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즐링 주식회사> – 인생,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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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감독의 다섯번째 장편 <다즐링 주식회사>는 2001년작 <로얄 테넌바움>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번째로 정식 개봉된 작품입니다. 2004년작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은 빌 머레이가 주연을 맡으며 적잖은 기대를 모았었지만 결국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하고 DVD로만 출시된 바가 있습니다. 낯익은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은 지극히 소수 취향의 영화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번 <다즐링 주식회사>도 오웬 윌슨, 애드리안 브로디와 같이 잘 알려진 배우들을 앞세운 작품임에도 모 멀티플렉스의 인디영화 전용관 3군데에서 지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상영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난해한 내용을 다루거나 지나치게 독특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선호도에 따라 다소 지루한 감을 줄 수는 있으나 코미디와 가족 드라마의 범주를 결코 벗어나는 일이 없는 것이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입니다. 가족의 발견과 성장을 주제로 세련된 유머 감각을 구사하면서도 6 ~ 70년대 포크 음악과 슬로 모션을 적절히 사용하며 인상적인 ‘영화적 순간’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한 코미디 영화 그 이상의 뭔가가 더 있지 않겠냐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중적인 감각으로부터 다소 거리가 먼 작품들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웨스 앤더슨 영화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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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즐링 주식회사>은 Part 1으로 명명된 13분짜리 단편 <호텔 슈발리에>로 시작됩니다. 파리의 호텔방에 처박혀 한달째 머물고 있는 잭(제이슨 슈왈츠먼)이 헤어진 애인(나탈리 포트먼)과 재회하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단편이지만 일찌기 <로얄 테넌바움>에서 선보였던 디테일과 극적인 감수성을 다시 한번 응축해서 보여주는 작품이 <호텔 슈발리에>라고 생각됩니다.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등장해 남자 여럿 잡아먹을 듯한 도발적인 매력을 선보이는 나탈리 포트먼도 이채롭지만 그 앞에서 자궁 회귀본능을 달래는 콧수염 기른 제이슨 슈왈츠먼은 <로얄 테넌바움>에서 얼굴의 털을 다 밀어버린 채 손목을 긋고 말았던 리치 테넌바움(루크 윌슨)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합니다. 인도 출신의 영국 가수 피터 사르쉬테트(Peter Sarstedt)의 69년 히트곡 Where Do You Go To (My Lovely)를 들으며 호텔의 발코니로 이동하는 두 사람의 마지막 슬로 모션은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전형적인 ‘영화적 순간’의 재현입니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본편은 아버지가 죽은 후 1년만에 만난 세 형제가 수녀가 된 어머니(안젤리카 휴스턴)를 찾아 인도를 여행하는 로드 무비입니다. 고용인이나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나 여성들과 자기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세 형제는 아직 미성숙한 소년들에 불과합니다. 이런 남자 주인공들의 면모는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줄기차게 대물림되고 있는 공통 유전인자라고 할 수 있는데, 전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년이 되어서도 유소년의 내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아버지들이 부재하다는 사실입니다.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빌 머레이의 출연이 첫 장면에서 다즐링행 열차에 탑승하지 못하고 이내 사라지는 것으로 처리됨으로써 <다즐링 주식회사>의 내러티브는 동세대의 인물들만을 남겨놓는 한층 축약적인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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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세 남자의 인도 여행은 어찌보면 세상살이의 진짜 쓴 맛이라곤 한번도 경험해본 일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법한 부잣집 철부지들의 성장담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명품 여행가방 풀세트를 들고 기차를 향해 뛰고 또 올라타는 우아한 슬로 모션의 반복이라니요. 거의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에 가깝던 주인공들이 열차 밖에서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과거의 공유된 기억을 떠올리며 관계를 복원하는 모습은 대부분의 로드 무비와 성장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장르적 컨벤션에 가깝습니다. 자신들을 버리고 왜 떠났느냐,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왜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대사가 아닌 보여주기1)를 통해 세 아들과 관객들에게 화답합니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웨스 앤더슨 영화의 기존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친숙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주제를 앞뒤 딱 맞게 요약 정리하는 상당히 대중적인 화법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지 새로울 건 없지만 불변의 가치를 지닌 보편적 깨우침을 전달하는 영화가 <다즐링 주식회사>입니다. 주연급 배우들이 조연으로서 대거 참여해왔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애드리안 브로디만이 새로 참여해 오웬 윌슨이나 기타 단골 배우들과의 순도 높은 케미스트리를 선보입니다. 주요 등장 인물들의 숫자가 적절하고 내러티브 또한 전형적이라 할 만큼 기승전결이 맞아 떨어지는 대중친화적인 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보여줘왔던 웨스 앤더슨 영화의 스타일 상의 개성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참에 <다즐링 주식회사>를 출발점 삼아 웨스 앤더슨 영화들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도 썩 괜찮은 ‘웨스 앤더슨 월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잡한 분석과 인용을 필요로 하는 소수 취향의 영화가 아니라 누구나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보편적인 요소들에 좀 더 집중해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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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소 장황할 수가 있는 대답을, 그리하여 작품 전체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 부분을 하나의 초현실적인 롱테이크로 펼쳐보이는 수법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하라”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 ~ 1951)의 통찰을 떠올리게 합니다.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은 언어적 표현 대신 ‘보여주기’의 방법을 통해 전달이 가능하다고 했던 바, <다즐링 주식회사>의 이 장면이야 말로 형이상학적 주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친절한 설명문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객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지만 삶이란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한 나’가 되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란 깨달음을 웨스 앤더슨은 이 한 장면으로 통해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논리적인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대중적인 소통의 한 방식이 아니던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진공 신어지

