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잃어버렸던 인간병기의 꿈

 

 


 


 


 



 


 


 


1.  인간병기의 꿈


 


무협영화 팬이었던 내게 남다른 소녀시절의 꿈이 있다면 그건 인간병기가 되는 거였다.


 


주윤발처럼 총 두자루를 들고 건물에 들어가 부대 하나를 박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거나, 성룡처럼 맘만 먹으면 백화점 꼭대기에서 장식용 알전구가 매달린 전기줄을 타고 1층까지 내려온다거나, 상대방에게 얼굴을 한방 맞고 뒤로 넘어가는 듯 하다가 다시 허리와 다리의 힘으로 벌쩍 일어나서 방심하는 상대의 뒤통수를 가격한다든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싶었다.


 


여기서 ‘꿈’이라는 건 말 그대로 ‘꿈’이어서 현실에서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환상. ‘꿈 깰’필요 없는 그런 ‘꿈’이었다. 현실의 나는 체력장 4급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고, 100미터는 20초 이하로 뛰어본 적이 없고, 줄넘기를 100회 이상 해 본적이 없고, 쌩쌩이는 평생 해본적이 없고, 농구 골대에 공을 10번 던지면 10번 모두 노골 시키는. 정말 다시 없을 몸치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천재’물도 참 좋아했는데, 천재들이 탁월한 정보 종합수집 능력과 기억력과 판단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천재가 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현실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중학교 때까지 친구들 몰래 발가락을 이용해 덧뺄셈을 하던 천하의 어벙이였지만.


 


그래도 나는 추리소설을 읽으며 포와로, 미스 마플, 홈즈 같은 천재들에 열광했고, 명절마다 중간기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액션 영화 챙겨보고 아무도 없는 뒤켠에서 남 몰래 발차기를 해보기도 했다. 나중에 다 큰 후에, 모든 대한민국의 정규교과과정을 마치고, 회사생활을 10년 가까이 한 후에야 나는 나의 ‘인간병기’의 꿈과 ‘천재’의 꿈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간병기의 꿈이란 내 신체를 내 의지대로 쓰고 싶은 희망에 다름 아니었으며, 천재의 꿈이란 나의 지적 능력이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데 부족하지를 않기 바라는 희망이었다는 것을.


 


 


 



 


 


 


2. 전설의 주먹



아이들이 태어나고 회사 일이 바빠지고 영화관에 가보지 못한것이 이년째인지 삼년째인지도 모르던 어느 날, 회사에서 단체 영화라는 것을 보러갔다. 단체영화란 본디 중고생의 영화관 출입이 금지되어있던 문화의 결핍시대에 선심처럼 베풀어지던 것이라 알고 있다. 아침 10시 영화관에 모인 회사 사람들도 다 그래보였다. 오랜만에 이 낯선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초대된 어색함. 들뜸.


 


그렇게 신입사원, 부장님 차장님 상무님 과장 대리가 순서없이 앉아 본 영화는 “전설의 주먹”이었다. 60년대~70년대생이 대부분인 차부장 이상 급들은 주먹질 하는 자기와 같은 세대의 주인공에게 열광을 했다. 이 뻔한 신파극에 아저씨들은 울고 울었고 나는 그들과는 약간 다를 어떤 감상으로 우울했다. 주먹질의 석연찮음. 그러니까 내가 액션영화를 볼 때의 욕망 ‘내 신체를 내 의지대로 쓰고 싶은 희망’과는 정반대 대척점에 있는 폭력이었던 것이다.


 


어릴적 열광하던 액션영화에서 그들에게 액션을 강요하는 자들은 없었다. 성룡은 ‘어쩔 수 없는 상황’때문에 3층에서 떨어지며 차양을 붙들고 착륙하는 액션을 하지만 3층에서 성룡을 미는 사람은 없었다. “전설의 주먹”에 자기 몸을 쓰려고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돈을 받고 싸움판의 투계가 되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오락을 위해 맞고 때리는, 시키는 자에 대한 분노. 그러고 보니 ‘내가 원해서 하는 액션, 나의 정의를 위한 폭력’을 본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마지막으로 본게 옹박이었던가?).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아저씨들은 ‘자신의 전설’을 설파해댔지만, 나는 ‘강요된 폭력’에 ‘어쩔 수 없었어요’라고 끝까지 변명하는 주인공들이(그리고 내가) 가슴에 걸리며 맘에 안 들었다. 그리고 ‘친구와는 싸우지 않습니다’라는 거부가 너무 소박하고 현실적이어서 유쾌하지 않았다.


