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중요성

영화 <은하해방전선>에는 두고두고 되새김질할 대사가 제법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소통’이란 단어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얘기를 그린 이 영화엔
부산으로 짐작되는 도시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연배우인 혁권이 앞에 나가 관객의 질문을 받아야 한다.
뭘 말할지 모르겠다는 혁권에게 감독은 “그냥 소통 얘기만 하라”고 하고,
실제로 혁권은 모든 질문에 ‘소통’을 남발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뭔가요?
=인간의 소통을 그리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소통이 잘 안되서 힘들었습니다.

며칠 전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는데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나온다.
인터뷰이는 얼마전 활동을 끝낸 인수위 부대변인이란다.
그가 답변하는 걸 듣고 있자니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 혼자 웃었다.
-인수위가 정책발표를 하면서 너무 서둘렀던 게 아니냐, 혼선도 있었고..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소통의 문제들이 있었다.
-인수위는 말 그대로 인수를 해야 하는데, 마치 정부가 출범한 것처럼 군 게 아니냐.
=소통 과정의 문제라고 보고요…
듣고 있던 손석희가 이렇게 말한다.
“소통의 문제를 몇 번 지적하셨는데 그건 내부의 소통이냐 국민과의 소통이냐?”

정류장을 알리는 방송 때문에 여기까지밖에 듣지 못했지만
그 대변인은 <은하해방전선>을 보면서 난해한 질문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를 배웠음이 틀림없다.
그러고보니 이명박 당선자도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BBK를 설립해 펀드를 묻어두고 있는 상태다”라고 말한 게 나중에 문제가 되자
이 당선자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소통에 오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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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만 잘 되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을, 여기서 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차기 정부의 이름을 실용정부로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용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나 소통,
차기 정부는 소통정부라 이름붙이는 게 어떨런지.


영진공 서민

<택시 드라이버>, 마틴 스코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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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포스터 중 하나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1976년작인 <택시 드라이버>는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수입금지 영화로 분류되었다가 90년대 초반인가에 첫 극장개봉을 했던 작품인지라 이 영화의 그 전설적 명성에 비하면 극장에서 필름으로 본 사람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택시 드라이버>는 호러영화로 시작해 기이한 멜러영화로 끝나면서, 전혀 영웅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영웅이 되는 고약한(?) 영화다. 버나드 허먼의 불길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연기 속에서 택시가 화면 전면에 등장하는 오프닝도 그렇지만, 이 택시를 모는 사람이 밤거리를 휘저으며 다니다 막판에 대학살을 벌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전형적인 호러영화의 틀거리를 가져온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의 택시, 그리고 이 택시 운전사가 바로 우리의 주인공이라는 것.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서 일단 우리의 주인공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영위하는 보통의 일반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인물로 표상이 되는데,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제대한 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일종의 ‘생존자 증후군(혹은 서바이버 신드롬)’을 앓고 있는 사회 부적응자다.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그는 택시 안에 갖가지 손님들을 태우게 되는데,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흑인들을 태우기를 마다하지 않고 할렘에 가자는 요구에도 승차거부를 하지 않는다.


영화의 전반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그가 택시운전을 하며 만나게 된 사람들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가 아름다운 여인 베씨(시빌 셰퍼드)에게 반해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하지만 우리는 수줍게 웃으며 흑인들을 태우는 것도 굳이 마다하지 않는 이 남자가 오히려 도시의 가장 밑바닥층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쓰레기’라 여기며 모두 쓸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 역시 처음에는 보통의 남자들이 술을 마시면, 혹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과장적으로 말하는 그런 멘트로 여기기 마련이다. ‘얌전했던’ 그가 전면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게 되는 건 베씨에게 거절을 당하고 난 후부터다. 유난히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된 베씨와 수수한 (그리고 다소 촌스러운 옷차림의) 택시 운전사 트래비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둘러쳐져 있는데, 이것은 곧 ‘모든 이는 평등하다’는 미국의 가치 아래 숨겨진, 실제로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 베씨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의 투명한 유리창이다. 거리로 향한 벽 전면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돼있는 사무실에서 선거 캠페인을 위해 일하는 베씨는 트래비스가 얼마든지 그 모습을 훔쳐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결코 베씨(혹은 팔렌타인 후보) 무리의 일원이 될 수 없다. 멋지게 차려입은 대통령 후보는 때로 트래비스의 택시를 탈 수도 있기는 하지만, 밑바닥에서 거리를 쓸며 다니는 사람과, 고상한 언어로 미국의 변화를 부르짖는 정치권 인사 및 그를 둘러싼 부르주아 혹은 엘리트 계급의 사람들 사이에는 저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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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당시 14살이었던 조디 포스터(가운데).
일부 성적인 장면들은 그녀의 언니가 대역을 해줬다고.


