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바이 미』: 그 시절은 다시 없을 것이다.

과거사진상규명위
2005년 11월 21일


함께 거주하는 이가 며칠 전 친구에게 책과 DVD등을 잔뜩 빌려 왔다. 책은 이미 다 본 거여서 재독을 하고 (예전엔 몰랐는데 요시모토 바나나의 「도마뱀」이 꽤 재미있었다. 흠.) DVD를 살펴보는데… 아니. 이 푸르딩딩한 배경의 화면은 『스탠 바이 미』가 아닌가. 초롱초롱 땡글땡글한 리버의 모습. 호옥.

오랜만에 즐겁게 감상했다.


스펙타클 감동 대 서사시 로드무비!!! 는 물론 아니다.
전 인구가 기껏해봐야 1281명 밖에 안되는 코딱지만한 마을에서 각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소년들은 30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는 시체를 찾아 별 것 아닌 마음으로 즐겁게 캠핑처럼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다. 하룻밤의 짧은 여행이니깐..

네 명 중 주인공이나 화자는 정석처럼 그 중 좀 비실하고 좀 공부 잘하고 좀 섬세하고 결정적으로 앞으로 작가가 될 싹수를 가진 놈이다. 포스터 맨 왼쪽의 고디.
이 영화를 입이 닳도록 사람들이 부르짖게 된 원인의 제공자는 그 옆의 똘똘하게 생긴 빡빡머리. 이름은 크리스. 실명은 무려 그 유명한 “리버 피닉스”. 세번재는 스킵.
네번째 똥똥한 애가 보이는가? 한 때 우리나라 하이틴 영화에 정석처럼 끼어 있던 뚱뚱한 아이처럼 소심하고 먹는 것만 밝히고 엄청나게 겁많은 스트레오 타입의 뚱뚱한 저 아이. 저 아이… 저 아이…… 이름은 번.
실명은……….”제리 오코넬”. 그렇다!!!!!!! 그가 『슈퍼 소년 앤드류』다!!!!!!! 외화 시리즈의 그 앤드류. 스프레이로 하늘을 날고 좀 열심히 뛰면 시계가 녹아버려서 달리기 시간을 잴 수 없는 바로 그 앤드류. 맞다. 오~ 앤드류는 나를 두 번 놀래켰는데 한 번은 『스탠 바이 미』요. 또 한 번은 나중에 『스크림』이던가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 던가 거기에서 여주인공 남자친구로 잠깐 나와서 나를 놀래켰다. 느끼해졌더군.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등장하자마자 죽었던가 어쨌던가 ;; 그 충격은 흡사 누구보다 잘 클 것이라 기대했던 『의뢰인』과 『굿바이 마이 프렌드』의 예비 쌔끈남 “브래드 렌프로”가 『판타스틱 소녀백서』에 심하게 좌절된 모습으로 뜬금없이 나타나 야밤에 아무 생각 없이 티비보고 있던 나를 기함시켰을 때의 충격보다는 덜하지만(앤드류를 좋아하진 않았었기 때문에) 여튼 대충 넘어가자.

주인공 고디의 고뇌의 원인이신 돌아가신 전 쿼터백 잘난 형님이 회상씬으로 두 장면 나오시는데… 아니, 저 ‘난 선량하고 쌔끈한 형님이야.’의 오오라를 마구 뿌리시는 젊은 남정네는 마이 라븅 존 쿠삭?????? 헉;
게다가 “키퍼 서덜랜드”가 무려 젊은 양아치로 나온다. 맨날 나이 먹은 양아치로만 나오던 이 아저씨… 더 젊을 때도 양아치로 나왔었군.

이리하여 등장 인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몹시나 즐거운 영화였지만 영화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고디는 죽은 잘난 형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고 죽은 형만을 그리는 아버지 때문에 고뇌하고 크리스는 자신은 몹시 잘나서 리더 역할을 하지만 양아치인 아버지와 형 때문에 코딱지만한 마을에서 이미 내놓은 양아치 취급을 받는 것을, 자신의 길도 양아치 밖에 없음을 괴로워한다. 번은 가장 평범하고, 뿔테 안경을 쓴 테디는 용감한 군인(이었다고 자신은 말하는)이었던 지금은 정신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힘들어한다. 네 명은 길을 떠나는데 중간에 테디를 자극시킨 고물상 아저씨 때문에 테디가 자신을 확 터트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기찻길 때문에 뛰기도 하고 거머리를 붙인 채 늪을 건너기도 한다. 밤에 불침번을 돌아가면서 서는데 크리스가 불침번을 서는데 옆에 있던 고디는 크리스의 도벽에 관한 진실을 듣고 크리스는 아무도 자신에게 훔쳤느냐고 물어봐주지 않았다고 급기야는 울음을 터트린다. 들썩이는 어깨가 좀 웃겼는데 이 장면이 리버가 아무리 해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는 그 장면 같다. 어흑. 고디는 진짜 시체를 보고나서 자신이 죽었어야 된다고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 다사다난한 이틀을 보내고 돌아온 이들은 각자 헤어진다.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내보이고 서로 어색하게나마 다독여준다.

“돌아오면서 우린 많은 생각을 했지만,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린 밤새 걸어서 일요일 새벽에 캐슬락에 도착했다. 단지 이틀동안 나갔다 왔는데, 마을이 달라진 것 같았다. 전보다 작게 느껴졌다.”

번은 가장 평범하게 고등학교 졸업하고 결혼해서 네 명의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테디는 군인이 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전전하게 된다는 나레이션이 들린다.
고디와 크리스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크리스는 ‘난 이곳을 떠나지 못하겠지’ 라고 말하고 고디는 그런 크리스에게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라고 말한다.
크리스는 결국 그곳을 떠나서 변호사가 되지만 지난 주 싸움을 말리다가 절명하게 된다. 이런 제길. 맨날 영화에서 죽으니까 진짜로 빨리 죽은 거 아니야.