 


 


 



 


 


 


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내가 보는 거라곤 일요일 오전에 하는 ‘영화 스포일러’프로그램들 뿐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영화관에서 무슨 영화를 하는지, 요새 무슨 영화가 있는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좀 처럼 영화관에 갈 시간을 내기 힘든 내가 굳이 “화이”를 본 것은 강렬한 예고편의 대사 때문이었다.


 


“아빠들이 다 괴물인데, 너도 괴물이 되어야지.” 바로 강요된 폭력! “우리는 다 하는데 왜 너는 못해? 너는 다른 것 같아”라는 영화 대사는 슬프게도 내가 직장생활, 일상생활 속에서 상사에게 많이 들어온 이야기다.


 


어쩌면 10년 좀 넘어가는 직장생활에서 늘 강요받아온 것.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순응하다보니 망가져가는 내 자신을 보는 것. 괴물이 되어가는 내 모습에 실망하는 것. 그리고 더 흉한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몸부림을 치다 다시 밟히는 것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화이”가 좋았던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강요된 폭력을 용감히 거부했다는 것.


 


폭력을 강요했던 다섯 아빠를 모두 죽이고(한명은 예의상 사고사 처리), 그 다섯아빠에게 폭력을 강요했던 건설사 사장까지 죽여버린다. 타협은 없다. 괴물은 괴물일 뿐 이해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화이는 징징거리지도 않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킨다.



괴물이 됨으로써 괴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죽여야 괴물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실천해버린다. (그래서 괴물이 된 아이가 아니라 괴물을 삼킨 아이인 것 같다.) ‘저를 왜 기르셨나요?’를 의문하긴 하지만 그 질문에 천착하지 않고, 어떻게든 폭력 강요자들을 이해하여 그 강요를 내재화 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영화 초입에 멧돼지 머리를 쏘던 화이의 총과 마지막 기타가방에 들어있는 화이의 총은 완전히 다르다.



그게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들일지라도 단호히 총구를 겨누고야 마는 화이 덕분에 나는 다시 인간병기의 꿈을 꾸게 되었다.


 


 


 


영진공 라이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래서 인기인가보다.

 

 


 


 



 


 


 


정말 그런가보다. 그래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인기인가보다.


 


어릴 때 부터 악을 악을 써서 입시경쟁을 지나고 스펙경쟁을 지나왔는데, 취직이 안되서 엄마네 슈퍼에나 얹혀 살면서 외상값이나 적는게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인기인가보다. (5446특수부대의 훈련병들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은 우리 입시전쟁 스펙경쟁 취업경쟁이 아닌가.) – 류환


 


어릴 때 부터 꿈을 가지고 살라해서 꿈을 갖고 멋스럽게 살라했는데, 오디션 하나 통과 안되는게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인기인가보다. (오디션의 서바이벌과 5446의 서바이벌은 비슷하지 않은가.) – 리해랑


 


 


 



 


 


 


어릴 때 전교 1등하고 공부 잘해봤자 내 현실은 결국 동네 바보 백수 건달인데, 그런 나를 멋있다고 전교 1등 하려고 아등바등 공부하며 올라오는 아랫세대가 너무 안쓰러운게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인기인가보다. – 리해진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비수를 꽂는게 기성세대인 것이 요새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인기인가부다. – 서상구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선진조국에 태어난 줄 알았는데, 되는 일이 없어서, 여기가 대한민국이 아니고 북한인가 싶은게 요새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이런 비유가 먹히나보다.


 


 


 



 


 


 


그런데 자꾸 투항하라고 ‘일자리에 대한 눈을 낮추라고’하는 기성세대가 미워서 끝까지 투항하지 못하는게 요새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이런 비유가 먹히나보다.


 


수습 안되니까 끝에 다 죽어버리냐고 시나리오작가랑 감독을 욕했는데. 수습안되니까 젊은 애들 다 죽으라고 하는게 우리 현실인것 같아서 가심이 쫌 아프다.


