으로 생물학계로 진출하게 되는데 이런 라마르크 형님 뒤를 봐준 이가 바로 재벌 2세 생물학자 뷔퐁이었다. 뷔퐁의 달콤한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라마르크 형님은 1790년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에 입성하여 곤충과 벌레 분야의 연구 책임을 맡게 된다. 형님은 이 연구에서 무척추동물invertebrates이라는 이름을 창안하여 이들을 분류한다.

 

척추가 없는 친구들을 분류하고 무척추동물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은 다름아닌 라마르크 형님이었다.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많았던 형님은 생물학, 기상학, 물리학, 화학 등에 까지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참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써냈다. 그 중에는 라부아지에 본좌님의 이론에 반대되는 물리화학적 이야기를 논하는 책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형님의 글솜씨가 안드로메다스러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들이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형님이 택했던 직업들은 대개가 돈 안되는 명예직들이어서 일생동안 돈 걱정을 하며 살아가야 했고 말년에는 눈이 머는 등 순탄한 일생은 아니었다.


화학계의 본좌 라부아지에가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혁명사상에 동조적이었던 라마르크 형님은 다행히 화를 면하게 된다.

무척추동물을 분류했고 고생물학을 창시하였으며, 현대적 의미의 화석 용어를 고안하는 등 후덜덜한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역시 가장 손꼽히는 업적은 다윈보다 앞서 진화의 메커니즘을 제시한 점과 생물학이라는 학문의 체계를 세운 점일 것이다.

형님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연구하는 과학으로서 생리학이나 해부학 등의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던 연구들을 독립된 분과학문으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리고 동물, 식물, 광물의 3개로 나뉘어있던 것을 동식물을 합친 생물계와 무기계로 재편성했다. 이후 생물계는 일관된 물리화학적 체계를 근거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는 생기론이라 하여 생물체를 이루는 구성 물질과 무기체를
이루는 물질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라마르크 형님도 생명체와 무기체는
엄격히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생기론자는 아니었다.
형님은 생명체든 무기체든
그 구성물질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법칙은 동일하며 단지
이 구성물질들이 어떻게 조직화되어 있느냐에 따라 생명체와 무기체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라마르크 형님은 평생 동안 개체가 형질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과, 그것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진화의 방식에 대한 모델을 개발했다. 이런 생각이 처음 드러난 것이 1809년 발표한 [동물철학philosophie zoologique]에서인데 바로 책이 라마르크 형님을 지금까지도 기린의 아버지(?)로 기억되게 만든 악몽의 출발점이 된다.

그럼 어째서 [동물철학]은 논란의 장작더미가 되었을까?

라마르크 형님은 [동물철학]에서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2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환경의 상호 관계 속에서 필요성에 의해 기관을 창조하고, 그 기관은 사용할수록 강해지며, 사용하지 않을수록 퇴화된다는 용불용설이론과 둘째는 이렇게 획득한 것은 세대를 거쳐 자손에게 전달된다고 하는 획득형질의 유전설이다.



용불용설과 획득형질의 유전을 설명하기 위해 라마르크는 기린의 목을 예로 든다.
높이 있는 나뭇잎을 먹기위해 목을 길게 빼 용을 쓰다보니 목이 점점 늘어났으며
이렇게 획득한 형질은 유전이 되어 지금의 기린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진화이론은 단지 1부의 내용일 뿐이다. 2부는 생명체와 무기물의 차이를 설명하는 일반 생물학, 3부는 심리 생리학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듯 [동물 철학]은 진화론에 국한된 것이 아닌 생물학이라는 학문의 기초를 명확히 세우고 이를 연장으로 심리학적 토대까지 세우려고 했던 거창하고 값진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는 저서였다. 


하지만 당시 이 책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이 제대로 읽히기 시작한 것은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사람들이 진화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러나 라마르크 형님의 글솜씨는 훌륭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이상학적 단어들이 너울거렸고 지독한 문어체를 구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내용이 접수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생물을 분석하는 데 사용된 물리화학적 이론들은 구닥다리였다. 이미 세상은 화학계의 본좌인 라부아지에의 화학이론들로 갈아탔는데 [동물철학]에는 18세기 화학이론이 적용되어 있었다. 게다가 [동물철학]에서 진화와 관련된 제1부만 발췌하여 번역되고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그의 책은 왜곡되어 단편적으로 수용되면서 알멩이는 없어지고 이해를 돕기 위해 등장했던 기린만이 살아남아 구천을 떠돌게 된다. 



