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LR 영상촬영의 새 역사, 하우스 시즌6 피날레 ‘Help Me’




미국시간으로 지난 5월 17일,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습니다.
새로운 역사야 과장이고, 그날은 인기드라마 하우스의 시즌6 마지막회 22화 ‘help me’가 방영된 날이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22화는 캐논의 EOS 5D마크2로 촬영되었습니다. 그것도 일부가 아닌 드라마 전체를 세 대의 5DmkII로 찍었다는것이죠.  5D가 전문가를 위한 장비라 할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스틸카메라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고예산 프로덕션을 위한 제작비를 쏟아 부은 뒤 막상 촬영은 캐논 똑딱이의 동영상기능으로 했다는것 만큼이나 좀 황당하게 들립니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게되면 황당하게 훌륭합니다. 첫 2분 프로모션 영상을 보시죠.




아쉽게도 720p HD 유튜브 영상은 아니지만 얼핏보아도 평소 정통 수퍼35mm 필름으로 촬영되왔던 여타 에피소드와의 이질감은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얕은 피사계심도를 이용한 샷디자인들은 눈에 띄지요. 수퍼35mm보다 더 큰 센서를 지닌 5DmkII의 강점이 발휘된 지점입니다.


저는 하우스를 그전에 보지 않아왔던지라 마지막회가 방영되기전 하우스의 팬인 친구에게서 주요 캐릭터들과 배경에 대한 설명도 듣고 fox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6편을 챙겨봤습니다. 드라마라고는 Lost만 보아왔던지라 하우스의 재미도 색다르더군요. 하우스가 워낙 유능한 의사이다보니 맥가이버나 콜롬보 느낌도 좀 나고 말이죠. 5D 사용 전에도 이미 얕은 심도를 즐겨쓰는 촬영스타일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22화를 아이튠스에서 HD 버젼으로 구입해서 봤습니다. (당일 방송은 놓쳤습니다)



일단 재미있었습니다. 시즌 마지막 회이다 보니 물량도 많이 투입되고 스토리도 훨씬 밀도있는것이 전반적인 퀄리티가 평소보다 좋게 느껴졌습니다. 과연 스틸카메라의 동영상기능으로 촬영된 유명 인기드라마는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보자는 호기심으로 시작된 시청은 금방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그냥 스토리의 재미에 빠져들었습니다. 일단 다 보고 난후에야 다시 관찰을 위해 몇번을 봤네요. 그래서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그러면 하우스의 케이스로 DSLR 영상촬영의 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에도 불구하고 필름이나 다른 하이엔드 비디오장비 대신 사용할 만큼의 메리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Why Not? 






1. 어쨌든 스틸카메라


당연한 태생적한계인데 DSLR은 스틸용 전문카메라라는것은 모든 기능이 스틸촬영에 최적화되었고 동영상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오토포커스와 자동노출등에 의존해 한손으로 여유있게 찍는 캠코더에 비해 불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프로들에게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제약이 있는데 프로용 캠코더에 포함된 수많은 고급기능들 (노출과다나 부족을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기능,  빛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카메라내에 장착된 ND필터, 커스텀세팅 저장, 사운드 장비를 위한 XLR 오디오 입력, LANC 리모콘 입력단자 등등)이 전무하므로 이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아주 쓰기 힘든 물건이 되고 맙니다. 




또 한가지 DSLR에 사용되는 렌즈가 모두 스틸용이라는 것도 큰 단점인데 많은 스틸렌즈의 경우 조리개가 부드럽게 열리고 닫히는 대신 분절적으로 동작합니다. 스틸을 찍을때야 어차피 적절한 조리개값을 정하고 한순간만 포착하면 되기에 문제가 안되지만 연속적인 순간을 기록하는 동영상촬영도중 조리개값을 조절할땐 갑자기 화면 밝기가 분절적으로 변화되는것이 보이겠죠.

이는 조리개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못하는 저가의 줌렌즈에는 특히 치명적입니다. 망원에서 광각으로 줌아웃하면 탁탁 소리와 함께 화면밝기가 뛰는것이 보이죠. 뭐 프로페셔널이면 저렴한 렌즈를 쓰지는 않겠습니다만.