그렇기에 그를 실제로 움직인 동력이 되는 것이 아이리스(조디 포스터)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마도 한적한 미국 남부의 시골 어드메에서 자랐음직한 아이리스는 어린 여자이고 돈이 없는 상태로 도시에서 최하의 밑바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으며, 그녀의 존재는 곧 트래비스 그 자신이 구원을 받기 위해 구해야 할 어떤 목적이 된다. 아름다운 저 위의 부르주아 여성 베씨를 연모하다 좌절한 트래비스는 이번에는 도시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여성, 그러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성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는 여성을 향한 플라토닉 러브를 몸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평범하게 관계를 맺고 사는 평범한 생활을 향한 트래비스의 욕망은 이렇듯 굴절돼 있고, 좌절돼 있다. 가장 소중한 최소의 것은 자신이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기존의 남성 가치는 아이리스를 착취하는 자들을 향한 총구에서 불을 뿜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 그러니까 트래비스에게 있어 아이리스는, 자신보다도 더욱 밑바닥에 위치해 있는 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로, 트래비스의 대학살(?)은 자신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이를 구원함으로서 자신이 그보다 사회 위계질서에서 더 위쪽에 있음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사회에 확인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일련의 영화들에서 남자주인공들이 자신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이를 짓밟음으로써 자신이 최하가 아니라는 확인을 시도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같은 베이스를 공유하지만 정반대의 결과로 나아간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 대해 서슴없이 마초 감독이라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것도 이런 근거 때문이다. (‘마초’라는 말을 비하적으로만 해석하지는 말 것.)


그런데 트래비스가 총구를 향했던 것이 처음부터 아이리스를 착취하던 남자들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애초에 암살하려던 것은 팔렌타인 후보였는데, 사전 답사차 유세장에 갔을 때 그가 경호원과 대화를 나누는 씬을 보면, 우리는 그가 자신을 비롯해 사회 하류층을 억압하는 저 상부의 정치 토대에 대한 증오와 함께 실은 동경과 열망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베씨에게 했던 구애가 거절당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열망했던 것은 상류층의 자리까지도 아니고 그 상류층 옆에 서 있는 경호원 정도의 자리였고, 말하자면 그에겐 그 정도의 자리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 거기에, 그가 암살하려던 팔렌타인 후보는 아마도 민주당 내 전당대회를 거치던 후보로 짐작되는데, 영화에선 명시되지 않으나 베트남에 다녀온 트래비스로서는 민주당의 후보에 막연한 적개심을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이 시기가 흑인 민권운동이 들끓던 시기 직후라는 사실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영화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반-흑인 정서는 마틴 스코시즈의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대도시의 뒷골목에 만연하고 있던, 혹은 온화하게 웃는 사람들의 밑바닥에 숨어있던 어떤 분위기를 스코시즈가 묘사해낸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할 터이다. 마치 소심하고 건실한 모습 뒤로 도시의 뒷골목(그 자신도 속해 있는)을 향한 적대감과 증오를 숨기고 있는 트래비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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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로 오빠의 팔 선… 하악하악


영웅이 된 뒤에도 트래비스는 여전히 밤거리의 택시기사로 살아간다. 동료들과 농담을 하고 내기를 하고, 택시를 모는 그에게는, 동료가 충고했던 ‘더 나은 미래’라는 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아이리스의 부모의 편지로 맺음을 하고 있지만, 이 편지 속에서 두려움을 읽은 것은 나의 과민함 때문일까? “거리가 너무 멀어 인사드리러 가지는 못하겠다”는 편지의 구절은, 정말 거리가 멀어서 여의치가 않다기보다는, 별로 보러 오고 싶지 않은데 마침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핑계로 드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과민함이 정말 감독의 의도에 맞다면, 아이리스의 부모는 무례하거나 염치가 없는 게 아니라 현명한 것이다. 냉정하게, 그리고 조금 싸가지없게 말하자면, 우리의 주인공 트래비스는 얼결에 주인공이 된 ‘사이코’가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진공 노바리



ps. 너무 유명한 사실이지만, 젊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영화에 직접 카메오로 출연한다. 흑인과 바람난 아내를 미행하는 남편 역. 영화 보다가 딱 이 장면에서 베실베실 웃음이 나왔는데 주위가 너무 적막하여 머쓱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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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오로 출연한 마틴 스코시즈 감독(왼쪽)과 로버트 드니로.