미네아폴리스에서 어느 창녀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



Christmas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
By Tom Wait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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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I’m pregnant
And living on the 9th street
Right above a dirty bookstore
Of Euclid avenue
And I stopped taking dope
And I quit drinking whiskey
And my old man plays the trombone
And works out at the track

챨리, 나 임신했어.
그리고 지금은 9번가 유클리드 거리의
지저분한 서점 위층에서 살고 있어.
나 마약 끊었어,
그리고 술도 안 마시고,
우리 영감은 트럼본을 연주 해,
철로 변에서 돈 벌이를 하고 있지,

And he says that he loves me
Even though it’s not his baby
And he says that he’ll raise him up
Like he would his own son
And he gave me a ring
That was worn by his mother
And he takes me out dancin
Every saturday night.

그이는 날 사랑한대,
그리고 내 배속의 아이가 비록 자기 애는 아니지만,
자기 친 아들에게 하듯이,
잘 키워 볼 거래,
그이는 내게 반지도 주었어,
자기 엄마가 끼던 거래,
그리고
매 주 토요일 밤이면,
날 데리고 춤추러 가곤 해,

And hey charlie I think about you
Everytime I pass a filling station
On account of all the grease
You used to wear in your hair
And I still have that record
Of little anthony & the imperials
But someone stole my record player
Now how do you like that?

챨리, 난 네 생각을 하곤 해,
주유소에 들릴 때 마다,
거기에 있는 그리스를 보면,
머리에 잔뜩 기름 먹이던 네 모습이 떠 올라,
아 참, 나 아직도 그 레코드 가지고 있어,
“리틀 앤쏘니와 임페리얼즈” 말이야,
근데 실은 누가 내 턴테이블을 훔쳐가 버렸어,
기도 안차는 거 있지,

Hey charlie I almost went crazy
After mario got busted
So I went back to omaha to
Live with my folks
But everyone I used to know
Was either dead or in prison
So I came back to minneapolis
This time I think I’m gonna stay.

