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드 파크>, 지금도 소년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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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헐리웃의 메이저 제작사와 몇 작품을 만든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구스 반 산트 감독이라고 하면 여전히 미국 독립영화를 떠올리게 되고 또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1991)와 리버 피닉스를 추억하게 됩니다.1) 콜롬바인 고등학교 사건을 소재로 만든 <엘리펀트>(2003)가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이제는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그러나 구스 반 산트에게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의 영화들이 이제껏 관심을 기울여온 대상들이 지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싸이코>(1998)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음지 속에 감추어진 청춘들의 상황과 심리를 포착해온 것이 구스 반 산트의 작품들입니다. 거렁뱅이 마약쟁이건 레즈비언이건, 천재적인 수학자이건 작가이건 음악가이건 간에 그들은 모두 아직 어리거나 아웃사이더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수자일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구스 반 산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공통 분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영화에는 만든 이의 입장과 시각이 반영됩니다. 구스 반 산트의 특히 최근 영화들을 보면 무슨 미국의 방정환 선생 같은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십대 청소년들을 내세운 영화들은 숱하게 많지만 그들의 일상을 희화화하거나 또는 주제의 부각을 위해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같은 콜롬바인 고등학교 사건을 소재로 다루어도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롬바인>(2002)과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의 접근 방식은 천양지차입니다. 마이클 무어가 미국 내 총기 관련 이슈에 대한 자신의 주장(그리고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기 위해 콜롬바인 사건과 미국 내 청소년 문제들을 최대한 활용했던 쪽이라면 구스 반 산트는 콜롬바인 사건을 중심으로 다뤄지는 세간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 일을 경험한 당사자들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합니다. 기성 세대의 시각으로만 사건을 바라보고 다루려 할 것이 아니라 총기 난사를 직접 경험한 그들의 세계를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고자 했던, 그럴 기회를 관객들에게 제공해준 작품이 <엘리펀트>였다는 생각입니다.2)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며칠을 소재로 했던 <라스트 데이즈>와 함께 <파라노이드 파크> 역시 동일한 입장과 시각이 유지되고 있는 작품들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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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 파크>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어느 소년의 고백입니다. 영화는 같은 장면들을 두 차례 이상씩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지난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단편적으로 뿌려집니다. 장면 마다 다양한 장르의 배경음악이, 별로 상황에 잘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은데 좌우지간 계속 흘러나옵니다. 드디어 소년이 경험한 그날 밤의 현장에 관객들도 초대됩니다. 그리고 미리 보여졌던 장면들이 다시 반복됩니다. 그제서야 소년의 행동과 무뚝뚝한 표정 속에 감추어졌던 심적 고통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날 밤 샤워를 하며 머리 위로 쏟아지던 물줄기 만큼 알렉스(게이브 네빈스)가 고통스러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음을, 어린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 고통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될테지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며 고백하여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건 잊지 말고 꼭 해볼만한 일이라는 걸 영화는 일러주고 있습니다. 밤새 장문의 글을 완성한 알렉스가 새벽 동틀녘에 자신의 고해성사를 한장씩 불태울 때에는 죽은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가 살아남은 자를 위한 축가처럼 울려퍼집니다.

알렉스의 동년배들을 제외한 어른들은 대부분 카메라의 시선 밖에 머물거나 너무 멀리 있거나, 아니면 아주 흐릿하게 처리됩니다. 촬영 감독으로 참여한 크리스토퍼 도일이 삼촌으로 등장은 하지만 소년의 주변을 맴돌다가 금새 사라질 뿐입니다. 카페에서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 어른은 거스 반 산트의 카메오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리차드 루 형사의 얼굴은 지나치게 크게 부각되고 어머니와 이혼을 앞둔 아버지는 한참 뒤에야 얼굴이 나오는 식입니다. 반면에 스스로 준비가 안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루빨리 그 안에 들어가 함께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싶어했던 파라노이드 파크는 꿈 속의 한 장면처럼 그려집니다. 그렇게 <파라노이드 파크>는 소년의 입장과 시각으로 세상을 인지합니다.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가 근거리이긴 하지만 주인공들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점이었다면 <파라노이드 파크>는 아예 주인공의 입장과 시각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안에서 발견한 무엇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작가의 입장과 시각에 따른 재해석을 들려주기 보다는) 그런 시도와 경험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관객들 스스로가 탐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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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까지의 거스 반 산트 감독 영화들은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85년 장편 데뷔작 <말라 노체>부터 <드럭스토어 카우보이>(1989), <아이다호>(1991), <카우걸 블루스>(1993) 등을 통해 미국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시기와 헐리웃의 메이저 제작사를 통해 <투 다이 포>(1995), <굿 윌 헌팅>(1995), <싸이코>(1998), <파인딩 포레스터>(2000)를 만든 시기, 그리고 다시 독립영화 쪽으로 돌아와서 <제리>(2002), <엘리펀트>(2003), <라스트 데이즈>(2005) 등을 만들고 있는 요즘입니다. 특히 <제리> 이후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을 벗어나면서 그 이전까지의 작품들과 다시 한번 구분될 수 있습니다.

