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UCC? 정경유착??” <영진공 68호>

구국의 소리
2007년 1월 31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UCC에 대한 선관위의 입장에 우려를 표명했다.
(blog.daum.net/hqsohn/9250746)

많은 이들이 손학규 전 지사에게 동조하는 듯하지만 그전에 난 손 전 지사가 투명인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너무나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다.

UCC가 각광 받으면서 뜬 사이트들이 있다. 판도라 TV와 디시인사이드다. 이들은 엊그제 대선 UCC 설명회까지 개최했고, 그 자리에는 손학규 지사도 참석했다. UCC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수록 판도라 TV와 디시인사이드는 재미를 볼 테고, 그 UCC를 이용해 자신의 지지도를 올릴 수 있다면 손학규 지사 역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게다가 디시인사이드는 손학규 지사 재직 당시 그랜드서울이라는 경기도 프로젝트를 홍보했었다. 그 프로젝트는 나중에 한현규 경기 부지사가 지휘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한현규 부지사는 뇌물수수로 구속됐다. 한현규 씨는 뇌물로 받은 돈의 일부를 ‘그랜드서울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을 조직하는 데 썼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현규 씨는 손학규 지사 측근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이처럼 손 전 지사는 UCC 싸이트와 알게 모르게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UCC를 통해 재미를 보려는 기업과 정치인. 더불어 그 정치인이 성공한다면 해당 기업들은 금상첨화일 거다. 이거 신종 정경유착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더 웃기는 일은 이 UCC가 판도라 TV의 재산도,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 사장의 재산도 아니란 사실이다. 재주는 네티즌이 부리고 돈은 정치인과 기업이 가져가는 상황인 셈.

현재의 국내 UCC, 특히 동영상 UCC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인터넷만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고 공중파 방송을 쫓아가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화제가 되는 UCC는 거의 대부분이 공중파 방송의 짝퉁들이다. 유명 연예인 모창, 유명 연예인 춤 따라하기, 유명 방송 실수 장면들. 인터넷을 기반으로 네티즌만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그러니까 공중파 방송 관습의 허를 찌르는 자유롭고 새로운 영상은 국내 동영상 UCC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그 UCC를 시장에 내다팔고, 정치권에 줄대는 데 사용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씁쓸한 풍경이다.

뉴스 놀이터 편집장의 성토
철구(http://chulgoo.com)

<블러드 다이아몬드>, “아프리카에 평화가 찾아와 이런 영화가 냉정하게 평가받는 날이 어서 오기를” <영진공 68호>

상벌위원회
2007년 1월 30일

아프리카 땅은 원래 비옥한지라, 거기서 나는 것만 먹여도 전 국민이 먹고살 수 있단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땅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전쟁은 민간인이고 어린애고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살육전이다. 싸우는 명분이야 어떻든간에 그 전쟁은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을 낳고, 아프리카를 지옥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콩고와 르완다도 그런 나라들 중 하나다. 후투족이 집권하면 투치족을 싹 죽이고, 투치족이 집권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는 이런 빌어먹을 일들이 식민지 시대의 분할통치에 기인한 것임을 알고 있는데,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국들은 지금 그 참상을 영화로 만들어 돈을 벌기 바쁘다. <호텔 르완다>가 르완다의 참상을 다루었다면, <블랙 호크 다운> 은 소말리아 내전을 소재로 한다. 드까프리오가 주연한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이라고, 말라리아를 가르칠 때면 늘 유행지로 표시되는 그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난 영화의 파급효과를 믿는 편이다. <청연>이 아니었다면 일제 강점기에 하늘을 난 여성 비행사가 있다는 걸 어찌 알았을 것이며, 영화는 아니지만 뮤지컬 <명성황후>는 러시아에 붙어 자기 잇속을 차리려던 정치인에 불과한 민비를 국모로 추앙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1억불로 식량을 사서 아프리카에 나눠주는 것보다 그 돈으로 아프리카의 진실을 알릴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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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의문이 든다. 혹시 그네들은 그런 영화를 만듦으로써 자기들의 죄를 씻으려는 게 아닐까? 의도적인 건 아니겠지만 그네들이 만든 영화들이 일회성으로 소비될 뿐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스티브 윈디가 “We are the World”를 부를 때부터 따져도 벌써 20여년이 지났는데 아프리카인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그저 아프리카를 다룬 영화를 볼 때만 미안해할 뿐,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그들을 잊는다.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강점과 분단, 그로 인한 내전을 겪는 등 비슷한 경험을 한 우리 역시 이런 영화들에 별 다섯을 주며 미안함을 표현할 뿐이다. 지금 난,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네이버와 맥스무비에서 9.2의 평점을 받을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다. 흥미로운 도입부와 탄탄한 스토리는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지만, 한 가족만 잘 살게 되는 결말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으니까. 아프리카에 평화가 찾아와 이런 영화가 냉정하게 평가받는-8.5 정도면 적당할 듯-날이 어서 오기를.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