 


 


영진공 라이


 


 


 


 


 


 


 


 


 


 


 


 


 


 


 


 


 


 


 


 


 


 


 


 


 


 


 


 


 


 


 


 


 


 


 


 

“옥수동 타이거스”, 쿵푸 허슬 옥수동판 잔혹사라고나 할까 …


 

 


 


 




옥수동 타이거스


 

저자: 최지운

펴냄: 민음사



흡사 주성치영화 같은 느낌이다. 쿵푸 허슬의 옥수동판 학원물버전이랄까. 코믹한 장면이지만 왠지 맘 놓고 웃을 수 없고 웃다보면 눈물이 나오고 싸움하는 장면이 너무 허무맹랑해서 낄낄대며 웃다보면, 싸움 그 이외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필력이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다. 주성치 영화를 놓고 개연성과 만듦새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바보같은 일이다. 주성치영화는 주성치 스타일인 것 자체가 미덕이니까. 작가가 이런 스타일로 쭉~~ 계속 써 줬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단지 무협지적 허풍은 좀 더 비주얼하게 잘 써주길.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서울을 대놓고 주인공으로 삼는 소설에는 애잔함이 느껴진다. 김애란의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주인공이 한강 다리를 건너며 쳐다봤던 오른쪽 강안(江岸)에는 용공고 오호장군이 활약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공고 오호장군 콘티


[ 출처: 교보문고 북뉴스 ]


 


 


 


그나저나 작가는 서울출신이 아니다. 서울출신이 아닌 작가들이 더 서울의 어떤 동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잘 쓰는 것 같다.


 


손홍규작가는 동국대근처 서식(?)의 주특기를 살려 이질적인 문화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한남동을 배경으로 한 ‘이슬람 정육점’을 멋드러지게 쓰더니, 최지운 작가는 중구와 중랑구 동대문구를 아우르는 동국대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 살려 ‘옥수동타이거스’를 써냈다.


 


이만하면 강남과 강북의 중간지점(옥수터널 전까지는 준강남이라며…)이며, 구시가와 신시가의 중간지점이며 남산지하실과 장충체육관을 지척에 둔 동국대야 말로 문학이 탄생하기에 최적의 장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진공 라이


 


 


 


 


 


 


 


 


 


 


 


 


 


 


 


 


 


 


 


 


 


 


 


 


 


 


 


 


 


 


 

“화차”, 가장 무서운 것은 사는 일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

여섯 일곱살 무렵. 빛과 어두움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깜깜한 것이 무서워지던 때였다.깜깜한게 뭐가 무섭냐는 엄마의 말에 “귀신이 나올까봐 무섭다.”고 얘기했더니, 엄마가 “귀신이 뭐가 무섭니. 하나도 안 무섭지.”라는 엄마의 말. “엄마. 엄만 그럼 뭐가 무서워?”라고 묻자 엄마가 “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라고 말했다. 내가 사람이 뭐가 무섭냐고 얘기했고, 엄마는 ‘글쎄 그럴 때가 온단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때가’라고 대답했다. 당시의 나는 귀신이 너무 무서울 때라 얼른 그런 날이 왔으면 했다.

그리고 또 초등학생 어느 날인가였다. 골목 저 건너편집에 불이 났다. 까맣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긴채 집은 잿더미가 되었고, 다행히 그 집 식구들은 모두 무사히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한동안 화재 목격의 충격은 지속되었다. “엄마 불 날까봐 무서워.” 엄마가 “불은 잘 안나. 불이 무섭긴 하지만 조심하면 그렇게 무섭지 않다.” 나는 또 예전의 그날 처럼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럼 뭐가 무서워?” 엄마는 조용히 대답했다. “엄마는 돈이 무섭다.”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나도 이제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고, 화재보다 돈이 무섭다. 가끔 격심한 공포에 시달릴 때는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는 소위 멘붕(멘탈붕괴)상태일 때. 그때는 사람보다 돈보다 내가 무섭다.

‘화차’는 그 모든 것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영화였다.

진짜 공포는 고어가 아니라 바로 삶

영화는 굉장히 잔인한 사건을 내용으로 하고있지만, 고어적인 묘사는 하지않는다. ‘추격자’같이 정을 박고, 자르고, 매달고, 파묻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펜션에서 선영(김민희) 혼자 피칠갑한채 오열하는 것이 ‘피’의 전부이다. 선영이 사창가에 팔려갔다는 것이 암시되지만, 사창가에서 학대당하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종일관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데,그 공포는 시각적인 촉각적인 공포라기보다는 오히려 더 무서운 ‘생에 대한 공포’이다. 문호(이선균)의 감정은 처음에는 약혼녀가 납치되었을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시작했다가, 그녀의 이름이 강선영이 아니라는 것, 모든 경력이 허위라는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옮겨간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문호와 함께 선영이 과거 아버지의 파산으로 어릴 때 부터 빚에 쫒겨다니다가 어린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고, 사창가에 팔려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성매매행위를 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를 출산하고, 그 아이를 잃기까지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가슴아픔과 연민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의 공포에 이른다.