2) <엘리펀트>는 그야말로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콜롬바인 사건과 같은 현실적인 이슈를 다룰 때 만큼은 마이클 무어의 방식이 (다소 간의 오류가 있을지언정) 좀 더 적합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거스 반 산트의 방식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될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추구한 결과물로 보입니다. 그것을 통해 수준 높은 예술이 완성되고 좀 더 근원적인 성찰이 가능했다고 한들,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은 틀리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앞에 두고서도 <엘리펀트>와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그런 태도가 조금은 얄밉게도 보인다는 겁니다.


영진공 신어지

[가사 검열] Miles Davis & John Coltrane – “So What”

재즈계의 두 거장 Miles Davis와 John Colt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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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뜨겁고 때론 차가운 트럼펫 연주로 재즈의 대명사가 된 Miles Davis와,
Miles와의 협연으로 알려지면서 級이 다른 색스폰 연주로 또 다른 재즈의 카리스마가 된 John Coltrane.

둘의 협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 오늘 소개하는 “So What”이다.

많은 이들에게 Miles Davis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 <Kind Of Blue>(1959년 발표) 앨범의 첫 트랙인 이 음악, 일단 듣고 느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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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영상은 <Kind Of Blue> 앨범이 발매되기 이전인 1958년에 촬영된 것으로,
Miles Davis와 John Coltrane의 협연 실황을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다.

그럼 모두들 즐감~ ^.^


So What
By Miles Davis (with John Coltrane)



영진공 이규훈

어느 가족 이야기

1.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 가족은 대대로 데릴사위를 들여서 집안 살림을 맡기곤 했는데, 언제인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다.


 


그러니까 그 집안에서 이전에 들였던 이들과는 많이 다른 데릴사위가 들어온 것이다.  그는 학력이 그다지 좋지 않고 집안내력이 휘황찬란하지도 않은데다가 언행마저 세련되지 않은 사내였던 것이다.


 


이 친구,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뭔 놈의 자존심은 그리 센지 집안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면 그냥 , 하는 게 아니라 꼭 토를 달고 나서질 않나,


 


가족 중에 누가 집안일을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버럭 소리지르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 들지를 않나,


 


지가 뭐 그리 깨끗하다고 가족 중 누가 뒷돈을 챙기거나 동네 사람 중 누가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하면 그냥 봐 넘기질 않고 냅다 따지고 들면서 법대로 하자고 눈을 부라리기도 하고,


 


여하튼 그런 사내였는데,


 


이 친구가 그래도 성실하기는 해서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고 저녁 때면 시간 맞춰 퇴근하고, 월급봉투 꼬박꼬박 챙겨오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밤 늦게 술자리나 도박 같은 건 잘 안하고 그렇게 가정을 돌보긴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가 가끔 가욋돈 좀 달라고 하면, 사람은 생긴 대로, 있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실컷 훈계를 늘어놓았고,


 


자식들이 학원 좀 보내달라면, 그런데 쓸 돈 없으니 학교 공부나 충실히 하라고 면박주기 일수였고,


 


집안 어른들이 땅도 사고 팔고 집도 사고 팔고 해서 돈 좀 챙겨보자 하면, 그건 이웃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우리만 잘 살아보겠다는 못된 심보라며 면박을 주었고,


 


심지어는 멀쩡히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집을 팔아서 지방으로 가자고, 거기 가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게 살자며 복덕방에 집을 내놓기까지 하였다 한다.


