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하녀가 아니라 마님(들)이 주인공이다






김기영 감독의 원작이 무려 1960년도 작품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50년 전 영화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서 리메이크를 한다는 기획 자체가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흥행 성적이야 내 걱정할 바는 아닌 거고, 그저 한 사람의 유료 관객으로서 보기에 영 어색하지나 않을런지 괜한 걱정이 앞서는 쪽이었다. 때 맞춰 깐느 경쟁부문에도 진출했겠다, 꽤 많은 상영관을 차지하며 개봉했지만 역시나 수도권 상영관 안의 객석은 상당히 한산한 편이다.

‘하녀’라는 단어가 주는 전근대적인 뉘앙스와 알려질 대로 알려진 원작의 설정이 지금의 관객들에게 그리 큰 호감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사실 지금이나 원작이 만들어졌던 그 시절에나 ‘하녀’라는 전근대적인 단어가 매우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된다.

특별히 잘 사는 집안이 아니더라도 식모나 그외 집 안 일 도와주는 언니 한 명 쯤은 데리고 살았던 그 시절에도 그들을 ‘하녀’라고 부르며 하대하지는 않았기에 김기영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하녀>라고 이름 지을 때에는 그녀의 역할이나 좀 더 확장된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임상수 감독이 다시 만든 <하녀> 역시 단 한 번도 은이(전도연)를 하녀라고 지칭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 하녀가 존재했던 봉건 시대에나 동명의 두 영화가 만들어진 시점에도 그 역할 자체와 그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하녀>의 도입부는 누군가의 집 안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에 온갖 아랫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일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그 하녀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고 그 댓가를 돈으로 받아 생활하는 우리 대부분의 하녀 또는 하인 생활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되고자 한다.











그러나 하녀의 정의를 새롭게 하는 것은 영화 <하녀>가 관객들을 그 이야기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 취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주인공 은이의 캐릭터 역시 원작의 이상성격자와는 많이 다르다. 지극히 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나이브한 면까지 갖춘 – 그리하여 어린 애한테 착하고 불쌍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 성격의 소유자로 그리면서 관객들이 은이의 입장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게 만들 뿐이다.

정작 <하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은이가 하녀의 입장이 되어서 들어간 ‘그들의 세계’를 묘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영화 <하녀>는 제목이 되고 있는 하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하녀라는 존재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그들이 아주 무서운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때 그 사람들>(2004)을 통해 10.26 사건 현장에 있었으나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그 때 그 분들’의 이야기에 집중된 작품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듯이 임상수 감독은 <하녀>를 통해서도 하녀의 윗분들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을 내놓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임상수 감독의 장기인 동시에 한계가 되는 점이기도 한 바, <하녀>는 임상수 감독이 카메라로 다시 쓴 <재벌(의 사생활)을 생각한다>에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안의 딸로 출연한 아역 안서현의 큰 눈과 뚱한 표정이 우리나라 대표 재벌가인 이씨 집안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하녀>의 마지막 컷을 차지하는 얼굴도 다른 주연 배우들이 아니라 다름아닌 아역 안서현의 차지가 된다. 어쩌면 <하녀>라는 영화 자체가 임상수 감독이 내던지는 조롱 섞인 농담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주인 남자(이정재)와 여자(서우), 그리고 은이(전도연)의 뻔한 갈등 관계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하녀>가 충분히 각색되고 의도된 작품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주연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주인 남자의 장모(박지영)와 집사 조병식(윤여정)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주인 남자가 가진 막대한 부의 힘을 잘 이해하고 그것이 유지되는 메카니즘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는 기생형 인물이라는 점이다.




추측컨데 왠만큼 잘 사는 집안 출신인 장모조차도 주인 남자 집안의 절대 권력 앞에서는 기도 못펴는 수준이 되고 마는 바, 장모는 시집 보낸 딸을 통해 그 권력의 쾌적함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인물로서 자신의 계획과 의도에 방해가 되는 은이의 존재를 제거하는 데에 처음부터 몸소 앞장 서는 역할을 한다.

