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전율을 전해주는 문장과 디테일

 

김훈의 <강산무진>을 읽고 전율한다. 

이야기는 한가하지만 그의 문장은 웅숭깊고 치열하다. 그래서 이야기도 웅숭깊고 치열해진다. 비루하고 낙담한 인물들은 문장 덕분에 굳건하다. 그 한가한 이야기에 전율하는 것은 온전히 김훈의 문장 덕분이다.

몽상가 같은 소설가들을 김훈은 비웃는다. 그는 발로 글을 쓴다. 김훈은 소설 속에서 놀라운 디테일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발의 공로다. 그리고 발이 쫓아 포착한 현장을 그의 눈은 좀더 깊게 볼 줄 안다. 방 안에서 글을 쓰는 몽상가 같은 소설가들은 자신의 머릿속을 꺼내 놓으면 될 일이기에 발과 눈이 필요없을 테지만 김훈은 그 현장을 발로 쫓아 눈으로 보기에 그에게는 눈과 발이 펜이다. 하릴없는 불도저질을 하는 인물의 지난 회사가 어떻게 분식회계를 했으며, 어떻게 자산을 빼돌렸으며, 어떻게 파산신청을 했으며, 어떻게 체불임금을 정리했는지까지 들여다 보는 시선은 일반적인 소설가의 눈이 아니다. 그것은 기자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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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자의 눈이 전달하는 디테일은 묘사의 리얼리티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주로 직업 묘사에 디테일을 퍼붓는데, 생계를 위한 노동에 쏟아지는 디테일은 그래서 삶의 구체성이 된다. <강산무진>에 나오는 인물들은 단 한 명도 놀지 않는다. 모두 단단한 생계의 연쇄에 잡혀있다. 그 단단하고 무참한 생계의 연쇄야말로 인물들이 존재하는 본질이다. 생계에 붙들린 채 벌어지는 죽음과 욕정과 인연과 유실 등은 그것이 아무리 아프더라도 생계 때문에 견뎌야 하는 것이다. 가족이 죽고, 젊은 여인에게 맘이 동하고, 길을 잃어 헤매고, 삶이 뜻하지 않은 다른 곳에 가 있어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살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것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 산다는 것의 간편한 본질. 김훈의 인물들은 그의 탁월한 디테일로, 이 산다는 것의 간편한 본질을 보여준다.

<남한산성> 또한 ‘산다는 것’의 문제였다. 살아야 한다는 주화파와 죽어야 산다는 주전파의 부딪힘 속에서 김훈은 참담하다. 역사는 살아야 한다를 택했지만 김훈은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할 수 없었던 듯 보인다. 살기 위해 강요받은 두 가지 선택지는 그래서 김훈에게는 어떤 참담함이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강요받아야 하는 이 참담함을 ‘치욕’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내놓는다. 삶의 치욕.  김훈 역시 어떤 면에서 이 치욕을 감내해야 했던 인물이다.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시사저널’ 편집장에 이른다. 2000년이었나? 당시 ‘한겨레21’이 연재하던 코너인 ‘쾌도난담’에서 그를 인터뷰한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거야. 여자를 사랑하고 편하게 해주고. (웃음)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남자가 다 책임지고. 그게 가부장의 자존심이거든.”

“이걸 알아야 돼. 칼이 펜보다 강한 거야.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기를 평생 해가지고 이 모양이 된 거지. 세상에 펜이 어떻게 칼보다 강할 수 있어. 칼 쥔 놈들은 칼이 강하다고 말 안 해. 왜냐면 본래 강하니까.”

“(신군부에 대한 용비어천가 작성에 대해)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나는 <조선일보>를 아주 좋아해서 평생을 보는데, 가장 우수한 신문이더만. <조선일보> 사설 같은 걸 보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소름이 쪽쪽 끼친다고. 우리 기자들보고 이것 좀 보고 배우라고 하지. 근래 들어 정권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게 <조선일보> 아니야?”

