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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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런 ‘추상적인’ 포스터가 붙었었다고?


여행지에서 낯선 여인에게 독이 섞인 음료수를 받아마셨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영걸(김정철)은 이후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그런 그에게 연달아 이상한 일이 생긴다. ‘삶의 의지’를 외치며 죽여도 죽지 않는 노인, 뼈에서 살아난 천 년 전 신라 때의 여인(이화시), 그리고 죽음에의 의지로 충만한 까칠한 미대생(김자옥)과 차례로 만나며 영걸은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영걸은 누군가 자신을 죽여준다 했을 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정작 남의 손에 (혹은 운명에) 수동적으로 죽음을 맞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욕망일 수도 있고, 죽음을 향한 탐닉으로 포장된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영걸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천 년 전 여인이 환생을 위한 마지막 단도리 절차로 그에게 생간을 요구할 때 상당히 망설인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재밌는 것은 이 에피소드의 주도권은 철저하게 신라 여인에게 있다는 것. 싫은 남자와 결혼하기 싫어 천 년 뒤 부활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이 여자는 삶, 그러니까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실제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미 한 번 죽음을 선택했고. 그러나 그녀는 다시 죽음을 선택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이다.


소극적인 것으로 치자면야 그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열심히 자살시도를 하긴 해도 번번이 노인에게 방해를 받고 결국 죽지를 못하는데, 따지고 보면 영걸은 이 영화 내내 에피소드 셋을 거치는 동안 계속 상황에 따른 소극적인 선택으로 일관한다. ‘선택’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일련의 언행들. 그건 아마도 그가 죽다 살아난 뒤 목에 나비 목걸이를 걸쳐서일 테다. 이 영화에서 나비는 죽음을 뜻하니까.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까칠한 공주 미대생의 버릇을 고쳐주네 마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이교수(남궁원)의 권력 하에 존재한다. 그가 이교수를 의심하며 대항하는 것 역시 다른 권위, 즉 형사를 찾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세번째 에피소드로 가면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주인공이 영걸이 아니라 한참 새파란 시절의 김자옥이 주연을 맡은 미대생 여인이 된다. 그녀는 삶에 대한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는, 죽음에 단단히 매혹된 여성이다. (그녀의 주된 작업 주제가 ‘나비’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런데 정작 암에 걸리고 삶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삶에 대한 강한 집착과 미련을 보인다. 이건 영걸이 계속해서 보여줬던 어떤 입장들, 그러니까 죽음을 동경하지만 정작 그 죽음이 찾아왔을 때 이를 거부하는 어떤 양태와 통한다. 쉽게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을 이런 점을 들며 죽음에 대한 매혹을 그저 ‘겉멋’이라며 싸잡기 쉽지만, 사실 죽음을 탐하면서도 정작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심리란 지금의 삶보단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 그럼에도 더 나은 삶이란 존재할 수 없거나 죽음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윤회든 사후의 삶이든)을 인식하며 절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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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에피소드, 왼쪽부터 영걸의 친구, 형사, 영걸, 전경엔 남궁원이 열연한 이박사.



혹자들은 이 영화를 ‘옴니버스영화’라고 표현하는데, 사실 그게 맞을 것이다. 첫 에피소드가 상당히 기괴한, 초현실주의적인 호러라 친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천녀유혼> 유의 전형적인 귀신과 사람 사이의 사랑을 다룬 환상 멜러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세번째 단편으로 가면 또 미스테리 스릴러가 되고 말이다. 세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게 당연히 주인공인 영걸과 그의 친구이다. 이 친구는 첫 에피소드에서 나비수집 여행을 같이 간 일행이고, 사람이 되는 유골을 같이 발굴하러 간 동지이자, 이박사의 조교 자리 아르바이트를 주선해 준 장본인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에피소드가 종합되는 게 바로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삶의 의지!”를 외치는 ‘머리통’ 장면일 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시, 술에 형편없이 취한 두 친구의 악몽에 가까운 꿈일지도 모른다는 장면이 삽입되는데 – 뭐 물론, 다시 살아나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일 수도 – 김기영 감독은 실은 “자꾸 자살타령하지 마라, 그래도 삶은 소중한 거니 한번 살아봐라” 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듯. 사실 그런 식의 ‘설득 포스’를 워낙 강하게 느꼈다. 근거가 박약하건 충만하건 말건… 근데 뭐, 자살에 대한 욕구라는 건, 물론 개개인마다 유전적인 부분부터 해서 가치관 같은 거에 크게 달려있긴 하지만, 지금 현대사회라는 건 사실 자살을 지나치게 터부시하면서도 자살을 권장하는 사회 아닌가 싶다. 솔직히 배고파서 죽으나 총맞아 죽으나 자살하나…


