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22일


<크립>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 정말 대단한 영화다. ‘지하철 역에서 벌어지는 공포’ 어쩌고 하는 설명에 혹해서 빌려 봤는데,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훨씬 더 공포스럽다. 지하철 역 아래에서 한 미치광이가 사람을 마구 죽인다. 주인공 여자가 어찌어찌 거기 연루되었다가 혼자만 겨우 목숨을 건지는 상투적인 내용인데, 여자의 외모가 영 아니라는 것도 흥미를 떨어뜨리는 이유였다. 부잣집 딸을 지키느라 자기가 여장을 하고 딸로 위장한 영화-제목이 생각 안남-가 생각난 것은 주인공이 여장 남자의 얼굴과 꽤 비슷했기 때문. 그러니 그녀에게 감정이입이 전혀 안되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용이라도 재미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미치광이가 왜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데, 그게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저 어서 끝나기만 해라, 이런 심정으로 영화를 봤는데,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헛구역질이 나서다.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은 러닝타임이 한시간 20분이 안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너무 재미가 없다보니 그게 세 시간으로 느껴진다는 거~~

건질 게 없고 비판할 것투성이인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건 개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였다. 미치광이에게 쫓기던 주인공은 지하철역에서 숙식을 하는 노숙자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노숙자의 아내가 미치광이에게 살해당하자 열이 받은 노숙자는 기르던 개를 여자에게 맡기고 이렇게 말한다.
“이 개 데리고 어서 도망가요. 난 그놈을 만나야 해!”
근데 그 여자는 도망가다 말고 다시 남자에게 오는데, 이미 개를 팽개친 후다. 그녀가 오는 바람에 남자는 여자에게 뭐라고 하다가, 괴물의 기습을 받고 죽고 만다.

나중에 여자는 다시 그 개를 만나고, 반가운 척 껴안는다. 하지만 미치광이와 맞닥뜨렸을 때 개를 가장 먼저 버렸고, 혼자만 살 궁리를 한다. 여자는 결국 미치광이를 죽이는데, 그러고 나서 지하철역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때는 이미 아침, 그녀를 노숙자로 착각한 남자 하나가 그녀에게 동전을 건네준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나는 개, 개는 여인을 보자마자 품에 안긴다. 여인은 반가운 듯 개를 다시 껴안지만, 그간 저질러왔던 행적으로 보아 귀찮아지면 그 개를 버릴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데 개까지 돌보는 건 무리한 주문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 자주 벌어진다. 우리 할머니는 6.25 때 피난을 가면서 항구까지 쫓아나온 개를 외면했다. 십년쯤 전, 목에 감긴 밧줄을 풀고 집에 불이 난 걸 알려준 명견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세진 컴퓨터의 모델이 된 진돗개는 주인을 찾기 위해 수백킬로를 헤매야 했으며, 고생을 너무 한 나머지 주인을 찾고 얼마 안있어 죽어 버렸단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길거리에 나가 보면 버려진 채 쓰레기통을 헤매는 개들이 숱하게 눈에 띈다(복날이 지날 때마다 그 숫자가 격감하긴 한다). 다들 사정이야 있을테고, 버리는 사람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는, 그리고 영화를 이끌어갈 주인공이라면 생명 하나하나에 대해 존엄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개를 내팽개치기를 밥먹듯이 한 주인공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위험이 사라진 마지막 순간 여인은 개를 껴안지만, 진정 개를 사랑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사정이 어려울 때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를 거둔 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개를 존중하지 않는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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