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바이스>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22일


<마이애미 바이스> 봤습니다.

결론은 그저, “마이클 만”이 총격전 오타쿠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영화라고 밖에는…

본인이 생각하는 리얼리즘의 극단을 드러내더군요.
문제는 그 리얼리즘이란게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거죠.

예를 들어, 영화의 한 절반쯤은 녹음기사나 조명기사도 쓰지 않고
걍 HD 캠코더로 찍어버린 모양입니다.

흔들흔들거리는 앵글에, 감도 높이느라 노이즈 잔뜩 낀 화질에,
미국남부의 화사함 보다는 아시아의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창백한 색조에…

<CSI : Miami>에서 늘 보던 그 현란한 하늘과 황금색 풍경은 어디로 가고
이런 칙칙한 색깔만 있는 건지…
(아, 화사한 하늘은 잠깐 나옵니다. 그나마 좀 영화 같던 비행장면)

심지어 마지막 총격전 장면도 후시녹음으로 총성을 보정하지 않고
그냥 개활지에서 총 쏠때 나는 그런 콩볶는 듯 따닥따닥 하는 소리를 그대로 썼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는게 아니라 무슨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입니다.

등장인물의 내면도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사건이 벌어지고 대응하는 과정이 하나하나 나올 뿐이죠.

내면 묘사를 없애는 거야 연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다보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나온다는 거죠.
특히 “콜린패럴”과 “공리”의 관계는 뜬금없었습니다.
둘이 이팔청춘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아주 대단한 삶의 전환기에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그렇게 겁없이 덤벼들었는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여튼, 요즘 유행인 수사드라마들과는 극단에 선 영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CSI 는 아주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현실적인거 같지만 실제와는 상당히 다르겠죠.
일단 죄다 유리로 만들어진 연구실들 부터 뭔가 아니거든요.
흉기가 인체의 내부를 파괴하는 과정을 CG로 그려내는 살해장면 재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그럴듯하고 멋진 화면을 만들기 위한 연출이죠.

그래도 시청자들은 거기에 상당히 쉽게 몰입하고 실제처럼 받아들입니다.
관객들이 실제인듯 받아들이게 “연출”을 했거든요.

반면에 이 영화는 앞서 말했듯 정말 실제를 찍은 느낌을 줍니다.
근데 관객들은 뭔가 빠진 것 같고, 느슨한 것 같고, 실감도 잘 안나죠.
(예를 들어, 총성이 뭐 그래? …)

영화 <괴물>에서 마지막에 괴물이 불타는 CG 장면이 사실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진짜 물고기에 신나뿌려서 태워보면서 만들어낸, ‘사실’에 가까운 장면이지만
정작 관객들은 너무 구리다고 욕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사실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실제 사실은 거의 대부분 다른 법인데
“마이클 만”은 그냥 진짜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근데 따지고 보면, 이건 영화지 사실이 아니쟎아요.
실제 마이애미 경찰이 페라리 몰고 다닐 거 같지도 않고,

마지막으로, “제이미 폭스”가 자기 여친 수술하는 병원에서 이렇게 투덜거리죠.
“이렇게 엿같은 직업 때문에 죽을 지경까지 가야 하는거야?”

아니, 맨날 페라리이거나 그에 준하는 머슬카 몰고 다니고,
맘만 내키면 고속보트 타고 쿠바 가서 술마시고 오고
신나게 비행기도 조종하는데다 장비는 최고급
(소총은 SIG 552에 권총은 SV제 커스텀 죄다 수천불짜리…
아 시계는 IWC 인데 그것도 아마 몇천불은 하지?)

이 정도면 수사관 생활 중에서는 아마 최고 럭셔리일텐데 그게 엿같다니
무슨 그런 천벌 받을 소리를… -_-;;;

* 짤방사진은 “콜린 패럴”이 SIG552 소총을 신나게 쏴대는 장면.
“마이클 만”은 총에 부가장비 붙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역시 그의 사실주의에 맞지 않는 모양.