하여간, 김기영 복권 바람을 타면서 이 영화가 ‘컬트영화’로 상당히 명성을 누린 게 벌써 10년인데, 흥미로운 부분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여섯 편 가량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본 다음 내가 조심스럽게 내리는 ‘중간’ 판단은, 김기영 감독은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거. 물론 김기영 감독의 경우 그 자의식과 영화의 ‘형식미’가 충돌하는 지점이 상당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결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거… 네이버 어디에선가 내린 ‘아스트랄 괴작영화‘라는 평가가 딱 마음에 든다.




영진공 노바리


ps1.
이화시가 너무 조아효… 너무 섹시한 언니, 가장 매력적인 건 나탈리 우드 부럽지 않은 그 이글이글한 눈!


ps2. 어떤 소개에 의하면 김정철의 캐릭터 이름이 ‘용빈’이고 남궁원은 ‘장박사’이다. 대체 이 완전히 다른 이름체계, 이유와 곡절이 뭔지 아시는 분~~?

ps3. 에피소드 셋을 연결시켰다는 것뿐 아니라, 삶의 의지, 죄책감, 귀신과의 정사, 죽음과 삶이 뒤바뀐 미스테리 등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작년에 개봉한 정가형제의 <기담>이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와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번 전작전 때 감독 중 한 명이 GV 모더레이터로도 나온 바 있다.



“놈놈놈” OST의 역사를 알려주마!


1. 탄생


이 곡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64년에 니나 시몬(Nina Simone)을 통해서였다.

Nina Simone이 누구냐고?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면, 프랑스 영화 “니키타”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작 “니나 (Point of no return)”에서 주인공 니나(브리짓 폰다 분)가 즐겨듣던 노래를 기억하시면 될터이다.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하나이며 흑인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던 바로 그 분이 오리지널이시다.


[가사]
Baby, do you understand me now
Sometimes I feel a little mad
But don’t you know that no one alive
Can always be an angel
When things go wrong I seem to be bad
But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그대여, 나를 이해할 수 있나요,
가끔 난 미쳐버린답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항상 천사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주변의 일들이 잘못될 때면 난 못난 사람이 되어요,
하지만 나의 내면은 착한 영혼이랍니다.
하느님, 나를 오해하지 않게 해 주세요.

Baby, sometimes I’m so carefree
With a joy that’s hard to hide
And sometimes it seems that all I have do is worry
Then you’re bound to see my other side
But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그대여, 난 가끔 분별 없이 행동한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숨기지 못하지요,
그리고 때로는 종일 걱정만 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면 그대는 나의 다른 면을 보게 되지요,
하지만 나의 내면은 착한 영혼이랍니다.
하느님, 나를 오해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If I seem edgy I want you to know
That I never mean to take it out on you
Life has it’s problems and I get my share
And that’s one thing I never meant to do
Because I love you
내가 신경질을 부릴 때,
그건 절대 그대에게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줘요,
삶에는 고난이 있고, 나에게도 마찬가지죠,
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그거랍니다.

Oh, Oh baby don’t you know I’m human
Have thoughts like any other one
Sometimes I find myself long regretting
Some foolish thing some little simple thing I’ve done
But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아, 그대여, 나도 그저 인간일 뿐,
다른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죠,
가끔 난 내가 저지른,
멍청한 행동들을 후회하며 긴 시간을 보내죠,
하지만 나의 내면은 착한 영혼이랍니다.
하느님, 나를 오해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2. Animals (1965년)

그리고 1년 후 이 노래는 Animals에 의해 다시 불려진다.