라마르크와 다윈의 진화이론의 차이.
즉 기린의 목은 목적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일어난 변이가 아니라
우연히 발생한 목이 긴 돌연변이가 환경에 더 적합하였고 
그럼으로서 목이 짧은 기린은 도태되고 목이 긴 기린만 살아 남은 것이다.

 


 어쩌면 다윈과 라마르크는 참 비슷한 구석이 많다.
둘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제시하였고 그 예로 든 동물로 인해 놀림을 당해야만 했다.
  



라마르크 형님은 멸종되는 종은 없고 다만 다른 형태로 발전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단순한 단세포 생물에서 점점 복잡한 생물로 진화되었으며 이런 메커니즘으로 용불용설과 획득형질의 유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진화의 과정에는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한 인물이 발끈하고 튀어나오게 된다. 라마르크 형님은 사후에 다윈주의자들에게 시달렸지만 살아생전에도 만만찮은 상대에게 시달림을 당했다. 그를 괴롭힌 인물은 형님보다 늦게 파리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온 후배였다. 그는 종은 변하지 않으며 단지 대격변으로 모든 종이 멸종하고 다시 생겨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유명했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생물학자였다. 

그는 퀴비에였다.



영진공 self_fish

 

다윈, 진화론이라는 세기의 떡밥을 던지다 – 2부







과학혁명으로 체면을 구긴 종교계가 짱돌을 굴려 내놓은 것이 자연신학이었다. 자연신학이란 쉽게 말해 자연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며 인간들은 자연의 법칙을 연구함으로써 고귀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털끝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이론이다. 즉 과학은 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라는 말이다.




자연신학은 과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종교는 계속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과학혁명 이후에도 과학은 여전히 종교의 앞마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과학을 신을 이해하는 도구로 본 덕분에 기독교는 과학을 장려했다. 수도원 같은 곳에서는 과학에 몰두하는 성직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신의 존재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였다. 특히 성경을 장르문학으로 분류시킬 수 있는 지구의 나이와 생물의 발생, 진화에 관한 문제에서 종교는 과학의 발목을 꽈악 붙잡고 있었다. 다른 과학 분야보다 생물학의 발전이 늦어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다윈 이전의 생물학 논란들




다윈 이전의 보수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생물의 기원을 대략 6000년 전에 하나님이 모든 생물들을 각각 별개로 창조하였다고 보았다. 즉 ‘강쥐는 태초에도 개새끼였으며 고냥이는 태초에도 고양이였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산이나 들판, 바다 등과 같은 지질학적, 생물학적 환경은 노아의 홍수와 같은 대재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하마와 고래는 같은 조상에서 진화하였다고 밝혀져 있다.


하지만 개별창조이론으로 보면 하마와 고래는 태초에도 하마와 고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식물학, 자연사, 지질학과 같은 분야는 견본 수집 말고는 딱히 연구라고 할만한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학혁명 후 물리학이나 천문학, 화학 등은 빡시게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하며 원리를 정립하는 등 학문의 체계가 잡혀갔고 당연히 그에 따라서 많은 법칙을 밝혀냈다.




하지만 생물학이나 지질학은 할게 없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저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선 그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들을 모으는 오타쿠만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18세기에는 식물채집이 유행이었고 많은 부유한 아마추어 생물 오덕들에 의해 표본들이 수집되었다.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며 역마살이 낀 유럽인들은 세계 구석구석으로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동식물들을 수집했고 이러한 견본들은 런던, 파리, 스웨덴과 같은 중심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지에는 바로바로 그 유명한 분류학의 본좌인 뷔퐁과 린네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표본들을 합리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분류 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피똥을 싸는 노력을 기울인다.






나는 누군가 ... 여긴 어딘가 ...




수많은 표본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뜻하지 않게 생물 전체를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기리고자 그의 소중한 피조물들을 모았는데 이게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에 냉수를 끼얻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러한 관찰과 증거들을 토대로 발생과 진화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자 지구의 나이에 관해서도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생기게 된다. 새로운 이론이 전제하는 진화는 아주 작고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환경과 복잡한 구조의 생물종들이 완성되려면 졸라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18세기 말에 이르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학자들이 지구가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되었음을 서서히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럼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 발생과 진화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던 지구 나이에 관해 당시 종교계의 눈치를 봐야 했던 생물학 본좌들의 고뇌를 간략하게 되짚어 보자.






생물의 발생과 진화에 관해 고민하다







존 레이 John Ray (1628~1705)




옆집 사는 외국인 강사 이름이 아니다. 존 형님은 17세기 가장 위대한 박물학자이자 생물 분류학의 토대를 마련한 형님이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린네는 어쩌면 편집증 환자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구를 정복이라도 할 기세로 1677년 [조류학], 1686년 [어류의 역사], 1686년 [식물의 역사], 1710년 [곤충의 역사]를 출판하며 생태계에 질서를 부여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종(種)을 분류학의 기본단위로 확립했다는 점이다. 즉, 현대적 의미로 종이라는 개념을 확립한 이는 존 형님이다.







