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2호]<굿 우먼>(A Good Woman)의 명대사들..

상벌위원회
2006년 10월 31일


제가 스칼렛 요한슨 칭찬을 몇번 했더니
지인이 영화 <굿 우먼>을 빌려주더군요.

영화는 처음에 좀 지루하게 시작합니다만,
곧 놀라운 대사빨을 발휘하며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정말이지 이 영화는 여자와 결혼에 대한 냉소적인
인용구로 써먹기 딱 좋은 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보는 내내 이 영화 각본가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니 원작자가 오스카 와일드.

어쩐지 그냥 내공이 아니더라니…
(하지만 스토리 전개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 두 여자 사이의 관계가 반전인데, 그게 좀 어색하더라는...

근데 영화는 그런 냉소적인 대사와는 달리
상당히 따듯하고 해피하게 끝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도 그랬을지,
아니면 제작자의 입김 탓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나름대로 분위기 망치지 않는 한도내에서 적절한 마무리였습니다.

포스터에서는 뭐 세기의 스캔들 운운 하는데
그런거 전혀 아닙니다.

그저 이태리 휴양지에서 노닥거리는 한가한 무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약간의 소동, 그리고 두 여자의 기구한 관계
(어떻게 보자면 우리나라 드라마스러운)
뭐 그런 소소하고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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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Bad Woman는 귀찮고, 착한 여자Good Woman는 따분해. 차이는 그것 뿐 이지

사람들이 경험이라고 부르는 건 대부분 실수를 말하죠.

여자는 이해받기 보다는 사랑받기를 원해요

(‘오페라는 로맨틱해요’ 라는 말에 대한 대답)
말을 노래로 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지. 로맨틱은 무슨

부도덕한 사람이 훨씬 더 나아

아내는 일단 배신을 당하면 똑같은 행위의 자유를 얻는 셈이죠

몰라도 되는 건 알고 싶지 않아요. 아는 게 병이거든요.

영원한 사랑은 유령 같은 거야. 다들 유령 얘기는 해도 본 사람은 없다구.

소시지와 여자는 말야. 제대로 즐기려면 준비과정을 보면 안 돼

여자가 여자를 못 믿는 건 남자 때문이예요.
여자도 여자를 못 믿고 남자도 여자를 못 믿으니 아무도 여자는 못 믿겠군요.
힌두교와 카톨릭을 섞어놓은 거랄까?

왜 결혼을 교회 제단에서 하는지 아나?
멀쩡한 사람을 제물로 바치거든

이 세상에는 두가지 비극만이 존재해.
하나는 내가 원하는 걸 남이 가진 경우,
다른 하나는 이게 정말 최악인데, 바로 결혼이지

사랑은 전쟁이야
남자는 돌격하고 여자는 저항하지
남자가 물러서면 여자는 퇴로를 막아
승산이 없어요.

뭐 이길 필요가 있을까. 싶어지는 스칼렛..

상벌위원회 상임 간사
짱가(jjanga@yonsei.ac.kr)

[영진공 62호]첫 사랑의 미니홈피에 갔다가..

재외공관소식
2006년 10월 31일

자주 가는 동호회에 갔더니, 첫 사랑의 미니홈피 이야기가 올라와.. 옛날 생각이 나서 그냥 끄적끄적. 마눌님은 내 블로그에 오지 않으니 이 글을 볼 리 없고, 봐도 어차피 10년도 훨씬 이전의 이야기다 보니, 그냥 이해하리라 생각에 적어 본다. ( 그래도 무지하게 조심스럽다. 아내가 애를 낳더니 폭력 성향이 되어 툭하면 발길질인지라. -.- )