강렬한 비트로 전개되는 기타와 오르간의 리프, 그리고 에릭 버든 특유의 거친 보컬이 담긴 이 노래는 커다란 히트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Animals의 버전이 이 노래의 오리지널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Animals는 또 누구냐고?
“House of the rising sun”이라고 들어보셨는가 몰라 …

이후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불려지던 우울하면서도 진솔한 분위기의 이 노래가,

세상에나 … 어느 날 뜬금없이 완죤 섹쉬한 댄스 뮤직으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으니,

두둥, Santa Esmeralda의 등장 되시겠다.

3. Santa Esmeralda (1977년) 그리고 Kill Bill (2003년)

아리따운 세 아가씨와 한 명의 남자로 이루어진 라틴 디스코 그룹 Santa Esmeralda.

1977년에 혜성과 같이 … 아니 말 그대로 느닷없이 등장한 이들은,
당시 발표한 LP판의 한쪽 면을 몽창 이 노래의 댄스버전 리메이크 한 곡으로 채워놓았고,  
이 곡은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린다.

또한 같은 앨범의 다른 면에 수록되어있는 “You’re my everything” 역시 지금도 애청되는 곡 중 하나이다.


Santa Esmeralda는 그룹의 이름이고 리더인 저 남정네의 이름은,
 르로이 고메즈 (Leroy Gomez) 되게따 …

그리고 2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
.
.
.
.
.

이 노래는 한 영화의 마지막 씬에 삽입이 된다.

바로 이 장면,
오렌 이시이와 베아트릭스의 사생결단 결투씬 …

그러타.
이 노래는 25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멋지게,
쿠엔틴 타란티노의 야심작 “Kill Bill”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4. 제2의 전성기

이 노래의 각종 리메이크 버전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 중 하나인 Al Di Meola가 참여한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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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ndi Lauper 버젼

Cat Stevens 버젼

Joe Cocker 버전

_M#]

5. 악마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다.

그리고 2008년의 한국에서,
이 노래는 기어코 “악마의 음악”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소박하고 미약하였다.

시작을 알고 싶으면 여기를 누지르시라.

그리고 이렇게 피어난 작은 싹은 …
스멀스멀 자라나 결국 악마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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끗.


영진공 이규훈

그대, 혹시 꿈을 죽이셨나요 …

 

“朝聞道 夕死可矣”
뜻인즉슨,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나 같은 필부야 아침에 도를 들어도 그게 뭔줄 알지 못하겠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도를 얻었으면 조금이라도 더 살아서 즐겨야지,
왜 죽어도 좋은 것이냔 말이다.

어렵사리 얻은 걸 잘 간직하고 가끔 꺼내어 보여주기도 하고 은근히 자랑도 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의 즐거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게 그런게 아닌가 보다.
난 도가 무슨 100평짜리 아파트나 현금 50억 쯤이나 되는 건 줄 안 건가 보다.
도는 깨우침이요, 살아가는 길인데 난 그걸 물질로 생각하여 소유하는 건줄 안 거다.
그러다 오히려 소유에 내가 노예가 되어버린 거다.

왜 그런 걸까.
왜 난 모든 걸 물질로, 소유로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가.
내 삶의 조건을 부유하게 그리고 편하게 해 줄 것에 얽매여,
도리어 스스로 거기에 삶을 종속시키는 우스꽝스러운 꼴을 자초하고 있느냔 말이다.

삶을 소비로 알고, 물질의 많음을 권력으로 계산하는,
그래서 꿈을 욕구로 대체하는 걸 미덕이라 아는 지금 나의 모습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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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 지방단위별로 교육감 선거를 치르고 있고, 서울에서는 내일(7월 30일) 투표를 한다.
그래서 여러 후보들이 저마다의 교육관을 내세우며 선출을 호소하고 있다.

그걸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교육이라? … 뭘 가르치는 걸까? … 누군가에게 뭘 가르친다는 게 과연 가능한 걸까? …”

‘이것이 옳으니 이리 하여야 한다’ 또는 ‘저것이 그르니 저리 하지 말거라’ 라고 제시하고 그대로 따르라는 건 강요나 주입이지 교육이 아닐 것이다.