그 공포에 대한 뿌리는 나도 선영이, 경선이 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이다. 카드를 평소와 같이 쓰다가, 어느날 실직이나 불경기로 수입이 달라진다면 카드연체가 된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빚과 신용불량으로 취업할 수 없는 악순환의 도가니.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빠져들 수 있는 그 무서운 수렁. 거기에 상호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연대가 없는 이 사회에서 홀로 남아있다는 공포.

김애란의 소설 ‘노크하지 않는 방’에 사는 이들 모두의 공포가 더해지면 산다는 것 자체가 오싹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발견하는 희망이랄것 없는 희망

종근(조성하)이 댓가없는 사건에 그렇게 집착하고 진실을 풀어내려고 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종근은 실직 중이고,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제수씨가 불쌍하지도 않냐”라고 말한다. 아내가 가게를 꾸리고, 종근과 아이는 가게 곁방에서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조그만 가게지만 그 매출이 줄어든다면 당장에 생계형 빚을 지게 될거고, 종근에게 일정한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생활은 더 기구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한때 형사였던 종근은 옷을 벗으면서 ‘여기가 내 인생 바닥’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선영을/경선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거기가 바닥이 아님’을 확인해 나가기에 멈출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절망의 무기력 속에서, 더 무기력해지면 더더욱 나빠질 여지는 얼마든지 많음을 확인하고, 그래서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위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창고지기 일이라도 시작할 동력을 얻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대의 희망이라니 그 자체가 또 공포스러운 일이고 ……

그러고보니 매달 밀려오는 빚을 다달이 막아내기 위하여(청산이 아니라) 분연히 일어나 일터로 향할 때이다.


영진공 라이


 

미워도 추억 때문에 … 내 마음 속의 롯* 월드




추억은 애정을 지속시킨다.

그게 아니라면 세상 어느 도시보다 내가 서울을 좋아한다는, 전국 어느 곳보다 서울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설명될 수가 없다.

이토록 공기가 안 좋고, 이토록 날씨가 안 좋고, 구석 구석 잘 정비되어 가는 모습은 겉만 번지르르한 유치찬란한 팬시상품처럼 보이는, 이런 얄팍한 미감을 자랑하며, 때려 부수고 지어대는, 이 사람을 쥐어 짜는 불안정한 이 도시가. 대체 왜 좋겠는가.

서울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며칠 정도 여행으로 서울을 비우는 것을 제외 하고는, 이 도시를 떠나본 적이 없다. 늘 나의 생활 근거지는 서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한산한 강남대로를 따라 멋없는 샛자주색 시내버스를 타고 국민학교를 다녔고, 밤사이 잔뜩 뿌려진 나이트 클럽 전단지가 채 치워지지 않은 강남역길을 걸어 중학교를 다녔다. 자율학습을 빼먹고 정동길을 거닐고, 주말이면 광화문 KFC에서 치킨을 사먹는 것을 큰 낙으로 삼으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지루한 대학시절의 통학길엔, 술기운을 빌어 지하철 역이름으로 당시 유행하던 허무한 이행시 짓기(예를 들어 “잠실”역이라고 하면, “잠. 잠시 쉬었다가자. 실. 실어.” 이런 식의 저속하고 유치한 이행시 짓기 말이다.) 하며 자지러지게 웃기도 했다. 아무리 서울이 변하고 또 변한다지만 지저분한 강남거리와, 그래도 초여름이면 찬란한 에메랄드 빛을 안겨주었던 정동길과, 책과 예쁜 문구류를 보물창고처럼 간직하고 있던 교보문고, 저렴한 술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학교 앞 골목 등이 기억과 추억을 지배하여 서울에 대한 더 없이 큰 애정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이다.

실은 롯데월드 얘기를 하려고 이리도 장황하게 말을 꺼냈다. 어제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롯데월드에 갔다. 롯데월드. 키치(Kitsche) 서울의 축소/집약판 같은 곳.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 모두가 꿈꾸는 그 곳’이라고 노래하지만, 사실은 돈벌이와 장삿속이 가득한 나라, 모두가 지갑을 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상업적인 그곳. 형형색색의 유럽흉내를 낸 가짜 건축물이 그 싸구려 색채를 자랑하며 가짜 질감과 싸구려 광택을 자랑하는 그 플라스틱 도시. 그 근처에 살 때는 그 곳이 쏟아내는 소음과 빛 공해에 눈살을 찌뿌렸던 그곳을. 나도 모르게 그리워 하고 또 아이와 함께 찾아가게 되는 것을 보면서. ‘아. 추억이 애정을 지속시키는 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롯데월드는 1989년에 개관했다. 그렇다. 한 때 ‘너 롯데월드 가봤어?’가 초등학생들의 뻐기기 레파토리였던 적이 있었다. 한 동안 마음 속으로 부러워만 하다가 (부모님이 놀이공원을 데리고 가주기를 기대하기에는 약간은 많은 나이였다) 정말로 무료하고 추운 겨울 방학 어느날 갑자기, 오빠가 롯데월드를 같이 가자고 제안했을 때 얼마나 신이 났는지.