하지만 고급 렌즈도 피할수 없는 단점이 있으니 소위 ‘숨쉬기 breathing’이라 불리는 현상입니다. 비디오를 찍을때는 초점거리를 바꿔도 화각이 변하지 않는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합니다만, 스틸렌즈의 경우 디자인상의 한계인지 포커스를 바꿀때 화각도 미세하게 바뀝니다. 그냥 포커스 상대만 바꾸려 했는데 줌인이나 줌아웃이 같이 되어버리는거죠.



 










줌렌즈도 아닌 단렌즈 50mm 프라임의 숨쉬기 현상.

오로지 동영상에 쓰려니 불거지는 문제점.

그래서 스틸렌즈의 한계를 넘기 위해 zeiss등에서는 시네마 스타일의 렌즈를 캐논의 EF마운트에 맞춘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도 하고, 또는 캐논 DSLR의 EF 마운트를 시네마렌즈용인 PL마운트로 개조해주는 서비스도 나왔습니다.




 



자이쯔의 컴팩트 프라임cp2.

일반 스틸이 아닌 시네마용 디자인으로 EF 마운트를 위해 나왔습니다.

개당 $3900, 혹은 한꺼번에 단돈 $27400만 내면 살수 있는 절호의 찬스 … (응?)








시네마 렌즈 사용을 위해 미러구조도 드러내버리고 PL마운트로 개조된 7D에
Cooke 렌즈를 달고 사용하는 모습.
Cooke렌즈는 개당 $20000대이니 배보다 큰 배꼽의 가장 확실한 예가 아닌가 싶네요.






스틸렌즈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저렴한(?) 솔루션이 있음에도 이번 하우스의 촬영에는 캐논의 스틸렌즈만으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 http://www.videography.com/articlefeatures/95134 ]

촬영감독인 Gale Tattersall은 별 다른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순수하게 캐논렌즈만 사용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하는데, 포커싱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하면서도 그렇게 한 이유로는 캐논의 스폰서쉽이 크지 않았나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무튼 결과는 여전히 훌륭하니 윈윈 전략이었구요. 



2. CMOS센서 


CMOS센서는 CCD를 대신해서 비디오와 스틸 촬영 모든쪽에 점점 사용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RED사의 Red One이나 이후 나올 Epic등에 사용된 센서도 모두 CMOS타입입니다.

그런데 CMOS에 치명적인 한계 (아… 치명 참 많이 나오는 중) 가 있으니 바로 rolling shutter이라 불리는 현상입니다. 원래 필름카메라의 회전하는 반원형 셔터에서 유래한 이 rolling shutter라는 말은 CMOS카메라에서는 화면의 기록이 전체적으로 일시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차적으로 이뤄진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필름카메라 역시 화면의 기록이 회전형 셔터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이뤄지는데 물리적으로 이뤄지는 필름카메라와 달리 CMOS센서의 경우엔 이 현상에 빛의 회절현상같은 간섭이 없기때문에 오히려 그 특징이 더 도드라집니다.

즉, 한 화면에 딱 하나의 순간이 기록이 아니라 1/2000 초든 얼마든 시간의 흐름이 있게 되고, 화면 상의 움직임이 충분히 빠르면 왜곡이 일어나고 맙니다. 









롤링셔터 현상의 가장 흔한 예인 빠른 팬(pan)시 나타나는 대각선 현상.

지금 갖고 계신 카메라가 CMOS센서라면 스틸이든 캠코더든 상관없이

 이 현상을 볼수 있습니다.

흔들어 보세요. 




CMOS센서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Red One을 비롯한 비디오 카메라에 점점 많이 쓰이는 이유는 롤링셔터의 속도가 빨라서 비디오에 좀더 최적화 되었고, 애초에 롤링셔터의 단점이 부각되게 만드는 촬영습관이나 상황이 주로 아마추어적이며 또 저렇게 대놓고 보여줄 목적이 아닌 이상 생각보다 롤링셔터 현상이 눈에 거슬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때문입니다.