 


그러니 가족들에게는 자꾸 불만이 쌓여갈 수 밖에.


 


 


2.


그래서 어느 날엔가는, 가족회의가 소집되어 집안 어른들과 아내와 자식들이 모여 그 친구에게 따졌다 한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냐,


다른 집 가족들은 좋은 옷에 외식도 자주 하는데 우린 이게 뭐냐,


유명 학원에 최고 선생과 공부해도 명문대 가기 힘든데 만날 교과서만 보면 우리보고 뭐가 되라는 말이냐,


남들은 다 부동산에, 주식에 투자해서 좋은 차도 사고 비싼 술도 마시고 그런다는데 우린 아예 사는 재미가 없지 않느냐


가족 중에 힘든 사람을 우선적으로 살펴야지. 그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들만 힘든 지금 집안 꼴이지 않느냐.”


어떻게 된 사람이 집 안에만 쳐박혀있냐, 숨 막혀서 못 살겠다, 우리도 꾀 좀 피우며 살자.


등등,


 


이런 불만을 소리를 묵묵히 듣고 앉았던 이 친구,


역시나 늘 하듯이 가족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한다.


 


지금 우리 집안이 겉으로는 잘 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병들어 있다.


좀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요행수 바라지말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 미래의 풍요로움을 기대할 수 있다.


주변에서 나에 대해 말들이 많은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그건 실정을 제대로 모르고 지들 맘대로 꾸며서 하는 말이다.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불만이 있더라도 조금씩 참고 대화를 하면서 풀어보자.


 


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그의 말들을 하도 듣던 터라 오히려 지겨워할 따름이었는데, 그때 마침 집안의 친척 어른 한 분이 갑자기 그 친구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다.


 


, 이 자식아!  네가 아무리 깨끗한 척 도도한 척 해도 나는 네 놈의 정체를 다 알고 있다.  네 친구하고 후배 녀석들이 우리 집안 소작농 몇 놈한테 좋은 땅을 맡기기로 하고 뒷돈 받아서 매일같이 룸싸롱에 들락거리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놈아!!


 


그러자 그때까지 딱히 뭐라 말을 않던 다른 가족들도 일제히 목청을 높여 그 친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한다.


 


해명을 해 보시오!


당신도 같이 어울렸지!


근본이 그런 놈인데 어련하겠어.


뒤로 챙긴 돈 다 내놔라.


우리 집에서 나가 버려!


 


그런데 이 친구는 가족들의 그런 원성을 묵묵히 받아 넘기면서 달래기는커녕, 두 눈 동그랗게 뜨고 같이 맞받아쳐대기만 했단다.


 


막 가자는 겁니까!


정말 못해 먹겠네요.


전 제 친구와 후배들을 믿습니다.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는 가족들을 더욱 자극하기만 할 따름이어서, 설전은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 되었다.


 


마침내 이 친구, 갑자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가족들 앞에서 던져 보여주었다 한다.


 


 


3.


그것들은 다름 아닌 여러 개의 적금과 펀드통장, 보험증권, 그리고 각종 단체에 내는 후원금 계좌이었다고 한다.


 


여러분.  이게 바로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번 돈을 가지고 이렇게 내일을 대비해 왔습니다.


여러분들 말도 맞습니다.  알아 봤더니 제 주변사람 중 일부가 돈을 착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투자한 것 중 일부는 깡통을 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번 게 더 많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고요.  여기 있는 이 돈을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나눠드리지 못하는 제 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가족들은 그 친구가 바닥에 펼쳐 보여준 통장들을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다가는 하나씩 둘씩 자리를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들이 소리 없이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며 그 친구는 이제야 자신의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하면서 방바닥에 놓여있는 통장들을 주섬주섬 주어서 다시 품 안으로 챙겨 넣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생각과는 달리, 가족들은 다른 이유로 그 자리를 피한 것이라고 한다.


 


이젠 지겹다, 지겨워.  자화자찬도 유분수지.


지가 그렇게 잘났어?  뭐야, 재수 없게시리.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서 돈이라도 좀 나눠주면 얼마나 좋아.