ps2. 젊고 새끈한 하비 키틀 역시 하악하악이다. 다만 그놈의 배바지가…


ps3. 반드시 봐야만 하는 스코시즈의 3대 초기 걸작(<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을 드디어 필름으로 다 봤다. 하지만 그의 초기작 중 작은 영화들, 예컨대 <코미디의 왕>이나 <특근> 같은 영화들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이 영화들도 언젠가는 모두 필름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좋은 친구들>도 반드시… 기왕이면 비디오로도 절대 구하기 힘든 <바바라 허쉬의 대공황시대(원제는 ‘복스카 버사’)>나 <앨리스는 더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도 언젠가 꼭 볼 수 있기를. 스코시즈의 꽝작이라는 <뉴욕 뉴욕>도 보고 싶다. (마티 영감님의 평작은 다른 감독의 걸작보다 낫다… 라는 게 나의 믿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비틀즈 음악에 대한 기대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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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하반기에 별 다섯 개를 너무 남발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올해는 별점 만큼은 약간 까다롭게, 그리하여 왠만해선 별 다섯 개는 아껴야지 마음 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무너지고 맙니다. 간혹 객관적인 판단 기준에 못미쳐도 혼자 각별한 무언가가 있을 때 별 네 개 짜리 영화에 하나 더 얹어 다섯 개로 기록해주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별 다섯 개, 만점 영화가 맞습니다. 여전히 주관적인 판단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저로서는 어느 한 구석 아쉬운 부분을 찾을 수가 없는 영화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옆에 앉은 쉰내 나는 아저씨가 1시간 동안 팝콘과 나초를 버석버석 씹어대고 이후로는 5분마다 핸드폰을 열어대는 극악의 상황이었음에도(그 덕분에 반대편 옆자리에서 영화 초반 두세 차례 문자 날리기까지 하던 여자분은 아주 귀여운 수준이 되어버렸죠) 영화는 여전히 좋았습니다. 물론 좀 더 쾌적한 환경이었다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그게 제 복인걸 어쩌겠습니까. All You Need Is Love. 영화가 좋으니 다 용서가 되더군요. –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했더라면 좌석 두 개를 예매해서 박스 구석에 앉아 옆 자리를 비워두고 봤을 겁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럴 가치가 충분한 영화니까요.

서울에서 메가박스 코엑스와 신촌, 그리고 씨네시티, 세 군데에서만 상영하는 데다가 상영 일정도 예매 사이트에  며칠씩 밖에 올라오지 않고 있어서 영화가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이거나 아주 무시를 당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 종영될지도 모르는 상황인지라 <추적자>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서둘러 코엑스로 갔죠. 그러나 왠걸. 상영관은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가장 큰 곳이었고 객석은 거의 만석이었습니다. 꼼짝없이 개념 탑재가 덜 된 분들 사이에 낑겨서 봐야했던 겁니다. 상당히 짜증스럽고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영화는 너무 훌륭했습니다. All You Need Is Love. 영화가 좋으니 다 용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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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비틀즈의 노래들로 채워넣은 뮤지컬일 뿐만 아니라 60년대의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들에 관한 헌정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쥬드(짐 스터져스)와 루시(에반 레이첼 우드)의 사랑 이야기를 기본으로 베트남 전쟁과 반전 운동이 펼쳐지고 재니스 조플린과 지미 헨드릭스가 한 무대에서 노래합니다. 또 60년대 반전운동이냐고요? 너무 자주 봐왔던 장면이지만 전혀 지겹지가 않습니다. 뮤지컬 영화의 법칙 : 노래가 좋으면 다 용서되지만 노래가 싫으면 엄청나게 허술한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틀즈 매니아가 아니라 하더라도, 비틀즈의 노래들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비틀즈의 유명한 노래 몇 곡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고 또 좋아하지 않던가요. 단순한 내러티브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무대용이 아닌 뮤지컬 ‘영화’를 위해 씌여진 스토리의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 호흡이 아주 훌륭합니다. 그리고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비틀즈의 노래들과 줄리 태이머 감독이 선보이는 다채로운 비주얼(CG나 편집 기술만으로 만들어진 영상이 결코 아니더군요)이 내러티브의 단순함을 전혀 느낄 수 없게 만들어줍니다.