DSLR의 CMOS센서가 좀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비디오용 센서보다 느려서 저런 흐물거림이 나타나기가 더 쉽다는것이구요. 센서자체의 한계이기때문에 조심해서 찍는것과 적절한 용도에 맞는 장면에만 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3. Aliasing (계단현상)과 모아레 패턴 


가장 심각한 단점이라 할수 있는 것인데, 역시 DSLR센서가 동영상용이 아닌 점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벽돌건물을 찍은 영상인데 벽돌부분에 요상한 패턴이 물결치듯 나타나는것이 모아레현상입니다. 벽돌처럼 반복적이고 작은 패턴대신 가느다란 선을 찍을 경우엔 계단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지요. 이런 문제가 나오는 이유는 DSLR센서로 동영상을 촬영할때 센서의 모든 픽셀을 사용하지 않아서입니다.

제 550D만 해도 18메가픽셀 스틸이미지를 촬영합니다. 센서는 가로 5000픽셀이상인것이죠. 그러나 동영상은 1920픽셀만 필요합니다. 카메라의 메모리와 프로세서가 충분히 빠르다면 센서의 전체 픽셀을 다 사용하여 이미지를 캡쳐한뒤 1920폭으로 보간법을 사용해 줄이겠지만 스틸카메라는 그만한 데이터를 가공할 하드웨어가 갖춰지질 않았기때문에 픽셀을 건너뛰어 기록하는 꼼수를 사용합니다.

결과적으로 픽셀을 건너뛴 폭보다 더 작은 패턴을 촬영할때 충분한 샘플링이 이뤄지지 않아서 저런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그로인해 벽돌건물, 지붕타일, 특정 옷감등 미세한 패턴을 보이는 피사체의 촬영이 아주 어려워집니다. 역시나 하드웨어의 한계이기때문에 조심해서 적절한 피사체만 찍는 수 밖에 없습니다. 



4. h264 저장포맷


Aliasing과 함께 가장 심각한 단점 또 하나입니다. 캐논 DSLR은 8비트 색공간의 h264 코덱으로 동영상을 저장합니다. h264은 블루레이디스크, AVCHD 캠코더 등 많은 영상기기에서 사용되는 고효율의 훌륭한 코덱입니다만 최종전달매체로 적합하지 최초기록매체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마치 프로 사진작가가 RAW대신 JPEG으로만 촬영해야하는 상황과 비슷하지요.

JPEG이 나쁜건 아니지만 많은 보정과정을 거쳐 다듬고자하는 경우 최초기록은 최대한 많은 정보가 보전된 포맷이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8비트의 고압축 동영상 포맷의 사용은 필름이나 10비트이상 무압축 포맷으로 촬영하던 프로들에겐 상상할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MPEG2를 사용하는 HDV등도 비슷한 한계를 가집니다만 이들은 애초에 압축된 포맷을 사용하는 비디오프로덕션용이고 프로 캠코더들은 대부분 HDSDI나 HDMI를 통해 신호를 전송할수 있어서 압축이전의 데이터를 외부장비에 기록하는 우회가 가능합니다. (심지어 HV20도 HDMI를 통해 가능합니다. )

그러나 캐논 DSLR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는데 바로 다음 단점 때문입니다. 



5. HDMI 아웃과 포커스 맞추기


캐논 DSLR들은 HDMI 아웃풋 단자가 있습니다만 역시 스틸 사진을 HDTV에서 열람하기위한 것이 첫째 목적이었을 뿐입니다. HDMI는 촛점 맞추기와 무압축 신호 기록이라는 두가지 영역에서 아주 유용할뻔 했습니다. 



무압축 고화질 영상의 기록은 위에서 언급했고 촛점맞추기에 대해 생각해보죠. DSLR은 아이피스를 통해 육안으로 포커스를 확인하며 촬영하는것이 기본입니다. 무한 해상도이고 가장 정확하지요. LCD를 통해 포커스를 가능케 해주는 라이브뷰 모드는 순전히 악세사리 기능입니다.

가로 5000픽셀 이상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찍는데 고작 720×480정도의 LCD창은 촛점을 정확히 잡는데는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건 이해가 쉽습니다. (확대해서 촛점을 확인하는 기능은 있습니다) 1920×1080의 HD영상의 경우엔 그래도 좀 더 유용해집니다만 역시 HD해상도의 모니터로 촛점을 확인하는것이 훨씬 좋겠지요. 미러를 내릴 수 없기때문에 어차피 아이피스를 사용하는것은 불가능하구요.  