마리오가 잡혀 갔을 때,
거의 돌아 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오마하에 있는,
식구들한테 돌아갔었는데,
근데 내가 알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거나 빵에 가있는 것 있지,
그래서 다시 미네아폴리스로 돌아와야 했어,
아마 이젠 여기 정착해야 할 까봐,

Hey charlie I think I’m happy
For the first time since my accident
And I wish I had all the money
That we used to spend on dope
I’d buy me a used car lot
And I wouldn’t sell any of em
I’d just drive a different car
Every day, depending on how I feel

챨리, 나 지금 행복한 것 같아,
그때 사건 이후로 처음,
옛날에 우리가 약 사느라고 썼던 돈,
지금 그걸 다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중고차 거래소를 사서는,
차는 한 대도 팔지 않고,
매일 다른 차를 몰고 다닐 거야,
그날그날의 기분에 맞춰서,

Hey charlie for chrissakes
Do you want to know the
Truth of it?
I don’t have a husband
He don’t play the trombone
And I need to borrow money
To pay this lawyer
And charlie, hey
I’ll be eligible for parole
Come valentines day

챨리야, 씨발
사실은 말이야 ……
남편 있다는 거, 그 사람이 트럼본 분다는 거,
다 거짓말이야,
실은 나 돈을 좀 빌려야 돼,
변호사 살 돈 말이야,
챨리,
나, 다음 발렌타인데이에는,
가석방 신청 자격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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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이규훈

<베오울프>, “디지털 실사보다 더 감탄스러운 건 …”

내용보단 볼거리를 추구하는 영화를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300’에 대해서 관객의 평가가 극과 극인 건 나같은 사람도 여럿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오울프를 본 건 순전히 미녀가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메가박스의 3-D 상영이 종영되었기에 일말의 기대도 없이 영화를 봤다.

하지만 이건 내용보단 볼거리를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CG가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스토리도 나름 짜임새 있었고
세대를 이어가며 대물림되는 저주라는 발상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이는 ‘안젤리나 졸리가 겨우 5분 나온다’며 별 하나를 줬고
네이버의 평점도 6점대에 불과하던데,
내가 원했던 건 영화 속에서 대충 다 구현이 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혹평을 받았던 CG는 거의 사람에 가까워졌는데,
그냥 사람을 쓸 것이지, 왜 배우들이 연기한 걸 다시 디지털로 재현하는,
어려운 말로  ‘퍼포먼스 캡쳐’를 했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공부를 조금 해보니 이 방식의 장점은 여럿 있었다.
일단 잔혹한 장면이 나오더라도 CG니까 관객에게 그다지 징그럽게 다가오지 않으며
전라가 나오더라도 야한 느낌보단 신기하단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눈을 찌르는 등의 잔인한 장면이 나옴에도 미국에서 이 영화가
15세 등급을 받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단다.
혹자는 ‘베오울프’를 ‘영화의 미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가본데,
기발하긴 해도 대단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이렇게 대단한 야심가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미래의 영화가 다 이런 식으로 바뀐다면,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더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좀 서운한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디지털 실사보다 더 감탄했던 건 베오울프의 성기 가리기였다.
이 베오울프란 자는 뻑하면 전라 장면을 연출하는데,
괴물과 싸우던 날에는 자기만 갑옷을 입으면 괴물한테 미안하다고 전라로 잠을 청한다.
아니 갑옷 대신 나이트 가운이라도 입을 것이지 왜 그런 희한한 일을 할까?
전라로 달려 본 사람은 알겠지만, 막상 다 벗고 싸우려면 거기가 덜렁거려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닌데.