“12살 적 그 애들같은 친구가 내겐 다시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 친구가 있을까?”

라고 영화의 마지막은 말한다. 알 수 있나~ 알 수 있는 건 하나. 그 시절이 돌아올 수는 없다는 것. 즐거운 시절이었다면 행운이었다는 것. 그런 시절이 인생에 있었다는 게.

고디 역의 배우가 참 괜찮드만. 별로 좋게 크진 못했지만.
리버의 배바지가 빛났다. 이 때 “리버 피닉스”를 보면 나는 어째선지 “이재응”군이 떠오르는데…. 둘이 땡글한 게 좀 닮지 않았나? 성인이 된 모습은 심하게 다르게 나가겠지만.

그리고 고디와 크리스….
관계 요상한 기운 흐른다. 아니, 진짜라니깐. ‘니 아버지가 널 챙길 수 없다면 내가 그렇게 하겠어!’ 라면서 친구의 재능을 키우겠다고 난리치는 12살이 그렇게 흔한가? 트라우마는 둘이 있을 때만 서로 보인다. 네 명이 여행하는 데 어째서! 게다가 둘이 진지한 분위기가 되면 테디는 조용히 번을 데리고 다른 데로 사라진다 -_-; 어이 어디가?
나중에 고디는 크리스는 십년 넘게나 못봤다고 쓰는데, 나는 그 순간 고디의 대머리화 되어가는 머리를 보았다.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다. 미소년과 안미중년의 차이를 극복 못했다는 게 아니라니깐. 어이; 믿어줘;


이건 단지 참고 자료 -_-;

과거사진상규명위 게릴라
wendytime(wendytime.egloos.com)

<우익청년 윤성호> – 그의 독립영화들

산업인력관리공단
2005년 11월 14일

영상자료원에서 주관하는 ‘해피투게더 독립영화’를 관람하러 갔다.

“윤성호” 감독은 2001년 <삼천포 가는 길>이라는 독립영화를 디지털 비디오로 시작하여,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 <산만한 제국>,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우익 청년 윤성호>, 그의 첫 35mm 필름 독립영화 <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까지 한 큐에 감동을 이끌어내는, 천재성을 의심케 만들 정도의 ‘힘’으로 이야기를 토해낸다.

산만한 이야기의 구성 속에서 시종일관 시선을 놓치지 못하게 숨겨두거나 대놓고 고자질 해둔 ‘꺼리’들은 구성을 갈아엎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가장 명료하면서도 인상깊고 내 ‘입맛’에 들어맞는 <우익청년 윤성호>를 보게되면 그 해학은 점입가경을 달린다. 서강대 전 총장인 ‘빠콩’아저씨의 이너뷰 장면을 잘라내

‘노동신문을 매일 봅니다’

라는 한마디에 ‘빠콩’을 ‘빨갱이’로 만들어버리는 솜씨야 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늘 보아오던 함수의 ‘역’관계가 성립하는.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아우성들 속에서 명쾌하게 깨닫는 구라의 향연이 얼마나 어처구니의 상실이요, 아이러니의 연속인지 되묻는다


제작 작품 중 4편의 상영을 끝내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에 그의 ‘산만한’ 언변을 들을 기회도 있었다. 천재성에 기인해서인지 ‘토해내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 두서없이 정렬되진 않았지만 그의 영화처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료하게 던져냈다. 독립영화를 통해 자신이 달성하고 싶은 이야기, 35mm 필름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고 밥벌이가 되든 안되는 영화에 몰입하고자 하는 의식, 독립영화감독 선배들의 전철을 밟게 될지 안될지 불투명한 시장. 다시금 내비치는 용기.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명쾌한 의지가 돋보이는 목소리에서, 20대 후반의 젊은 감독이 뿜어내는 열기는 분명 뛰어난 무엇인가가 느껴질 수 밖에 없으리라.

그의 영화를 보고난 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과 비교하는 질문을 던졌다.

“마이클 무어”가 공화당을 지지한다는 아이를 붙잡고 ‘임신 중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던지자, 아이는 폭력이나 그 외의 ‘항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임신되었을 경우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마이클은 그 아이에게

“그렇다면 너는 민주당 지지자여야지, 공화당은 임신중절 무조건 반대야”

라며 논리적인 반박을 통해 공화당을 까대는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헌데 “윤성호” 감독의 영화들은 우리나라의 자칭 ‘우익’, 본실 ‘극우’ 세력들을 조롱하고, 까대는 모습은 들어있지만 ‘논리적인 반박’부분은 없다.

이는 내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한데, 더 이상 논리적인 반박이 무의미 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버린 후에는 ‘노력’하지 않고 무시하며 조롱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합리적인 선택인지 적절한 타협인지, 아니면 더 나은 생산성을 향해 진일보하는 모습인지 스스로의 고찰도 꽤나 여러갈래로 나온다.

마찬가지로, “윤성호” 감독은 조롱의 아이러니 속에서 ‘깨닫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ABC부터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도 있듯이, 양주동 박사의 얘기처럼 백번 읽으면 뜻이 통한다고, 질리도록 보다보면 보는 사람이 스스로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말이다.


어쨋든 상영회가 끝나고 호프집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자신의 지향하는 바를 시나브로 퍼뜨리는 그의 모습은 그가 누차 강조한, ‘조금씩 넓혀나가는’ 탄탄한 걸음의 행보로 보여 즐거웠다.

<우익청년 윤성호>가 진정한 ‘우익’으로 인정받을 그날을 기리며.
화이팅.

산업인력관리공단 감사2부 부장
함장(http://harmj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