조병식은 고참 하녀로서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꼴을 오랜 세월 동안 감수하며 자기 아들을 또 다른 권력 체계에 편승시키는 데에 성공한 인물로 은이를 마음으로부터 동정은 하되 그 집안이 요구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수행하는 하수인 역할을 하게 된다.

임상수 감독이 원작에서 서스펜스 스릴러를 걷어내고 그 대신 ‘게임의 법칙’을 채워넣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주인 남자의 장모와 집사 조병식이고 <하녀>가 원작을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으되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각색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부분 역시 두 인물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박지영이 연기한 장모 역할 덕분에 – 결국 그 시스템 안에서 머물기로 하는 한 어느 누구도 하녀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하녀들>이 되었을 때 영화의 메시지에 좀 더 부합한다 –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영화이긴 했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한 수준인 것은 아니다.

영화제 출품 일정을 맞추느라 서둘렀던 탓인지 약간 생뚱맞게 보일 수도 있는 에필로그와 함께 – 이 에필로그 때문에 <하녀>는 확실하게 하녀가 아니라 하녀를 부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혀진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 장면인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분위기가 영화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붕 뜨는 느낌을 준다 – 은이의 최후 역시 후련한 감은 있지만 극적인 상황을 좀 더 길게 이끌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은이가 하혈을 한 후 조병식이 주인 남자를 보며 무언가 의사전달을 하다가 다음 컷에서 갑자기 은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표정으로 바뀌는 것은 분명 기술적인 실수다. 주절주절 많은 설명을 하는 법이 없는 이런 영화에서 주요 등장 인물들의 표정 하나가 이야기의 흐름에 맥을 짚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점프 컷에 가까운 이 부분의 편집 실수는 적잖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 하겠다.

아울러 은이의 폭주에 앞서 조병식의 입장이 갑작스럽게 전환되는 부분 역시 통렬한 느낌을 전달해주기 보다는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마지막 씨퀀스를 위해 좀 더 많은 촬영을 해놓고도 러닝타임 때문에 대폭 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그 앞 부분에서 이미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해버린 참이었으니 아마도 별도의 디렉터스컷 따위는 만들어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영진공 신어지

 




 

삼성 스마트폰은 승리자의 꿈을 꾸는가?


삼성에서 신형 안드로이드 폰 갤럭시 S가 나왔다. 옴니아 1과 옴니아 2라는 초대형 자책골이 터진 게 엊그제 같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신문, 잡지, 그리고 파워 블로거들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아이폰 대항마가 나왔다며 난리 브루스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대항마 타령이야 어찌 됐건, 갤럭시 S가 괜찮은 제품이란 건 사실인 것 같다. 동시에 삼성 스마트폰에 대한 기대심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지금 이 정도 되는 제품을 만들었으니 다음엔 더 멋진 걸 만들겠지? 그래, 맞아, 조만간 아이폰 4를 떡실신시킬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 갤럭시 S는 SPC5111 CPU를 쓰고 있는데, 이건 애플의 A4 CPU와 사실상 같은 CPU다. ARM의 Coretex A8을 기반으로 인트린시티에서 설계한 것이다.




ARM의 coretex는 그 구조상 1Ghz를 넘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인트린시티는 CPU 다이에 메모리 컨트롤러와 메모리를 내장시키는 등의 개선을 통해 그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A4 CPU 개발 당시 5500만 달러를 애플과 삼성이 공동 투자했다고 한다. 삼성이 갤럭시 등 자사 스마트폰에 (A4와 동일한 설계의) SPC5111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인트린시티를 애플이 인수했다는 사실이다.