첫사랑은 고3 여름에 동네 독서실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자였다. 예쁘다기 보다는 늘씬했고, 착하다기 보다는 똑똑했고, 무엇보다 무지하게 웃겼다. 딱 내 이상형이었는데, 독서실에 붙어있는 휴게실에서 혼자 사발면 먹고 있고 있기에, 내가 집에서 김치를 가져다주면서 사귀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여성관.. 이라고까지 하면 거창하고. 여자를 대하는 방법이나 여자들의 생각 같은 것은 다 그 친구에게 배운 것이지 않을까 싶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봤을 때 물어 봤었다.
“저렇게 치마 짧은 여자들을 보면, 어디다가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어.”
“다리에다가 시선을 둬.”
“헉. 그러다 변태 소리 들으면?”
“침 흘리면서 보지 말고, 감탄과 존경의 눈빛으로 보면 되. 저 여자 다리를 다시 봐봐.”
마침 지나가던 여자의 다리를 쳐다보는 내 얼굴을 그 친구가 보더니.
“안 되겠다. 그렇게 쳐다보면 따귀 맞겠다.”
그러고는 그 다음 날인가.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
“자 이제 내 다리를 봐봐.. 아니, 아니, 그런 밥 먹다가 밥풀 튈 때 짓는 표정 말고. 그래. 그래. 아름다운 예술품을 감상하는 그런 표정. 됐어. 그렇게 보는 거야.”
이런 걸 가르쳐 줬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웃긴 친구였다. 어디서 바바리맨이 출연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현장검증을 한다며 사진기를 들고 나를 끌고 가기도 했고, 공부 잘하는 암시를 걸어 준다며 로프로 내 두 손을 묶은 채 한 시간 동안 반야심경을 틀어주기도 했었다. 심지어는 여자 꼬시는 법도 알려 주기도 했고, 여자들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 등에 관한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나와 모의 훈련을 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개그우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친구에게서 배운 아이들의 인생이 걱정도 되지만, 더불어 그 아이들이 자라면 이 세상을 보다 즐겁게 만드는데 일조할 것 같은 믿음도 생긴다.

나에게 영어 과외를 시켜줄 정도로 공부 잘 하던 친구였는데, 어쩌다보니 나만 대학에 들어갔고, 그 친구는 재수를 하게 되었다. 대학 1학년 때는 누구에게나 전성기 아니던가? 날마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 가다보니, 새벽까지 도서실에서 악착같이 공부를 하던 그 친구와 만나는 일이 뜸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한 달에 한두 번 만나게 되며 우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어느 날 서클에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생겼고, 그 여학생과 사귀기 전에 말을 해야 될 것 같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학교 1학년 여름, 도서실 앞, 놀이터에서 그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

그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늘 유쾌한 커플이었다. 둘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각자, 혼자 있을 때는 썰렁하다는 소리를 듣는 우리였지만, 같이 있으면 어떤 모임에 참석하건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개그 콘테스트에 커플로 나가 보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날. 참 우울했다. 내가 아무리 웃겨도, 그 친구는 웃지 않았으니까. 뜨거운 여름 밤,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가 일어서자, 나를 바라보며 “안녕”이라고 말하며 짓던 아픈 미소가. 그리고 얕게 앉아 있던 촉촉한 그 눈물이.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해에 그 친구가, 정말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아무쪼록 즐거운 대학생활이 되기를 가슴 속 깊이 바랬었다. 그렇지만 뒤에 들은 이야기로, 그 친구는 도서실을 나가며 내 욕을 진탕 했단다. 저주를 섞어서. -.-

남자는 첫 여자를 평생 기억하고, 여자는 마지막 남자를 평생 생각한다고 했던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까지 몇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사람은 그 친구 하나다. 처음 사귀어 봤던 여자였고,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았던 나이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도 넘쳐났던 시기였다. 내가 그 친구에게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채 익지 못했던 내 배려 때문이었으리라. 몇 년 전,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나서 그 친구의 미니 홈피에 들어갔는데, 사랑에 관한 50항목 정도의 설문조사를 적은 글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 내 이야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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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 -> 키 크고, 잘생긴데다, 돈 많은 남자 ( 그런데 그런 남자는 나를 싫어함 ㅡ.ㅡ)
첫사랑 -> 고3때 그 놈.. 배 나오고, 못 생긴데다, 돈도 없었는데.. 그런데… 그 놈에게 차였음. -.-
그래서 1년간 그놈 인형을 만들고 매일 바늘로 찔러 줬음. 그 놈.. 그때 살았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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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20살때.. 1년간..
죽도록 머리 아픈 날이 많았더랬다. -.-;

* 이제 장사꾼이 다 되었나 보다. 그 친구의 미니홈피를 뒤지던 기억을 회상하며 “부두인형을 파는 쇼핑몰을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이나 하다니. 찾아 보니 한국엔 쇼핑몰이 없어 보인다. 커플용품 파는 분들이라면 참고해 보시길.