하지만 요즘에는 다들 최소한 도트사이트나 라이트 정도는 붙이는 분위기인데…

상벌위원회 상임 간사
짱가(jjanga@yonsei.ac.kr)

검룡 #1

문예창작위
2006년 8월 22일

초 극우 마초이스트를 위한 액션 무협 어반 판타지.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 연재하다 때려치운 걸 14년만에 다시 쓰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 땅에 죽어 마땅한 버러지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의 도리를 따져가며 머뭇거릴 때, 놈들은 단호하게 행동에 나서 살육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젠, 우리가 그렇게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제 1장. ENSIS DRACO (1)

큰 길가를 지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벽돌담에 둘러싸인 오래된 주택가 사이로 뚫린 좁고 구불텅한 골목길을 따라가면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언덕이 보인다.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가지를 넓게 폈다.
숲을 관통해 언덕 꼭대기로 이어진 비탈길은 경사가 급했다. 나이든 사람은 중간에 한 번 쉬어가야 할 정도였다. 그 끝에는 넓은 평지가 펼쳐졌고, 거기엔 한 채의 성당이 세워져 있었다.
특별히 웅장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세운 조그마한 성당이었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 달빛은 십자가 위에서 흔들리고 주변은 고즈넉했다. 본당의 투명한 유리창에선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소박한 검은색 옷을 입은 신부였다.
그는 이 평범한 성당에서 유독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 이유는, 그가 바다처럼 깊은 푸른 빛 눈동자를 지닌 외국인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라고 했다. 큰 키를 감추듯이 언제나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다녔다. 나이는 서른 일곱, 짧게 깎은 머리부터 손등에 난 잔털까지 모두 금빛이었다. 태어난 곳은 영국이고 자란 곳은 프랑스였다. 하지만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에도 능통했다. 물론 발음이 조금 어눌하고 표현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M_ more.. | less.. |
요셉 신부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순진하기도 했다. 자신을 ‘코쟁이 신부님’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허허 웃어줄 만큼 너그럽기도 했다. 밤늦은 시간에 몸소 빗자루를 들고 본당 복도를 청소하는 건 예사로 있는 일이었다.
“이제 빗질은 그만 할까?”
그는 잠시 허리를 펴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본당 뒤쪽,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모서리에 붙어 있는 조그만 창고의 문을 열었다. 요셉 신부는 그 안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넣고 꼼꼼하게 열쇠까지 잠근 다음에 제단으로 걸어갔다.
형광등 불빛 아래, 신자들이 앉는 길다란 회중의자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그 앞에는 높은 연단과 엄숙하게 치장된 제대가 있었다. 제단 뒷벽에는 금빛 십자가가 높이 매달려 있었다. 어른 키만큼이나 크고, 별다른 장식이 없이 밋밋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건함이 한층 돋보이는 십자가였다.
요셉 신부는 제대 왼쪽의 성경 봉독대에 놓인 성경책을 펼치고, 품에서 돋보기 안경을 꺼내 코에 얹었다.
“내일모레 주일엔 무슨 설교를 해야 되려나?”
그는 천천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모든 설교는 성경에서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성경책에서 해답을 구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책이었다.
욥기를 서너 페이지 가량 넘겼을 무렵, 삐걱, 낡은 경첩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뺨을 어루만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이 시간에 참회를 하러 온 건 아니겠지?’
맞은편의 벽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겼다. 참회를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요셉 신부는 조금 긴장한 눈으로 그 사람을 주의 깊게 뜯어봤다. 짙푸른 코트를 걸치고 짙푸른 중절모를 눌러쓴 청년이었다. 모자챙이 만든 그림자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두 손은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노숙자라고 보기엔 행색이 너무 좋고, 강도라고 보기엔 행동이 너무 당당하군.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신부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는 마치 자로 잰 듯이 일정한 보폭으로 걸음을 옮겨 제단 바로 앞에 있는 신자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치 의자에 몸을 던지듯이 주저앉아 고개를 수그리며 팔짱을 끼었다. 하지만 그 건방진 태도에도 요셉 신부는 조금도 성내지 않았다. 그는 안경을 벗고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로 주님의 집을 찾으셨습니까?”