사실을 보여주고 이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과 방법을 제시하면서 함께 토론하여 스스로의 판단과 방법론을 정립하도록 서로 돕는 활동,

그런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분석과 해석 그리고 전망을 할 수 있는 종합적 사고 능력이 발전되도록 하는 활동,

그게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가 절대진리라 “배웠고”, 그리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인간’이 되라 “배웠다”.

자, 그건 그렇게 배웠으니 됐고 … 그리고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남들보다 일점이라도 더 받고 남들보다 반발짝이라도 빠르게 세상에 적응하는 요령을 외우고 몸으로 익혔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공식을 외우고, 소설과 시의 의미를 외웠다.
그러면서 경쟁에서 앞서야 대우 받는다는 걸, 어떻게든 눈에 띄고 능력있어 보여야 무시 당하지 않는다는 걸 온 감각으로 체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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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다시 우리의 아이들이 배우고 겪게 하겠는가?
그걸 “교육”하겠는가?

돈 있으면 편하고, 성공하면 잘 나가고, 권력을 쥐면 무시 당하지 않는다 …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변치 않는 진리가 아니다.
강요하고  주입할 무엇이 아니라 각자가 선택할 여러 길 중 몇 가지일 뿐이다.

‘나라에 충성’함을 원한다면 스스로 그 당위성과 방식을 찾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부모에 효도’를 원한다면 복종과 고득점 고연봉 이외에도 많은 길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길을 찾고 어려우면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고집도 부리고 다툴줄 아는,  
그렇게 자기를 아끼고 남을 존중하는 이들이 실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대,
혹시 꿈을 죽이지 않았나 …
길 가 어느 한 켠에 스러진 꿈을 외면하고 욕망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는가 …

나 그리고 그대,
그걸 탓하지 말자.

허나 …
나의 욕망을 우리 아이들의 꿈에 억지로 우겨 넣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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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이지만, 함께 추구하는 하나의 꿈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오노 요코


영진공 이규훈
 
 



그 소식 이제 듣게 됐어 크게 놀라진 않았지,
버려진 마음 구석 어느 벌판에 마치 벌레와 같이 비참히,
한때 친한 친구였던 내 꿈이 죽어있다고,


그 소식 이제 알게 됐어 눈물은 나지 않았지,
눈썹을 찌푸리고 아주 오래 전 모습 더듬어봐도 흐릿해,
한때 친한 친구였던 내 꿈이 죽었다는데,





도대체 난 그 언제부터 그를 버리고 살아온 건지,
숨가쁜 세상에 홀로 살아남으려 덤을 줄이고 싶었는지,
어떻게 난 그 오랫동안 꿈을 버리고 살아왔는지,


이제야 무서운 진실을 알게 됐어,
어쩜 내가 내 손으로 내 꿈을 죽였다는 걸,


어쩜 내가 내 손으로 내 꿈을 죽였다는 걸 …

<님은 먼 곳에>: “수애에 의한, 수애를 위한, 수애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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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꽤 좋았습니다.

최근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희노애락을 고루 담은 영화였는데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하더군요. (남은 쥐를 마저 잡자…까지 ㅎㅎ)

수애(순이)가 왜 그 곳까지 기어코 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평이 많던데
순이의 동기는 적어도 <놈놈놈>에서 왜 걔네들이 그 지도 가지고 난리를 치는지 이해하는 것보다는 쉽습니다.

아마 제가 순이였다고 해도 그랬을 것 같으니까요.
순이는 남편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심지어 친아버지에게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자기 책임도 아니고 잘못도 아닌 일로 비난만 당했죠.
그렇지만 베트남에 가서 순이는 모든 것을 얻습니다.
주변 사람들로 부터의 인정, 도덕적인 정당성, 심지어 어느 정도의 권력까지…

쿠르트 레빈K.Lewin 이 이 상황을 봤어도 순이의 선택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평가했을겁니다. 순이에게 주어진 심리학적 장(field)에서 순이가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냥 도망가는 길도 있지 않았느냐고요?
아마 그건 순이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왜 그 미군장교는? 글쎄요. 전 그게 일종의 자기 능력 실험처럼 보였습니다.
순이의 마지막 무대공연 때부터 계산하는게 보이거든요.
결국 그녀는 자기의 힘으로 거기까지 간겁니다.