<올드 미스 다이어리>, “작고 초라하고 어설프고 모자란 인물들 하나하나를 깊은 애정으로 그려낸 배우들, 감독에게 감사하다.” <영진공 68호>

상벌위원회
2007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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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빤쓰야
옛날이야기들에서 주인공 소년들이 하나같이 ‘공주’를 일종의 ‘상’으로 받는 걸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 후로 행복했다 – 는데, 그 ‘행복’, 그간의 고난과 모험에 대한 보답과 ‘상’이, 언제나 금은보화와 공주인 것. 나이가 들고 브루노 베델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을 읽고서야 이해를 했다. 남자 중심 사회에서의 한계이긴 해도, 그것은 곧 귀한 것, 소중한 것의 ‘상징’일 뿐이라는 것을. 그저 오랫동안 습관적인 ‘상징’이라는 걸. 실제 어머니가 포악하든 헌신적이든 악착같든 상관없이 우리가 ‘어머니’라는 상징에서 포근하고 포용적이고 기댈 곳을 떠올리듯 말이다. 이제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되자, 역경을 해쳐온 여자 주인공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상징은 ‘젊은 남자’가 된다. 연하의, 능력있는 남자. 어차피 이 영화는 리얼리즘을 내세운 드라마가 아니므로, 이러한 상징에 굳이 태클은 걸지 않기로 한다. 사랑은, 둘이 마침내 ‘사귀자!’ 하는 순간보다 그 이후 유지하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함을,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건 순간이요 이후 유지의 노력이 바로 일상이고 삶임을 그리는 건, 혹은 연하의 똘똘한 남자와 연애하는 연상녀라는 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현상인지, 혹은 그런 여자에게 어떤 애로점이 있는지 등등을 그려내는 건, 이런 장르가 할 일도, 이런 장르에 기대할 일도 아니다. (씨익~)

30대 여자로 산다는 것. 돈도 못 벌고 정해진 직장도 없고 애인도 없는데 30대 여자로 산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거기에서 벗어날 확률은, 최미자(예지원)의 말에 의하면, 하늘을 날다 추락했는데, 죽지 않고 선체에서 기어나오자 벼락을 맞고, 그리고도 죽지 않을 확률보다도 더 적다고 한다.


시종일관 과장법의 코미디를 구사하는 가운데 최미자가 흘리는 눈물은, 뜨겁게 진짜배기다. 쿨하게 한번 자자는 바람둥이에게 복받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쏟아내는 말은, 남들 귀엔 진드기가 들러붙는 말로 들릴지 몰라도, 그런 게 아니다. 최미자를 비웃었던 그들은 아마 그렇게 항변하던 순간 최미자의 눈을 보지 못했을 거다. 그 눈을 보았다면 절대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순 없는 거다. 가볍게 놀리던 입을 오히려 닫게 만드는 그 묵직한 슬픔을. 무슨 대단한 희망과 꿈과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소박한 꿈도 너무 멀게만 느껴지고, 가는 곳곳마다 주눅들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최미자의 가슴에 맺힌 슬픔과 상처가 너무 날것 그대로라 놀랐다. 그걸 그렇게 날것으로 내놓는 예지원한테 놀랐다.


그러므로 내가 이 영화에 기대했던 것은, 모두 충족되었다. 과장된 그 몸짓과 연거푸 저지르는 실수들에 웃으면서, 나는 최미자가 그려내려 했던 삶의 아픔, 슬픔, 답답함, 그리고 지리멸렬한 시간들을 견디게 해주는 순간의 흥분과 기대와 꿈을, 최미자가 원하는 대로 읽어내려갔으니까. 최미자의 세 할머니를 보며 저 나이가 되어도 삶이, 웃음이, 눈물이, 두근거림이, 연정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안도했으니까. 미자와 개성만점 세 할머니, 아버지와 삼촌까지 – 작고 초라하고 어설프고 모자란 인물들 하나하나를 깊은 애정으로 그려낸 배우들, 감독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참 큰 위안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라도 모처럼 기분좋게 웃으며 맥주 한 잔, 할 수 있었다.