사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부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무언가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돌아온 것은 침묵, 침묵, 침묵. 사내의 입술은 일직선으로 닫혀 있었다.
무안해진 신부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며, 잠시 자신의 직분을 잊고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다니, 정말 무례한 사람이로군.’
갑자기 신부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주님 앞에서 예의범절을 모르는 인간들, 타인에게 몰염치한 인간들의 운명을 경고해야겠다는 생각이.
‘그래, 다음 설교 때 그 이야기를 해야겠군. 무례하고 몰염치한 자들에겐 비참한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놔야겠어. 그리고 주님의 은총을 자신들의 능력으로 착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던 이스라엘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지를 언급하면 더욱 효과적이겠지.’
요셉 신부의 입술에 흐뭇한 미소가 묻어났다. 그는 신자석에서 뭉개며 자신을 무시하던 청년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품게 되었다.
‘저 친구 덕분에 좋은 설교거리를 찾았으니 정말 다행이군, 다행이야.’
그때였다. 청년의 입술에서 새어 나온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아챈 것은.
“날 알아보지 못하다니 정말 실망스럽군, 달랑베르.”
신부의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고개를 돌려 침착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의 저는 요셉이란 세례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속명은 오래 전에 버렸습니다.”
청년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입가엔 비웃음이 떠올랐다.
“왜 이러나, 쟝 피에르 달랑베르. 우리말을 배우고, 사제복을 입고, 얼간이들의 양치기 노릇을 하는 건 네게 어울리는 일이 아냐.”
“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까?”
요셉 신부, 달랑베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두 눈에는 불안감이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무슨 말이냐고?” 청년이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두 손을 피로 물들인 사람에겐 성경책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 그런 놈에겐 칼이 훨씬 낫지. 내친김에 네놈에게 어울리는 칼이 어떤 건지 말해 줄까? 그건 아마 길이가 1.5미터에 칼 몸(劍身)의 폭이 한 뼘 가까이 되는 쌍수검(Two Handed Sword)이었을 거야. 그 이름이 아마 십자검(十字劍)이라고 했던가?”
청년의 말은 갑자기 과거형으로 종결되었다. 요셉 신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것은 두려움, 그것은 노여움.
“넌 누구냐?”
너그럽고 자애로운 신의 목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원초적인 분노가 서린 목소리에, 청년은 대답 대신 차디찬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요셉 신부는 몸을 떨며 다시 한 번 목청을 높였다.
“정체가 뭐냐?”
그제서야 청년은 여전히 웃음기가 떠나지 않은 입술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나는……”
요셉 신부의 목 울대가 아래위로 오르내리며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청년의 목소리가 벽력처럼 울렸다.
“검룡(劍龍)이다!”
순간, 바로 그 순간, 요셉 신부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숙련된 기계체조 선수조차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그는 한 마리 새처럼 높이 날아올라 천장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몸을 빙글 돌려 제대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오른손을 내뻗어 벽에 걸린 십자가를 내리쳤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금빛의 파편이 사방팔방 휘날렸다. 봄철에 벚꽃잎이 흩날리듯이.
그리고 반짝이는 금빛 속에서 한 줄기 푸른 섬광이 비쳤다. 그것은 길고 크고 무거운 빛. 아까 청년이 서술한 대로의 칼, 십자가 속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투 핸디드 소드의 검광(劍光)이었다.
요셉 신부는 그 칼을 두 손에 쥐고 크게 휘둘렀다. 공기가 요동치며 돌풍처럼 세찬 바람이 일어났다.
두꺼운 사슴 가죽을 두른 칼자루 끝에 박힌 것은 계란만한 크기의 붉은 수정, 육중한 칼 몸은 새하얀 은빛, 그리고 한 줄의 라틴어 명문(銘文)이 예리한 칼날을 감싸듯이 붉은 구리로 새겨졌다.