필경 그건 미모가 좀 되는 왕비한테 그것의 크기를 과시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크기를 가지고 으시대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의 크기를 키워주겠다는 메일이 나한테도 아주 많이 온다.
말이 잠깐 딴데로 샜는데
하여간 베오울프가 전라로 마루에 누울 때는 오른쪽 다리를 살짝 구부려 성기노출을 피하고
누운 뒤에는 다른 병사의 머리가 화면 중앙에 위치해 절묘하게 성기를 가린다.
천장에 올라갈 때는 샹들리에에 가려서 안보이고, 나무 틀에 가리고…
어쩜 그렇게 절묘하고 자연스럽게 성기를 가리는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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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스포일러.
베오울프가 죽여야 했던 괴물은 이전 왕의 업보인데
베오울프 역시 이전 왕이 저지른 죄를 답습해 또다른 괴물을 만든다.
이렇게 세대를 이어가며 왕들이 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단 하나,
안젤리나 졸리의 미모가 워낙 탁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졸리는 단 5분만 나왔어도 극 전체의 주인공인 듯 강한 카리스마를 남기는데
스토아 학파에 속하는 편인 나도 졸리의 유혹을 받는다면 눈을 딱 감아버릴 것 같다.
그 역에 졸리 대신 다른 여배우를 썼다면, 스토리의 치밀성에 큰 구멍이 뚫렸으리라.
다른 여배우는 대체 배우가 있지만, 세상에서 졸리는 하나 뿐이니까.
들켜 버렸다. 내가 졸리 빠라는 사실을.


영진공 서민

[이명박 공약 점검] 앞으로 5년, 무슨 일이 벌어질까?

대통령 당선자는 결정되었다.  BBK 특검이 남아있긴 하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일단은 넘어가자.

이제 차기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결정되었으니 그가 5년동안 추진하겠다는 일에 대한 약속, 즉 공약을 진지하게 점검해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

아무리 별 생각 없이 투표를 했다고 해도, 아니면 아예 투표를 안 했다고 해도, 향후 5년간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 비정규직 대책 – 그런거 없다. 왜? “아직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낮으므로 …”

동네에서 갈비집하고 노래방하는 자영업자 사장님들.  당선자가 이런저런 규제를 풀면 경제가 성장하고 여러분들 지갑에 쇳가루 좀 떨어질 거 같죠? 뭐 지표경제는 성장할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현 당선자는 비정규직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지 않다면서 딱히 비정규직 해법을 내놓으시지 않으셨거든요.


무슨 소리냐면요, 여러분 동네에 사는 수많은 비정규직 직장인들은 동네에서 외식하지 않을 거란 얘기예요.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동네는 더욱 그렇지요. 당장 낼 모레 잘릴지 모르고, 월급도 쥐꼬리인데 펑펑 외식하겠어요? 가족들하고 노래방? 오히려 지갑을 닫을 거란 얘기지요.


그렇다면 돈 좀 있고 안정적인 사람들이 사장님네 갈비집에 와서 고기 먹겠어요? 강북 자그마한 동네 자그마한 갈비집에? 그리고 그 옆에 붙은 노래방에? 퍽이나요. 그 분들 을지로 롯데 백화점 갈거구요. 강남 대형 외식업체 갈 거예요. 결국 돈은 여러분 같은 서민들 주머니로 가는 게 아니라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이걸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하다 못해 DJ.DOC도 목놓아 외쳤어요.


수차 얘기하지만 참여 정부 경제의 문제점은 경제 규모와 경제 지표는 커졌지만 내수 시장을 죽였다는 점이에요. 단군이래 최고의 수출호황을 누렸단 말이지요. 하지만 서민경제는 밑바닥 쳤습니다. 저투자 저성장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른 결과지요. 그런데 노무현 보다 더한 분을 뽑아놨으니 여러분 살림살이가 기대처럼 나아질까요.  뭐 그냥 받아들이셔야죠 …

2. 의료 서비스 대책 – 당연지정제 폐지 및 민간보험 도입

이명박 정부가 하려는 일 중에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와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도 있어요.