이런 상황에서 HDMI포트가 1080p 신호를 내보낼수 있다면 두가지 문제가 해결가능합니다. 신호분리기로 HDMI신호를 하나는 촛점확인용모니터에, 하나는 기록장치에 물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우선 이미지 프로세서가 하나만 달린 5DmkII와 550D는 촬영이 시작되면 HDMI가 480p의 해상도로 떨어져 버립니다. 프로세서가 압축과 HDMI 신호보내기를 동시에 감당 못하는것이죠.

듀얼프로세서가 달린 7D와 1Dmk4는 촬영이 시작되어도 저해상도로 떨어지진 않습니다만 HDMI신호가 완전한 1080p 가 아닌 1600×900쯤 되는 어중간한 해상도이고 LCD상의 모든 디스플레이 글자들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디스플레이를 다 꺼도 촬영중이라는 빨간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더구나 HDMI를 물리면 촬영시작과 동시에 카메라 본체의 LCD는 꺼집니다. 지금은 그나마 480p라도 좀더 큰 LCD화면으로 촛점을 맞추기 위한 용도 정도로만 사용중입니다. 캐논이 일부러 사용자를 골탕먹이려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기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촛점확인을 위한 여러가지 장비들.

LCD를 2배 3배율로 보게 해주는 캠코더 스타일의 뷰파인더, 혹은 HDMI에 연결된 모니터. 그것을 보며 촬영자 자신이 혹은 전문촬영팀의 경우 대부분 포커스를 담당하는 스태프(focus puller)가  촛점을 조정합니다. 




6. 오디오 녹음


어차피 전문장비로 현장음이 녹음되고 대사는 후시녹음도 많은 프로덕션에겐 별 문제는 안됩니다만 DSLR의 오디오 기능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카메라에 오디오 인풋 단자가 있어서 내장 모노마이크 대신 고음질의 마이크장착이 가능한것은 좋지만 문제는 카메라에 항상 AGC – automatic gain control이 작동한다는것입니다. 주변의 소리에 따라 자동으로 녹음 레벨을 변화시키는 기능은 간편한 동영상촬영엔 좋지만 프로페셔널 오디오 녹음엔 아주 안좋습니다.

주변이 조용해지면 감도가 상승해서 주변의 미세한 잡다한 노이즈를 다 녹음해버리는 문제가 생기죠. 다행히 5DmkII는 청원운동의 결실로 나온 24fps 지원 펌웨어 업데이트시 AGC를 끌 수 있는 옵션이 추가되었습니다. 기타 캐논 DSLR도 나와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Then Why?



그런데 대체 왜, 전문촬영장비로는 수많은 단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하우스 제작진은 5DmkII를 사용했을까요.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영진공 노타입



 

손홍규의 “이슬람 정육점”, 일상에 함몰되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


여러모로 작가의 전작 ‘귀신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한권짜리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서너권 이상 되는 대하소설에서나 나올법하게 수많은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잔뜩 등장한다는 점도 그렇고, 어떠한 지형(귀신의 시대에서는 노령산맥, 이슬람 정육점에서는 한남동)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역사, 지리적인 삶을 짚어 나가는 것 또한 그러하다.

시점을 알 수 없는 훗날의 내가 ‘어린날의 나’가 되어, 1인칭 작가시점도 전지적 작가시점도 아닌 묘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묘사해 나가는 것도 그러하다.

묘사력과 익살, 사안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나다.

‘사람의 신화’에서 ‘귀신의 시대’를 거쳐, ‘봉섭이 가라사대’까지 오는 동안 마술적인 차용은 줄어들고, 어두운 묘사는 줄어들며, 유머는 점점 증폭되어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되는데, 이 작품또한 그 연장선 상에 서 있다고 본다. 거의 모든 작품의 무대였던 ‘노령산맥’에서 ‘한남동’으로 옮겨왔기 때문일가. 약간 아쉬운 것은 이번 작품은 전작에 비해 좀 더 철학적이 되었고, 좀 더 인위적이 되었고, 좀 더 설명적인 듯하다는 느낌이다.