덧붙여,
이준익 감독 영화가 계속 변화한다고는 하지만 제가 보기엔 늘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준익 감독 영화의 변치않는 테마는 “공연” 입니다. (이 “공연”은 허접한 코미디 영화에 늘 등장하는 노래방 공연과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황산벌>에서 양측 병사들이 벌이는 욕 공연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엔 아예 대놓고 광대 주인공들만 내세우고 있죠.
그리고 이준익 감독은 이 공연을 묘사하는데 있어 꽤 능숙합니다.
덕분에 공연자들이 겪는 미묘한 순간들이 이 정도로 잘 묘사되는 영화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듭니다. 무대에서 느껴지는 공연자와 관객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어떤 지점에서 그게 다른 감정으로 변화되는지… 이 영화에서도 그런 묘사가 가끔 나오는데 꽤 좋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수애 간지…d-_-b
<놈놈놈>의 정우성 간지만큼이나 확실합니다.

남자 배우들이 꼭 한번 해보고 싶었을 역할이 그 영화에서 정우성 역할인 것 처럼,
여자 배우라면 아마 이 역할 꼭 해보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남자배우라고 아무나 정우성처럼 총을 돌리지 못하듯,
수애가 없는 <님은 먼곳에>도 상상하기 힘들죠.


영진공 짱가

*추가1: 덧붙여 정우성 간지

* 추가2: 크레딧을 보니 엄태웅은 자그마치 “특별출연” 이더군요.
원래 그거, 출연료 안받(거나 최소한도만 받)고 나오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봐도 엄태웅의 비중이 특별출연 수준은 아니던데…
이준익, 참 무서운 감독입니다…-_-;;

[원티드],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

 

‘핸콕’을 보고 싶었지만
아내가 ‘원티드’를 보잔다.
힘은 미모에서 나오는지라 원티드를 봤다.

난 비쥬얼보다 서사를 중시한다.
‘스피드 레이서’나 ‘300’을 재미없게 본 것도 그 영화들엔 서사가 없기 때문이었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서사는 ‘디 워’ 정도로,
사람들이 거품을 문 것과는 달리 난 ‘디 워’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본 편이다.
근데 이놈의 원티드는 뭔가 자극적인 것만 보여주려는 데 너무 힘을 쓴 나머지
줄거리의 아귀가 전혀 맞지 않는다.
처음 나오는 자동차 추격 씬은 충분히 멋졌지만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이미 원티드에서 떠나 버렸다.
영화가 끝났다 해도 의문점은 명쾌하게 풀리지 않았고
“그래서 누가 나쁜놈인데?’라는 질문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 영화의 장점을 한가지 꼽으라면
안젤리나 졸리가 나왔다는 것.
‘오리지날 신’이 세상에서 가장 야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툼 레이더를 에로영화로 기억하는 것처럼
졸리만 나오면 아무리 싸우는 씬이 많다해도 보고나면 에로영화를 본듯한 느낌이 든다.
원티드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인지라
졸리가 화면에 나오기만 하면 기냥 숨이 턱 막힌다.
거기에 더해 묘하게 웃거나 약간의 미소만 지어도
와, 진짜 야하다는 생각에 집중이 안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서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의 30%쯤은 안젤리나 졸리 탓일지 모른다.
참고로 영화에선 친절하게도 졸리의 등 누드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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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화들은 하나같이 여자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끼리 대결하는 구도의 영화가 판을 치고 있어
여자들은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면 설 자리가 없는 거다.
그나마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조디 포스터나 줄리아 로버츠 정도?
그러니, 스스로의 힘으로 영화를 띄울 수 있는 안젤리나 졸리는
참으로 대단한 헐리우드 여전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난 졸리를 좋아하는데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문제다.
헐리우드에서 최고로 섹시한 배우를 물으면 늘 1등하잖아!
다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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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