상벌위 선도부 위원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헤비죠의 중얼중얼 – The Jeff Healey Band, , <재외공관소식>, <영진공 67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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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캐나다, Eagle Records/Egg Music)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음반은 누가 무슨 확신을 가지고 라이센스를 할까? 블루스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의
상황에서  ‘비비 킹(B.B. King)’이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급 뮤지션도 아닌 양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영화 『로드 하우스(Road House, 1989)』에서 기타를 눕힌 채 마치
‘도브로’ 연주하듯 환상적인 슬라이드 사운드를 들려주던 맹인 블루스 기타리스트 ‘제프 힐리(Jeff Healey)’.
「Angel Eyes」나 리메이크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등으로 1980년대와 90년에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렸던 양반이다. 그의 음반을 그것도 그의 전성기가 한참 멀어진 2006년 가을에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음반을 듣다보면 꽤나 거친 그의 손맛이 귀로 전달되는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라이브
임에도 (몬터레이 재즈 페스티벌….. 꿈의 무대 중 하나 아니던가) 말끔한 소리에 더 기분 좋아진다. 몬터레이 재즈
페스티벌의 음반들이 미국서 재발매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다. 그러나 이게 한국서 정식으로 발매가 되다니…. 얼마나
팔렸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좋은 음악은 반드시 좋은 귀를 가진 음악팬을 만나게 마련이다. 나 같은 막귀에도 걸려들 정도면
고수들은….. (어쩌면 고수들은 이미 미국반으로 가지고 있으려나?)

  블루스와 하드록의 경계에서 날카로운
기타와 깊은 감성,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기에 더 손이 예민한 기타리스트의 개성을 느끼고 싶어질 때 듣지 않을 수 없는 음반.
‘도어스(the Doors)’의 원곡이자 영화에 등장했던  「Road house blues」가 흐르기 시작하면 관객들의 환호는
더 커진다. 나의 귀도 더 쫑끗 세워진다.

  2007년이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손이 예민했던 제프 힐리처럼 내 길에 대해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고 아름답게 싸워나가는 한 해가 되길…..

음악이란 중얼중얼
헤비죠 (http://heavyjoe.ddanzimovie.com)

밑천 없는 장사가 어디있겠냐? <재외공관소식>, <영진공 67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1월 26일

다른 사람의 사업 계획을 듣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이, 일류
대학을 나와 이름난 대기업에 취직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데 길들여진 머리 좋은 사람인 경우에는, 대단히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이들의 이야기엔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게 뭐냐고? 다름아닌 돈이다, 돈.


들은 이상과 비전이 명확하게 결합된 아름답고 멋진 기획을 들려 주면, 꿈과 희망에 충만한 청년들이 달려들 것이라 믿는다. 당장의
초라한 현금보다 훗날의 막대한 지분을 약속해 주면, 구글이나 애플이나 MS와 같은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백의종군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믿음에 대한 반박은 단 한 마디로 충분할 것이다. 꿈 깨쇼.

MS건 애플이건 구글이건, 투자자와 경영진을 제외한 일반 직원을 공짜로 부린 역사는 없다. 꿈과 희망 따위는 아무리 배터지게
처먹어 봐야 굶어 죽을 뿐이고, 머나먼 미래의 지분은 당장의 호주머니를 채울 현금에 비하면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그런 거
아무리 약속해 본들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조직에 기대어 일을 벌이는 게 몸에 배인 사람은,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좁은 세상에서 큰 돈을 쉽게
버는 데 익숙해진 똑똑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선 그만큼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별볼일없는
붕어빵 기계조차 수백만원을 홋가하는 게 현실이다. 맛있는 붕어빵을 만들려면 수십 가지 재료를 절묘하게 배합해야 하고, 붕어빵
장사로 성공하려면 일개 기업을 운영하는 것 못지 않은 공과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구상한 사업의 미래를 확신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 확신을 다른 사람이 아무런 댓가 없이 공유해 줄 것이라 믿어선 곤란하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고, 사람들은 그렇게 느긋하지 않다.


러나 머리 좋은 사람들은 이 당연한 사실을 망각해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아주 피곤하게 만들기 일쑤다. 이러기를 벌써 10여
년 째, 그동안 만난 수십 명의 명문대 출신 창업(희망)자 중에서 돈 얘기부터 먼저 꺼낸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 사업을 벌이려면 돈이 필요하고 사람을 부리려면 역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어째서 모르는 건지, 이젠 신기함을 넘어서 경이롭기마저 할 지경이다.

명문이고 3류고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문제점은 이게 아닐까 싶다. 좌판에서 콩나물을 파는 여든 살 할머니도  다 아는 뻔한 사실을 안 가르쳐 준다는 것,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밑천 없는 장사가 어디 있냐, 이 멍청아!”


시 말하는 건데, 붕어빵 장사도 돈 많이 드는 장사다. 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부려서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망상의 경지를 초월한 주제넘은 착각이다. 대박을 노린다면 그만큼 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쏟아부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럴 각오가 없다면 그냥 월급장이나 하시길.

장사는 아무나 하나~
DJ. HAN (djhan@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