저 친구, 사람이 저렇게 요령이 없어서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꼬.  우리 집 재산이 왜 저런 놈 손 안에서 거덜나야 하냐고.


그나마 깨끗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무 실망이야.  우리 가족 중에 일은 죽도록 하고도 소외 당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좀 더 챙겨주길 바랐는데, 저런 놈을 믿은 내가 바보지.


그래,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목청 높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미래를 대비한다고?  웃기고 있네.  세상은 무한경쟁이야.  지금 잘 살아야 앞으로도 잘 살 수 있는 거라고.


잘 난 놈은 잘 살아야 하는 거고 못난 놈은 그냥 그렇게 살도록 돼있는 거란 말이지.  그리고 내 손에 돈이 있어야 못난 놈한테 밥이라도 한끼 더 사 주고 그러는 거란 말이야.  지가 뭔데 내 돈으로 생색을 내고 지랄이야.


 


 


4.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로 집안에선 몇 차례 비슷한 언쟁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그 친구는 가족을 챙겨나갔다 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그 친구도 어느덧 늙고 쇠약해지자 가족들은 새로 데릴사위를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가세를 살리겠습니다.  오빠만 믿어!


여러 명의 후보자 중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한 사내가 새로운 데릴사위로 결정되었다.


 


결정과정 내내 가족 일부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친구에 대해 사기꾼이다 거짓말쟁이다라는 평판이 난무했고, 실제 그런 일들이 증거로 제시되기도 하였는데,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이 가족은, 가세를 살릴 적임자이고 검증된 사위감 이라는 이유로 그를 새 데릴사위로 들이겠다고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결정에 대해 불만을 가진 막내아들이 하루는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한다.


 


도대체 왜 저렇게 문제 많은 사기꾼 같은 사람을 들이시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세를 살리겠다면서 기껏 잘 모아놓은 적금 깨고 펀드 해약하자고, 그 돈을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자고, 그러면 걔들이 일자리도 주고 월급도 주니까 가세가 좋아진다고 하는 걸 믿으시는 겁니까?


그리고 돈 잘 버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고, 공부 잘 할 놈만 가려서 가르치고, 아프고 힘들어도 가진 것만큼만 치료해주면 집안의 기초질서가 확립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할아버지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다.


손자야.  네가 아직 어려서 그러는가 본데, 세상이 그렇게 순수하지가 않단다.  큰 일을 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때로는 모르는 사이에 불가피하게 남을 속일 수도 있단다.  네가 피해본 것도 아니면서 웬 호들갑이냐?


 


그리고 어머니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다.


얘야, 저 사람이 정말 그러겠니.  예전에 큰 일을 많이 했다던데 요번에도 다 잘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좀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앞으로 잘 하면 되지 않겠니.  일단은 밀어줘 보자꾸나.


 


이런 대답에 답답함을 느낀 막내 아들이 뭐라고 대꾸를 하려 하자, 그 자리에 있던 형과 동생들이 만류하였다 한다.


 


, 야, 그만해, 그런 소리 이제 지겨워.  누가 우리 집에 들어오든 뭔 상관이야.  어차피 우린 그냥 우리 식대로 살면 되잖아.  한 대 때리면 맞아주고 뭐라 그러면 고개 숙여주면 되잖아.  그러고 나면 용돈 좀 더 주겠지, 뭐.  다 그러고 사는 건데 넌 왜 그래.


 


 


5.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동생들이 말은 그렇게들 하였지만, 사실 그들의 생각은 말과는 달랐다 한다.


 


거짓말이야 다 하는 건데 뭘.  아무튼 지난 번에 보니까 적금통장에 돈이 아주 많더구먼.  일단 그걸 깨게 하고 내가 좀 챙겨야지.  내가 이 집안의 어른인데 왜 대접을 안 해주는 거야.  내가 품위 있게 놀아야 우리 집안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거거든, 암.  그러려면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그 사람이 사기꾼일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적금이랑 펀드랑 깨고 나면 나도 좀 달라 그래야지.  그걸로 작은 집을 하나 사는 거야.  옆집 순이네가 사 논 집이 세 배로 뛰었다고 그러던데.  나도 해 보는 거야.  잘 되면 평생 못 해본 사치도 한 번 해 봐야지.  이게 다 우리 가족 잘 되자고 하는 일인데 뭘.