식물의 역사는  1686년, 1688년, 1704년에 걸쳐 3권을 출간한다.
여기에는1만 8천 가지 이상의 식물들을 각각의 계통, 형태학, 분포, 서식 등을
기준으로 분류했을 뿐만 아니라 약으로의 효용과 새싹의 발아 과정 등
식물의 성장과 관련된 특징들도 기술해 놓았다.






하지만 존 형님은 신앙심이 깊었다. 그는 창조에 대한 성경의 말씀과 자신의 연구에서 오는 괴리감에 힘들어했다. 개별창조이론으로 보기엔 생물은 너무도 다양했다. 예를들어 하나님은 벼룩을 창조할 때 조차 개벼룩, 사람벼룩, 고양이 벼룩 등 아주 세세하게 창조했다는 소리인데 이게 아무리 생각해도 좀 구렸다. 하지만 순정파였던 존 형님은 결국 1691년 [창조에서 신의 지혜 Wisdom of God in the Greation]를 발표하며 창조설을 받아들이고 이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창조에서 신의 지혜]

존 형님은 신을 뿌리칠 수 없었던 로맨티스트였던 거시다! 








칼 린네우스 Carl Linnaeus (1707~1778)




분류학의 본좌답게 편집증적인 성격을 지녔던 린네 형님은 오늘날도 쓰이고 있는 ‘이명식binomial’ 명명 체계를 확립한 사람이다. 그 덕분에 이후 후배 동식물학자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롭게 발견한 종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19세기 들어 종의 관계와 진화법칙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원천이 된다.




이명식binomial이란 생물분류의 기본단위를 종(種, species)으로 하여, 속(屬, Genus)-과(科, Family)-목(目, Order)-강(綱, Class)-문(門, Phylum) 등의 하위 단계로 생물을 분류하고 이를 토대로 생물 각 종의 이름을 그 종이 속하는 속명(屬名)과 그 종 자체의 이름(種名)을 병기하여 2단어로 구성하는 명칭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데, Homo는 속명이고, sapiens는 종명이다. 이 때 속명의 머리문자는 대문자로, 종명의 머리문자는 소문자로 나타낸다.








이명식이 사용되기 전에는 나라마다 지방마다 같은 생물을 지칭하는 이름은


 다양했으며 그 이름 또한 매우 복잡했다.


프랑스 생물학자이자 박물학자였던 Brisson Mathurin Jacques (1723~1806)은


사자를 Felis cauda in flocum definente(꼬리의 끝에 뭉치가 있는 고양이)로,


호랑이를 Felis flava maculis longis nigris variegata(길고 검은 무늬를 가진


황색고양이)로 명명했다. 현재 이명식에 의하면 사자는 Panther leo,


호랑이는 Panthera tigris로 명명한다.


이 얼마나 심플한가!







린네 형님의 히트작 [식물종 Species Plantarum]




린네 형님은 1735년 [자연체계 Systema Naturae]를 출판하지만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준 책은 1753년에 출판된 [식물종 Species Plantarum]이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이명식을 언급한다. 그리고 1758년 이 책의 10판 1권에서 이명식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포유류, 영장류, 호모 사피엔스 등의 용어도 정의한다.




린네 형님은 이명식 말고 또 하나 중요한 발걸음을 내딨는데 그건 당시로선 불경스럽게도 생물의 분류에 ‘인간’을 처음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게다가 형님은 대담하게도 인간이 원숭이들과 똑같은 속(屬)에 속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현재 DNA에 따르면 사람은 침팬지로 분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린네 형님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기독교에 대들 정도의 깡은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한 속의 유일한 구성원으로 분류하였고 지금까지 호모Homo 속(屬)에는 인간 단 하나의 종만 있다.







1746년 출판한 자신의 [스베치카의 동물들Fauna Svecica]에서 그는


사람과 원숭이를 다르게 분류해야 할 과학적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위에 언급했듯이 린네 형님은 기독교를 믿었고 따라서 개별창조이론을 믿고 있었다. 그는 현재 지상에 존재하는 종의 수는 태초에 신이 창조했던 종의 수와 같다고 믿었다. 그러나 린네 형님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자료와 증거들을 보며 개별창조이론이 뭔가 구리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결국 말년에는 종들 사이의 구별과 종 내부의 다양성이 모두 시간에 의해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기 시작한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