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남자들의 연애심리

연애 할 때 남자는 어떻게 변할까요?

그걸 다 얘기한다는 거는 불가능한 일이니 대표적으로, <연애소설>속 지환(차태현)과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성기(류승룡)을 예로 들어 살펴 보겠습니다.

<연애소설>의 지환은 우연히 마음에 꽂힌 여자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뒤늦게 자전거 타고 쫓아가서 어설픈 고백을 하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계로 얼굴을 가린 채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매우 닭살스럽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공부벌레들에겐 상당히 공감가는 모습이죠. 그런데 그 겁 많고 조심스럽던 이 남자, 극장에서 자기 여자친구 옆자리에 다리를 올려놓은 건달에게 발을 치워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죠, 물론 속으로는 덜덜 떨고 있습니다만. 그 이전에는 한번도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었을 이 인간이 처음으로 용기를 낸 것 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혼자 샤워를 하면서 뿌듯해 하기고 하죠. 연애 할 때 남자는 이렇게 변하게 됩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성기는 바로 이런 모습의 극대화 버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연애할 때 남자는 시인이 되고, 영웅이 되며, 철학자와 박애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내성적이던 권상우는 학교 일진들과 옥상에서 결투를 벌이고, <프리티우먼>에서 냉혹한 인수합병가였던 리처드 기어는 갑자기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는 맨발로 잔디를 걸어보잖습니까 … 이게 모두 다 연애 때문입니다.

원래 남자들은 그렇게 키워지지 않았죠. 남자들의 관계는 목표달성을 위한 계약관계로 신의성실의 의무는 목표달성까지만 유효하다고 배웁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상대방의 속마음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서로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그저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남의 내면에 대해 무관심하면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는 법인지라 그래서 남자들은 감정을 이해하거나 잘 묘사하거나 감정을 교류하는 분야에서 초보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남자가 연애를 하면서 일시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연애할 때는 내성적이던 남자는 외향적이 되고, 외향적이던 남자는 내성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연애는 자기 성찰과 상대와의 소통을 모두 필요로 하는데 자기성찰을 위해선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내성능력이 필요해지고 소통을 하기 위해선 마음 속의 감정과 생각을 상대에게 드러내는 외향성이 필요하기 때문인 거죠.

영화 속의 성기는 바로 그런 양성성을 발휘하는 남자의 대표적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닭살 돋는 대사들 … “(나를 못찾으면)미아보호소에 가 있어요. 당신은 애기니까.!” … 이런 닭살돋는 대사를 거리낌없이 내뱉으려면 용기와 자신감이 어찌 아니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자신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과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서 닭살 대사는 주변에겐 닭살인데 둘 사이에선 서로의 신뢰를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난다는 점이죠. 여자들은 연애할 때는 그렇게 멋있고 자상하던 자기 남자가 결혼하더니 촌스럽고 무뚝뚝한 모습으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거 오해입니다! 사실 남자는 원래 촌스럽고 무뚝뚝했으나 연애 때문에 잠깐 변신을 했었던 거죠. 공주가 키스를 해 준 개구리가 왕자가 되는 건 동화 속 얘기가 아니라 현실이었던 겁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두현(이선균)도 그런 남자였습니다. 한때는 두현도 로맨틱하고 용감했었죠. 일본에서 처음 만난 정인에게 “저기요, 이런 미인을 만난 것도 영광인데 제가 밥한번 살께요.”라고 던지는 것 자체가 두현에겐 대단한 일이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이런 변화가 끝나고 원상태로 복귀합니다.

이제 두현의 목표는 다른 것들로 교체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성공하기 같은. 아내를 비롯한 삶의 나머지 요소들은 그저 그 목표달성에 필요하거나 방해가 되는 조건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정인은 그런 무뚝뚝하고 촌스러운 남자랑 결혼한 게 아니라 연애할 때의 균형잡힌 그와 결혼한 건데, 결혼 후에도 그런 모습을 기대하며 계속 행동하는데 두현이 받아주지 않으니까 갈수록 그 행동의 강도가 높아진 거였습니다.

정인이 이렇게 말하죠 … “침묵에 길들여지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에요. 하지만 전 계속 말할 거예요. 제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을 거예요.” … 이건 두현이 변하더라도 자신은 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마음은 정인이 두현에게 하는 대사 “나는 예뻤고.. 당신은 멋졌고.. 우린.. 아름다웠잖아.. 나.. 아직 예뻐?” 에서도 드러납니다.

성기가 “나는 네 아내를 그냥 원래대로의 여자로 대해줬을 뿐이야”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두현도 성기와 정인의 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보며 뒤늦게 정인의 심정을 이해하죠. “니가 항상 투덜대는 게 외로워서 그런 거였더라고. 내가 외로우니깐 그렇더라고.”

연애가 남자에게 발휘하는 마법은 어떤 경우에는 오래 가고 어떤 경우엔 금새 사그라지게 됩니다. 그 차이는 일차적으로 남자에게 달려있지만 어느 정도는 여자의 몫도 있습니다.

왜인고하니, 남자는 처음에 여자의 이미지 때문에 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삼고 움직입니다. 하지만 목표달성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찾아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대개 그 목표는 성장이나 발전과 같은 것이죠.

