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젤리 피쉬? 좀 알아보고 쓰자!


 


 


 



 


 








 


이건 경향 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 뉴스 기사를 제공하는 업체가 있는 것 같은데, 어쨌든 이 신문사들은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는 것인가?!  바다 한가운데서 투명한 생명체를 발견한 이 뉴질랜드 어부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 기사를 보며 든 생각은 “대체 이런 병신 같은 기사를 어디서 누가 만들었지?!” 였다. 젤리피쉬(jellyfish)의 뜻을 모르고 있는 듯한 느낌의 이 쓰다만 기사는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 생물은 물고기(fish)란 소린가, 아니면 젤리 피시(jelly fish)란 소린가, 해파리(jellyfish)란 소린가?


 


도대체 무엇이 이 멍청한 기사를 낳은 건지에 대한 궁금증이 내 존재의 근원 깊숙한 곳에서부터 일어났다. 그래서 원문 기사를 뒤졌다. 뉴질랜드 어부가 저 생물을 젤리피시라고 했는지, 아니면 그걸 다룬 외국 신문에서 젤리 피시라고 했는지, 아니면 우리 기자가 그냥 바보인지를 알아보려고.




검색 결과 이것에 관한 기사가 최초로 실린 곳은 영국 일간지 MailOnline 으로 보인다.




 





“Now that’s a jelly fish! Stunned fisherman catches wobbly shrimp-like creature that’s completely see-through”, MailOnline, Jan 21, 2014.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543194/Fisherman-plucks-bizarre-shrimp-like-creature-water-New-Zealand-thats-completely-through.html)


 


 


이 기사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학기사의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 첫 자에서 jelly fish를 언급할 뿐 본문에서는 투명한 새우 같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우리 입장에선 놀랍게도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 그 생물체의 정체는, 살파류salps이며 Salpa Maggiore (Salpa Maxima)라는 이름까지 밝히고 있다.


 


혹시나 해서 같은 내용을 다룬 New zealand Herald 기사를 보았다.


 






“Fisherman left baffled by see-through marine creature”, New zealand Herald , Jan 22, 2014.(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543194/Fisherman-plucks-bizarre-shrimp-like-creature-water-New-Zealand-thats-completely-through.html)


 


 


젤리피시 이야기는 없다. 그저 투명한 새우같이 보였다고만 말할 뿐 여기서도 전문가의 의견을 첨부하여 그 생물체에 관해 정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도대체 외국에서 이 기사를 퍼 온 녀석은 뭘 보고 기사를 쓴 건가. 제목에 비유적으로 한 번 언급된 jelly fish를 전체인냥 ‘젤리 피시’라고 떠벌리고 있다. 내용도 충실히 가져온 것도 아니고, 이 생물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기사엔 제대로 적혀있지도 않다.


 


그나마 번역도 틀려서 이 생물이 남쪽 바다에 살고 있다고 적혀있는데 얼핏 읽어서는 따뜻한 남쪽 나라 바다인 듯한 느낌이다. 근데 얘네들 추운 바다에 살거덩! 아..정말..얘는 이렇게 기사를 써놓고도 돈을 받겠지?!


 


이하 내용은 위의 두 외국 기사에서 이 생물체를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얘네들의 과학 기사를 대하는 자세 정말 부럽다.


 


 


 



 


 


 


이 생물은 살파류salps로서 Salpa maggiore (Salpa maxima)라고 한다. 젤라틴 같은 몸으로 물을 펌핑하여 바닷속을 움직이고 추운 바다, 특히 남극해 Southern Ocean에 풍부하게 서식한다고 한다. 햇볕이 드는 바다의 상층부에서 가장 작은 식물성 플랑크톤을 내부 필터internal filters로 포획해서 먹으며 심지어 박테리아조차 먹는다.


 


그래서 이들은 먹이 사슬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며 물고기, 거북, 물개에게 중요한 먹이 공급원으로 해파리보다 훨씬 더 영양가가 많다. 이들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희귀하지 않으며, 놀랍도록 빠른 번식률을 자랑한다.


 


 


 




 


 


그들은 홑 개체나 긴 체인을 형성하며 일부 살파류는 하루 만에 그들 개체군의 두 배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은 투명한 몸 때문에 발견하기가 힘들다.


 


 


 




 


영상 주소 http://youtu.be/kQ3g_8oJOcg




* 20초부터 보시면 살파류의 멋진 강강술래(?)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진공 self_fish


 


 


 


 


 


 


 


 


 


 


 


 


 


 


 


 


 


 


 


 


 


 


 


 


 


 


 


 


 


 


 


 


 


 


 

영화로 본 남자들의 연애심리


 


 


 


연애 할 때 남자는 어떻게 변할까요?


그걸 다 얘기한다는 거는 불가능한 일이니 대표적으로, <연애소설>속 지환(차태현)과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성기(류승룡)을 예로 들어 살펴 보겠습니다.