< CRUX SACRA SIT MIHI LUX. NUNQUAM DRACO SIT MIHI DUX >
< 거룩한 십자가여 저의 빛이 되소서! 용(사탄)의 길을 따르지 않게 하소서! >

그 칼의 이름은 크룩스(Crux), 십자검(十字劍)이었다.
그리고 십자검을 쥔 요셉 신부는 더 이상 신부가 아니었다. 그는, 쟝 피에르 달랑베르는, 눈을 매섭게 번득이며 이렇게 외쳤다.
“엔시스 드라코(Ensis Draco : 劍龍)! 살아 있었구나!”
“물론.”
검룡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절모를 벗었다. 모자 속에 숨겨져 있던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등허리까지 덮었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머리는 칠흑 같은 검은색, 다만 왼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한 줄기 흰 빛이 길게 이어져 내렸다.
“하지만 교황청의 지하감옥은 소문보다 훨씬 지독하더군.”
눈썹은 가늘고 길었다. 콧대는 날카롭고 턱은 뾰족해 마치 도검(刀劍)의 칼끝처럼 매서운 인상이었다. 역삼각형의 눈은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져 다른 감정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거기서 너희가 설파하는 사랑과 자비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경험할 수 있었지.”
달랑베르가 제단에서 내려왔다. 그는 한 발짝 한 발짝 신중한 걸음으로 검룡을 향해 다가갔다.
“그곳 간수들이 미쳐 날뛰는 너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꼴을 보아하니 완전히 정신이 나간 건 아니었던 모양이군.”
“그렇지도 않아. 그땐 정말 미칠 뻔 했어.” 새까만 눈동자에서 광기가 꿈틀거리며 솟아났다. “네놈들이 믿는 주님의 은혜로움과 자애로움 덕분에 말씀이야.”
검룡은 그렇게 말하면서 코트를 벗어 던졌다. 군살 하나 섞이지 않은 단단한 몸을 두른 것은 검은색 가죽 도복, 강건한 어깨에 걸친 것은 광택이 없는 흑철색 견갑(肩甲), 넓은 가슴을 보호하는 것은 같은 색의 흉갑(胸甲),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날아오를 것만 같은 황금빛 용이 새겨진 흉갑이었다. 허리에는 가죽 요대를 매고 오른쪽 허리춤에는 한 자루의 칼을 찼다.
“네가 감히 주님을 모독하고 주님의 집을 침탈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달랑베르의 물음에 검룡은 간단히 답했다.
“선전포고다.”
“뭐라고?” 달랑베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지난 3년간의 휴전을 깨겠다는 말이냐? 어째서? 뭣 때문에 전쟁을 재개하려는 거지?”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야.”
검룡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려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관찰하면 그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사실을, 그리고 피부가 지나치게 매끄럽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세라믹 뼈대와 탄소 섬유 근육, 인공 피부로 만들어진 기계 손이었다.
“내 오른손의 빚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는 왼손으로 칼자루를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놈들의 목을 벨 수만 있다면, 그런 사소한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단 말이지!”
눈부신 빛이 칼집에서 뻗어 나왔다. 검룡이 뽑아 든 것은 석자 세치 환도(環刀), 쓸데 없는 장식은 철저하게 배제된, 오로지 도살(屠殺)을 위해 존재하는 칼날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 칼이 허공을 가르며 한 가닥의 검기(劍氣)가 질풍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바닥의 대리석에 깊은 금이 패이고 두꺼운 나무 의자가 수수깡처럼 분질러졌다.
달랑베르는 급히 십자검을 비껴 세우며 진기를 불어 넣었다. 힘과 힘이 부딪히고 검기와 검기가 충돌하면서 공기가 폭발하고 돌풍과도 같은 바람이 사방을 휩쓸었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달랑베르의 눈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녀석은 본래 오른손잡이였다. 내공은 여전하겠지만, 왼손으로 쓰는 검술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마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검룡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왼손으로 칼을 쓴다고 해서 방심하는 건 좋지 않을 거야, 달랑베르.” 그의 손에 잡힌 칼이 가볍게 회전하며 불길하게 빛났다. “나는 본래 왼손잡이였거든. 어렸을 때 오른손잡이로 교육받았을 뿐이지.”
그러면서 그는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악마조차 꼬리를 내릴 정도로 잔인한 미소, 달랑베르의 안색이 납빛으로 굳어졌다.
“검룡, 나는 3년 전 너와 맞서 싸웠던 12인의 기사 중 하나다. 네놈의 능력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먹고 도망칠 내가 아니다!”
달랑베르는 노호처럼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요한 계시록에서 사탄의 상징으로 지목되는 용, 그 용의 목을 향해 십자검이 반원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마치 도끼처럼.
검룡은 침착하게 자신의 칼을 내질렀다. 얇고 가벼운 칼과 거대한 쇳덩이 같은 칼이 부딪히며 고막이 멍멍해지는 종소리가 울렸다. 십자검은 맥없이 튕겨져 나왔고, 달랑베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문득 3년 전, 어느 날의 일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128개 종파 연합에서 선출된 12인의 기사들이 검룡과 칼을 어울리던 광경이, 전신을 피로 물들이고 악귀처럼 싸우는 검룡의 손에 다섯 명의 기사들이 차례로 참살 당하던 광경이 눈앞에 어른거릴 것만 같았다.
그때 검은 늑대, 슈바르체 볼프(Schwarzer Wolf)가 먹빛 도끼창으로 검룡의 오른팔을 베고 그를 사로잡아 교황청의 지하 감옥에 처넣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검은 늑대는 없었다. 12인의 기사도 모이지 않았다. 오직 하나, 달랑베르만이 있었다.