권력 앞에 비겁한 꼴마초 김훈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시사저널에는 항의가 잇달았다. 편집장이 권력에 비겁한 꼴마초였다고 당시 ‘시사저널’ 또한 권력에 비겁한 꼴마초였던 것은 아니다. ‘시사저널’은 당시에도 전통있는 정론 주간지로 평가받고 있었고, 김훈의 그런 사적인 생각이 ‘시사저널’이라는 공적인 매체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김훈은 이 일을 계기로 ‘시사저널’을 나오게 된다. 그 몇 주 후 ‘한겨레21’의 ‘만리재에서’에는 김훈을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위무받고 왔다는 김종구 편집장의 글이 실린다.

그는 신군부 등장 시절 ‘용비어천가’를 쓴 사실을 스스로 털어놓은 데 대해 “나의 잘못을 제대로 질타할 수 없는 도덕적 권위 부재를 이야기하려는 것”, ‘반통일 의혹’에 대해서는 “반통일적이던 사람들이 통일세력으로 바뀌는 시대 속에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과 악이 혼돈되고 전도되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나로서는 거대담론을 도저히 말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그를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쾌도난담의 말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진심이 어렴풋이 이해가 됐지만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천적 남녀불평등론’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건 나의 어쩔 수 없는 어떤 심정적 무의식이야. 그것을 전달했을 뿐이지. 우월한 자의 도덕이라는 게 있어. 여성을 힘들게 하지 않고 고생시키지 않고…. 사실은 열등하고 싶어. 그런데 문명이 그렇게 강요해. 그러나 공인으로서 나는 잡지를 만들 때 여성문제나 페미니즘 기사 등에 대해 결코 그런 무의식을 따르지는 않았어.”

‘쾌도난마’에 말 그대로 난마했던 그의 얘기들은 어쩌면 ‘위악’일지도 모르겠다. 그 위악은 ‘선’을 말할 수 없는 자의 자기보호일 수도 있었다. 시대로부터 마초로 길러졌고, 살아남기 위해 독재에 부역했던 기자 김훈은 그 죄과 때문에 ‘선’을 얘기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삶에 새겨진 치욕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 사건 이후 곧장 장편소설을 낸다. 그 이름도 유명한 ‘칼의 노래’다. 이 소설 속의 이순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과 살짝 다르다. 후세가 기억하는 이순신은 영예롭고 찬란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지만, 당대의 이순신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김훈의 시선이다. 전쟁과 권력은 이순신의 의로운 뜻을 자꾸만 꺽으려 한다. 그에게 치욕을 강요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 치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살아남지 않는다.

치욕을 받아들이고 살아남은 자가 쓴 소설이 치욕을 거부하고 살아남지 않은 자의 얘기다. 그렇게 살아남지 못한 이순신은 후세의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 김훈이 ‘칼의 노래’를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그는 이순신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고, 그랬다면 ‘선’을 말할 수 있었겠다고 후회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김훈은 쉰이 넘은 나이에 다시 ‘한겨레 신문’ 기자로 입사한다. 단지 기자로 입사한 게 아니라 ‘사스마리’까지 도는 바닥부터 새로 시작한다. 다시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싶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그가 한겨레에 썼던 칼럼의 한 토막이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M_더 보기 … |접어놓기 …|시위 군중들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 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 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 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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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새로운 기자 생활은 채 1년을 가지 않았다. 그가 한겨레를 떠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데스크에 앉아 있어도 될 충분한 나이와 경력을 가진 기자가 다시 현장을 돌며 마주 봐야 하는 스스로의 모습은 이랬다. 한겨레 기자가 술회한 당시 김훈의 얘기다.

“나는 의문사규명위 사무실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왜냐하면 장준하 등 70년대 의문사를 당한 사람들의 당시 사건기사를 내가 썼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이들의 의문사에 대해 제대로 규명조차 않은 채 쓴 것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중앙정보부 직원, 경찰 등이 조사를 받고 피의자 신분이 되었는데, 그 피의자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때처럼 역시 그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의문사규명위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캡은 자꾸 나를 보고 의문사규명위에 가라고 한다. 그러니 꾸역꾸역 갈 수 밖에”

그는 한겨레를 마지막으로 27년 간 버텨온 기자라는 생계를 벗는다. 그리고 나온 소설이 ‘강산무진’이고 ‘남한산성’이다.