그까짓 흔해빠진 ARM CPU 설계업체가 뭐 그리 중요하냐며 시큰둥하게 중얼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인트린시티 A4 CPU는 그 설계상 멀티 코어 확장이 가능하며, 최대 8개 코어까지 얹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애플이 멀티 코어 CPU를 탑재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내놓으며 요란한 선전을 벌일 때, 삼성전자 마케팅 팀은 싱글 코어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골머리를 썩혀야 하는 난관에 부닥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물론 그때까지 삼성전자가 손가락만 빨고 있진 않을 것이다. Coretex A9이 됐든 뭐가 됐든 그만한 성능의 최신형 CPU를 수급해 와서 우겨넣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경쟁사도 다 사서 쓸 수 있는 CPU나 GPU를 이용해 봐야 무슨 특장점이 있을까?


글쎄, 별로 없을 것이다.



[소니 침몰]의 저자가 지적했듯이, 범용 부품을 조립해 완성품을 만드는 수평 분업형 사업에선 가격 경쟁력 외에 다른 부가 가치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가격 경쟁력이라고 하면 중국 업체를 따라가기 어렵다. HTC 같은 데만 하더라도 엄청난 구매력과 저가 노동력을 무기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애플은 PC업계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했던 시절, 자신들만의 특장점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그리고 파워피씨 CPU, MacOS(클래식), MacOS X 등을 내놓았다. 이러한 차별점을 특장점으로 받아들이고 부가 가치로 인정한 사람들은 애플의 빠가 됐고,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윈도우 PC를 사거나 또는 애플의 까가 됐다.


몇몇 애플 까들은 애플이 폐쇄적이기 때문에 자사 OS를 고집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시시한 이유 때문에 몇 년이란 시간과 수억 달러의 개발비를 들여 OS를 만드는 멍청한 회사가 어디 있을까?


애플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확실한 부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다른 수평분업형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이 쓸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플은 모바일에 진출한 이후로도 이러한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독자적인 OS에, 독자적인 앱 스토어에, 독자적인 기타 등등 …… 이젠 독자적인 CPU까지 만들어 넣으려 하고 있다. 아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경쟁사도 쓰는 CPU와 공짜 OS, 통신사가 만든 앱 스토어에 의지하고 있다. 애플은 고사하고 HTC와의 차별점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아, AMOLED 디스플레이? 확실히 눈에 띄긴 띈다. 하지만 그걸 넣으면 가격이 엄청 비싸지는데?


자칫 잘못하면 1, 2년 안에 삼성전자는 내세울만한 특장점이라곤 삼성 로고밖에 남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칠지도 모른다.



피쳐폰 분야에서는 사소한 기능 추가나 사소한 부품 개선이나 사소한 UI 변경만으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선 그런 눈속임이 통하지 않는다. 다들 엇비슷한 부품을 쓰는 상황에서는 1) 가격 경쟁력 2) 부가 가치 중에서 하나라도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둘 다 있으면? 승리자가 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글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한데….. 삼성이 애플보다 먼저 인트린시티를 인수했다면, 그럴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아졌겠지!


영진공 DJ Han

 


 

 

“인셉션”, 꿈 속에서는 시간이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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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부시절에, 그게 벌써 20년쯤 전 …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 인가, 아니면 그의 책을 인용한 다른 책에선가
꿈의 특성에 대한 예화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꿈에서는 시간의 압축이 엄청나다고 …

어떤 사람이 꿈 속에서 프랑스 대혁명에 휩쓸려들어서 중요한 사건들을 목격하고는
어쩌다 보니 반혁명분자로 지목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마침내 사형 당일날 길로틴 앞에 꿇어앉아 지나간 인생을 회고하고 온갖 감상에 잠기다가 드디어 길로틴 칼날이 자기 목으로 떨어지던 순간에 꿈에서 깼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에서 깬 순간 실제 자신의 머리 위로 침대 머리판이 떨어지고 있더란 거죠.

그 책에서 프로이트는 이 사례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 꿈은 침대 머리판이 떨어지려고 뿌지직거릴때 시작된 것이라고 …

이를 감지한 무의식이 꿈을 통해 그를 깨운 것이죠,
자다가 머리에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서 다치지 않도록.