부모님과 같이 가지않아도 지하철 몇 정거장으로 갈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았는지. 잠실역에 내려서 롯데백화점 앞의 트레비분수를 보았을때 얼마나 황홀했는지 (훗날 진짜 트레비분수를 보고, 잠실 롯데의 그 트레비분수가 얼마나 동네목욕탕같은 분위기인지를 깨달았지만), 스페인해적선이 얼마나 다른 동네 바이킹보다 크고 무서웠는지, 신밧드의 모험이나 지하탐험보트(당시에는 정글탐험보트가 아닌 지하탐험보트였음)가 얼마나 신기했는지. 겨울이었는데도 얼마나 따뜻했는지. 아직도 그 기억이 난다.

롯데월드는 중학교 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학원 같은 반이었던 애들과 아주 친해서 잘 몰려다녔었는데(부모님들도 우리가 친한 걸 모두 알고 묵인(?)했었다.) 방학특강 수업이 끝나고 나면 가끔은 선생님과, 또 가끔은 우리 끼리 방학마다 한번씩 롯데월드를 갔다. 주로 추억이란 놀이기구가 황홀했던 기억보다 한두시간 기다리는 것인 기본인 인기 놀이시설 앞에서 기다리면서 묵찌빠를 하고, 제로를 하고, 벌칙으로 손목이나 딱밤을 때리기도 하며 평소 학원에서는 해보지 못한 놀이에 관한 것들이다. 후렌치레볼루션이나 지하탐험보트같이 둘씩 앉는 놀이기구를 타게 되면 혹시나 남몰래 좋아하는 그애와 나란히 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감과 함께.

중3 겨울방학. 모든 애들이 다 집에 돌아가고, 우연인지 의도인지 9시 그 애와 나만 남아 아이스링크를 내려다보며 레이저쇼를 기다리고. 주위가 어두워지고 천장의 가짜별이 반짝반짝하고 레이저가 황홀한 나비문양을 만들어 낼 때, 짐짓 가만히 내 옆머리를 귀 뒤로 꽂아주던 서툰 그 애의 손길과, 말할 수 없이 두근 거렸던 내 심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레이저쇼가 다 끝날때까지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끝내 밝은 지하철역으로 말없이 발길을 돌리던 순진한 두 사람이 생각난다.

첫사랑과 첫 데이트를 했던 곳도 롯데월드였고, 지방 출신이던 친구가 군대가기 전날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갔던 곳도 롯데월드였다. 결혼하고 미국에서 살던 언니가 첫아이를 얻고 귀국했을 때 같이 갔던 곳도 롯데월드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마지막으로 롯데월드를 갔던 것은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옆팀 신입사원이 뜬금없이 공짜표가 생겼다며 롯데월드를 같이 가자고, 휴일날 집앞까지 우리 집 앞까지 자기 차로 데리러 와서, 같이 하루 종일 잘 놀고 돌아오는 길에 됐다는 데도 극구 로리 인형까지 사 준 일이 있었다. 그게 롯데월드를 갔던 마지막이었고, 시작인 줄 알았던 그 사람의 데이트 신청도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에 가본 롯데월드는 뭐랄까. 더 내공이 강해진 마녀의 숲 같달까. 오래된 놀이기구는 꾸준히 윤색되어 초창기보다 채도가 더 높아졌고, 다닥다닥 테트리스 쌓듯 조그마한 공간을 어떻게든 돈벌이에 사용하겠다는 철저한 공간활용 능력이 더욱 대단해진만큼 가짜의 냄새는 더더욱 강해졌다.

나는 어제 또 다시 이 가짜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추억을 만들었다. 그렇게 많이 롯데월드를 갔지만 회전목마를 탄 건 처음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500원 넣는 자동차만 타 보던 아이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터지는 아이의 탄성은 그 무엇보다 진심이었다. 궤도를 뱅뱅 도는 그 단순한 자동차에 타서도 아이는 운전대를 자기 맘대로 돌려도 된다는 자유에 탄성을 질렀고, 내리면서 ‘아쉽다아~’를 연발했다. 그렇게. 아마도 이 말도 안되는 공간에 대한 애정은 지속될 것 같다.


영진공 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