 


뭔 놈의 보험을 그렇게 무식하게 많이 들었는지.  게다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왜 후원하는데.  직장 잡기도 힘들고 집 값은 자꾸 오르는데, 난 언제 벌어 차 사고 결혼하겠냐고.  보험이랑 후원금 좀 줄이면 그걸로 장사밑천이나 대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그 가족은 새로 데릴사위를 들였다고 하는데,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진공 이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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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여행을 꿈꾸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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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게바라와 알베르토가 함께 달리는 장면


나는 언젠가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체게바라의 뒤를 쫓는(?) 여행. 그가 걸어간 발자욱을 따라 한없이 걸어보고 싶다. 그게 가능하겠냐고 비웃어도 괜찮다. 꿈으로 그칠 것이라고 말해도 상관 없다. 그런 여행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아래 글은 한창 체게바라 열풍이 서점가를 강타(?) 했던 시절에 썼던 것인데, 다시 한 번 나의 특별한 꿈도 곱씹을 겸, 일상에 지쳐 있는 나에게 힘을 주는 선물도 줄 겸 해서 저 깊숙히에서 애써 꺼내 보았다.  영원히 꿈 꾸는 자, 영원히 행복하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달리 특별하기를 바란다. 당신 역시 예외가 아니라면, ‘체 게바라’의 발자국을 따라 여행해 보는 것을 어떨까?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던 의학도였다. 그러다,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두 번에 걸친 남미여행을 하게 되는데, 제국주의에 의해 수탈 당하는 인디오 원주민 등, 가난에 찌들어 있는 민중들의 삶을 목격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혁명은 오직 무장봉기로만 가능하다는 신념을 얻었다. 이후, 멕시코에서 망명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본격적으로 혁명의 길을 가게 된다. 인간의 질병이 아닌, 그들의 삶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혁명군을 모아 훈련시키고, 한걸음씩 부딪히던 끝에 쿠바혁명은 성공하게 되고 ‘체’ 는 쿠바은행 총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쿠바를 떠나 혁명가로서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을 찾아 떠난다.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에 이른 ‘체’는 쿠바에서와 마찬가지로 ‘혁명’을 위해 힘쓰지만, 결국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받은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고, 39세 라는 나이에 처형당한다.



39년이라는 짧은 시간. 그러나, 누구보다 촘촘히 살다간 ‘체’의 농축된 삶을 기록한 평전은, 이념 논쟁을 저만치 미룰 수 있을 만큼 ‘인간적인’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말로는 무엇을 못하고, 머리 속으로는 더더욱 무얼 못할까. 한참이나 날아온 이 시대에도 ‘체’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의 신념이 말과 생각 속에 그친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투철한 평등주의자이기도 했던 ‘체’는 자신이 지도자라는 이유로 대접 받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게릴라들의 지도자로서, 부상병과 농민을 돌보는 의사로서, 글을 가르치고 필요한 교육을 실천하는 교육자로서, ‘실천하는’ 그의 몸짓에 매료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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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쌓아갔던 ‘체’. 그리고, 그것을 몸 밖으로 발산했던 ‘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책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사진은,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시선을 이끄는 것이 아닐까? 날이 밝으면 ‘체’ 는 다시 또 움직일 테니까..




정직하고 성실한 혁명가였던 ‘체’는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였던 소련을 향해, ‘어떤 점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제국주의적 착취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발언을 날리기도 하고, 사회주의의 오류에 대해 고백하기도 했다. ‘체’가 가지고 있던 굳은 신념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런 정직한 신념 때문에 그 누구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미국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라틴 아메리카를 실현하려는 꿈을 평생 가지고 살았던 ‘체 게바라’. 힘든 게릴라 생활을 쿠바혁명의 성공의 자리에서 접고, 그 성과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그는 다시 군화를 신고 혁명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체’가 네 자녀에게 남긴 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너희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특별한 여행을 꿈꾸는 당신.  ‘체 게바라’의 뒤를 따라 떠나 보자. 아주 특별한 여행이 될 것이다.


영진공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