주인공 소년의 사유가 너무 깊은 나머지 소설과 철학적 사유가 따로 읽히는 듯한 느낌이 조금 있다.

인물의 얼굴을 스크랩하고, 그 스크랩으로 세계지도를 만드는 것은 지나치게 illustrative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고, 안나 아주머니를 필두로 한 그 사람들이 돼지도축 여행을 떠나는 것 또한 너무 상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나중에 ‘총상’과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는, 그것을 읽으면서 상상되는 ‘그 사건’을 ‘직접 언급’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며 적잖이 걱정마저 되었다. (다행이 추측만 할 수 있게 하지, 언급을 직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소설에서’아쉽다’는 ‘완벽을 기대했던 작품’에서 약간의 트집잡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데서 오는 감정이지, 영 아닌 작품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 여타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기와, 기질과 생명력이 있다.

손홍규는 정말 보석같은 작가다.

문단에서만 보석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세대에 있어서의 보석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전작들에서 경계세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경험을 그 어느 쪽이든 다 풍부하게 직접해보고, 역사와 생활을 씨실과 날줄로 엮어 유머가 넘치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재주 때문에 그를 보석같다고 생각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세대에 이런 철학과 이런 문제의식과 이런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예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훨씬 우리 세대에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쉽게 용서하게 만드는 세월 속에서 나는 얼마나 경주마 같이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일천한 상상력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가.

일상에 함몰되지 않는, 징징거리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를 잃지 않는 손홍규.

개그콘서트 식으로 말하자면, ‘손홍규 포레버’다.

영진공 라이

 

“하녀”, 하녀가 아니라 마님(들)이 주인공이다






김기영 감독의 원작이 무려 1960년도 작품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50년 전 영화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서 리메이크를 한다는 기획 자체가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흥행 성적이야 내 걱정할 바는 아닌 거고, 그저 한 사람의 유료 관객으로서 보기에 영 어색하지나 않을런지 괜한 걱정이 앞서는 쪽이었다. 때 맞춰 깐느 경쟁부문에도 진출했겠다, 꽤 많은 상영관을 차지하며 개봉했지만 역시나 수도권 상영관 안의 객석은 상당히 한산한 편이다.

‘하녀’라는 단어가 주는 전근대적인 뉘앙스와 알려질 대로 알려진 원작의 설정이 지금의 관객들에게 그리 큰 호감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사실 지금이나 원작이 만들어졌던 그 시절에나 ‘하녀’라는 전근대적인 단어가 매우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된다.

특별히 잘 사는 집안이 아니더라도 식모나 그외 집 안 일 도와주는 언니 한 명 쯤은 데리고 살았던 그 시절에도 그들을 ‘하녀’라고 부르며 하대하지는 않았기에 김기영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하녀>라고 이름 지을 때에는 그녀의 역할이나 좀 더 확장된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임상수 감독이 다시 만든 <하녀> 역시 단 한 번도 은이(전도연)를 하녀라고 지칭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 하녀가 존재했던 봉건 시대에나 동명의 두 영화가 만들어진 시점에도 그 역할 자체와 그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하녀>의 도입부는 누군가의 집 안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에 온갖 아랫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일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그 하녀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고 그 댓가를 돈으로 받아 생활하는 우리 대부분의 하녀 또는 하인 생활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되고자 한다.











그러나 하녀의 정의를 새롭게 하는 것은 영화 <하녀>가 관객들을 그 이야기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 취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주인공 은이의 캐릭터 역시 원작의 이상성격자와는 많이 다르다. 지극히 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나이브한 면까지 갖춘 – 그리하여 어린 애한테 착하고 불쌍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 성격의 소유자로 그리면서 관객들이 은이의 입장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게 만들 뿐이다.

