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미신과 속설은 어떻게 생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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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가 원래 불편부당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제가 참여한 책을 소개합니다.
네, 이 글은 광고입니다. ^_^;;;;;;

사실 제가 이 책의 번역 작업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다른 한 명에 비해서 훨씬 작습니다. 그러니 제가 번역자를 대표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바로 그 이유, 즉 제가 번역 과정에서 부족했던 참여를 대신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번역에 참여한 비중은 적지만 저는 이 책의 내용에 절절히 공감합니다.
한때 청소년들의 범죄나 비행이 모두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의 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혐의는 갑자기 만화로 옮겨갔죠. <일진회> 같은 만화 때문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일진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수많은 만화가들이 검열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90년대 말이 되자 다시 혐의는 인터넷에게 뒤집어씌워졌습니다. 당시 청소년 범죄와 자살이 증가했던 것은 인터넷 보다는 외환위기로 인한 사회불안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함에도 사람들은 인터넷을 탓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혐의가 컴퓨터 게임으로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매체와 청소년을 연구주제로 삼은 사람으로서 저는 영화, 만화, 혹은 인터넷이나 게임이 청소년들의 범죄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득하고 증명하느라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논증도, 심지어 통계수치나 미국이나 유럽의 연구결과와 같은 명백한 증거들도 대단한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약이었을 뿐입니다. 문제의 그 매체가 너무도 당연해져서 주목을 덜 받게 되면 저절로 이 혐의는 사라지곤 했거든요.

즉, 어떤 매체건 처음에 소개되고 확산되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많은 관심과 함께 다양한 혐의가 씌워집니다. 만약 처음에 부여된 혐의가 옳았다면 그 매체가 확산될수록 문제는 더 커져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매체가 완전히 사회에 뿌리내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알거나 사용하게 되면 그 혐의는 어느새 잊혀집니다. 사람들은 이런 잘못된 고발을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어리석어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예측하려는 본능” 탓이라고 해야겠죠.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원인’과 ‘결과’로 구분해서 파악하고 이걸 통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과정을 예측하고 통제한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거든요. 우리는 모두 구름을 보고 비가 올 것을 예측할 줄 알았던 선조의 후손들인 셈 아닙니까. 그러나 이렇게 하나를 보고 열을 알아내는 인간의 위대한 능력이 부적절한 대상에 대해서 발휘 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우리를 지금까지 생존하고 번성해서 만물의 영장으로까지 만들어준 그 본능이 우리로 하여금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짓는다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불치병도 낫는다는 등의 바보 같은 미신을 사실로 믿게 만드는 거죠.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오류들이 왜 오류인지를 아주 세세하게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는 비법도 알려줍니다. 간단히 말해서 역과 대우에 해당하는 경우를 고려해보라는 것인데 책의 후반부에 더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물론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빠듯합니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판단을 할 때만 그 전략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말 중요한 판단인지를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어보기 전부터 이 책에서 지적한 미신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 미신이라는 주장에 반신반의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고, 심지어는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반신반의할 독자도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잘못된 추론에 대해서 반박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바라는 것은 그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이 책의 전략을 고려해보시라는 겁니다.

다른 이유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영진공 짱가

* 제가 많이 하진 않았더라도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는 꽤 자신있습니다.
다른 언어 번역서와의 교차검증까지 거치며 다듬고, 검토 할만큼 한 책입니다.

** 원제보다 번역본의 제목이 더 그럴듯한 책은 보기 드문데, 이 책이 그렇네요. ^_^
원래 제목은
How We Know What Isn’t So 라는, 적확하지만 우리말로는 임팩트가 좀 약한 이름입니다.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요즘 책을 읽는 사람은 희귀종이다. TV는 더 재미있어졌고, 인터넷은 한번 들어가면 두세시간 날리는 건 기본이다. 출퇴근시간에는 다들 휴대폰만 들여다보는지라 책은커녕 신문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이런 게 아니라해도 학생들은 입시와 취직공부에 목을 매야 한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지는 게 우리네 세상이지만, 책을 읽고 나서 같이 얘기라도 나눌 사람이 주위엔 없다. 그런 와중에 나온 <침대와 책>은 책 이야기에 목마른 독서가들을 열광시켰다. “나 어릴 적 이런 책 읽었는데, 그 책은 이 대목이 좋아.”라고 할 때 그들은 반가움을 느꼈고, “비가 오면 파전에 막걸리를 먹으며 이런 구절을 떠올리곤 해.”라고 하면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대입해가며 깊이 공감했다.

그 책의 저자인 정혜윤 피디가 두 번째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문난 책벌레들을 찾아다니며 일합을 겨루는데, 이런 식이다.
고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 내 청춘을 장식한 책이다…내가 행복하지 못하니까 세상과 싸우는 거더라.
저자: 그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자신들의 동질성의 실현,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한바탕 꿈이다.
대부분의 무공 대결이 상대를 해치는 것이지만, 책을 매개로 한 대결은 서로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보는 이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끈다. 책의 장면 장면들은 오비완-아나킨의 대결보다 아름답고, <와호장룡>의 대나무숲 결투보다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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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독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추천도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30쪽).”는 저자의 말은 저자 자신에게도 오롯이 돌아간다. <침대와 책>에서 그간 읽었던 수많은 책들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맥락과 의미를 만들어낸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층 더 세련된 배치를 통해 읽는 이를 몰입시킨다.  “몰락하는 일만 남았”기에 딱 한권의 책만 세상에 남긴 하퍼 리같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저자는 책이 거듭될수록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독서광들에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나처럼 문학소년의 시기를 겪지 않은 사람에겐 책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는 이 책이 ‘서재가 사랑한 책’ 1위에 올라간 건 당연한 소치다. 저자의 화려한 무공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야구만 봤던 내 삶을 되돌리고 싶어지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저자의 세 번째 책을 기다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련다.

한마디 더. 내용으로 보나, ‘이진경’ ‘박노자’ ‘공지영’ 등의 이름으로 보나 이 책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모습을 표지에 싣는 ‘미녀마케팅’을 펼쳐, 미녀에 약한 독자들마저 끌어들인다.


영진공 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