검룡의 검술이 예전보다 떨어지긴커녕 훨씬 더 예리해지고, 공력은 더욱 높아졌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감을 곱씹어야 했다. 그러나 성지(聖地) 탈환의 십자군으로 참가해 무수한 공적을 세운 선조에게 물려받은 십자검의 기사로서, 적에게 등을 보이는 수치스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주여, 제게 힘을 주소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빌어야 할 대상을 잘못 찾은 것 같군.” 검룡이 이죽거렸다. “살고 싶다면 너희들의 무능한 주님께 빌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무릎 꿇고 빌어라.”
그 말을 들은 달랑베르의 눈에서 번갯불이 튀겼다.
“십자검의 기사는 불신자에게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진 않는다!”
그는 칼을 높이 들고 포효했다. 그리고 검룡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며 칼을 내리쳤다. 그것은 필생의 공력이 실린 회심의 일격이었다.
노도와도 같이 밀려드는 검기 앞에서 공기가 둘로 쪼개지고 돌과 나무가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을 보면서, 검룡은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날카롭게 일어선 칼날이 막 검룡의 정수리를 베려는 찰나, 바로 그 찰나, 검룡이 몸을 움직였다. 달랑베르의 눈앞에서 표적이 사라지고, 둔중한 십자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지나 대리석 바닥에 틀어박혔다.
“예전보다 솜씨가 둔해졌군, 달랑베르.”
등뒤에서 들린 목소리, 뒤이어 엄습하는 살기에 달랑베르는 주저하지 않고 재빨리 반응했다. 허리를 튕기며 바닥에 박힌 십자검을 뽑아, 왼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그는 찬란한 섬광을 뿌리며 날아오는 환도를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손에 든 십자검을 휘둘러 그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그 순간, 시야에서 검룡의 환도가 자취를 감췄다. 다음 순간, 십자검이 목표를 잃고 헛되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마지막 순간, 한 갈래 빛 줄기가 달랑베르의 가슴팍을 덮쳤다. 피할 틈도, 막을 틈도, 하다못해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었다.
예리한 검기가 그의 가슴을 번개처럼 관통했다. 신부복의 앞섶이 길게 찢어졌다. 살이 베이고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토막 나고 심장이 터졌다. 그리고 피, 크게 입을 벌린 가슴에서 시뻘건 피 분수가 솟구쳤다.
달랑베르의 눈이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심맥이 끊어지고 수십 년간 쌓아온 공력이 흩어지는 충격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는 자신의 피로 질척해진 바닥에 털썩 소리 내며 무릎 꿇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바닥에 십자검을 꽂아 넣고, 거기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는 몸을 의탁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라므 팡톰므(lame fantôme)……”
라므 팡톰므, 또는 팬텀 블레이드(Phantom Blade), 그것은 환영검(幻影劍), 수많은 기독교 전사를 살육한 검룡의 절기(絶技), 죽음을 선고하는 절기였다.
달랑베르는 입에서 울컥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며, 간절한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주여…… 당신의 적을 물리치지 못한…… 무능한 인간의 영혼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가나니…… 부디 제 죄를 용서하고…… 당신의 품에…… 받아 주소서……”
힘을 잃은 손이 칼자루에서 스르르 빠져나가고 상반신이 앞으로 천천히 기울어지더니 시뻘건 피구덩이 속에 쓰러졌다. 촛불이 꺼지듯이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대리석 바닥에 붉은 핏빛 원이 스멀거리며 퍼져 나갔다.
“너희들의 신이 창조한 지옥에나 떨어져라, 달랑베르.”
검룡은 그렇게 내뱉으며, 피 묻은 환도를 칼집에 되돌려 넣더니 왼손으로 십자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그 칼에 진기를 불어 넣었다. 십자검의 넓은 검신(劍身)이 공력을 이기지 못해 파르르 떨렸고, 검룡의 입술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길게 찢어졌다.
“네놈이 심심하지 않도록, 다른 놈들도 모두 지옥으로 보내주마!”
그는 십자검을 수평으로 눕혀 바닥에 내리쳤다. 차가운 불꽃, 둔탁한 쇳소리, 수백 년의 세월을 머금은 명검이 여러 토막으로 분질러졌고, 그 파편들은 빛을 흩뿌리며 빙글빙글 돌다가 핏물 속에 철벅철벅 머리를 처박았다.
검룡은 코트를 걸치고 볼품없이 부러진 칼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뱃갑만한 크기의 은빛 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 함께 지옥의 불길 속에서 영혼까지 불타 없어져라!”
그는 케이스를 바닥에 내던지고, 중절모를 머리에 얹고, 흡족한 표정으로 발을 옮기며,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훔치훔치……”
피바다 위를 걸을 때, 은빛 케이스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태을천상원군……”
부서진 나무토막을 밟으며 지나갈 때, 케이스에서 불꽃이 피어 올랐다.
“훔리치야도래……”
성당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 사방으로 옮겨 붙은 불길이 넘실거리며 춤을 췄다. 차갑게 굳어져 가는 달랑베르의 시신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바스러진 십자가의 파편도, 거룩한 제단과 신성한 성경책도, 그 모두가 빨갛고 노란 불길에 휩싸였다.
비탈길을 따라 내려갈 때, 성당 지붕의 기왓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시꺼먼 연기가 높이 솟아 올랐다. 밤하늘을 밝히는 불길을 등진 검룡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훔리함리 사파하!”
단기 4398년, 서기 2065년 10월 16일 자정 직전의 일이었다._M#]