스틸컷으로만 봤을 때는 캘빈 클라인 모델처럼 보였던 주인공들이 실제 영화 속에서는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요. 리버풀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쥬드(짐 스터지스)는 폴 매카트니를 생각나게 하고 애초에 쥬드 역으로 캐스팅되었다가 스스로 루시(에반 레이첼 우드)의 오빠 맥스 역을 자청했다는 조 앤더슨은 처음엔 존 레넌을 닮은 건가 했더니 나중엔 커트 코베인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보노와 조 카커가 직접 출연해 각각 I Am The Walrus와 Come Together를 불러주시는 건 정말 감사할 지경이고요(보노는 엔딩 크리딧 올라갈 때 나오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도 불렀습니다) 줄리 태이머 감독의 전작 <프리다>(2002)에서 프리다 칼로를 연기했던 셀라 헤이액도 잠깐 등장해 주십니다. 여러모로 필견의 영화가 될 요소가 많음에도 과연 실제 완성품이 어떠할 것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저로서는 영화를 실제로 보고 나서야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었던 그 이상의 것들을 확인했다고, 아니 누릴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영화가 어떻다고 말이나 글로써 설명을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 감흥은 직접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이런 걸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것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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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안녕, 노무현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이기를 원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구 시대의 마지막을 이끌어내려 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지금,
그대를 향해 찬사를 보내기가 어렵습니다.
시절이 그러합니다.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대의 발걸음에,
조용한 박수를 보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 노무현


영진공 편집자 이규훈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때는 모든 것이 반짝였다네”

 이문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때는 모든 것이 반짝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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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쿨 러닝 Cool Runnings>이란 영화가 막 시작했다. 이미 몇 번 봤지만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한 번 더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기로 했다. <쿨 러닝>은 서울올림픽 100m 달리기 부문에 출전하려던 자메이카의 ‘데리스’란 육상선수가, 대표 선수 선발전에서 동료 선수가 넘어지는 바람에 어이없이 탈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낙담하고 있던 데리스가 우연히 단거리 선수가 동계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에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상 유래없던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을 구성, 같은 해 겨울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

영화 도입부의 배경이 된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일. 인생에서 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원짜리 아이스크림보다 적었던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개막식 안 보고 어디 가니” 란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슬람 성원 앞뜰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적 서울 한남동에 살았던 나는 그렇게 종종 인근 이태원에 자리한 이슬람 성원에 놀러 가곤 했다. 종교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 때였지만, 이슬람 성원의 분위기는 인근 교회 놀이터와는 오묘하게 달랐다.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엄숙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외감보다는 놀고싶은 마음이 더욱 컸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은 어느새 슬금슬금 고무줄놀이를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 외치며 키득거리곤 했다. 검은 피부의 이슬람 신도들은 그곳이 그들에게 무척 성스러운 곳이었을 텐데도 까부는 우리 옆을 말없이 지나치곤 했다. 나는 어쩐지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태원과 한남동엔 온갖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었다. 다른 동네에 사는 친척 동생들이 우리집에 놀러와 거리에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 더 신기할 정도였다. 부모님은 가끔 이런 대화를 하셨다.

 “공사 중인 옆집엔 미국인들이 들어온다네. 그런데 지금 달아 놓은 대문 말이야. 그게 한 짝에 삼백만 원 짜리라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끼어들었다.

 “왜 그렇게 비싼데요?”

 “주석으로 만든 대문이거든. 그게 비싼 재료라 그렇지. 저 사람들은 돈이 많아. 하지만 집은 저 사람들 것이 아니야. 세를 들어 살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왜 집을 안 사요?”

 “외국인은 우리나라 땅을 살 수가 없거든. 법이 그래.”