정작 <하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은이가 하녀의 입장이 되어서 들어간 ‘그들의 세계’를 묘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영화 <하녀>는 제목이 되고 있는 하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하녀라는 존재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그들이 아주 무서운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때 그 사람들>(2004)을 통해 10.26 사건 현장에 있었으나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그 때 그 분들’의 이야기에 집중된 작품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듯이 임상수 감독은 <하녀>를 통해서도 하녀의 윗분들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을 내놓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임상수 감독의 장기인 동시에 한계가 되는 점이기도 한 바, <하녀>는 임상수 감독이 카메라로 다시 쓴 <재벌(의 사생활)을 생각한다>에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안의 딸로 출연한 아역 안서현의 큰 눈과 뚱한 표정이 우리나라 대표 재벌가인 이씨 집안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하녀>의 마지막 컷을 차지하는 얼굴도 다른 주연 배우들이 아니라 다름아닌 아역 안서현의 차지가 된다. 어쩌면 <하녀>라는 영화 자체가 임상수 감독이 내던지는 조롱 섞인 농담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주인 남자(이정재)와 여자(서우), 그리고 은이(전도연)의 뻔한 갈등 관계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하녀>가 충분히 각색되고 의도된 작품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주연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주인 남자의 장모(박지영)와 집사 조병식(윤여정)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주인 남자가 가진 막대한 부의 힘을 잘 이해하고 그것이 유지되는 메카니즘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는 기생형 인물이라는 점이다.




추측컨데 왠만큼 잘 사는 집안 출신인 장모조차도 주인 남자 집안의 절대 권력 앞에서는 기도 못펴는 수준이 되고 마는 바, 장모는 시집 보낸 딸을 통해 그 권력의 쾌적함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인물로서 자신의 계획과 의도에 방해가 되는 은이의 존재를 제거하는 데에 처음부터 몸소 앞장 서는 역할을 한다.

조병식은 고참 하녀로서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꼴을 오랜 세월 동안 감수하며 자기 아들을 또 다른 권력 체계에 편승시키는 데에 성공한 인물로 은이를 마음으로부터 동정은 하되 그 집안이 요구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수행하는 하수인 역할을 하게 된다.

임상수 감독이 원작에서 서스펜스 스릴러를 걷어내고 그 대신 ‘게임의 법칙’을 채워넣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주인 남자의 장모와 집사 조병식이고 <하녀>가 원작을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으되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각색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부분 역시 두 인물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박지영이 연기한 장모 역할 덕분에 – 결국 그 시스템 안에서 머물기로 하는 한 어느 누구도 하녀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하녀들>이 되었을 때 영화의 메시지에 좀 더 부합한다 –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영화이긴 했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한 수준인 것은 아니다.

영화제 출품 일정을 맞추느라 서둘렀던 탓인지 약간 생뚱맞게 보일 수도 있는 에필로그와 함께 – 이 에필로그 때문에 <하녀>는 확실하게 하녀가 아니라 하녀를 부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혀진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 장면인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분위기가 영화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붕 뜨는 느낌을 준다 – 은이의 최후 역시 후련한 감은 있지만 극적인 상황을 좀 더 길게 이끌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은이가 하혈을 한 후 조병식이 주인 남자를 보며 무언가 의사전달을 하다가 다음 컷에서 갑자기 은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표정으로 바뀌는 것은 분명 기술적인 실수다. 주절주절 많은 설명을 하는 법이 없는 이런 영화에서 주요 등장 인물들의 표정 하나가 이야기의 흐름에 맥을 짚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점프 컷에 가까운 이 부분의 편집 실수는 적잖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 하겠다.

아울러 은이의 폭주에 앞서 조병식의 입장이 갑작스럽게 전환되는 부분 역시 통렬한 느낌을 전달해주기 보다는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마지막 씨퀀스를 위해 좀 더 많은 촬영을 해놓고도 러닝타임 때문에 대폭 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그 앞 부분에서 이미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해버린 참이었으니 아마도 별도의 디렉터스컷 따위는 만들어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영진공 신어지

 




 

삼성 스마트폰은 승리자의 꿈을 꾸는가?