문예창작위 선봉대
DJ. HAN (djhan@thrunet.com)

<크립>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22일


<크립>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 정말 대단한 영화다. ‘지하철 역에서 벌어지는 공포’ 어쩌고 하는 설명에 혹해서 빌려 봤는데,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훨씬 더 공포스럽다. 지하철 역 아래에서 한 미치광이가 사람을 마구 죽인다. 주인공 여자가 어찌어찌 거기 연루되었다가 혼자만 겨우 목숨을 건지는 상투적인 내용인데, 여자의 외모가 영 아니라는 것도 흥미를 떨어뜨리는 이유였다. 부잣집 딸을 지키느라 자기가 여장을 하고 딸로 위장한 영화-제목이 생각 안남-가 생각난 것은 주인공이 여장 남자의 얼굴과 꽤 비슷했기 때문. 그러니 그녀에게 감정이입이 전혀 안되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용이라도 재미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미치광이가 왜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데, 그게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저 어서 끝나기만 해라, 이런 심정으로 영화를 봤는데,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헛구역질이 나서다.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은 러닝타임이 한시간 20분이 안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너무 재미가 없다보니 그게 세 시간으로 느껴진다는 거~~

건질 게 없고 비판할 것투성이인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건 개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였다. 미치광이에게 쫓기던 주인공은 지하철역에서 숙식을 하는 노숙자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노숙자의 아내가 미치광이에게 살해당하자 열이 받은 노숙자는 기르던 개를 여자에게 맡기고 이렇게 말한다.
“이 개 데리고 어서 도망가요. 난 그놈을 만나야 해!”
근데 그 여자는 도망가다 말고 다시 남자에게 오는데, 이미 개를 팽개친 후다. 그녀가 오는 바람에 남자는 여자에게 뭐라고 하다가, 괴물의 기습을 받고 죽고 만다.