몸이 아파서 병원 갔는데… 어랏. 나라에서 운영하는 건강보험 가입자는 보험적용이 안되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니깐…

대신 여러 사보험으로 병원별 계약하겠지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그것이죠. 민간보험이 더 비싸고 보험적용 받기 어려운 건 알죠? 아무튼 삼성생명 노났네요. 이게 미국식 의료보험인데, 이건 마이클 무어의 <식코>를 보면 이 시스템 아래 국민들 꼬라지가 어떤지 잘 나와 있어요. 첫 장면만 얘기해 볼까요?


집에서 목공일을 하던 한 남자가 톱에 손가락 두 개를 날려요. 병원 가서 접합수술을 하려고 하니 웬걸? 몇 천만원이네. 어떡해요. 돈이 없는데… 남자는 두 손가락 중 결국 한 손가락밖에 살릴 수 없었어요. 나머지 한 손가락은 버려야죠.


보험회사는 노가 나겠지만 국민들 손꾸락은 성할 날이 없군요.

3. 교육 대책 – 자사고 100개 신설

사교육비 걱정되시죠? 당선자님은 아주 화끈한 대책을 내셨죠. 대학에 자율권을 주고 자사고 100개 만드신다니깐요.


대학 자율권. 그니깐 대학이 학생 선발을 자유롭게 하도록 하겠다는 건데… 지금 유명 대학들은 학생간에 변별력이 없어서 우수학생을 못 뽑겠다는 거잖아요. 그니깐 공교육 하의 학생들이 별 차이가 없는 거 같다는 얘기죠. 그래서 죽어라 본고사 부활을 외치는데… 이 본고사. 공교육 하의 학생들을 믿지 않는 대학들이 보겠다는 이 시험을 그럼 어디서 가르쳐줄까요?


딩동댕. 그렇습니다. 입시학원이지요.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니 학원에서 배울 수밖에.


게다가 자사고가 100개 만들어져요. 학비는 엄청 비싸지만 명문대는 쑥쑥 넣는 민사고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예전엔 민사고 같은 게 많지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했지요. 그 학교 다니는 학생들을 실생활에서 별로 접하지 못했으니까 뭐 그들만의 리그였던 셈인 거죠.


하지만 자사고가 100개 생기면 이 자사고 다니는 학생들이 주변에서 많이 보이네요. 어랏. 그런데 이 친구들 명문대에 쑥쑥 들어가네요. 그러니까 애들이 자기도 자사고 보내달라고 난리네요. 하지만 자사고 학비가 만만치않아서 허리가 휘네요. 부모 허리 휘는 것까진 좋은데 경쟁률이 높아서 입학하는 것도 쉽지 않네요. 그래서 자사고 입시학원을 중학교 때부터 다녀야 되네요.


딩동댕. 그렇습니다. 결국은 또 입시학원이지요.


자사고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사교육업체 전 회장이 이명박 당선자 캠프 특보구요. 그 사교육업체는 자사고만 설립하는 게 아니라 자사고 전문 입시학원도 인수하고 있어요.


그리고 하나 더. 한국 고교 1학년 학생들 수학과 읽기 능력은 OECD 최상위예요. 과학만 2000년 1위, 2003년 4위였다가 이번에 7~13위로 떨어졌죠. 공돌이들 무시하는 풍토니 원. 아무튼 이 결과는 고교생들 보고 대학들은 하향평준화라고 하지만 실제 하향평준화가 아니었던 거죠. 고교평준화가 하향평준화를 불러왔다는 한나라당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던 셈이구요.


그런데 이런 수준높은 학생들을 받아다가 교육시키는 대학들은 그 수준이 어떻죠? 서울대가 세계 51위던가요?  수준 떨어지는 거야 그럴 수 있다쳐도 좀 쪽팔린 줄은 아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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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상상도

4. To Be Continued …

삼성 등 재벌 관련 대책과 대운하, 부동산 등은 다음 기회에 다뤄보렵니다.