이 소설 속의 모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치욕 앞에 선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그리고 남한산성의 인조 임금은 이순신처럼 치욕을 거부하고 살아 남지 않는 게 아니라, 치욕을 받아들이고 살아 남는다.

그의 본심은 얼마 전 ‘KBS 단박인터뷰’를 통해 송곳처럼 명료하게 들어났다. 김훈은 자신의 기자생활이 실패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KBS 역시 실패했다고, KBS가 더 거대한 언론사니 더 거대하게 실패했다고 덧붙인다. 그는 독재에 부역한 치욕으로 살아 남았다는 사실에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치욕을 치욕으로 여기고 그 때문에 수십년을 아파하고 있는 노작가. 그가 문학을 위해 또는 역사를 위해 어떤 공헌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치욕을 알고 있고 수치를 알고 있다. 시대가 치욕을 모르다 보니, 그의 이런 내면은 너무나 순진해 보인다. 글쟁이는 글을 팔고, 정치인은 몸을 파는 시대다.

거대한 실패를 겪었다는 KBS는 그 실패에 대해 내놓고 반성한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또 거대한 치욕 앞에 놓여 있지만, 그것이 치욕이라고 인식하는 사람 숫자는 KBS 사원행동이라는 고작 백명의 직원들 뿐이다.

아니다. 오로지 기자들만의 치욕이 아니다. 우리에게 치욕을 강요했던 전두환은 아직도 29만원으로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치욕을 강요했던 박정희는 그 딸을 통해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 치욕을 모르는 시대다. 김훈은 지금 소설이라는 몸살로 치욕을 앓고 있다.


영진공 철구

희망을 위하여 …

 


<Les larmes de Jacqueline, 쟈클린느를 위한 눈물>

사람들이 자꾸 세상을 떠난다.
세상의 좋은 것들도 자꾸 사라지기만 한다.

사람의 모양을 한 것들이 자꾸 늘어간다.
사람도 아닌 것들이 사람을 조롱하고 세상을 농락한다.

언덕 위에 선 바보들은,
두 눈 속에 내일을 담아 오늘을 살아야한다.


<Wish you were here, 로저 워터스와 에릭 클랩튼>


So, so you think you can tell Heaven from Hell,
blue skies from pain.
Can you tell a green field from a cold steel rail?
A smile from a veil?
Do you think you can tell?
And did they get you to trade your heroes for ghosts?
Hot ashes for trees?
Hot air for a cool breeze?
Cold comfort for change?
And did you exchange a walk on part in the war for a lead role in a cage?
How I wish, how I wish you were here.
We’re just two lost souls swimming in a fish bowl, year after year,
Running over the same old ground.
What have you found? The same old fears.
Wish you were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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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이규훈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1953)

 