부모님과 대화하며 참 이상한 법이라고 대꾸하면서도, 나는 삼백만 원 짜리 대문을 달 수 있는 이들 수십 명이 모이면 우리 나라를 통째로 사 버릴 수도 있어서 그런 것이려니 짐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침에 눈을 뜨면 밤사이 누가 대문을 훔쳐 갔다고 법석을 떠는 미국인 가족을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결국 동네를 떠날 때까지 그런 광경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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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단 대문의 가격 차이만큼 거리가 느껴졌던 미국인들. 뒷집에 살던 내 또래 백인 아이들은 가든 파티할 때마다 왁자지껄 떠들었고, 고기 냄새와 함께 우리 집 담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동네의 또 다른 백인 아이들은 골목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듣는 영어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게 욕이라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그 아이들이 괘씸해 눈을 부라리며 다가서면, 지나가던 모르는 아이들까지 말리곤 했다.

 “쟤네들 잘못 건드리면 미군들이 총 들고 달려온대.”

이런 말을 들으면 별 수 없이 분을 삭이며 돌아서야 했다. 너무 어려 몇 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 언젠가 나는 주한미군 부대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골목대장을 도맡던 ‘선민’이란 남자아이의 지휘 아래 꼬맹이 네다섯 명이 일행이었다. 일제히 수풀을 헤치며 포복자세로 기어가던 우리는 “여기부턴 미군 부대야. 걸리면 모두 총에 맞으니까 조심해”라는 선민이의 말에 얼마나 숨을 죽였던지. 미군의 눈에 띄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벌벌 떨며 기어다녔던 그때는, 내가 기억하는 한 죽는 것이 최초로 두려웠던 순간이다.

학교 근처에서 ‘뽑기’와 쥐포를 팔며 아이들에게 트램플린
(넓은 천 가장자리에 용수철을 달아 고정하여 뛰어노는 놀이기구. 일명 ‘덤블링’, ‘방방’)을 태워주던 아줌마는, 줄 선 아이들이 많을 때는 한 사람이 십 분 이상 못 타게 했지만 백인 아이들이 삼십 분을 타는 것은 내버려 두셨다. 항의하면 아줌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쟤네 말리면… 말도 마라. 저번엔 떼로 몰려와서 두들기고 난리였다.”

아이들은 거들었다.

 “그래. 그러다 미군들이 오면 어떡해.”

그러면서 매년 할로윈데이가 오면, 아이들은 외국인 아파트를 돌며 사탕을 받아왔다. 동네 가게에서 파는 스카치캔디나 자두맛사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희한하고 맛있는 사탕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나눠 주는 그 사탕을 한두 개씩 받아먹긴 하면서도, 내 손으로 직접 사탕을 달라고 손 내미는 짓은 죽어도 안 해, 다짐했다.

살고 있는 인종만큼이나 인간 유형도 다양했다. 저녁 무렵 엄마 손을 잡고 동네 미용실에 가면 다 큰 여자들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있었다.

 “엄마, 저 언니들 여기서 빨가벗는다.”
 “언니가 아니라 남자들이야.”

그들은 이태원 어느 가게의 쇼에 나갈 준비를 하는 트랜스젠더들이었다.

한옥형인 우리집 별채에 세 들어 살던 아줌마는 진한 화장에 미스코리아 파마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 아줌마가 양색시라고 했다. 미군의 색시라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불행히도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해 몸을 버려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줌마가 휴지통에 버린 작은 가위를 학교에 들고 가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가위를 가져왔다”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몇 년이 더 지나서야 그게 손톱을 다듬는 가위라는 것을 알았다. 아줌마는 나중에 미군이 아줌마를 버리고 한국을 떠난 후 일본인의 처가 되어 일본으로 날아가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몇 번 보내왔다.


*

내가 중학생이 되어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며 한남동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막연한 호감을 가졌던 아랍인들의 말 대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사를 갔지만 전학을 하지는 않았기에,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학교에서 출발해 한남동과 이태원을 거치는 버스 코스를 걸어 집으로 오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이태원의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무성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잎도, 오래된 상점 간판도, 노점상의 물건들도, 사람들의 머리카락도…. 나는 그 광경이 무척 마음에 들어, 마침내 이태원을 벗어나 삼각지 국방부 앞 너른 길을 지날 때면 들뜬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란 노래는 어쩜 이렇게 이 상황과 잘 어울리는 걸까 감탄하면서.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여위어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 월간 <논> 2006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작곡가 故 이영훈님의 명복을 빕니다.

영진공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