아무튼 앞으로 5년의 살림살이가 어떨 것 같은가요?  위에 적은 우울한 풍경이 이뤄지지 않길 빌어보겠지만, 만에 하나 이 풍경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지더라도 당선자 탓을 할 수가 없겠네요.  어쨌든 이런 공약을 내세우고도 이명박씨는 당선이 되었으니까요. 어쩌겠어요.  각자 알아서 생존의 방법을 찾는 수 밖에요 …


영진공 철구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그런 거 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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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는 썼으나 ...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있어 ‘위장결혼’은 매우 빈번하게 쓰이는 단골 소재였습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가족이, 사회가, 나아가 국가가 비혼을 일종의 (도덕적) ‘범죄’로 여기고 결혼을 종용하던 시대나 문화권일수록 위장결혼은 갈등과 긴장감, 혹은 코믹한 해프닝을 유발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되죠. 바꿔 말하자면, 위장결혼이라는 건 인간이 가족을 이루는 형태, 그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일남일녀의 결합이 얼마나 억압적인가, 혹은 나아가 이 결합을 둘러싼 갖가지 부수적인 것들이 얼마나 억압적인 조건들을 전제하는가를 폭로하면서 영화에 긴장과 스릴감과 코미디까지 제공해 줄 수 있는 퍽 유용한 도구입니다.


물론 위장결혼이라는 소재가 꼭 억압적인 결혼에 대해서만 쓰이는 건 아닙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소위 인류 존속의 신성한 의무에서 해방되자, 위장결혼은 또다른 곳에서 강력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제라르 드파르듀와 앤디 맥도웰이 주연을 맡았던 <그린카드>나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파이란>에서처럼, 보통 소위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본토인간의 위장결혼을 다루고 있습니다. 국가 단위가 인간 개인에게 제기하는 어떤 억압과 제약을 피해 결혼한 사람에게 주는 특혜를 받기 위한 속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했든, 그리하여 가족의 가부장에게 억압을 받아 억지로 결혼을 해야 하든 아니면 사회적 제도 안에서 결혼으로 인해 얻는 이익을 노리고 편법/불법을 자행하는 것이든(위장결혼이 ‘불법’이라고 하는군요.), 두 형태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사회가 비혼보다 결혼에 더욱 특혜를 주고 있으며, 강력한 억압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소리소문 없이 개봉한 <척 앤 래리>의 경우 논쟁적인 지점들을 건드리는 부분들이 꽤 있기에(동성간 결혼, 호모포비아 등)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흥미로운 지점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산 로맨틱 코미디인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어떨까요. 이 영화는 2006년 프랑스 개봉영화 중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을 모두 제치고 흥행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미국에 비하면 훨씬 관대한 정책을 펴는 나라입니다. 최근 들어와 보수화됐다고는 하지만, 이민자에 대해서도 사실혼이나 동성혼에 대해서도 적어도 미국보다는 진보적이지요. 그런 곳에서 위장결혼이라는 소재가 힘을 발하려면, 주인공들이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보다 절박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이를 관객에게 적절히 설득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위장결혼이란 소재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해프닝과 갈등을 그저 클리셰로 사용하고 있고, 그 어떤 흥미로운 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꽤나 성차별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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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철딱서니 없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위장결혼 소동을 일으키는 루이스.