* 결혼을 하니까, 그 이전의 모든 기억은 꺼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사실,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아내와 연예할 때 “다 용서해 줄 테니까, 첫사랑 이야기를 해 줘봐.”라는 꼬임에 빠져서 아내에게 해 준 이야기다. 덕분에 한 달간 두들겨 맞았다. 미혼 남성들이여 참고하시라.

영진공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산하
성역사연구회 과장
짬지(http://zzamziblog.com)

[영진공 62호]헤비죠의 중얼중얼 – Bob Dylan – Modern Times

재외공관소식
2006년 10월 30일


(2006, 미국, SONY BMG)

“밥 딜런(Bob Dylan)”의 2006년 새 앨범이다. 뭐랄까, 블루스와 포크를 모두 푹 고아낸 음악이라고 할까? 여전히 우리는 ‘모던하다’는 말을 세련됨이나 진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밥 딜런은 모던한 시절(Modern Times)이 이미 지나 버린 것은 아닐까 묻고 있는 듯 하다. 그가 보기에 모던한 시절은 신념으로 포크와 록과 블루스를 부르던 때에 끝나 버린 것이다. 전 지구화라는 광풍 속에 이제 사람들은 신념도 팔아 먹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동전의 양면으로 굴러왔던 우리의 근대(Modern Times)는 “알리샤 키스(Alicia Keys)”의 죽음과 같이(「Thunder on the Mountain」) 사라졌다. 근대의 다음은 진보가 아니었고, 노동자들은 그렇게 착취 당하며(「Workingman`s Blues」) 힘겹게 삐그덕 굴러갈 뿐(「Rollin` and Tumblin`」) 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소위 진보라 여겨졌던 포크와 블루스 록의 결합을 거쳐 피아노의 시인까지 나아갔다가 다시 피들(fiddle)과 만돌린(mandolin)이 횡횡하는 음악으로 돌아갔다. 진보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보다 더 인간이 홀대받는 현실에서 차라리 신념으로 싸우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음반, 그러나 아름다운 음반이다.
얼마 전, 수업에서 잠시 『Don`t Look Back』을 보았는데, 당시의 밥 딜런의 눈빛은, 목소리는, 말들은 분명 지금처럼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사족.
밥 딜런이 가사를 더 붙이기도 하고 브릿지를 추가 하긴 했지만, 분명 기존에 있던 노래들이 음반에 들어있는데, 무슨 연유로 전곡 작사 작곡을 밥 딜런이라고 표시했을까? 작자 불명의 블루스 곡이라면 어레인지를 본인이 했다고 하면 될텐데. 좀 기분이 요상하기도 하다.

음악이란 중얼중얼
헤비죠 (http://heavyjoe.ddanzimovie.com)

[영진공 62호]헤비죠의 중얼중얼 – Voivod – Katorz

재외공관소식
2006년 10월 30일


2006, 캐나다, The End/Nuclear Blast)

어느새 발매된 지 몇 달이 지났다. 지난 해, 기타리스트이자 사운드의 핵심이었던 “피기(Denis D`Amour “Piggy”)”의 갑작스런 대장암 발병과 사망 이후, 끝난 줄 알았던 밴드 “보이보드(Voivod)”는 고인이 생전에 작업하던 데모를 최대한 살려서 새 음반을 냈다. 향후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여 지속적인 활동을 펼칠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여튼 근자에 보기 드문, 탄탄하면서도 매력있는 헤비메탈 음반이 한 장 나왔다. 쓰래쉬 메탈로 시작, 프로그레시브 시기를 거쳐 최종 안착점은 그간의 모든 것이 담긴 보이보드 표 음악이다. 굳이 장르를 언급하자면 스토너 록(Stoner Rock)에 가깝지만, 쉽게 단정짓기 힘든 개성으로 가득하다. 음악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어떻게 글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나의 입장에서, 이런 음반은 사실 조금 당황스럽다. 어떤 하나의 틀로 규정할 수 없는 보이보드 색채의 보이보드 만의 록 음악이기 때문이다.