삼성에서 신형 안드로이드 폰 갤럭시 S가 나왔다. 옴니아 1과 옴니아 2라는 초대형 자책골이 터진 게 엊그제 같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신문, 잡지, 그리고 파워 블로거들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아이폰 대항마가 나왔다며 난리 브루스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대항마 타령이야 어찌 됐건, 갤럭시 S가 괜찮은 제품이란 건 사실인 것 같다. 동시에 삼성 스마트폰에 대한 기대심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지금 이 정도 되는 제품을 만들었으니 다음엔 더 멋진 걸 만들겠지? 그래, 맞아, 조만간 아이폰 4를 떡실신시킬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 갤럭시 S는 SPC5111 CPU를 쓰고 있는데, 이건 애플의 A4 CPU와 사실상 같은 CPU다. ARM의 Coretex A8을 기반으로 인트린시티에서 설계한 것이다.




ARM의 coretex는 그 구조상 1Ghz를 넘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인트린시티는 CPU 다이에 메모리 컨트롤러와 메모리를 내장시키는 등의 개선을 통해 그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A4 CPU 개발 당시 5500만 달러를 애플과 삼성이 공동 투자했다고 한다. 삼성이 갤럭시 등 자사 스마트폰에 (A4와 동일한 설계의) SPC5111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인트린시티를 애플이 인수했다는 사실이다.


그까짓 흔해빠진 ARM CPU 설계업체가 뭐 그리 중요하냐며 시큰둥하게 중얼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인트린시티 A4 CPU는 그 설계상 멀티 코어 확장이 가능하며, 최대 8개 코어까지 얹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애플이 멀티 코어 CPU를 탑재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내놓으며 요란한 선전을 벌일 때, 삼성전자 마케팅 팀은 싱글 코어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골머리를 썩혀야 하는 난관에 부닥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물론 그때까지 삼성전자가 손가락만 빨고 있진 않을 것이다. Coretex A9이 됐든 뭐가 됐든 그만한 성능의 최신형 CPU를 수급해 와서 우겨넣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경쟁사도 다 사서 쓸 수 있는 CPU나 GPU를 이용해 봐야 무슨 특장점이 있을까?


글쎄, 별로 없을 것이다.



[소니 침몰]의 저자가 지적했듯이, 범용 부품을 조립해 완성품을 만드는 수평 분업형 사업에선 가격 경쟁력 외에 다른 부가 가치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가격 경쟁력이라고 하면 중국 업체를 따라가기 어렵다. HTC 같은 데만 하더라도 엄청난 구매력과 저가 노동력을 무기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애플은 PC업계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했던 시절, 자신들만의 특장점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그리고 파워피씨 CPU, MacOS(클래식), MacOS X 등을 내놓았다. 이러한 차별점을 특장점으로 받아들이고 부가 가치로 인정한 사람들은 애플의 빠가 됐고,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윈도우 PC를 사거나 또는 애플의 까가 됐다.


몇몇 애플 까들은 애플이 폐쇄적이기 때문에 자사 OS를 고집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시시한 이유 때문에 몇 년이란 시간과 수억 달러의 개발비를 들여 OS를 만드는 멍청한 회사가 어디 있을까?


애플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확실한 부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다른 수평분업형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이 쓸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플은 모바일에 진출한 이후로도 이러한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독자적인 OS에, 독자적인 앱 스토어에, 독자적인 기타 등등 …… 이젠 독자적인 CPU까지 만들어 넣으려 하고 있다. 아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경쟁사도 쓰는 CPU와 공짜 OS, 통신사가 만든 앱 스토어에 의지하고 있다. 애플은 고사하고 HTC와의 차별점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아, AMOLED 디스플레이? 확실히 눈에 띄긴 띈다. 하지만 그걸 넣으면 가격이 엄청 비싸지는데?


자칫 잘못하면 1, 2년 안에 삼성전자는 내세울만한 특장점이라곤 삼성 로고밖에 남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칠지도 모른다.



피쳐폰 분야에서는 사소한 기능 추가나 사소한 부품 개선이나 사소한 UI 변경만으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선 그런 눈속임이 통하지 않는다. 다들 엇비슷한 부품을 쓰는 상황에서는 1) 가격 경쟁력 2) 부가 가치 중에서 하나라도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둘 다 있으면? 승리자가 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글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한데….. 삼성이 애플보다 먼저 인트린시티를 인수했다면, 그럴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아졌겠지!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