데보라 카의 별명은 ‘영국장미’였다. 유럽 출신 여배우들이 각광받던 당시 데보라 카의 소위 ‘영국적인’ 특징은 기품있는 우아함 등으로 평가되기 마련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우아하다. 느끼한 양키 버트 랭커스터하고도 그림같이 잘 어울린다. 유약한 섬세남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는 살짝 야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남부 촌 출신의 건강한 말괄량이 아가씨 필이 나는 도나 리드가 확실히 잘 어울린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된 진주만 공습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그 평화롭고 여유로운, 전쟁 따위 설마 나겠어 싶어 룰루랄라거리던 휴양지 섬에서 제대로 뒷통수 따악 맞고 패닉에 빠지던 당시 분위기를 매우 잘 묘사해낸 영화다. 워낙 군바리 체질에 요령좋고 능력도 좋아 징집병 출신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까지 올라갔지만 장교시험은 보고싶지 않은 일등상사 워든은 겉으로 보기엔 얼음공주 같지만 ‘놀 만큼 놀았다는’ 소문이 도는 대위 마누라 캐런과 연애를 하고, 중사인지 상사인지의 친구 빽 믿고 나팔도 제대로 못 부는 주제에 1등 나팔수 자리를 빼앗아버린 놈에게 열받아 상병에서 일병으로 강등되기를 마다않고 부대를 옮겨버린 한 성깔하는 프루잇은 사교클럽 아가씨 로린, 혹은 알마와 연애를 한다. 그까짓 권투 안 하겠다고 끝까지 고집부리다가 찍혀서 왕따 당하고 괴롭힘 당해도 “남자는 자기 갈 길 가야죠”라고 읊조리는 프루잇. 저런 꼴통새끼 같으니, 투덜거리고 괴롭히긴 해도 은근 맘써주는 츤데레 워든. 그리고 그들의 여자들과 동료들, 그리고 돼먹지 못한 상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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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랭카스터는 상체에 비해 다리가 너무 얇지 말입니다 -.- 암튼 영화사상 최고의 키쓰씬 중 하나.

영화가 끝나기 15분 전쯤인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 8시 10분 전, 이들은 산 너머 저쪽 하늘에 잔뜩 뜬 폭격기들이 우다다다 폭탄을 쎄리붓는 데에 얼이 빠져 우왕좌왕한다. 장교도 자리를 비운 그때, 일등상사 워든은 부하들을 이끌고 반격를 하다가 죽고, 단 하나뿐이던 군대 내 동료를 죽게만든 영창 간수새끼를 찔러죽이고 탈영한 프루잇은 전쟁 났다니까 저도 군인이라며 부대로 복귀하다 자기 편 보초에게 총맞아 죽는다. 이런 개죽음이 있나. 그러나 그들의 청춘이 단지 ‘개죽음’이란 단어 하나로 멸시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도 사랑을 했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좋은 걸 주고싶어 했고, 그녀와의 키스에 시궁창 속에서도 장밋빛 꿈을 꿨다.


언제나 전쟁영화는 전쟁터를 최상의 낭만의 장소로 색칠하긴 했고, 그렇게 젊은 청춘들을 유혹하는 한편 그렇게 그들의 희생을 위로했다. 때로는 심하게 거짓말을 했고, 때로는 심하게 겁을 주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헐리웃에서 한동안 제작되었던 일련의 ‘참전군인 위로영화’의 전통 안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런 영화들이 갖기 마련인 어떤 특징들에선 살짝쿵 빗겨나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 스코필드 막사는 그저 직장이 다만 군대였을 뿐인 별별 청춘들의 지지고 볶는 일상이 있던 곳, 즉 낭만적인 연인을 만나게 해주기도, 그 낭만을 먹구름으로 뒤덮어버리기도 한 곳이었다. 민망한 군대찬양 대사도 종종 나오는 게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 프레드 진네만이 진정 하고 싶었던 건 다른 데에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찬양은 눈가림이에요, 저는 그저 직업이 군인일 뿐인 청춘들의 좌충우돌을 그리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일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가 새삼 삼삼한 기분이 돼버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이런 것. 채 피기도 전에 져버린 모든 청춘들에게 애도와 명복을. 누군가에겐 단지 개죽음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녀에게 그의 생전의 삶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찬란한 빛이었기를.