그러니까 남자가 그녀를 통해서 변화할 것이라 기대하는 한, 그리고 그 변화가 그에게 반가운 한, 그에게서 연애는 끝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결결이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


박민규의 책을 재미있게 읽기는 하지만, 썩 박민규의 팬인 것은 아닌지라 사실 살까 말까 몇번 망설였던 책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다. 결론부터 말하지면, 나는 이 책이 박민규 특유의 ‘판타지’책이 아닐까 싶어 사기를 망설였는데, 누군가 ‘연애소설’이라고 알려주어 사게 되었다. 그리고 주말 내내 몇번을 여기 저기 발췌해 읽을 만큼 나는 이 책이 좋았다.

박민규 소설은 약간 나는 선호를 두게 되는게 “카스테라”같이 상징이 강하고 판타지가 가미된 것보다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방금 수퍼스타스. 라고 표기했다가 고쳤다) 마지막 팬클럽”같이 땅에 발 붙이고 있는 배경과, 땅에 발 붙이고 있는 상징이 있는 소설이 더 마음에 든다. ‘우주적 농담’은 한 두번은 웃을만 한데, 장편소설의 처음 부터 끝까지 가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암튼, 표지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제목만 보고, 나는 또 ‘우주적이면서 고딕적인’배경의 거대한 농담을 하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내용은 그저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실에 있는 그 배경, 제대로 묘사되었다고 믿겨지는 그 시절에 대한 묘사. 그리고 결결이 아름다운 첫사랑 얘기에 그만 확 빠지고 말았다.

사람마다 감상은 아마 다 다를 것이다. 연애담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자기 연애랑 비슷하면 더 감동받기 마련이고, 더 감정이입 하기 마련이고, 또 그렇게 얼마나 자기의 연애를 소환해 내느냐가 소설의 재미의 대부분을 차지 하니까. 게다가 … 내가 남자들이 쓴 첫사랑이나 연애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남자작가들의 연애담은 소영웅의식이나, 자기연민이나, 모성결핍을 지나치게 벌리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처음 도입부에서 주인공 남녀의 선배인 ‘요한’의 현학적인 잘난척이 장광설로 늘어질때는 아 … 이거 데미안 류의 지루한 성장동화인가.(난 데미안 싫어한다) 하고 의심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개똥철학을 엄청 읊어대지만 사랑에 대한 추상적이고 자위적인 성찰에 그치지 않는다. 화자의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고, 또 그것이 화자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부여하고는 있지만 그 연애가 다시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자기연민이나, 본능에의 천착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담담하게 주변의 상황을 다 설명하면서도 결국은 사람하는 그 사람들끼리의 얘기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이 문단을 다 쓰고 보니, 내가 참 쉬운 얘기를 어렵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대부분 스토리를 즐겨보고, 어떤 묘사나 글귀를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그 글귀를 옮겨적거나 하지는 않는 편인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는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너무 많다. 책을 늘 들고 다닐 수는 없으므로, 좋아하는 글귀들을 여기 블로그에 옮겨놓고 생각날때마다 온라인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실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번도 모리스 라벨과 밥 딜런을 좋아하고, 미셸을 좋아하고, 선인장 꽃과 더스틴 호프만을 좋아하는 여자애들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오빠. 나 오늘 이뻐? 그래 이뻐. 토요일날 행사장에 와 줄거지? 아니 안가. 흥 나 삐진다. 일이 있단 말이야. 그래도 그날 안 오면 절교야. 한번만 봐줘. 정말 집에 일이 있다니까. 일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 …… 이를 테면. 그녀를 만나기 전의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는 여자애들의 전부였던 것이었다. (p171)

신의 선물이란

아마도 그런 것일 거라,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서서히 회전을 멈추던 두 마리 목마와, 땅으로 돌아와 서로의 손을 잡던 두 사람을 잊을 수 없다. 돌아서 한참을 걸을 때까지 서로의 등에 묻어 있던 색색의 불빛도 잊지 못한다. 어두운 세계를 달려갈 버스를 기다리던 순간까지도… 그때의 불빛들이 숨 쉬듯 깜박이며 우리의 몸에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벤치에 앉아 우리는 한 짝씩 이어폰을 나눠 꽂았다.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p202)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p228)

그리고 감사합니다. 당신이 제게 준 빛이 있는 한… 이제 어떤 삶을 살아도 저는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매일 아침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여자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실은 이 길을 택함으로써 끝끝내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그러니까 저…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얘기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p289)

여름이었을 것이다. 샤워를 하다 문득,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게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었다.
생활
생활
생활 (p301)

곳곳에 배경음악에 대한 설명이 있다는 것으로 ‘하루키적’이라는 평도 많이 올라와 있다. 그렇게 배경음악을 지정하기 시작한게 하루키라 하더라도 난 박민규쪽의 선곡이 훨씬 맘에 든다. 마치 내가 이응준의 단편들을 좋아하는 것 처럼. 이응준 소설을 읽으면, 그 소설의 장소묘사와 배경음악묘사가. 가끔은. “이 남자 내가 사귀었던 남자인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소설가 이응준님 용서하세요. 그럴리가) 내 취향과 비슷하고 눈과 귀에 착 감긴다.

스토리 자체보다도 배경과 음악이 익숙해서도 소설을 좋아할 수 있다는 면을 생각해 보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나에게 참 좋은 소설이다.

영진공 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