과다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 베이스(“제이슨 뉴스테드(Jason Newsted)” 바로 그 메탈리카 출신!)와 간결하면서 도대체 자신의 연주 이외엔 전례를 찾기 힘든 기타 리프와 솔로, 그리고 그 위로 시니컬하게 내뱉는 보컬(“스네이크(Snake)”)의 포스까지. 그리고 밴드의 브레인인 “어웨이(Michel Langevi “Away”)”의 간결한 드러밍과 특유의 아트워크까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것으로 가득하진 않지만, 상투적인 반복도 전혀 없다.

이런 잘 만들어진 음악이 이들의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 음반을 몇 번 듣다보니 어떻게 써볼까 하는 나의 짧은 고민 따위는 어느새 사라진다. 그저 좋은 음악은 듣는 이를 즐겁게 만들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 만드니까.

음악이란 중얼중얼
헤비죠 (http://heavyjoe.ddanzimovie.com)

[영진공 62호]X-Box 360, PS 3, 그리고 iTV

재외공관소식
2006년 10월 27일

거실, 넓은 창문과 대형 TV와 소파와 책장이 나름대로의 규칙성 속에서 혼재하는 공간. 거기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TV다. 그리고 어느 집이건 거실 TV에는 여러 가지 장비가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비디오 플레이어, DVD 플레이어, 케이블 TV 셋톱박스, HDTV 셋톱박스, 리시버, 앰프, 5.1채널 스피커, 기타 등등.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건 게임기다.
아타리가 첫발을 내딛고 닌텐도 패미컴이 대히트를 친 이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지속적으로 팽창을 거듭했다. 여러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많은 업체들이 탈락해 나갔다. 현재까지 경쟁을 계속하고 있는 회사는 가전업계의 거인 소니, PC 소프트웨어 업계의 거인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게임기 산업의 대부 닌텐도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1과 2로 사실상 게임기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PS 3의 시장 투입이 늦어지면서 차세대기 경쟁에서 경쟁자들에게 뒤처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일찌감치 X-Box 360을 내놓으면서 북미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닌텐도는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게임기라는 컨셉의 Wii를 발표해 게이머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소니는 이에 맞서 PS 3의 막강한 성능을 어필하는 동시에 차세대 광드라이브인 블루레이 드라이브를 기본으로 탑재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차세대 게임기 중에 어느 쪽이 승자가 될 지는 아직 확실치가 않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 이기건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대박이 터지긴 힘들 거란 사실이다.

소니와 MS는 게임기 판매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다. 하드웨어 마진을 대폭 낮춰서 가격을 최대한 끌어내렸기 때문에 팔리면 팔릴수록 도리어 손해를 볼 지경이다. 그 대신, 게임 개발사로부터 게임이 1카피 팔릴 때마다 일정 수준의 라이센스 료를 받아서 이익을 낸다. 따라서 수십만, 수백만 카피가 팔리는 초대형 히트작이 나오면 게임 개발사뿐만 아니라 게임기 업체도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된다. 이런 게임이 계속해서 나와 준다면 하드웨어 판매에서 입은 손해는 순식간에 메꿔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지난 여러 해 동안 잘 동작해 온, 사실상 검증된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고 있다. 가장 큰 시대적 화두는 역시 온라인이다.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은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 미국 등지에서 하루가 다르게 사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TV용 콘솔 게임기가 지배하고 있던 게임 시장의 중심축이 점차 온라인 게임 쪽으로 기울어지는 형편이다.
이 와중에 무료 온라인 게임의 숫자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 무료 게임이 노리는 바는 게임기 하드웨어 업체와 별 다를 게 없다. 일단 사용자 숫자를 충분히 확보한 다음에 광고 또는 아이템 판매로 이득을 보겠다는 속셈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료로 배포하는 게임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웹에서 즐기는 플래쉬 게임부터 시작해서 소스까지 완전히 공개된 대형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MS의 X-Box 부문이 처절한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시장 장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MS의 윈도우 기반 PC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사이, 콘솔 게임기의 시장 장악력은 현저하게 약해졌다. 이제는 수십, 수백만 장씩 팔리는 게임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게임 판매가 부진해서 라이센스 수익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는 탓에 하드웨어의 적자를 메꾸지 못하고 허덕이는 것이다.
닌텐도의 경우는 차라리 낫다. Wii는 PS 3나 X-Box 360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스펙의 게임기지만, 그 덕분에 개발 단가나 생산 단가는 훨씬 낮다. 소니나 MS와는 달리 하드웨어가 팔릴 때마다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거나 하진 않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닌텐도는 하드웨어 개발업체인 동시에 자기들 스스로가 킬러 게임 개발자이기도 하다. 굳이 써드파티 개발자의 라이센스 수입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젤다와 마리오 브라더즈 게임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볼 수 있으니까.
소니는 PS 3를 블루레이 미디어 보급의 선봉장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HD-DVD 탑재를 공언한 X-Box 360과의 경쟁에서 절대 물러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블루레이에는 그야말로 소니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니는 PS 3 하드웨어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적인 가격 정책과 과감한 마케팅을 펼칠 것이다. HD-DVD 플레이어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닦기 위해서.