루이스(알랭 샤바)가 위장결혼를 하려는 건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가족들의 등쌀에 못 이겨서입니다. 엠마(샬롯 갱스부르)는 돈 때문이지요. 아이를 입양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되리란 걸 기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루이스에게 그걸 요구조건으로 내세웠겠지요. 척 보기에도 그렇지만 루이스의 이유는 매우 철딱서니없고 이기적입니다. 사실 엄마와 여자형제들이 루이스에게 결혼을 강권하는 것도 한편 이해가 됩니다. 루이스는 고고한 싱글남의 삶을 살고 있지만 갖가지 가사일을 엄마와 여자형제들에게 미루고 있는 형편입니다. 심지어 따로 사는 주제에 지 빨래를 결혼한 여동생에게 미루고 있는 형편이에요. 처음 결혼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게 세탁을 요구하는 루이스에게 여동생이 짜증을 내면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한편’으로만 이해가 되는 것은, 이 여자형제들 역시 여자가 남자의 음식을 챙겨주고 세탁을 해주는 걸 너무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형제들이 루이스의 결혼을 서두르는 것은, 루이스 뒤치다꺼리를 루이스가 얻을 새 여자에게 미루기 위해서니까요. (왜 루이스에게 직접 하라고 하지 않는 거죠?) 게다가 이런 루이스의 모습을 묘사하는 코미디 장면에서는 ‘여자들에게 쩔쩔매는 한심한 남자’라는 시선이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루이스가 갈등을 해결하고 난 후인 영화의 말미에 ‘여자들이 주도권을 가진’ 집안 대소사 의결기구인 G7회의는 이 집안 남자들의 회의 의결기구인 M4로 대체되는군요.


반면 엠마는 너무나 순종적이고 자기주장이라곤 없는 게, 사람 냄새가 안 나요. 엠마가 정말 사람으로 보였던 장면은 물감냄새 난다고 방방 뜨는 루이스에게 화를 내는 장면과, 루이스와 위장결혼에 대해 계약서를 쓰면서 가격 협상을 하는 장면뿐입니다. 아무리 피고용인이라곤 해도, 사랑스러운 여자와 밥맛 여자를 그저 요구받은 대로 완벽하게 해내고, 아이 입양 문제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그저 수동적으로만 대처하다가 루이스가 개입하면서 루이스한테 고대로 끌려갑니다. 엠마는 그저 여자를 남자들이 자기 머릿속 판타지에나 등장시킬 법한 그런 생기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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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그러나 꽤 불쾌한 뒷맛이 남는 ...

물론 저 철딱써니 없는 루이스가 변모하는 것은 엠마가 입양하고자 하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엠마 몰래 보고나서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변한 게 결국 뭔가요. 가족들에게 당신들이 좋아하든 말든 엠마와 결혼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선 남자들의 회의를 정착시켜 여자들에게 빼앗긴 가부장의 권위를 회복하는 거로군요. 과연 그런 게 성숙인가요? 저밖에 모르던 놈이 애와 여자한테 선심 한번 베풀어준 것 말이에요. 영화의 엔딩에서 보면 양육에 있어 루이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오는 게 없어요. (역시 이 집안에선 양육이 여자들 책임?) 그래서 루이스가 희생한 게 뭔데요? 엠마가 가족들에게 그토록 미움받는 존재가 된 것도 실은 루이스의 요구조건 때문이었는데 말예요.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는 당대 남녀의 욕망의 충돌을 다루고 있고, 그럼에도 가부장적 결론이 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그런 가부장적 로맨틱 코미디라도 양심상 여자에게 어느 정도의 판타지는 제공해주는 법이에요. 하지만 이 영화는 별로 그렇지도 못합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남성의 욕망에만 신경쓸 뿐이죠. 이렇게까지 뻔뻔하면 안 되는 거죠. 한국보다 아무리 여권이 신장된 프랑스라고 해도, 역시 전세계 남자들은 똑같은가 봅니다. 이제 현대사회의 여성들은 예쁘고 몸매도 훌륭하고 똑똑하고 취향과 문화소양도 고급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잘해야 하고 밖에서 돈도 벌어와야 합니다. 내참. 제가 그런 조건 가졌으면 차라리 혼자 살지 결혼 안 해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오지만, 그저 한 마디만 내뱉을 뿐입니다. 그놈의 사랑이 뭔지.



ps. 샬롯 갱스부르의 하늘하늘한 몸매의 비결이 영화에서 밝혀졌습니다. 팝콘 같은 거나 가끔 먹고 거의 식사를 안 하는 것이었군요! 그래갖고서야 영양실조 걸리기 딱 맞지. 다이어트보다 중요한 건 건강입니다.


영진공 노바리