그렇다면 그 뿌지직 삐걱삐걱 거리던 물건이 마침내 떨어지기까지 걸린 몇초의 시간동안,
꿈꾸는 이는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단두대까지에 이르는 수개월 혹은 수년의 시간을 꿈꾼 겁니다.

현실에서의 몇 초가 꿈속에서는 그렇게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이걸 읽으면서 “맞아, 그래!”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해도 이 꿈 예시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희미하긴 하지만요.

저는 학부시절부터 수업시간에 잘 졸기로 유명한 인간이었는데,
가끔은 수업을 듣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 꿈 속에서도 졸기도 했고 …
그러다가 흠칫 하고 깨면 순식간에 꿈속의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었죠.
남들은 조용히 수업듣는데 저 혼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던 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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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의 이 영화는 바로 이런 꿈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소품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정말 간단하고 작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이야기가 꿈의 특성을 치밀하게 활용한 연출을 통해서,
다층구조로 전개가 되니 참으로 특이한 경험이 됩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 놀란이 아니었으면 만들 수 없었던 영화입니다.
“다크 나이트”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헐리웃에서 이런 이야기에 이런 투자를 할 리가 없죠.

그리고 영화의 제목인 <인셉션(Inception)>의 뜻은 사전에 나오는 “징조” “조짐” 뭐 그런 의미라기 보다는,

(훔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디셉션(Deception)의 반대로 (생각의 씨앗을) “심는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영화가 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영화 자체가 관객들에겐 하나의 인셉션이죠.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각자의 일이고 …


영진공 짱가


 

“런어웨이즈”, 그때 그 언니들의 영상 회고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예상했었던 바와 달랐던 점이 세 가지다.

첫째, 리드 보컬이었던 체리 커리(다코타 패닝)가 지나치게 자기파괴적인 인물이었고 그로 인해서 런어웨이즈가 데뷔 5년만에 해체하게 되었던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이는 그간에 보아온 음악 영화나 여타의 예술가 영화들, 그리고 실제로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비명에 사라진 인물들로 인해 형성된 고정관념이었던 것 같다.

<런어웨이즈>에서 시대를 앞서간 록의 여전사들로 길러진 런어웨이즈의 멤버들이 물론 적잖은 일탈 행위를 하게 되고 그룹이 해체되는 계기가 되는 것 역시 체리 커리 때문인 것은 맞지만 그간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실제 이유는 – 어쩌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진짜 이유가 바로 그 이유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자기파괴적인 성향과는 반대되는 체리 커리의 ‘일상 생활로의 복귀’ 욕망 때문이었다.

조안 제트에게 음악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것과 달리 체리 커리에게는 돌아고 싶었던 가족이 있었고 그리하여 새로운 싱글을 녹음하다 말고 돌연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만다. 그 흔한 화해의 과정도 없이 그렇게 런어웨이즈는 사라진다.










그래서 둘째는 다코타 패닝이 연기한 체리 커리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이고 조안 제트(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조연에 불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역시 틀렸다.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두 인물이 곧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 그대로다.

카메라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에게 균등하게 배분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영화를 감상한 후에 유튜브에서 두 사람이 24년만에 다시 무대에 함께 서는 2001년의 라이브 연주 장면과 인터뷰 클립들을 발견했는데 <런어웨이즈>는 팀의 해체 이후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인물이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화해의 분위기가 드러워져 있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영화 전후의 맥락을 함께 고려했을 때 <런어웨이즈>는 관계의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남겨주게 된다.



마지막 세번째로 <런어웨이즈>에서는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조안 제트와 블랙하츠의 I Love Rock’n’Roll을 들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공연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팀의 해체 후 솔로로서 활동하기로 결심한 조안 제트가 ‘기타 들고 혼자 놀기’를 할 때 이 노래가 배경으로 나오게 된다.