얼마 전, 스티브 잡스가 직접 진행한 애플의 아이팟 신제품 발표회에서 iTV라는 제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제품은 TV에 연결되는 미디어 플레이어로 컴퓨터에 저장된 미디어 파일을 무선으로 재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팟 나노나 셔플과는 달리, iTV는 내년 1/4 분기에나 발매될 예정이다. 어떤 분석가는 애플이 초당 540Mbit 전송이 가능한 802.11n 규격이 승인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한다. 일리 있는 얘기다. 고해상도 동영상을 원활하게 무선으로 재생하려면 대역폭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사실 이런 류의 미디어 플레이어는 이미 국내에도 여러 종류가 나와 있다. 마니아와 얼리 어답터 사이에선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불편한 사용법으로 인해 거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는 데는 실패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디어 플레이어에 내장된 소프트웨어는 VTR의 예약녹화 기능만큼이나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맥과 아이포드로 검증된 하드웨어 제작 능력과, 맥오에스와 프론트로우(FrontRow)로 대표되는 간결하고 편리한 인터페이스 개발 능력과, 아이튠즈 스토어라는 강력한 미디어 판매 수단을 가지고 있다. 유의미한 시장을 만들고, 하드웨어 판매로 이익을 내고, 미디어 판매로 부차적인 이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이쯤 되면 진정한 차세대 게임기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그 이름하야 ‘iPC’. 이것은 무선랜으로 방구석에 놓인 PC와 연결되는 게임기다. iPC의 USB 포트로 연결된 키보드와 마우스, 조이패드를 조작하면 그 신호는 무선랜으로 안방 PC에 전송되고, 안방 PC의 게임 화면은 무선랜으로 iPC에 전송되어 TV에 표시된다. iTV처럼 PC에 저장된 미디어를 무선랜으로 재생하는 부가 기능도 제공한다. TV 출력은 일반 컴포지트 단자부터 고해상도 게임을 위한 HDMI 단자까지 충실하게 갖춘다. 광드라이브 등의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생략해서 생산 단가를 절감한다. 유치원생도 간단하게 쓸 수 있는 게임 포탈 사이트 ‘iPC 게임 스토어’를 만들고, 거기서 유료 회원 가입이 일어나거나 아이템 판매가 이뤄질 때마다 라이센스 료를 징수한다. 이미 형성된 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힘들여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없고, 하드웨어가 팔릴 때마다 수익이 나고, 게임이 팔릴 때마다 또 돈이 벌린다. 만세만세만만세!
하지만 그렇게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3D 고해상도 게임 화면을 무선랜으로 끊김없이 전송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라이센스 료에 부담을 느낀 게임 회사들이 게임 스토어에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문제는 이게 과연 생각처럼 잘 팔리겠느냐 하는 거다. 만일 내년 초에 나올 iTV가 날개돋친 듯이 팔린다면 iPC 역시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백일몽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겠지!

‘뉴스 놀이터’ IT 전문기자의 외도
DJ. HAN (djhan@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