나중에 여자는 다시 그 개를 만나고, 반가운 척 껴안는다. 하지만 미치광이와 맞닥뜨렸을 때 개를 가장 먼저 버렸고, 혼자만 살 궁리를 한다. 여자는 결국 미치광이를 죽이는데, 그러고 나서 지하철역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때는 이미 아침, 그녀를 노숙자로 착각한 남자 하나가 그녀에게 동전을 건네준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나는 개, 개는 여인을 보자마자 품에 안긴다. 여인은 반가운 듯 개를 다시 껴안지만, 그간 저질러왔던 행적으로 보아 귀찮아지면 그 개를 버릴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데 개까지 돌보는 건 무리한 주문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 자주 벌어진다. 우리 할머니는 6.25 때 피난을 가면서 항구까지 쫓아나온 개를 외면했다. 십년쯤 전, 목에 감긴 밧줄을 풀고 집에 불이 난 걸 알려준 명견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세진 컴퓨터의 모델이 된 진돗개는 주인을 찾기 위해 수백킬로를 헤매야 했으며, 고생을 너무 한 나머지 주인을 찾고 얼마 안있어 죽어 버렸단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길거리에 나가 보면 버려진 채 쓰레기통을 헤매는 개들이 숱하게 눈에 띈다(복날이 지날 때마다 그 숫자가 격감하긴 한다). 다들 사정이야 있을테고, 버리는 사람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는, 그리고 영화를 이끌어갈 주인공이라면 생명 하나하나에 대해 존엄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개를 내팽개치기를 밥먹듯이 한 주인공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위험이 사라진 마지막 순간 여인은 개를 껴안지만, 진정 개를 사랑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사정이 어려울 때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를 거둔 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개를 존중하지 않는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

<각설탕>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22일


나는 말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란 동물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특히나 속눈썹이 길어 매력적인 말의 눈은 예쁨 그 자체다. <각설탕>을 보고 싶었던 건 거기에 말이 나오기 때문이었다(그런 내가 “다코타 페닝”이 나온, 비슷한 스토리의 <드리머>를 안본 이유가 무엇일까? DVD로 구해서라도 꼭 볼 생각이다).

<각설탕>에는 각설탕을 좋아하는 말이 나온다. 말은 생각보다 연기를 꽤 잘했고, 동물 영화라면 대충 다 감동하는 내 가슴을 여러 차례 아프게 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 다른 곳에 팔려간 주인공 말이 오래 전에 헤어진 임수정을 알아보고 그녀가 탄 택시를 쫓아간다. 그때 난 그 말이 되어 멀어져가는 택시를 안타깝게 바라보았고, 다시 임수정과 만났을 때는 꼭 그 말만큼 기뻐했다.

맥스무비 사이트의 <각설탕> 별점은 8.68,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별점은 믿으면 안된다. 나처럼 말만 나오면 내용에 무관하게 무조건 별 다섯을 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말이 아픈 걸 무릅쓰고 경주를 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무척이나 상투적이었고, 그 결말 또한 익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건만, 유치하게시리 내 눈에선 눈물이 마구 났다. 이런 게 동물 애호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드리머>의 별점이 8.77인 것, <북극의 여름 이야기>가 8.78, <우리개 이야기>가 9.26의 별점을 받은 걸 보시라. 그러니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별점이나 그들이 쓴 영화평에 현혹되어 이 영화를 봐선 안된다. 나야 재미있게 봤지만, 다른 분들이 보고 재미가 없다 해도 책임을 못 진다는 얘기다.^^

어릴 적에는 말을 타보고 싶어 몸살을 앓았다. 나이가 들면서 마차를 끄는 말이 불쌍해졌고, 돈만 있다면 그 줄을 끊고 자유를 주고 싶었다. 과천 경마장에 가본 적은 딱 한번 있다. 원 없이 말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채찍으로 맞아가며 무의미한 질주를 해야 하는 그들이 안되어 보였다. 그날 집에 가면서 경마장의 우리를 열어 모든 말을 도망가게 해주는 꿈을 꾸어봤다. 역시 난, 동물 파시스트다.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