I Love Rock’n’Roll은 1975년에 The Arrows가 발표했던 곡으로, 조안 제트가 솔로로서 이 곡을 처음 커버해서 녹음했던 시점은 1979년이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영화 속에서 들려지는 히트 버전은 조안 제트와 블랙하츠를 결성한 이후 1982년에 발표했던 첫번째 앨범에서였으니 <런어웨이즈>에서의 삽입은 그야말로 팬 서비스의 차원이 아닌가 생각된다.

런어웨이즈의 해체 이후  솔로로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장면에서 조안 제트가 입은 분홍빛 재킷은 다름 아닌 <I Love Rock’n’Roll> 앨범 표지의 그것인데, 말하자면 영화 <런어웨이즈>는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의 사춘기 소녀 시절로부터 시작해서 런어웨이즈의 결성을 위해 만나 활동하다가 해체된 이후 조안 제트가 솔로로서 재기에 성공하는 시점까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의 영상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을 <런어웨이즈>에서 두 사람 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또 한 명의 캐릭터는 프로듀어이자 매니저였던 킴 파울리(마이클 섀넌)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빗 보위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 글램록 씬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던 캐릭터인 동시에 음악 자체 보다는 음악 산업에 통달했던 인물로 그려지는 킴 파울리는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를 만날 수 있게 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 사람을 헤어질 수 밖에 없도록 내몬 장본인으로 묘사된다.

음악적 욕심이 강했던 조안 제트가 킴 파울리의 그늘 아래 머무는 것이 필요악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체리 커리는 과감히 거부권을 행사하며 런어웨이즈와 팀 파울리를 떠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팀의 해체 후 인터뷰 장면에서의 팀 파울리는 자신을 떠난 ‘아이들’이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고 실제로 체리 커리는 연기자로 전업을 하기는 했지만 – 데뷔작이 애드리안 라인 감독, 조디 포스터 주연의 <뉴욕 야사>(Foxes, 1980)였다! – 약물 중독 문제로 그리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런어웨이즈(Runaways)”의 1977년 일본 공연 중에서 …


 

<런어웨이즈>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전기 영화인 동시에 음악 영화로서의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낸 작품이다.

혹시나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다코타 패닝이라는 스타 캐스팅 외에는 별 볼 일이 없는 영화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여성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플로리아 시지스몬디의 연출은 드라마와 연주 장면 모두에서 기대했던 수준 이상의 완성도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예전에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2007)을 보고나서 음악 연주 장면을 위한 연출은 따로 있는 법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바로 이 <런어웨이즈>를 보면 제대로 된 연주 장면의 연출이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일단 연주되는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앵글과 컷의 편집이 음악과 잘 어우러졌을 때에만 생동감 있는 음악적 흥분이 증폭되어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런어웨이즈>는 한 편의 음악 영화로서 그런 느낌들을 잘 살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외에도 몇몇 장면에서는 창의적인 연출 방식으로 저예산의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조안 제트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Love Is Pain의 가사를 읊조리며 “and we’ll do it again”이라고 외치던 장면이다.










체리 커리는 <네온 엔젤>(Neon Angel : The Cherie Currie Story, 1989)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고 이것을 토대로 플로리아 시지스몬디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는데, 제작자로 직접 나선 조안 제트가 각색하는 과정에 적잖은 도움 또는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런어웨이즈의 해체 이후 체리 커리는 1978년 <Beauty’s Only Skin Deep>이라는 솔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여전히 킴 파울리가 프로듀싱을 했다. 그렇다면 영화 속의 결말과 실제 팀이 해체되었던 상황이 달랐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뭐 이런 것이 바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차이가 아닐가 생각한다.

<런어웨이즈>에서 조안 제트와 체리 커리의 관계는 일종의 연인 관계로 다뤄지고 있는데 이 역시 드라마를 살리기 위한 변형일 뿐 진실은 안드로메다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내년도 MTV 무비 어워드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다코타 패닝의 키스씬이 상을 받게 되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