 


<연애소설>의 지환은 우연히 마음에 꽂힌 여자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뒤늦게 자전거 타고 쫓아가서 어설픈 고백을 하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계로 얼굴을 가린 채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매우 닭살스럽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공부벌레들에겐 상당히 공감가는 모습이죠. 그런데 그 겁 많고 조심스럽던 이 남자, 극장에서 자기 여자친구 옆자리에 다리를 올려놓은 건달에게 발을 치워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죠, 물론 속으로는 덜덜 떨고 있습니다만. 그 이전에는 한번도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었을 이 인간이 처음으로 용기를 낸 것 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혼자 샤워를 하면서 뿌듯해 하기고 하죠. 연애 할 때 남자는 이렇게 변하게 됩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성기는 바로 이런 모습의 극대화 버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연애할 때 남자는 시인이 되고, 영웅이 되며, 철학자와 박애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내성적이던 권상우는 학교 일진들과 옥상에서 결투를 벌이고, <프리티우먼>에서 냉혹한 인수합병가였던 리처드 기어는 갑자기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는 맨발로 잔디를 걸어보잖습니까 … 이게 모두 다 연애 때문입니다.


 


원래 남자들은 그렇게 키워지지 않았죠. 남자들의 관계는 목표달성을 위한 계약관계로 신의성실의 의무는 목표달성까지만 유효하다고 배웁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상대방의 속마음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서로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그저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남의 내면에 대해 무관심하면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는 법인지라 그래서 남자들은 감정을 이해하거나 잘 묘사하거나 감정을 교류하는 분야에서 초보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남자가 연애를 하면서 일시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연애할 때는 내성적이던 남자는 외향적이 되고, 외향적이던 남자는 내성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연애는 자기 성찰과 상대와의 소통을 모두 필요로 하는데 자기성찰을 위해선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내성능력이 필요해지고 소통을 하기 위해선 마음 속의 감정과 생각을 상대에게 드러내는 외향성이 필요하기 때문인 거죠.


 


 


 



 


 


 


영화 속의 성기는 바로 그런 양성성을 발휘하는 남자의 대표적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닭살 돋는 대사들 … “(나를 못찾으면)미아보호소에 가 있어요. 당신은 애기니까.!” … 이런 닭살돋는 대사를 거리낌없이 내뱉으려면 용기와 자신감이 어찌 아니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자신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과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서 닭살 대사는 주변에겐 닭살인데 둘 사이에선 서로의 신뢰를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난다는 점이죠. 여자들은 연애할 때는 그렇게 멋있고 자상하던 자기 남자가 결혼하더니 촌스럽고 무뚝뚝한 모습으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거 오해입니다! 사실 남자는 원래 촌스럽고 무뚝뚝했으나 연애 때문에 잠깐 변신을 했었던 거죠. 공주가 키스를 해 준 개구리가 왕자가 되는 건 동화 속 얘기가 아니라 현실이었던 겁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두현(이선균)도 그런 남자였습니다. 한때는 두현도 로맨틱하고 용감했었죠. 일본에서 처음 만난 정인에게 “저기요, 이런 미인을 만난 것도 영광인데 제가 밥한번 살께요.”라고 던지는 것 자체가 두현에겐 대단한 일이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이런 변화가 끝나고 원상태로 복귀합니다.


 


이제 두현의 목표는 다른 것들로 교체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성공하기 같은. 아내를 비롯한 삶의 나머지 요소들은 그저 그 목표달성에 필요하거나 방해가 되는 조건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정인은 그런 무뚝뚝하고 촌스러운 남자랑 결혼한 게 아니라 연애할 때의 균형잡힌 그와 결혼한 건데, 결혼 후에도 그런 모습을 기대하며 계속 행동하는데 두현이 받아주지 않으니까 갈수록 그 행동의 강도가 높아진 거였습니다.


 


 


 



 


 


 


정인이 이렇게 말하죠 … “침묵에 길들여지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에요. 하지만 전 계속 말할 거예요. 제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을 거예요.” … 이건 두현이 변하더라도 자신은 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마음은 정인이 두현에게 하는 대사 “나는 예뻤고.. 당신은 멋졌고.. 우린.. 아름다웠잖아.. 나.. 아직 예뻐?” 에서도 드러납니다.


 


성기가 “나는 네 아내를 그냥 원래대로의 여자로 대해줬을 뿐이야”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두현도 성기와 정인의 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보며 뒤늦게 정인의 심정을 이해하죠. “니가 항상 투덜대는 게 외로워서 그런 거였더라고. 내가 외로우니깐 그렇더라고.”


 


연애가 남자에게 발휘하는 마법은 어떤 경우에는 오래 가고 어떤 경우엔 금새 사그라지게 됩니다. 그 차이는 일차적으로 남자에게 달려있지만 어느 정도는 여자의 몫도 있습니다.


 


왜인고하니, 남자는 처음에 여자의 이미지 때문에 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삼고 움직입니다. 하지만 목표달성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찾아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대개 그 목표는 성장이나 발전과 같은 것이죠.


 


그러니까 남자가 그녀를 통해서 변화할 것이라 기대하는 한, 그리고 그 변화가 그에게 반가운 한, 그에게서 연애는 끝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