영진공 노바리

ps. 어릴 땐 예쁘고 섬세한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좋았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역시 내 취향은 듬직하고 어깨 떡 벌어지고 팔 근육 지대로이신 버터 양키 버트 랭카스터. 다시 보니 클리프트 군은 왜 이리 찌질하신가효.

ps2. 이전에도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에서 쉰 살의 버트 랭카스터에게 반해서 “왕자님~” 이러며 정신 못 차리던 때가 있었지. <레오파드>를 찍을 당시 비스콘티 감독은 제작사의 강권에 “랭카스터같은 느끼한 양키 스타 따위~!!” 이러고 펄쩍 뛰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기용해서 처음엔 워낙 틱틱거렸는데, 랭카스터가 워낙 성실하게 연기를 하니 홀라당 반해서 나중에 다른 영화에서 다시 작업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랭카스터는 비스콘티의 새까만 후배였던 베르톨루치 감독의 <1900>에도 출연한다.

ps3. 사실 랭카스터나 클리프트나 데보라 카나 내게는 몇 세대 이전의 옛날옛적 배우라는 느낌인데, 로버트 드니로나 제라르 드파르듀와 같이 작업한 적도 있다 생각하면 또 신기한 거다…

ps4. Private인 프루잇을 굳이 ‘일병’으로 번역한 것은, 당시엔 갈매기를 하나 단 일병이 졸병이었고 그 밑엔 무등병이었기 때문에. 미 육군에 이병 계급이 새로 생기고 일병이 Private the First Class, 이병이 Private이 된 것은 60년대에 들어서다. (아마 68년이었나.) 갈매기 하나에 Private이었던 제임스 라이언이 이병이 아닌 일병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여기저기서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9월 위기설”, “유동성 불안”, “제 2 환란 가능성” 등등 …
내, 외신에서 경고성 기사가 나오고 한국 행정부는 부인하기에 바쁩니다.

현 시기 한국 경제가 위기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라면, 제 대답은 “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현 시기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국가의 경제는 언제나 위기 속에 놓여져있다는 것입니다.
지구 상의 유의미한 시장들이 단일화 되고있는 상황에서는 미국도 마찬가지고 사회주의 중국의 경제도 언제나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다만 경제적 위험요소를  어떻게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따름인 거죠.
그렇다면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가 그저 일상적인 범위 안의 것이냐고 물으시면, 제 대답은 “아니오, 꽤 심각합니다”입니다.

왜 심각한 걸까?
외환보유고, 고환율, 주가폭락, 원자재가 상승, 유가의 불확실성, 투자 위축, 소비 위축, 부동산 거품 등등 …
많은 분들이 이런 현상과 징조를 거론하면서 어떤 분은 절망을 말씀하시고 어떤 분은 찻잔 속의 태풍을 운운합니다.
그러나 저는 위에 열거한 현상이나 징조들에서 현 시기 한국경제의 위기를 보는 게 아닙니다.
위의 현상과 징조들은 사실 관리가능한 위험요소들이며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 중 몇 가지는 유독 한국에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이런 요소들 말고도 한국 경제의 심각한 위기를 논할만큼 통제하기 힘든 악성 위험요소는 무엇인가?
뭐, 답은 다 아시는대로 현 행정부입니다.

이들이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제시한 정책과 그 실행과정을 보면,
국가내와 국가간의 경제흐름에 대한 전망이나 분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릇된 사욕과 왜곡된 신앙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게다가 국가관이나 경제에 대한 철학은 찾아 볼 수도 없고 그저 대증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책을 급조해서 내놓기에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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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5일 한국 달러 시장의 모습>

이러다보니 국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영업장처럼 변해가고,
국가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저 게임에 불과한듯이 생각될 정도여서,
경제정책은 도박의 베팅처럼 도출됩니다.
대운하, 공기업, 의료서비스, 공교육, 환율대책, 부동산, 세제, 신도시, 뉴타운 등등 모든 게 판돈의 개념으로 움직입니다.
될 놈 한테 몰아주고 나머지들은 개평이나 부스러기를 챙겨라 …
이게 현 시기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 주요인입니다.

뭐 이와는 다르게 평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본은 정치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이익이 있으면 어떠한 경우라도 투자한다. 우리 경제가 예전과는 다르다 등등 …
예, 맞는 말씀들입니다. 그럼 그런 시각으로 현 시기 한국 경제를 한 번 볼까요.

특정인이 대통령이라 자본이 빠져나가고 있는 게 아니라 현 행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판단에 따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익이 있으면 투자하겠지만 투자이익은 보이지 않고 기존의 부를 지키려는 정책만 나오니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경제가 예전과는 다르다고 하는데, 지금 한국경제의 체질이 튼튼하다고 얘기하는 분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도 지난 10년 간 한국경제가 파탄났다고 하지들 않으셨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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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한국경제신문>


자, 그럼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 여기서 우리란, 10억 주택 소유에 연수입 1억인 “정부 공인 중산층”이 아닌, 자산도 변변한 게 없고 수입도 빠듯한 저를 비롯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입니다.
 
먼저 긍정적(?) 시나리오를 봅시다.
현재의 위기가 찻잔의 태풍으로 갈무리 된다치면 … 우리들의 상황이 어떻게 될까요?
뭐, 그냥 그대로입니다.  나아질 것도 달라질 것도 없죠.
그러니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겠습니다.
혹시 이 시나리오를 예상하신다면,
향후 주식이 조금씩이나마 오를거라 생각하시면 되고, 부동산 경기도 현상유지 또는 연착륙할 거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봅시다.
현재의 위기가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진다면 … 우리들의 상황이 어떻게 될까요?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죠.
최근에 짐바브웨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태들을 직접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나리오에 대비해 뭘 해야 할까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순식간에 닥쳐드는 거대한 파도인데 어디로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현금을 확보하라, 외화를 보유하라, 대출을 없애라, 펀드를 정리하라, 생필품을 미리 일정분량 챙겨라, 고정금리로 갈아타라 …
물론 다 일리가 있는 옳은 대비책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나마 집 안에 얼마라도 여유자금이 있는 가계에 해당하는 대책이지,
소위 서민이라 불리우는 우리들에게 저런 대비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필품을 물가가 더 오르기 전에 먼저 사 놓는 거 말고는 그다지 할 게 없잖습니까.
그러니 이 경우에도 우리들에게는 대비책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죠.

원인을 알고 그에 따른 결과도 예측할 수 있지만,
우리가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 무척 서글퍼집니다.

그렇다고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국가 공동체를 잘 운영하라고 대리인들을 선출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위에 기술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게 할, 그리고 이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대책과 책임을 요구하여야 합니다.
이건 대정부투쟁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입니다.  유사시에 대비하고 평시에도 필요하면 기댈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와 적정 복지수준의 확보는 요즘같은 경제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공동체로서의 국가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까요. 


영진공 이규훈

린다 린다 린다 (リンダ リンダ リン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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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성장의 고통, 아니면 기성 세대와의 커뮤니케이션 단절은 십대 청소년기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가? <린다 린다 린다>는 그런 극적인 갈등 요소들을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더라도 충분히 기억될 만한 멋진 영화 한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드러내놓고 화를 내거나 싸우지 않고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결국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3일 남은 시간 동안 학교 축제에서 공연할 노래를 밤 새워 연습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별 의미는 없어”라고 대답한다. 인내심이 많은 카메라는 시종일관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며 말 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공연. 마치 이 순간만을 위해 모든 것을 기다렸다는 듯 강렬한 전기 충격이 전달된다. 그 사이 카메라는 비 내리는 축제 마지막날의 학교 구석구석을 필름 위에 기록한다.

야구치 시노부의 <스윙 걸즈>가 한 잔의 청량음료 같이 개운한 영화였다면 <린다 린다 린다>는 비 오는 날 오후 잘 우려낸 ‘녹차의 맛’ 같은 작품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한번쯤을 있었을 나의 십대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건 뭐하러 하나 싶은 일들로 가득했던 지루한 시간들이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면 누구나 그때 만큼 좋았던 시절도 없었다고들 하지 않나. 오히려 좀 더 열심히 하고 싶었던 일을 많이 하면서 보내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시선에는 바로 그런 속 깊은 성찰과 애정이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함부로 개입하려 들지 않는 자세는 <린다 린다 린다>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플란다스의 개>,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이후 주춤했던 배두나의 필모그래피에도 멋진 작품이 하나 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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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